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자진 리콜 (3)
“이게 대체 뭡니까?”
화를 참아 보려 했지만 가시 돋친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준철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대답했다.
“어제 말씀드린 X9 불량 차량들입니다.”
“누가 지금 그걸 몰라서 물어요? 적당히 한두 대 가져오면 되지, 왜 여길 모터쇼장으로 만드냐 이 말입니다.”
“결함 조사 할 땐 샘플이 많이 필요하시다면서요.”
“80대가 샘플입니까?”
“X9 출고 대수가 총 1만여 대예요. 이 정도면 1%도 안 됩니다.”
최 원장은 따박따박 말대답 해 대는 젊은 놈 때문에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유사 이래 최대 리콜이었던 지난 7만대 리콜도 샘플은 겨우 10대 수준. 이것도 카트리 석학들이 전부 달려들어 두 달을 끌었다. 차량 80여대는 감당도 되지 않는 숫자다.
“과장님…… 주행 테스트가 무슨 운전면허 기능 시험인 줄 아시는 모양인데. 이게 운동장 한 바퀴 돌면 끝나는 그런 테스트가 아닙니다. 각 부품의 전문가가 달려들어 결함을 파악하는
조사라고요.”
“네. 그게 딱 우리가 바라는 겁니다.”
“네?”
“모의 도로 몇 바퀴 달려 보고 문제없다 하지 마시고, 타이어 고무까지 뜯어 봐서 이 차량 결함들 좀 밝혀 주세요.”
“…….”
“계속해서 같은 결함들이 제보되는데 왜 자꾸 원인 미상으로 결론이 나는 겁니까. 카트리가 제대로 밝혀 주십쇼.”
최 원장은 결론을 내렸다. 이 미친놈과 입씨름해 봤자 남는 게 없다는 것을.
그는 건성으로 끄덕이더니 손을 훠이 저었다.
“알겠어요. 돌아가세요.”
“조사 결과는 언제쯤 나올까요?”
“지금 저희가 스케줄이 많이 밀려 있습니다. 최소 6개월은 걸리겠네요.”
이번엔 준철의 얼굴이 굳어졌다.
“반년은 너무 깁니다. 아현차가 X9 생산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서 차를 팔고 있어요.”
“그래서요?”
“판매 차량이 누적될수록 사고 확률도 높아질 겁니다. 우선 테스트 좀 해 주십쇼.”
“지금 나더러 순서를 어기라는 겁니까?”
“어차피 지금 잡혀 있는 테스트는 신차 인허가 아닙니까. 그거 좀 뒤로 미룬다고 큰 사고 안 납니다. 근데 이건 달라요. 어쩌면 카트리에게도 책임이…….”
듣고만 있던 최 원장이 버락 소리를 질렀다.
“아니, 진짜 이 젊은 놈이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당신 나 지금 협박하는 거야?”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아니긴 뭘 아니야. X9 출시 인허가 우리가 했으니 우리한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내 귀엔 이렇게 들리는데.”
“그런 의미가 진짜 아닙니다.”
사실 그런 의미로 한 말이 맞았다. 대한민국에서 유통되는 차량은 모두 카트리 인허가가 필요한데 당연히 이놈들한테도 책임이 있다. 이렇게 발끈하는 걸 보면 눈치가 없는 인간은
아니다.
“내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월권하지 마쇼. 한 번만 더 이렇게 협박성 발언하면 당신 감사원에 고발해 버릴 겁니다. 업무 청탁으로!”
업무 청탁이라.
진짜로 이놈들까지 싸잡아서 검찰에 고발해 버릴까? 이런 똥차를 시장에 유통시켰으면 직무유기를 피할 수 없을 텐데.
“알겠습니다.”
속으론 그리 생각했지만, 준철은 그 정도로 대답하고 자리를 떠났다.
최 원장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우선 테스트? 젊은 새끼가 어디 주워들은 건 있어가지고.”
“원장님…… 근데 저 사람 말대로 이거 먼저 해도 될 것 같은데요. 다른 스케줄은 어차피 신차 인허가라 좀 늦춰도 됩니다.”
“사실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X9이 시중에서 계속 유통되는 것도 문제고……. 무엇보다 정말 불량이 확인되면 저희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 겁니다.”
최 원장은 겁먹은 직원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허튼소리 집어치워. 우리가 뭐 불량 차 한두 번 상대해 봐? 이건 어차피 아현이랑 고객이랑 타협안 나오게 돼 있어. 그때까지 최대한 늦춘, 아니 최대한 정밀하게 검사해 결과
발표한다.”
최 원장도 이 바닥 선수다. 자동차 불량 시비를 한두 번 겪어 봤나. 리콜 요청은 해마다 있는 이벤트였으며 그럴 때마다 기업과 소비자들의 원만한 합의로 끝났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최 원장의 행복 회로는 단숨에 무너져 버렸다.
“이 미친놈들이 뭐? 반년이나 기다리라고?”
“고속도로만 진입하면 시동이 꺼진다잖아! 이걸 어떻게 반년이나 더 몰아?”
“우리가 지금 할 일이 없어 여기까지 차 끌고 온 줄 알아!”
80여 명의 차주들이 연구소에 난입해 버린 것이다.
“다 필요 없고 책임자 나오라 그래! 최 원장이 누구야?”
“주행 테스트가 얼마나 개판이면 출시 6개월 만에 이런 하자가 접수되냐고. 이건 당신들도 공범이야.”
“저기 있다! 최 원장 저기 있다!
성난 군중은 연구실을 쑥대밭으로 만들더니 최 원장에게 달려들었다.
“오호라, 여기 계셨구먼. 우리 잘난 안전 원장님!”
“…….”
“대답 좀 해 봐요. 이딴 차가 어떻게 주행 테스트를 통과한 겁니까?”
“저기 여러분, 일단 진정하시고…….”
“우리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당신들이 출시 허가한 차가 이 모양 이 꼴입니다. 이거 우선 테스트해 달라는 게 업무 청탁 소리까지 들어야 할 얘기요?”
그때 한 의협심 높은 연구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여기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엄밀히 말해 이거 지금 공무집행 방해예요. 자꾸 이러시면 경찰 부르겠습니다.”
“바, 박 수석! 입 다물고 있어. 여러분, 일단 진정하시고 대화를…….”
최 원장이 급히 만류했지만 성난 차주들은 이미 눈이 돌아가 버렸다.
“이것들이 울고 싶은 놈 뺨 때려 주네. 뭐? 경찰?”
“오냐 불러라! 경찰 불러서 여기 있는 자료 싹 다 압수해 가 보자!”
“X9 인허가 테스트 어떻게 이뤄졌는지 싹 다 까 봐. 우리 공무 집행으로 잡혀가고, 네들은 직무 유기 업무 청탁으로 끌려가 보자!”
그렇게 아비규환이 되기 직전.
“아휴- 여러분, 아무리 답답해도 이러시면 안 됩니다. 우린 이성적으로 대응해야 돼요.”
준철이 등장해 성난 군중을 달랬다.
“진정하세요. 카트리도 다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무슨 사정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대체 무슨 사정요. 문제 차량 우선 테스트해 달라는 게 그리 큰 억지입니까?
“큰 잘못은 아니지만 카트리가 절차적으로 안 된다고 하면 안 될 수도 있는 문젭니다.”
혼내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가.
준철은 편들어 주는 척하면서 성난 군중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다간 연구소가 묏자리가 될 판국이었다. 결국 최 원장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X9 모델을 우선 테스트하죠. 최장 한 달 안으로 결과가 나올 겁니다.”
준철이 씩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자- 원장님이 약속까지 해 주셨으니 이제 진짜 그만합시다.”
***
“여우 같은 새끼!”
공정위가 떠나가고 난 뒤.
최 원장은 한참이나 씩씩거렸다. 방금 펼쳐졌던 일렬의 상황들은 아무리 봐도 놈의 계획적인 연출 같다. 주행 테스트에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걸 알고 일부러 극적인 상황을 만든
것이다.
“우선 테스트 진행시키려고 생쇼를 해 대네.”
젊은 과장 놈은 아무리 봐도 예사 놈이 아니었다. 분명 이런 상황 또한 다 계산을 하고 움직였으리.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봐도 마땅히 되갚아 줄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한숨만 쉬고 있을 때 책임 연구원들이 달려왔다.
“원장님 불량 차 80여 대 인수받았습니다.”
“후우…… 주행 테스트는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샘플 자체가 다 불량이니 시일은 빨리 끝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달 안으로는 무립니다.”
샘플(?) 차량이 18대도 아닌 80여 대. 이건 청와대 특별 지시라 해도 못 할 양이다.
차량 검수는 사람의 신체검사와 똑같다.
몸 전체를 신체검사하고 문제 된 부분을 따로 떼 추적 검사를 한다. 하지만 차량 검사는 병의 이름만 밝혀내면 되는 신검과 달리 병의 원인도 밝혀내야 한다. 보통 이 과정이 잘
규명되지 않아 원인 미상으로 결론 나는 것이다.
“지금 공정위 기세를 보면, 이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겁니다.”
“절대 원인 미상의 결함으로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불량은 인정하나 소비자, 기업 그 어느 누구도 편을 들지 않는, 중립적인 대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법을 고려하면 사실상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거나 마찬가지. 절대로 공정위가
이를 두고 볼 리 없다.
“일단 서두르는 척이라도 해 봐.”
“척이요?”
“답변 시일 계속 미루면서 조사 중이라고 둘러대란 말이야. 최대한 시간 미루면서 양측에서 중재안 나오길 빌어 보자.”
“알겠습니다.”
성난 군중에 떠밀려 조사하게 됐지만 그의 직무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무조건 중립! 절대로 중립! 이건 양측이 중재 나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하지만 최 원장의 그러한 기대는 보름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원장님, 차량 검수를 했는데…… 문제점이 상당수 발견됐습니다.”
차량 80여 대에서 하자 보고가 속출한 것이다.
“시동 꺼짐 현상은 이 누유관 부적합인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변속기 연결 배선도 엉망이었습니다. 피해 사례 중 급발진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 연결 배선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고압연료펌프의 내구성 문제도 드러났습니다.”
조사를 마친 연구원들은 아연실색했다.
잦은 시동 꺼짐과 급발진은 다행인(?) 축의 사고였다. 고압 연료 펌프가 마모되어 자칫하면 도로에서 차가 폭발해 버릴 수도 있었다.
“……출시 6개월 만에 고압펌프가 마모되었다고?”
“예. 이건 출고 때부터 내구성이 엉망이었다는 겁니다.”
“대체…… 이런 무더기 하자가 어떻게 발견되는 거야?”
이에 수석 연구원이 답했다.
“아무래도 급격한 체급 다운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체급 다운?”
“예. 혹시 몰라 X9을 아현차 캘리터와 비교를 해 봤거든요. 근데 설계가 대동소이했습니다.”
“지금 대형 SUV모델 설계를 소형으로 축소만 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체급만 이렇게 낮춰 출시하니 안전 문제가 속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원장님, 사실 지금 안전벨트나 에어백 오작동은 아예 건들지도 않았습니다. 이거까지 건드리면 정말…….”
진짜로 대재앙이다.
지난번 달려들었던 그 군중이 화염병을 던져도 할 말이 없다. 사실 사태는 여기서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불량 패턴이 모두 발견되었으니 결과만 발표하면 된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더 큰 문제가 발견되었으니.
“근데 이게 비단 X9의 문제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뭐?”
“아현차가 쓰는 차량 부품은 다 거기서 거깁니다. 근데 이렇게 내구성 떨어지는 부품이 발견되었다는 건…….”
“설마, 다른 차종에도 비슷한 불량이 발생될 수 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이 보고가 사실이면 차량 1만 대 리콜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