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자진 리콜 (4)
최 원장은 진땀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이거 얼마나 되는 거야?”
“조사를 몇 건 진행했는데 이 부품을 쓰는 차종이 모두 17만 대가량 되었습니다.”
자동차 역사상 최대 규모의 리콜이 7만 건짜리. 이것도 단일 기업 7만 건이 아닌 여러 브랜드에 내린 공동 명령이다.
사실 이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리콜이 아니었다. 주행 보조 장치 이상 등의 결함으로 차량 업데이트만 실시했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문제는 모두 안전과 직결된 문제, 최대 수위인 환불 명령이 불가피하다.
‘단일 기업에게 17만 건 리콜…….’
최 원장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렇게 되면 카트리 책임론도 피할 수 없지 않은가.
80명이 달려들어도 혼비백산했는데 80만 명 앞에서 조리돌림당해야 하다니.
“리콜 수위는?”
“일단 X9은 무조건 환불 조치해야 할 것 같습니다. 2순위 차종들 중에서도 몇 건은 환불 들어가야 할 것 같고요.”
“무상 수리로 막을 수 있는 건?”
“많이 잡아 봐야 15만 대 정도입니다. 보수적으로 잡으면 13만 대 정도.”
최 원장은 아찔함을 넘어 자괴감까지 들었다.
불량 부품을 쓴 차량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는데!
-카트리에게도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습니다.
그 젊은 놈의 협박이 이젠 현실화되어 가는 중이다. 한숨을 내쉰 최 원장은 수석 연구원을 바라봤다.
“13만 대로 발표해.”
“예?”
“무상 수리, 환불 이 사이에서 애매한 거 있으면 무조건 환불로 결정하란 말이야. 아주 사소한 결함도 그냥 넘기지 마. 지금부터 우린 소비자 편이다.”
연구원들은 그 말뜻을 대번에 이해했다.
이제는 공정위에게 매달려 자비를 구하는 수밖에 없다.
“뭣들 해? 겨우 20대 뜯어 보고 끝낼 거야? 빨리 가서 남은 60대 다 뜯어 봐.”
당분간 퇴근은 글렀다. 밤낮, 주말, 끼니까지 거르며 차량 분해만 해야 한다.
연구원들이 허겁지겁 사라지자 최 원장이 고개를 돌렸다.
“김 수석, 공정위에 공문 보내자. 1차 조사 결과 떴다고.”
“바로요? 그래도 좀 시일을 두고 지켜보는 게…….”
“시일은 개뿔! 지금 이 순간에도 X9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공문 두 장으로 복사해서 아현에도 하나 보내. 당장 판매 중지 걸어.”
“아, 예.”
최 원장은 급히 나가는 수석 연구원을 다시 불러 세웠다.
“잠깐만, 공정위에 보낼 공문에 문구 하나만 추가하자. 우리랑 공동 조사였다고…….”
이렇게 된 이상 전략을 바꿔야 한다. 숟가락 얹기로.
***
“그게 정말이에요?”
“네. 카트리 의견으로는 X9만의 문제가 아닐 것 같다 합니다.”
카트리의 보고서는 준철에게도 충격적이었다.
해당 문제가 다른 차종에도 벌어질 수 있다니……. 하긴 자동차가 아무리 첨단 사업이라 해도 부품은 거기서 거기다. X9에 쓰인 불량 부품은 다른 차종에도 쓰였을 것이다.
“문제 된 차량은 얼마나 됩니까?”
“일단 17만 대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중 13만 대는 무상 수리로 끝낼 수 있지만, 나머진 환불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준철은 한숨을 쉬었다.
차량 1만 대 리콜도 손이 떨리는데, 무려 4만 대를 환불 조치해야 하다니.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았네요.”
“꼬리가 길어 잡힌 거죠. X9은 아현차의 문제점이 집약된 결과물이었습니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더 맞겠네요.”
“갑자기 차종이 좀 많이 늘었는데……. 어떻게 할까요?”
“일단 X9으로 시작했으니 그것부터 끝내죠.”
준철은 다시 보고서로 눈을 돌렸다.
그간 소대위가 지적했던 원인 미상의 문제점들이 다 기업과실로 판명 났다.
카트리의 의견에 따르면 대체 이런 차가 어떻게 굴러간 건지 신기할 정도라고 한다. 인허가 내준 놈들이 할 말은 아니지만.
‘이러면 카트리도 불편해지지 않나.’
사실 가장 곤란한 건 카트리가 아닐까 싶다.
어찌 됐건 그런 차량을 전부 인허가 한 게 카트리 아닌가. 만약 이 사실이 전파를 타면 아현차가 욕을 먹는 것은 물론, 이런 하자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카트리 책임론도 불거질
것이다.
“카트리가 굉장히 불편할 수 있겠네요.”
“글쎄요. 거긴 불편한 게 아니라 아주 적극적이던데요.”
“적극적이요?”
“책임론 불거질까 봐 벌써 불안한 거죠. 이번 조사를 자신들과 공동으로 했다고 부탁을 해 왔습니다.”
다시 서류로 눈을 돌리니 공정위 의뢰 조사가, 카트리 협력 조사로 바뀌어 있었다.
하긴 안 그래도 흉기 차 논란에 시달리는 아현이다. 이걸 인허가 해 준 카트리의 순장은 예고된 수순. 같이 무덤에 들어가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배를 갈아타는 것이다.
“거긴 한술 더 떠 당장에 검찰에 기소하자고 합니다. 이건 분명 아현 내부에서 조직적인 은폐 시도가 있었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준철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검찰에 넘기기엔 부족해요. 은폐 시도가 진짜 있었는지도 모르고.”
“진실을 알려면 진실의 방으로 데려와야죠. 구치소 가둬 두면 술술 다 나올 겁니다.”
이건 기업에 몸담아 보지 않았던 공무원의 발상이다.
겨우 구속시킨다고 임원들이 사내 기밀을 풀겠나. 오너 일가를 대신해 횡령도 뒤집어써 주는 게 사내 임원들인데.
“그보단 우리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죠.”
“다른 방법요?”
“내부 고발자 한번 알아봅시다. 임원들 무작위로 구속시켜 조사하는 것보단 무너질 만한 사람 공략하는 게 빨라요.”
“맞는 말씀이긴 합니다만……. 내부 고발 할 만한 사람이 누군 줄 알고요.”
준철은 턱을 쓰다듬었다.
“짚이는 사람이 한 사람 있긴 한데…….”
***
아현자동차 박원석 전무는 긴장한 얼굴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회사는 이미 비상사태다. 카트리가 보낸 공문엔 X9의 결함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고, 회사는 부랴부랴 판매를 막았다. 구매 대기 고객들에게 차량 반도체 수급 불안 핑계를 댔지만,
곧 전말이 드러나겠지.
부회장은 그 뒤 여러 차례 임원 회의를 소집했지만 건설적인 논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즉각 환불 조치해야 할 차종들을 어떻게 하면 무상 수리로 막을 수 있을까, 사내 임원들은 오로지 그 문제만 골몰했다.
X9의 설계팀장이자 유일한 엔지니어 출신 임원인 그는 입을 닫은 지 오래였다.
최소한의 장인 정신도 없는 놈들과 설전을 벌여 무엇하리. 그는 소위 말하는 기름밥 먹어 가며 큰 엔지니어였다. 책상보단 현장이 편했으며, 서류를 만지는 것보단 파이프를 잡는 게
그에게 더 익숙했다.
“부질없구나…….”
사내에서 첫 엔지니어 출신 임원이 됐을 때만 해도 그에겐 꿈이 있었다.
한국에도 독삼사 못지않은 튼튼하고 세련된 차를 출시하는 것. 하지만 사내 임원은 자동차의 완성도보단 단가를 더 신경 써야 할 자리였다.
소형 SUV가 유행하자 부회장은 닦달하며 이런 차를 가져오라 지시했다.
국내 기술력으론 부족했기에 당연히 기존에 있던 대형 설계안을 재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유행 따라 만든 차가 어떻게 제대로 굴러갈 수 있겠나.
출시 전부터 잡음이 많았던 X9은 예상했던 대로 불량 보고가 폭주했다. 엔진이 시도 때도 없이 꺼져 소대위로부터 폭탄 민원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는 엔지니어로서 가책을 느끼고 부회장에게 판매 중단을 요청했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동료 임원들의 따가운 눈총뿐이었다.
-박 전무, 경영은 양심이 아니라 이윤이야. 우리 밑에 있는 식솔이 얼만데.
-자네, 좀 임원다운 품격을 보여 줄 수 없나?
-쯧쯧. 하여간 촌놈들은 양복 입혀 놔도 별수 없구먼. 아직도 저 기름때 냄새를 벗지 못했어.
이렇게 떠들던 임원 놈들은 아직도 리콜 명령에 응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간을 끌면 환불 조치할 차를 무상 수리로 바꿀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지친 고객이 아현의 제안에 응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정말로 사람 하나 죽어야 이 의미 없는 논쟁을 끝낼 것인가.
“안녕하세요. 박원석 전무님.”
상념에 잠겨 있을 때, 한 사내의 음성이 그를 깨웠다.
그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전화 주신…….”
“예, 맞습니다. 전화드린 이준철 과장입니다.”
겨우 회사 대리급밖에 안 되는 청년에게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이래서 죄짓고 살면 안 된다는 모양이다.
“먼저 자리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름 아니라…….”
“그 전에 나부터 좀 물어봅시다. 왜 나요. 회사 분위기 뒤숭숭한 거 아실 텐데, 왜 나한테 연락을 준 겁니까. 혹시 다른 임원들한테도 다 전화를 돌렸는데 나만 나온 겁니까.”
노심초사하는 모습. 내부 고발자들이 보이는 흔한 불안감이다.
“그럴 리가요.”
“그럼 나한테만 연락했습니까?”
“네.”
“대체 왜?”
“알아보니 전무님께서 X9의 설계팀장을 맡으셨더군요. 그리고 사내 유일한 엔지니어 출신 임원. 그래서 당연히 남다른 시각으로 사건을 보실 것 같았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해 줬지만 그는 별반 믿지 않는 눈치였다.
사실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심적인 부담이 클 것이다.
“먼저 이렇게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얘기를 드릴 여유가 없습니다.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 뭔지요.”
“X9 문제죠.”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얘기라면 개별적으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네. 결함 공문을 받았을 텐데 아직까지 반응이 없더군요.”
“…….”
“아무래도 아현차는 이 문제를 또 길게 끌 요량인가 봅니다. 뭐 오래 싸우면 환불 조치를 무상 수리 정도로 끝낼 수 있겠단 계산 때문이겠죠?”
정확한 지적에 그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박 전무님은 좀 다를 것 같습니다.”
“……내가 왜요?”
“돈만 생각하는 임원과 자동차 설계를 직접 맡은 임원. 당연히 차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죠.”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융통성 없는 놈!’
선배 임원들의 일갈이 떠올랐다. 하지만 곧 현실이 생각났다.
“어설프게 내 환심 살 생각이면 그만하세요. 나 그렇게 무른 사람 아닙니다.”
“박 전무님, 지금 아현차가 낭떠러지를 향해 폭주하고 있습니다. 이건 길게 끌 싸움이 아니에요. 정말로 인명 사고 나야 정신 차릴 겁니까.”
그는 주춤거렸다.
자신이 만든 차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이걸 알면서도 묵인하는 건 엔지니어로서의 자존심을 포기하는 것이다.
사실 X9 하자 접수가 밀려 왔을 때, 그는 즉각 환불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아니, 처음부터 설계 재탕을 강력하게 반대했던 사람이다.
이제 와 그런 변명은 의미도 없겠지만.
준철은 대답 없이 물만 축이는 그를 기다렸다.
생각이 복잡할 것이다. 여기서 다그치는 건 목전에 둔 물고기를…….
“X9은 설계부터 실패작이었습니다…….”
그리 생각할 때 충격적인 발언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