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40
240화
리콜 명령 (2)
“아니 말 한 번 안 들었다고 기소를 해? 여기 무슨 5공화국이야?”
홍상기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는 사실 사면초가였다. 언론 보도가 터지며 상승했던 주가분을 모조리 다 반납하지 않았나. 내막이 워낙 자세하게 퍼진 탓에 X9이 누구의 지시로 만들어졌는지까지 파다하게 퍼졌다.
이 여파로 그의 리더십엔 큰 타격이 생겼다. 세간에선 현재 전문경영인 체제까지 떠돈다.
“젊은 과장님이야말로 함부로 객기 부리지 마쇼. 공권력 함부로 남용하다간 큰코다칩니다.”
“이게 어딜 봐서 공권력 남용이죠.”
“모든 게 다! 리콜은 당국과 기업이 논의해 그 범위를 협상하는 겁니다. 근데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말 안 들으니 기소를 때려? 이게 바로 행정폭력, 공권남용, 월권입니다!”
많이 억울한가 보다. 공무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키워드가 다 튀어나오네.
사실 관례적으로 보면 그의 얘기가 더 맞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자동차 강제 리콜이 떨어진 사례는 없다. 당국이 권고하면 기업이 승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고, 여기에 도달하기까지 양자 간 치열한 줄다리기가 있었다.
한데 이 웬 깽판이란 말인가.
언론에 퍼트려 개망신을 주더니 대뜸 기소장을 내밀어 버린다. 하다못해 인명 사고라도 났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대형 사고도 벌어지지 않은 일에 기소장을 가져오니 고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뭔가 좀 억울해하시는 뉘앙스 같습니다?”
“네. 아주 억울합니다! 지금 인명 사고가 터진 것도 아니고, 그냥 흔하디흔한 자동차 불량 몇 건 발견된 건데 이렇게까지 해야 됩니까?”
보통 그런 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 표현하는데.
이쪽도 사람 죽기 전까진 딱히 경각심을 못 느끼는 모양이다.
“어쩐지 한 통화도 없으시더군요.”
준철은 이 헛소리를 오래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근데 이건 자동차 결함 때문에 나온 기소가 아닙니다. 은폐 의혹에 대한 기소지.”
“……뭐?”
“개발 단계부터 이미 문제점이 상당수 보고됐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출시 이후 하자 문제에 있어서 은폐 시도가 꾸준히 있었잖아요.”
부회장이 악다구니를 썼다.
“거짓말하지 마! 그딴 적 없어.”
“정말이에요?”
“당신이 나 코너로 몰려고 지금 없는 사실로 협박하는 거잖아. 이 이상 무례하게 굴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요.”
절대로 인정해선 안 된다!
자동차 불량은 기껏해야 업무상 과실. 아직 인명 사고가 난 것도 아니니 적당히 과징금 몇 푼 때려 맞고 끝날 문제다. 하지만 은폐 시도는 차원이 다른 죄질 아닌가.
“그럼 사실을 확인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이에 회의장의 모든 눈길이 한 사람에게로 쏟아졌다.
“박 전무님. 본인은 X9 모델에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차량 설계부터 생산까지 업무 총괄을 맡았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차종에 대한 이해가 깊겠군요. 전문가로서 정확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박 전무는 부회장에게 슬며시 눈길을 보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죄를 인정하고 소비자들의 무너진 신뢰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
무언의 눈빛에서 그리 간절하게 외쳐 봤지만 독기 가득한 눈총만 돌아올 뿐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두 마찬가지인 눈빛이었다.
이에 박 전무는 그냥 결심을 굳혔다.
회사의 안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지켜 온 엔지니어로서의 자존심이다. 내가 만든 차로 누군가 죽는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었다.
“X9은 설계부터 실패작이었습니다. 기존에 있던 대형 모델에서 체급만 다이어트시켰죠.”
“박 전무!”
“그 결과 부작용이 속출했고 안전 문제도 장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 모두 우리가 예상하고 있던 결과였습니다.”
박 전무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이미 개발 단계부터 부실이 지적되었단 말씀이군요. 그걸 강행한 건 누굽니까.”
“홍상기 부회장님입니다.”
“자, 자네 진짜!”
“좋습니다. 여기까진 개발 단계였고요. 이 이후에도 문제점이 지적되었죠?”
“네. 소대위 사람들로부터 하자 문제가 접수됐습니다.”
“아현차는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만.”
박 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 쪽에서 문제를 덮었습니다.”
“어떻게 덮었죠?”
“소대위의 환불 요구를 무시하고 무상 수리로 덮으려 했습니다. 소대위는 당연히 이에 응하지 않았고, 저희는 강행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죠?”
“결함 책임은 항상 제기하는 쪽에 있습니다. 저희는 그 법의 빈틈을 이용했습니다.”
고맙게도 박 전무는 약속한 말을 다 실토해 주었다.
이로써 회의실은 완전히 정적에 잠겼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노려보는 눈빛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저러다 부회장님의 숨은 비자금까지 다 실토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러웠다.
그렇게 길고 긴 진술이 끝났을 때, 준철이 물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습니까.”
“모두 다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그는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회사에 대한 저의 충정만은 꼭 알아주십쇼.”
“…….”
“개발자로서 인명 사고가 뻔히 보이는 차를 더 이상 두둔할 순 없는 일입니다. X9의 실패를 인정하고 시장에 전량 회수해야 합니다.”
“…….”
“아울러 불량 부품 문제를 점검하고, 안전 문제에 더욱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부디 제가 하는 고백이 내부고발이 아닌 회사를 위한 직언임을 알아주십쇼.”
이건 준철이 아닌 부회장에게 하는 말이다.
그의 마지막 진술이 끝났을 때, 준철은 그를 일으켜 먼저 자리를 떠나게 배려했다.
그렇게 한참 뒤, 준철이 물었다.
“저희 조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총 리콜 차량은 17만 대. X9은 전량 회수하고 조건 없이 고객들에게 환불해 주세요.”
“…….”
“이 중 불량 부품을 사용했던 4만 대 또한 환불 대상입니다. 총 13만 대가 되겠네요. 그 외 나머지 차량에 대해선 무상 수리 지원을 허가하겠습니다.”
채찍으로 실컷 내려쳤으니, 이젠 당근도 꺼내야 한다.
“이 조건에 응하시면 형사처벌은 없을 겁니다. 천만다행히도 아직 인명 사고가 접수된 건 아니니. 하지만 끝까지 가면 저희도 별수 없겠죠?”
“…….”
“저희는 누군가의 처벌보다 현 사태 조속한 해결을 원합니다.”
너그러운 말투로 말했지만 명령임을 강조했다.
홍상기는 긴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리콜 명령에…… 모두 승복하겠습니다. 무상 수리도 잡음 없게끔 신경 쓰겠습니다.”
***
-먼저 일련의 사태들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이튿날.
아현차는 공식 성명을 냈다.
연단에 선 홍상기 부회장은 미사여구 가득한 말로 입장을 설명했다. 요지는 결국 당국의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아시다시피 현재 저희 아현차 X9에는 구조적인 큰 결함이 발견되었습니다. 아울러 저희 아현차 17만 대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이에 저희 아현은 고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라 판단, 4만 대를 즉각 환불해 드리며, 무상 수리해 드릴 것임을 발표드립니다.
이번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삼아 더욱 정진하는 아현이 되겠습니다.
누가 들으면 단번에 승복한 줄 알겠다. 입씨름하던 장면을 녹화해 전 국민에게 뿌렸어야 하는데.
다행히도 기자들은 이를 그냥 받아쓰기만 하는 바보들은 아니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쭉 퍼트리며 아현의 구질구질함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럼 그렇지 이 미친놈들!
난 또 하도 비장하게 발표해서, 아현이 구국의 결단이라도 내린 줄 알았다.
⌞또 속냐? ㅋㅋ 원래 자동차 리콜은 다 권고에서 마무리된다.
⌞ㅇㅇ 강제 리콜까지 간 거 보면 어지간히 버틴 거.
⌞저 새끼들 내수 차랑 수출차 차별만 안 해도 이딴 일 못 벌이는데……
-속보! 속보! 아현차 공식 판매 홈피에 보상안 뜸!
리콜 대상 차량에 바우처랑 보증 기한 연장해 준다고 광고해 대네.
⌞키야~ 이 새끼들 어떻게든 환불 차량 줄여 보려고ㅋㅋㅋ
⌞하여간 이럴 때 내놓는 보상안은 빨라
⌞여기에 속는 흑우 없제? 돈 몇 푼 받고 똥차 계속 끌다가 골로 간다잉~
아현차의 표리부동한 작태는 네티즌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되었다.
“고생했다. 단일 기업에게 17만 대 리콜은 전무후무한 기록이구먼.”
유경민 국장은 흐뭇한 얼굴로 준철을 칭찬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성과다. 행정소송까지 가도 이상하지 않을 사건에 승복을 받아내지 않았나. 카트리에 불량 조사를 의뢰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준철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최소 3년은
끌었을 사건이다.
“근데 이건 뭐야?”
유 국장은 별도로 만들어진 서류에 눈을 돌렸다.
“법 개정안입니다.”
“법 개정?”
“네. 현행법은 고객 쪽에 입증 책임까지 물어 문제 제기가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이런 문제가 계속 누적되어 17만 대 리콜 사태까지 간 거고요.”
“그럼 앞으로 기업에 입증 책임을 묻자는 거야?”
“네. 알아보니 유럽과 미국 쪽은 기업이 문제없음을 증명해야 하더군요. 참고해서 법을 개정하면 소비자 권익을 한층 더 강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 국장은 웃음을 터트렸다.
“내 참 살다 보니 국장한테 일 시키는 과장을 다 보네.”
“그런 건 아니지만…….”
“웃자고 한 소리다. 암-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마무리해야 다음에 같은 사건 재발 안 하지. 다음 차관 회의 때 내가 적극적으로 법 개정 어필해 보지.”
보면 볼수록 기특한 놈이다.
기업에 책임을 묻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런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만한 대책까지 가져오지 않는가.
“대신 이건 내 이름으로 발표해도 되냐? 개정안 보고서 아주 훌륭한데?”
“당연하죠.”
“당연은 얼어 죽을. 출처가 누군지 확실히 밝힐 거니까 마음의 준비해. 진짜 법 개정 이뤄지면 이 과장이 국회 참고인으로 가야 돼.”
“……알겠습니다.”
국회라…… 거긴 왜인지 이름만 들어도 알레르기가 튀어나온다.
“마지막으로 이건 뭐냐?”
유 국장은 마지막 별첨 자료를 들었다.
“그건 제 연차 신청서입니다…….”
“뭐? 연차?”
“네. 종합국 과장으로 부임하자마자 계속 일만 해서…… 다음 주에 한 이틀만 좀 쉬고 싶습니다.”
이 정도면 공무원이 아니라 공노비다. 30대가 되니 서서히 체력도 달린다.
유 국장은 민망했던지 머리를 긁적였다. 준철이 오자마자 일을 시작했던 건 다름 아닌 그의 지시였기 때문이다.
“이틀 가지고 되겠냐? 한 사흘 쓰지.”
“아이고- 아닙니다. 사건 다 직접 맡느라 팀장들 결재 많이 밀렸습니다.”
“그 결재 나한테 가져오라 그래. 내가 대타 뛰면 되잖아.”
과장 업무를 국장님이 대신 해 주겠다고?
감동이 밀려오는 준철이었다.
“사흘로 시켜 줄 테니까 편히 쉬어. 대신 돌아오면 더 일당백으로 뛰어야 돼.”
“넵. 알겠습니다.”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그냥 내일부터 휴가 할래? 금, 월, 화. 이렇게.”
“아닙니다. 밀린 결재가 남아서 내일은 그냥 출근하겠습니다. 월화‘수’ 쉬겠습니다. 흐흐.”
그렇게 연차를 쓰고 나오는 길.
준철은 자리로 돌아와 쓰러져 버렸다. 팀장들이 올려 댄 보고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서울로 오고 난 후부터 정말 정신이 없었다. 한육원 담합부터 오늘까지. 정말 오자마자 한 일이 너무나도 많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연차 수리되면 당분간 일 좀 생각 안 하고 편히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