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45
245화
성진유업 (3)
성진유업을 치고 돌아가는 차 안.
두 팀장은 무거운 한숨만 내쉬며 차창 밖을 바라봤다.
솔직히 절망적이었다. 우회 리베이트가 걸려도 별수 없다? 대체 무슨 안전장치를 걸어 놨다는 걸까.
조사가 이쯤 진행됐는 데도 놈들은 겁을 먹은 기색이 아니다. 확신에 찬 김 사장 얼굴이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다.
“황 팀장님, 자료 확인은 다 했습니까?”
“예. 16개 계열사 자료 모두 빠짐없이 넘겨받았습니다.”
“뭐 이상해 보이는 건요?”
“안 이상한 게 없을 정도더군요.”
성진유업 계열사들은 전형적인 빨대 꽂기 자회사였다.
제품 포장지를 만드는 회사, 운송회사 등이 전부다. 더러 몇 곳은 존재할 이유가 없는, 달리 말해 비자금 창구로 보이는 회사였지만 그리 큰 액수는 아니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일감 몰아준 내역 몇 건은 파악해 놨습니다.”
“아닙니다. 이 사건 별건 조사 안 칠 거예요.”
“그래도 보험용으로…….”
“이건 정직하게 해도 이겨요.”
황 팀장은 고지식한 과장 때문에 속을 태웠다.
이 난리를 다 피웠는데 정말 별건을 안 치겠다니…….
“걱정되세요?”
“김 사장의 당당함이 좀 걸리는군요. 우회 리베이트란 걸 걸렸는데도 주눅 들지 않았어요. 그게 걸렸는데도 안전한 장치가 대체 뭔지.”
준철도 같은 심정이었다. 대체 무슨 방식의 리베이트기에.
하지만 그건 천천히 자료 뜯어 보면서 파악해도 늦지 않은 일이다.
“서 팀장, 지금 병원장들 얼마나 만나 봤지?”
“20여 곳요. 납품 규모 큰 상위 업체들만 만나 봤습니다.”
“그럼 내일 중으로 다시 병원 돌아다녀. 이번엔 50곳 전체…… 다.”
서 팀장이 의문을 표했다.
“과장님…… 아무런 소득도 없었는데요. 두 번 한다고 의미가 있을까요?”
“이제부턴 생길 거야.”
“예?”
“국장님이 쩨쩨하게 유도신문 같은 거 문제 삼지 않으시기로 했다. 이번에 돌아다닐 땐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듯이 행동해.”
“아…… 흔들어 놓으실 모양이군요.”
“그래, 우리가 성진그룹 전 계열사 자료 압수했다는 거, 그쪽 귀에도 다 들어갔을 거다. 미친 듯이 흔들어야 돼.”
현 난관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병원들의 자백. 그자들이 어떻게 로비가 이뤄졌는지 불어 주면 일단 큰 수고 하나는 덜 수 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여의도에 도착한 세 사람은 커피 한잔 나눌 새 없이 서로의 사무실로 흩어졌다.
***
-당신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또 쫓아와?
-염병할 국민신문고 일 안 하는구먼. 당장 파직시키라고 민원을 넣었는데, 여길 또 와?
-거 알 만한 사람끼리 그만 좀 합시다. 증거 하나도 못 잡았다면서. 이거 언제까지 물고 늘어질 거요.
돌격대장 서도윤은 오늘도 병원장들에게 치욕을 겪고 있었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토록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조사는 처음이다.
한 번 조사했던 병원장들은 이전보다 더 화가 많이 나 있었고 기세등등했다.
공정위 조사관이 어디 가서 이런 모욕을 당할 일이 있을까. 기업 저승사자란 말이 무색할 만큼 매일 동네북처럼 얻어맞고 다녔다.
‘베테랑 좋아하네……. 이거 완전 몸빵이잖아!’
파고드는 치욕 속에서 서 팀장은 자신의 쓰임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과장님께 단단히 속은 것 같다. 실력 좋은 베테랑 조사관이 아니라, 그냥 욕먹고 다녀도 별 타격 없을 젊고 싱싱한 조사관이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현장학습이라 생각하면 별수 없지만.
“팀장님, 한마음 병원은 또 변호사 대기시켜 놨다는데요?”
“이대로는 무립니다. 아니, 대체 언제까지 맨땅에 헤딩식 조사예요. 이거 진짜 답이 안 나옵니다.”
반원들의 불만도 이에 비례해 커졌다.
서 팀장의 역할은 이들을 잘 달래는 것이기도 했다.
“일단 점심 먹고 합시다. 오전 조사 모두 고생 많았어요.”
근처 콩나물집에서 자리를 틀 때, 문득 과장님께 전화가 왔다.
‘젠장. 조사 성과 아직 없는데…….’
그는 헛기침하며 전화를 들었다.
“아이고, 과장님. 오늘은 조사가 좀 안 풀리는데요. 제가 나중에 전화를 다시…….”
-서 팀장, 지금 당장 튀어 와. 성진유업 로비 시나리오 잡았다.
“저, 정말요?”
-어, 병원 그만 돌고 바로 튀어 와.
온몸에서 전율이 일어난다. 드디어 이 깜깜이 조사가 끝이란 말인가!
서 팀장은 숟가락을 내팽개치며 바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
“맞죠?”
“예. 맞습니다. 에브리유업 여기예요.”
“이거 지금 얼마나 들어갔습니까?”
“한 500억대 되는 것 같습니다.”
회의실에 도착하니 황 팀장과 준철이 심각한 얼굴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로비 방식이 잡혔다더니 대체 뭘까.
“이거 받아. 놈들 로비 시나리오 나왔다.”
서류를 받아 든 서 팀장은 무슨 말인지 파악하느라 한참을 애썼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겐 듣도 보도 못한 로비 방식이었다.
“무이자…… 대출?”
“그래, 그게 로비 방식이다. 성진유업의 계열사 중 하나인 에브리유업이 병원들한테 돈을 빌려줬어, 무이자로. 병원은 그 대가로 분유 납품권 준 거야.”
“아니 그런 로비도 있습니까?”
“흔하진 않지. 이건 원래 제약 업계가 개원의들한테 쓰는 로비니까.”
소위 말하는 대출 로비다.
기업이 납품처에 돈을 빌려주고 이 대가로 납품권을 따내는 일. 이건 보통 제약업체들이 자금난에 시달리는 개원의들한테 자주 쓰는 로비 방식인데, 여기서 구경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성진유업은 모든 로비 방식에 통달해 있는 모양이다.
“이 자식들 왜 이렇게 안 잡히나 했더니.”
황 팀장은 치를 떨었다.
세상에 이런 로비를 어떻게 잡을 수 있겠나. 지난 1차 적발 이후 놈들의 로비 방식이 더욱 교묘해졌다. 이것도 모르고 지난 내리 한 달을 본사 자료만 파고 있었으니 헛수고도 이런
헛수고가 없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서 팀장은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황 팀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좀 돌아가긴 해도 결국 잡을 건 잡았네요. 과장님 그럼 이제 조사 다 끝난 거네요? 진짜 고생 많으셨습니다.”
서 팀장 또한 이번 조사의 일등공신이다. 황 팀장이 책상에 앉아 서류만 팠다면 이쪽은 직접 병원들을 찾아다니며 조사 최전선에 앞장섰다.
그 과정에서 병원장들한테 얼마나 문전박대를 당했던가. 지난 설움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쳤다. 이제 명확한 증거가 잡혔으니 놈들을 설설 기게 만드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준철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은 그 기대를 순식간에 무너트렸다.
“끝은 무슨, 이제부터 시작이지. 아니, 아직 시작도 못 했다.”
“……예? 아니, 증거 다 잡았잖아요. 이제 병원 새끼들, 아니 병원장들 다 소환해서 자백만 받아 내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이거 대가성 입증 못 해. 성진유업이 끝까지 당당한 이유가 있었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서 팀장이 설명을 따라가지 못하자 황 팀장이 부연했다.
“로비 대가로 1억을 받는 것과, 1억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건 천지 차입니다. 근데 지금 이 경우는 1억에 상응하는 대가죠.”
“아니……. 그건 그냥 말장난 아닙니까?”
“그 말장난이 법원에서 유무죄를 판단하는 가장 결정적인 단서가 돼요.”
“……황 팀장님, 그럼 뭐 횡령이나 배임 같은 것도 못 겁니까? 회삿돈을 남한테 함부로 빌려줬는데.”
“단념하는 게 좋을 겁니다. 성진유업이 대출 내줄 때 당연히 계약서 다 썼을 거예요. 이 대출 계약서만 들이밀면 횡령 배임도 어렵습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기업이 명백한 대가를 바라고 무이자 대출을 실행해 줬는데, 이게 대가성이 아니라니.
하지만 많은 제약 업체들이 이러한 논리를 앞세워 개인병원 대출 로비를 빠져나갔다. 지금은 판례도 불리한 실정이었다.
준철은 팔짱을 꼬고 한숨을 내쉬다 고개를 돌렸다.
“황 팀장님, 이거 대출 승인 얼마나 해 줬습니까?”
“총 500억대요. 지금 연루된 기업이 50여 곳이니 한 병원당 10억씩 내줬을 겁니다.”
“이거 만약 시중에서 대출 받았으면 어떻게 되죠?”
“현재 은행에서 가장 싼 금리 대출이 주담대인데 이게 5%대입니다. 개원의는 신용 대출로 분류가 되는데 이건 한 7-10%로 나옵니다.”
이걸 무이자로 대출해 줬으니 로비 자금은 최소 7천에서 1억 사이로 계산할 수 있었다.
“만기도 무슨 10년짜리라서 사실상 영구 대출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만기 10년짜리라……. 이건 뭐 국채나 다름없네요?”
“네. 아마 성진유업은 원금 받을 생각 없었을 겁니다. 병원들한테 족쇄 달아 놓고 계속 자사 분유 쓰게 만들 생각이었을걸요.”
김 사장이 왜 면담 자리에서 반말 찍찍 내뱉으며 당당했는지 이해가 된다.
이런 종류의 로비는 찾아내기도 힘들뿐더러, 찾아내도 처벌하기가 어렵다. 대가성 대출이 아니라 그냥 기업 대출이었다고 잡아떼면 처벌 근거가 없다.
“과장님, 그냥 저희도 치사한 방법 하나 쓰시죠.”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이번에 성진그룹 전 계열사 자료 파악하며 일감 몰아준 내역, 김 회장의 비자금으로 보이는 내역 모두 확보해 놨습니다.”
“별건 조사를 치자고요?”
“어차피 이거 본조사는 글렀습니다. 그놈들도 치사한 방법 썼는데 우리라곤 왜 못 합니까.”
황 팀장의 분노가 여실히 느껴졌다.
준철은 이를 달랬다.
“진정하세요. 아직 다 끝난 거 아닙니다. 개원의들한테 무이자 대출해 줬던 제약 업체들이 전부 다 처벌 피했던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대다수는 피해 갔죠. 처벌 받은 건 소수일 뿐입니다.”
“이것도 그 소수의 사례가 될 겁니다. 풀어 나가기 나름이에요.”
준철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일단 규모가 크고, 성진유업에겐 동종 전과도 있다. 잘만 하면 법원도 설득할 수 있으리.
“서 팀장.”
“예.”
“병원장들 전부 다 모아 봐. 일단 당사자들 만나 보자.”
“제가 직접 만나 보긴 했는데…….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알아 이번엔 내가 직접 만나 볼 거야.”
과장님이 직접 만난다고 뭐 달라지긴 할까?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막히는 지점이 나올 때마다 과장님이 등장하면 이상하게 잘 풀리곤 했다.
이번에도 그러길 바라는 수밖에.
“되도록 날짜 빨리 잡자. 아, 그리고 우리가 대출 로비까지 파악했다는 거 그쪽에 공문으로 돌려. 서로 가진 패 다 까고 진솔하게 얘기 좀 해 보자.”
“네. 말씀하신 내용 완곡하게 잘 전달해 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