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48
248화
편법 처벌 (2)
“크하핫. 이 자식들 잘한다 싶으니 영 똥볼을 차는구먼.”
김 회장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음을 터트렸다.
연유를 모르는 임원들만 다급해졌다.
“회장님, 웃을 때가 아닙니다. 공정위가 식약처에 품질 검사를…….”
“그거야 놈들 자살골인데 무슨 걱정을 해? 우리가 비록 납품을 리베이트로 따냈지만 품질엔 문제없다. 유해성 성분 당연히 안 나와.”
더러운 영업 방식은 차치하더라도 성진유업은 한국 3대 유제품 업체다. 넘지 말아야 할 선과 넘어도 되는 선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안다.
제품에서 유해성 물질이 검출되면 리콜은 물론, 판매 면허 정지까지 이어질 수 있는데 그 선을 넘었겠는가.
영업은 비겁했지만 품질은 정직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원래 사람이 권력에 취하면 기고만장해지는 법이지. 고작 먼지 한 올 찾았다고 우릴 아주 죽이려고 들어?”
“…….”
“이건 놈들의 명백한 공권력 남용이다. 우리한테도 좋은 빌미가 넘어왔어.”
본래 협상은 서로 비슷한 무기를 들었을 때, 잘 나오는 법.
영업 약점을 들켰지만, 공정위 약점도 쥘 수 있게 됐으니 곧 거국적 타협이 나올 거란 기대가 들었다.
“공정위 면 세워 주는 셈 치고 몇 억 정도 과징금 내자고.”
“회장님…… 공정위의 본 목적은 그게 아닙니다. 일부러 저희 이미지에 흠집 내려고 식약처 테스트를 의뢰하는 겁니다.”
김 회장은 그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껌뻑였다.
“뭐라?”
“식약처 테스트 자체가 우리 분유에 문제 있다고 광고하는 꼴 아닙니까?”
“그 결과가 어떻든 결국 고객들 이탈로 이어질 겁니다.”
김 회장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그니까 지금 담당자가 이걸 노리고 일부러 그런다?”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그럼 담당자 놈은 뒷감당 어찌하려고.”
“소문을 들어 보니 그놈은 공정위 내에서도 알아주는 무대포랍니다. 만지는 사건마다 딱히 뒷일 생각 안 하고 덤빈다더군요.”
그제야 김 회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잃을 게 없는 놈이다. 기업이 공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 천하의 검사도 잃을 게 많은 놈들이라 다루기 쉬웠을 뿐이다.
호랑이 검사도 윗선을 통해 압력 좀 넣어 주면 얌전한 고양이가 되었다.
근데 듣도 보도 못한 놈이 출현했다.
담당자가 직을 걸고 흙탕물 싸움을 걸면? 식약처 결과가 어떻든 성진유업의 대패 아닌가.
“대체 그런 놈이 어디 있어?!”
워낙 상식 밖의 일이라 이해하는 데에 한참이 걸렸다. 하지만 과거 몇 개를 되짚어 보니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
분명 초반에 증거 못 찾고 진작 끝났어야 할 수사였는데……. 갑자기 전 계열사 압수수색을 하더니 이 지경에까지 왔다.
만나 보진 않았지만 담당자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놈이다.
“하아…….”
성분 검사는 냄비처럼 잠깐 끓다 마는 불매운동과 차원이 다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극성 소비층인 산모들은 크게 들끓을 것이며, 성진은 유해 분유로 낙인이 찍힐 것이다. 한 번 생긴
편견은 영원히 간다.
“당장 그만둬.”
“……예?”
“지금 당장 그만두란 말이야!”
어쩌면 이 때문에 멀쩡하게 따낸 납품권마저 날아갈지 모를 상황.
김 회장은 이런 쪽에 있어선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다.
“우리 전략 바꾼다. 지금부턴 공정위 조사에 다 협조해. 김 실장, 지금 식약처 테스트와 관련해서 뉴스 나간 거 있어?”
“아니오. 아직은 없습니다.”
“그럼 여기가 데드라인이야. 절대로 언론에 한 줄도 나가선 안 돼!”
“근데 회장님, 이러면 또 공정위 과징금은 부르는 게 값이 될 텐데…….”
“그거야 3심까지 개겨서 깎으면 되고. 당장은 급한 불부터 끈다.”
임원들이 허둥지둥 떠날 때 회장님의 불호령이 다시 떨어졌다.
“아니다. 지금 당장 리베이트 자료 모아서 나한테 가져와. 김 사장, 우린 자료 준비되는 대로 바로 공정위로 간다.”
소환장도 오지 않았는데 회장님이 직접 출석하겠노라 선언해 버렸다.
그제야 임원들은 사태가 얼마나 심각하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
“김성진 회장이 왔다고요?”
“네.”
“면담 때도 사장 보내던 놈들이 왜요?”
“아무래도 저희가 어떻게 진행할지 아는 모양이에요. 아주 빤스 바람으로 달려온 기색입니다.”
예고도 없이 김 회장이 찾아왔단 소식에 웃음이 나왔다. 꼭두각시 뒤에서 숨어 계시던 분이 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찾아왔을까.
뭐 이런 쪽엔 노련한 양반이니 향후 파장을 예상한 모양이다.
“몇 명이나 왔습니까?”
“거기 임원진 다 데려왔습니다.”
“잘됐네요. 이 시나리오 짠 거 누군지 얼굴 궁금했는데.”
황 팀장이 넌지시 물었다.
“근데 과장님, 만나 보실 겁니까?”
“왜요?”
“괘씸하잖아요, 답 없다 싶으니 부랴부랴 튀어 오는 거. 어차피 우리가 정식 소환장 보낸 게 아니라 면담 거부해도 무방합니다.”
“맞습니다! 그냥 재판에서 보자 해 버리죠. 병원 돌아다니면서 당한 문전박대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다 떨립니다.”
준철도 서 팀장의 노고를 알았기에 달래듯 말했다.
“이런 만남을 거부했느냐 마느냐가 재판에서 유불리를 가른다. 직접 찾아온 손님인데 그래도 귀하게 모셔 줘야지.”
“하지만…….”
“황 팀장님, 저쪽은 어디까지 아는 거 같습니까?”
“부랴부랴 달려온 걸 보면 우리가 식약처 테스트한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겁니다.”
“그럼 다 알고 있겠네요. 우리 진목적도.”
“네. 그랬으니 저렇게 총알처럼 튀어 왔겠죠.”
황 팀장은 내심 준철의 기획에 감탄하고 있었다.
꼭 호랑이 굴에 찾아가야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산을 다 불태워 버리면 호랑이가 기어 나오기도 한다.
준철의 맞불 작전, 아니 편법 처벌 작전은 저질 영업 최고권위자인 김성진도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들었다.
“괜히 우리 뒷다리 붙잡고 봐달라고 애원하기나 할 텐데……. 괜히 우리 마음만 약해질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제가 고작 이런 걸로 마음 약해질 사람이 아닙니다.”
준철은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서 팀장, 먼저 가서 그쪽한테 자료 좀 받아 놔. 분명 리베이트 자료 다 가져왔을 거야.”
“예.”
“황 팀장님, 우리 만나는 봅시다.”
***
“결례를 용서하십쇼. 미리 찾아뵙고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처음 만난 김 회장은 무척 겸손한 얼굴이었다.
금세 수척해진 얼굴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한지를 알려 주는 것 같다.
“네. 반갑습니다. 한데 어인 일로?”
“일전에 저희 본사를 찾아오신 걸로 압니다. 그때 하필 제가 해외 출장 중이라……. 응대 못 해 죄송합니다.”
“아…… 출장. 저흰 사장단 방패 삼아 숨어 계신 줄 알았는데, 성진은 그런 걸 출장이라 부르는군요.”
슬쩍 한 번 빈정거렸는데 표정엔 미동도 없었다.
진짜로 각오하고 온 모양이구나.
김 회장에겐 차라리 이렇게 나와 주는 게 속 편하기도 했다. 그는 가식을 집어 던지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좋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나오니 말하기 편하겠군요.”
“네. 용건만 말하세요.”
“실력 구경 한번 잘했습니다. 덕분에 맨날 만기 불평해대던 병원장들이 앞다퉈 대출금을 다 갚았어요.”
준철이 씩 웃었다.
죽음의 레이스를 시작한 당일, 바로 수 곳의 병원장들에게 연락이 왔다. 대출금을 다 갚았으며, 갚고 있는 중이라는 메시지였다.
“그래서 감사하단 말씀을 꼭 좀 드리고 싶었습니다.”
“감사?”
“아무리 의사라고는 하나 너무 큰돈을 빌려줘서 우리도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거든요. 덕분에 병원장들이 돈을 싹 다 갚으니, 상환 걱정도 없고 아주 좋습니다.”
이게 웃으면서 할 수 있는 대화인가……? 대출금 갚겠다는 건 곧 자신들을 배신하겠다는 의미일 텐데.
그 와중에 여유로운 척하는 걸 보니, 아직은 할 만하다 생각한 모양이다.
“도움이 됐다면 다행입니다. 그럼 본론 말씀하세요.”
“오해가 있었단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해?”
“기업에서 대출금 내주는 거, 그리고 병원이 자사 납품만 받는 거. 누구에겐들 오해 살 만한 일이죠. 게다가 그 병원이 우리 분유만 썼으니 얼마나 의심이 많이 들겠습니까.”
“그래서요?”
“근데 그건 저희들 지시 사항이 아니었습니다. 병원들이 자발적으로 저희 분유를 쓴 거죠.”
“지금 병원들이 알아서 기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현 사태에 저희 임원진도 큰 당혹감을 느낍니다. 저희는 제품 경쟁력으로 납품을 따냈다 생각했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니.”
기업 회장이 아니라 아주 연기자다.
저 능구렁이 수법으로 빠져나갔을 수많은 재판을 생각하니, 일말의 동정심마저 싹 사라진다.
“알아서 기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군요. 뭐, 저희 약 올리려 오신 건가요?”
“안 믿으실 줄 알았습니다. 그 또한 기업 관리 못 했던 제 책임을 통감합니다. 하여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합니다.”
“무슨 책임이죠?”
“공정위가 납득할 수 있는 과징금을 부과하면 모두 승복하겠습니다. 부디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이건 선처가 아니다.
‘납득할 수 있는’이라는 단서를 달지 않았나. 크게 양보하는 척하지만 결국 속뜻은 적당한 과징금 때리고 사건 끝내자는 협박이다.
대강 상황 파악을 끝내니 준철이 크게 웃었다.
“한 100억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이 금액이 납득 가능하신지요?”
“예? 얼마요?”
“100억요.”
“아니, 지금…….”
“당연히 납득 못 하실 겁니다. 이 사태를 리베이트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 자체가 이미 처벌에 대한 승복 의지가 없다는 뜻일 테니.”
“이보세요~ 우리가 비슷한 사건 처벌도 여러 차례 받아 봤는데…….”
“네. 그때마다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갔죠. 지난 적발 땐 2억으로 마무리했고, 130억짜리 과징금 5억으로 만드는 실력, 구경 한번 잘했습니다.”
준철이 기세를 올렸다.
“그게 당연히 이번에도 통용되겠지요? 우리가 많은 과징금 내면 또 3심까지 끌 거 아닙니까.”
정곡을 찔리자 김 회장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식약처에 성분 검사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왜 안 되나요? 2번 연속 리베이트로 납품을 따내니, 우린 성진분유 자체에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권력 남용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지 마십쇼. 저희가 공정위 진의를 모를 것 같습니까?”
“저희 진의가 뭔데요?”
“하아……. 진짜.”
“저흰 누구보다 성진유업의 안전성 통과를 기원합니다. 신생아들 먹는 분유에 장난질하면 사람이 아니죠. 다만 왜 정직한 제품을 자꾸 더러운 방법으로 판매하나……. 이 의문만 좀
해결하고 싶습니다.”
김 회장은 자꾸만 비비 꼬아대는 준철의 말투에 넌더리가 날 것 같았다.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공정위 처벌에 모두 승복하겠습니다. 행정소송? 꿈도 꾸지 않겠습니다. 모든 처벌에 승복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과장님도 그만하시죠.”
“뭘요?”
“식약처 테스트, 우리 망신 주기용이란 거 압니다. 근데 그건 과장님께도 굉장히 위험하단 거 아시죠? 젊고 앞날도 창창한 분이 괜한 도박 안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 말에 준철의 얼굴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