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위기의 문화재
주지스님은 내친김에 그간 있었던 모든 일들을 설명해 주었고, 그것들은 대개 들을수록 기가 차는 이야기들이었다.
문화재 복원 공사를 진행하는데 사찰관리인의 동의가 전혀 없었더란다.
물론 주지가 사찰의 소유자는 아니니 인내심을 십분 발휘해 여기까진 이해해 줄 수 있었다.
“수의계약요?”
“예.”
하지만 본 공사가 수의계약으로 진행되었단 얘기엔 반사적으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수의계약은 공개 입찰을 통하지 않고 특정 기업을 선택하는 방식을 뜻한다. 당연히 비리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으니 그 여건이 까다롭다.
대개 규모가 작은 사업, 혹은 수해 복구처럼 긴급한 상황에서 예외적으로만 허락된다.
하지만 지금은 약 5억대 복원 공사로 규모가 작지도 않았고, 그다지 긴급한 상황도 아니었다.
대체 이런 공사를 왜 공개 입찰로 선정하지 않았는지, 문화재청의 저의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어쩐지…….”
주지스님은 이제 준철의 입에서 어쩐지란 말만 나와도 경기가 나올 것 같았다.
“또 왜 그러십니까?”
“인부들이 다 외국인 노동자들이더군요.”
“그게 큰 문제가 되는 겁니까?”
“진짜 외노자면 문제가 안 되지만 불체자면 얘기가 다르죠.”
“처사님……. 저흰 이웃의 허물을 경찰에까지 신고하고 싶지 않습니다.”
준철이 단칼에 고개를 저었다.
“그런 철학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불체자 많이 쓰는 곳치고 공사비 삥땅 안 치는 곳을 못 봤거든요.”
“……예?”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저 기둥도 한번 해체해 보고 싶습니다.”
의심이 들다 못해 이젠 확신까지 들었다. 시멘트보다 모래가 더 섞여 있을 것이다.
사실 문화재 관리를 이렇게 부실하게 해도 되나 싶다. 각계 전문가들이 달라붙어 고려 시대 사찰 분위기를 충분히 재현하는……. 그림까진 아니어도 최소한 삥땅은 안 쳐야 할 게
아닌가.
근데 얘길 들어 보니 계약 과정부터 공사 과정까지 안 이상한 게 없다.
‘이게 문화재청이라고?’
이는 준철이 알던 문화재청과 무척 달랐다.
사실 건설업계들이 대통령보다 무서워하는 게 바로 문화재청이다. 땅 파다 유물 한 점이라도 나오면 공사는 무기한 스톱되고, 이 손해는 전부 기업에게 전가된다.
계량 공사할 때 문화재청 관계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숨소리도 낼 수 없었다. 경주가 괜히 건설업계 입찰률 꼴찌가 아니다.
그랬던 놈들이 진짜 중요한 문화재는 이따위로 관리하고 있었다니. 약간의 배신감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답은 정해졌네요. 이건 주지스님께서 크게 한번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순간 그의 눈이 출렁였다.
“제가 뭘 해야 할까요. 문화재청의 비리가 의심된다고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까요?”
“아니오. 사실 현 상황만 가지고 비리 신고는 못 할 겁니다. 뭐 수의 계약도 의심되고, 공사 불량도 의심되지만 아직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하면……?”
“문화재청에 정식으로 민원 제기하십쇼. 공사 현장이 지나치게 엉망이다. 사찰관리인으로서 시공 업체 대표자를 만나고 싶다.”
“그다음엔……?”
“있는 내용 그대로 전달하고 시정 요구하시면 됩니다.”
주지스님이 슬쩍 준철의 눈치를 살폈다.
“그게 끝입니까? 관리자의 비리 같은 건……?”
“공직자 입장으로선 내부 비리를 다 파헤치는 게 맞지만 사찰 입장은 그게 아니잖아요. 일 크게 만드는 거 싫으시지 않습니까?”
주지스님은 부끄러운 마음에 차마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제자들에게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라 일렀지만, 세속 일에 크게 관여하고 싶지 않은 것 또한 그의 세속적인 욕심이었다.
“저흰 그 심정 이해합니다. 사실 지방 건설 사업은 다 어느 정도 해 먹는 게 관례이기도 하니까요.”
“…….”
“근데 지금은 복원 공사만 제대로 끝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것만 생각하세요.”
그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까지 이해해 주는 젊은 청년이 고마웠다.
“이런. 이 늙은이를 더 부끄럽게 만드시는군요.”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까요.”
“고맙습니다. 그럼 담당자에게 민원 넣어 보죠.”
“네. 그리고 이건 제 명함인데 혹시 몰라 한 장 드리고 가겠습니다. 자문 같은 거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주지스님은 명함을 받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
“흠…….”
“…….”
“하…….”
“왜 자꾸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굴어. 뭐 할 말 있어?”
사찰에서 내려오는 길.
서 팀장이 자꾸 변죽을 올리자 참다못한 준철이 물었다.
“과장님답지 않아서 말이죠.”
“뭐가 나답지 않아.”
“원래 이런 구린내 맡으면 무조건 끝까지 가는 게 과장님 아닙니까. 주지스님 왜 설득 안 하셨어요? 좀만 꾀면 문화재청 고발도 했을 거 같은데.”
서 팀장도 이젠 베테랑이다.
문화재청의 수의 계약과 불량 공사. 신입 사무관인 그의 눈에도 분명 큰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것도 사람 봐 가면서 해야지. 스님들이 속세 일에 크게 관여하고 싶겠어?”
“흠……. 아무리 그래도 찝찝합니다. 똥 싸다 말고 중간에서 나온 기분이에요.”
“비유를 해도 꼭…….”
“과장님, 그러지 말고 그냥 우리가 강원 공정위에 신고해 버리죠. 5억짜리 국가사업을 수의 계약으로 처리? 공사판 돌아가는 거 보니 딱 봐도 시공 업체랑 문화재청 담당자의
짝짜꿍입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제법 전문가처럼 말하는 서 팀장이 왠지 모르게 기특했다. 키울 맛이 나는 부하 직원이다.
“솔직히 이건 정도가 좀 심하잖아요. 과장님 말씀대로 진짜 아까 저 최루탄 한 방 맞은 것 같았습니다. 분진 가루가 어찌나 휘날리던지.”
“최루탄 맞아 본 적은 있고?”
“아, 저도 군대에서 화생방 많이 해 봤습니다.”
“최루탄은 그것보다 100배는 독해. 엄살 부리지 마.”
“에이- 과장님도 솔직히 그 세대 사람은 아니잖아요. 저랑 연배는 비슷하시면서.”
준철은 피식 웃었다.
학교 가면 전경이 진을 치고 있었고, 하굣길엔 최루탄으로 샤워를 하면서 집으로 갔다. 사찰이라서 그런가 유독 전생의 악업이 많이 생각나는 밤이다.
“왜 웃으세요?”
“요즘 군대가, 군대냐? 너네 화생방할 때 애국가도 안 부른다며.”
“아이 참. 왜 이러시지. 과장님 때도 안 불렀잖아요.”
“푸하핫.”
그래, 말을 말자. 설명한다 해도 믿을 수 없겠지.
모처럼 긴 휴가를 받아서인지 잡생각이 많아진다. 대부분 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생각들이다.
힘들었던 대학 시절은 추억이 된 지 오래였는데, 심 사장에 대한 죄책감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그 때문에 희생되었던 가족들까지도.
“과장님, 그러지 말고 우리가 한번…….”
“됐다. 우린 휴가가 아니라 사실상 귀양 온 거야. 여기서 사고 치면 국장님 뒷목 잡고 쓰러져. 그리고 뭐 지방 건설사들 비리가 한두 번 있는 줄 알아?”
“아……. 원래 지방건설사들은 비리가 더 많습니까?”
“액수만 다르지 해 먹는 건 다 거기서 거기야. 쓸데없는 말 말고 내일 뭐 먹을지나 찾아봐. 너 맛집 잘 찾더라.”
“제가 무슨 맛집 셔틀도 아니고…….”
오랜만에 해 본 야간 산행은 나쁘지 않았다.
서 팀장이 쉴 새 없이 떠들어 주니 외롭지도 않았다.
***
“주지스님 채비 다 끝냈습니다. 택시를 부를까요?”
“택시는 무슨. 시주받은 돈 그리 엉뚱한 데 써서 쓰나.”
“날씨가 춥습니다. 몸도 성하지 않으신데…….”
“내 나이에 죽으면 호상이지.”
“무슨 그런 말씀을…….”
“걱정 마. 고작 그 정도로 끄떡없으니까.”
이튿날.
주지스님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거친 농담을 던졌다. 문화재청에게 연락해 어렵사리 잡은 약속 자리다.
수의 계약이 어떻고, 사찰관리인 자격이 어떻고 하는 둥의 쓸데없는 소린 꺼낼 생각도 없었다. 불량 공사 문제와 인부들 문제만 정리하면 된다.
대중교통을 타고 꼬박 2시간을 가니, 문화재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사천사 사찰관리인 김영민입니다. 담당자와 약속을 잡았는데 어디 계실까요?”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는데, 어쩐지 탐탁지 않은 눈총이 돌아왔다.
“아……. 예. 사찰관리인요. 근데 어쩌죠. 과장님이 지금 자리에 없는데.”
“예? 약속을 잡고 왔습니다만…….”
“어제 연락하셔서 오늘 약속 잡았잖아요. 이건 스님이 좀 이해해 주셔야죠.”
담당자가 심히 불친절했지만 겨우 이런 거나 문제 삼을 만큼 한가롭지 않았다. 사실 이런 불친절엔 이미 익숙한 그이기도 했다.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담당자는 미지근한 커피 몇 잔만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저, 저 무엄해서, 원.”
“무슨 우릴 날파리 취급하는데요. 사람 이렇게 대해도 되는 겁니까?”
주지스님은 스멀스멀 피어오는 원성을 단칼에 잘랐다.
“절밥 먹는 놈들이 인내심이 그리 짧아서 쓰간.”
“하지만 주지스님…….”
“됐어. 어차피 우리야 남는 게 시간이야. 공무원들 보채지 말어.”
하지만 공무원들은 마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듯 함흥차사였다.
담당자를 만날 수 있던 건 한 시간쯤 지나서였다.
“아이구- 주지스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과장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오명석 과장은 이미 여러 차례 만나 본 자로 이들과 안면이 있었다.
“덕분에요.”
“가정에 평안이 깃들길 기원합니다.”
“네. 한데 어인 일로?”
“지난번 연락드린 그 문제 때문에 또 뵙게 됐습니다. 공사 현장이 개선되지 않고 있어요. 괜찮다면 제가 시공 업체 대표를 만나고 싶습니다만…….”
“아이고, 스님. 요즘 어느 공사나 다 그렇습니다. 저희도 몇 번 주의를 주고 있긴 한데 아무래도 이게 예산이 없다 보니, 현장 통솔이 잘 안 되고 하는 부분이 있어요.”
늘 들었던 대답이 꼭 고장 난 녹음기처럼 튀어나왔다. 하지만 주지스님도 오늘만큼은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사찰관리인 아닙니까.”
“……예?”
“시공 업체 대표와 얘기 좀 나눠 보고 싶습니다. 이게 무리한 부탁일까요?”
심상치 않은 대답에 오 과장 얼굴이 크게 굳었다.
“뭐 안 될 건 없습니다만. 주지스님께서 이런 쪽 전문가는 아니시잖아요. 기왕이면 이런 일만 하는 저희 전문가들이 맡는 게 낫지 않습니까.”
“전문가……. 뭐 그건 그렇죠.”
“이거 참 죄송합니다, 스님. 얘길 들어 보니 많이 참으시고 여기까지 오셨군요.”
“그건 아닙니다만…….”
“한 번만 저 믿고 맡겨 주십쇼. 제가 오늘 내로 시공 업체 불러서 단단히 일러 놓겠습니다.”
“아……. 예.”
“이런 일은 저희가 전문가니, 혹시 또 불편 사항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주지스님은 계속해서 전문성을 들먹이는 바람에 준비한 말의 반도 꺼내지 못했다.
사실 오늘은 어떻게 주의를 줄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들을 수 있는 대답은 여기까지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럼 꼭 좀 부탁드립니다. 이 늙은이들의 예불이 너무 방해받고 있어요.”
“예, 예.”
“그럼 믿고 일어나 보겠습니다. 귀한 시간 뺏어서 미안합니다.”
2시간 동안 걸어온 세속 여정은 불과 2분 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스님 일행들이 사라졌을 때, 오 과장은 싸늘한 얼굴로 변하고 말았다.
수의 계약의 최종 담당자이자, 총책임자인 오 과장이 전화를 들었다.
“어, 김 사장 난데 오늘 나 좀 봐. 아니, 사천사. 거기 땡중들 또 찾아왔어. 자기, 자꾸 이렇게 섭섭하게 일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