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53
253화
위기의 문화재 (2)
사천사 복원 사업은 문보국(문화재보존국) 오명석 과장 명의로 진행되었다.
사실 모든 복원 사업이 다 곡괭이 들고 땅을 파거나, 붓질로 유물을 발굴하는 것이 아니다.
남루한 절간을 재정비하고 우수한 수경 시설을 갖춰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 이것이 사천사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였고, 깐깐하기로 악명 높은 기재부 심사도 넘어 당당하게 예산 5억을
거머쥘 수 있었다.
오명석은 평소에도 이런 크고 작은 예산을 잘 따와 문보국 살림꾼으로 통했다. 이번에도 꽤 큰 예산을 따와 내부에선 고무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그는 늘 가장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 납득할 수 없는 지시를 내리곤 했다.
“공개 입찰은 얼어죽을. 고작 이 푼돈에 메이저 건설사들이 입찰하겠어? 그냥 지역 건설사 써. 명단 만들어서 우리가 고른다.”
오 과장은 지역 건설사 활성화와 번거로움을 핑계로 이를 그냥 수의계약에 부쳤다.
주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팀장들이 선별한 20여 곳을 후보사로 올렸지만, 사실 이미 내정 기업이 있는 심사였다.
최종 결정권자인 그는 고만고만한 곳 중 유진건설을 택해 모든 일감을 주었다.
평가의 가장 큰 요소는 자신에게 얼마나 성의를 보일 수 있는지였다.
‘머저리 같은 놈! 내가 얼마나 예산을 넉넉하게 따냈는데. 중간만 가는 게 그렇게 어려워?’
오명석은 복창이 터졌다.
누가 공사비 아껴 가며 일하랬나? 예산을 넉넉하게 따낸 편이라 중간에서 푼돈 좀 챙겨도 티도 안 난다.
그저 뒷말 없게끔 공사만 잘 마치면 되는 일인데……. 유진건설이 기어코 이 사달을 만들었다.
분통을 억누르며 커피를 홀짝일 때, 음산한 다방집 문이 열리며 기다리던 얼굴이 들어왔다.
“아이고- 형님. 오래 기다리셨수? 그냥 회사로 오지 왜 이런 자리로 불러요.”
부름을 받고 온 김 사장은 이미 친분이 두터운지 호칭이 아주 편했다.
“미스 김, 나는 쌍화차에 노른자.”
“네.”
“에이, 주문만 받고 도망가는 게 어디 있어? 잠깐 앉아 봐. 미스 김 많이 예뻐졌다?”
“몰라요. 호호.”
“다음 주에 날씨도 좋다는데 우리 드라이브나 갈까? 여기 계신 과장님이랑 미스 김 친구랑 해서? 흐흐. 어떠세요, 형님?”
늘 그렇듯 수위 짙은 농담을 던졌는데, 오늘따라 오명석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쌍화차 가져올게요.”
살기를 감지한 미스 김이 자리를 뜨자 분위기가 더욱 차가워졌다.
“무슨 일 있어요?”
“야 이 머저리 같은 새끼야.”
“예?”
“대체 공사를 얼마나 개판으로 하면 땡중들이 뻔질나게 찾아와!”
김 사장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무, 무슨 일 있었어요?”
“비단 땡중들뿐이 아니야. 너 왜 복원 공사장에 안전 펜스 설치 안 했어? 인부들이 가스통 옆에서 담배 피우는 건 알아? 오죽하면 등산객들이 민원을 넣어 댔겠냐?”
“…….”
“내가 언제 공사판 시멘트 빼먹는 걸로 시비 걸든? 그냥 중간만, 남 보기에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해 달라 이거잖아. 너 이따위로 공사 계속할 거면 나 중도금 못 줘. 중간에
건설사 바꿀 거야.”
돈 얘기에 김 사장 얼굴도 바뀌었다.
“섭섭합니다, 형님. 다 우릴 위해서 한 일인데 왜 아우 탓만 하시우.”
“뭐?”
“공사장에 펜스 설치 안 한 거? 그 돈이 지난번에 형수님 드린 명품백 값이요. 불체자 인부들? 그 돈 아껴서 형님 떡값 챙겨드린 거라고요.”
“이 자식이 지금! 여기서 그 얘기가 왜 나와?”
“내가 현장에서 아낀 돈, 결국 다 형님하고 노나 먹었다는 겁니다. 뭔가 나 혼자 돈 챙긴 것처럼 말씀하시니 억울하잖아요.”
예산 5억 중 5천은 오명석에게 다 떡값으로 지불되었다.
이런 공사가 제대로 진행될 리 있나. 이는 결국 공사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김 사장이 지지 않고 맞서자 오명석은 머리털이 쭈뼛 섰다.
함부로 건들지 마라, 난 무조건 같이 죽는다. 이런 협박의 의미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협박이 맞았다.
“갑자기 너무 분위기 험악해졌네. 형님, 아우가 죄송합니다. 요즘 이것저것 벌여 놓은 일들이 많아 현장 감독 잘 못 했어요.”
“너 앞으로 나한테 형님이라 부르지 마.”
의미가 있나.
고급 룸살롱에서 빤스 바람으로 놀며 서로 못 볼 꼴 다 본 사이인데.
“알겠습니다, 과장님. 제가 특별히 더 조심할게요. 그만 기분 푸세요.”
오명석은 긴 한숨을 내쉬며 서류를 건넸다.
“이게 땡중들 요구 사안이다. 외노자들 관리 좀 해. 사찰 주변에서 술 담배는 좀 자제시키란 말이야. 고기도 그렇고.”
“에잉- 쯧쯧. 사람이 고기 안 먹고 어떻게 일한대요. 이 땡중들은 공사가 부처님 앞에서 도 닦는 건 줄 아나.”
“그것 땜에 지금 불체자 신고하네 마네까지 한다고 하더라. 일 커지면 김 사장한테 좋을 거 있어?”
낯빛이 어두워지는 김 사장이다.
현재 투입된 노동자들은 모두 불체자들로 당국에 잡혀선 안 된다.
공사장이 인적이 드문 산이라 이번만큼은 마음 놓고 불체자를 부리는 그였다.
“최소한의 공사 규칙은 지키자. 인부들 쉬는 시간 좀 줘. 자꾸 휴식도 없이 일 시키니까 주변에서 담배 피우고 술 자시고 하는 거 아니야.”
“…….”
“다음에도 감독자 안 두고 공사하면 우리도 그냥 못 넘어가.”
하지만 김 사장 얼굴이 굳어졌다.
“그건 어렵겠는데요.”
“뭐?”
“저희 그거 다 설치하고, 인부들한테 휴식 시간까지 주면 추가 공사비 들어갑니다. 근데 그 돈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시잖아요. 과장님께 드린 접대는 섭섭지 않았다고 봅니다.”
“너 지금 나 협박하는 거냐? 돈 받아 처먹었다고!”
“그게 아니라 저희 입장도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결국 그거 다 지키면 추가 공사 대금 나올 텐데, 이러면 복잡하잖아요.”
김 사장은 누그러진 어조로 덧붙였다.
“과장님, 어차피 두 달 뒤면 다 끝날 공사 아닙니까? 좀만 버텨 주시죠. 그 땡중들 민원 두 달만 묵살해 주십쇼. 저도 가끔 현장 돌면서 얼굴 도장은 찍겠습니다.”
“그놈들이 지금…….”
“어차피 지금 이거 뭐 조사가 들어간 것도 아니잖습니까.”
생각해 보니 그랬다. 아직은 겨우 민원일 뿐이다.
“지금처럼 계속 허술하게 하면 누군가는 냄새 맡아.”
“그 누군가가 어디 있겠습니까. 여기가 무슨 서울도 아니고.”
지방 공정위는 서울처럼 살벌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뭐 고작 5억밖에 안 되는 수의계약을 본청에서 조사하겠나?
절대로 사태는 커지지 않을 것이다.
“뭐 제가 사천사 찾아가서 사과는 한번 드리죠. 양해를 제대로 구하겠습니다. 그러니 형님도 너무 저 몰아붙이지 말아 주세요.”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여기서 더 밀어붙이는 건 좋지 않았다. 이놈 입에서 갑자기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장담할 수 없다.
“그 약속 반드시 지켜. 당분간 조심해.”
“예.”
그렇게 엉덩이를 든 오명석이 말했다.
“그리고 우리 거래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하지. 나 개인적으로 김 사장한테 실망한 부분이 많아.”
“에이- 형님.”
“됐으니까 따라 나오지 마. 유종의 미라 했다. 마무리 잘할 거라 믿어.”
오명석은 눈길도 주지 않으며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김 사장은 싱글벙글했다. 개가 똥을 끊지 돈맛 본 공무원이 어찌 뇌물을 끊나?
서울 고오급 룸쌀롱을 돌며 분내 좀 맡게 해 주면 또다시 스스럼없는 형님 아우로 돌아갈 것이다.
늘 그래 왔던 놈이다.
***
“현각스님, 오늘 담배꽁초는 제가 치우겠습니다.”
“…….”
“금식기도 때문에 몸도 편치 않을 텐데 먼저 들어가세요.”
“…….”
벌써 사흘째.
묵언 수행 중인 현각스님은 오늘도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담배꽁초를 주웠다.
주지스님이 다녀간 지 벌써 사흘이 지났지만 공사 현장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침잠을 깨우는 건 새 지저귐이 아닌 중장비 모터 돌아가는 소리였으며, 예불 중엔 술 냄새, 고기 냄새가 수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킁킁. 이거 무슨 냄새야.”
“아니, 이것들이 또 고기를 구워?”
담배꽁초를 치우던 중 또다시 고기 냄새가 피어오르자 스님들의 이성이 끊기고 말았다.
“더 이상 안 되겠습니다. 내 오늘은 이것들하고 결판을 내야겠어요!”
이때 현각이 불쑥 나타나 이들의 길을 가로막았다.
“아니, 현각스님…….”
현각은 성난 스님들을 말리며 자신을 가리켰다.
말은 못 했지만 자신이 해결하겠단 뜻이었다.
그렇게 스님들을 진정시킨 후 현각은 고기 냄새의 근원지로 찾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냄새의 근원지에선 삼겹살 파티가 한창이었다.
풍미가 어찌나 죽여 주는지 산짐승들이 다 몰려와 고기 구경을 하고 있었다.
현각스님은 조용히 이들에게 다가갔다.
“크헉.”
“컥.”
어찌나 당황했는지 인부들 모두 목에 사레가 들고 말았다.
하지만 현각스님은 더 이상 분노하지 않았다. 세속 사람들을 이해하라는 주지스님의 가르침이 있지 않았나.
“우리, 우리. 일해야 돼. 고기. 고기. 필요해.”
지난번 드잡이했던 외노자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
현각스님은 금식으로 좀 지쳐 있었지만 마음은 성숙해졌다.
그래, 그럴 수 있다. 험한 일 하는 사람들은 단백질이 필수지.
“……엥?”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밀라 했던가.
현각스님은 손수 준비한 푸성귀를 내밀며 고기 섭취를 장려했다.
이에 크게 감복한 것이지, 지난번 싸웠던 이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 죄송합니다. 근데 우리 일해야 돼.”
끄덕끄덕.
조금 공감해 주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불구대천 원수 같았던 인부들이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현각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나빠요. 고기 반찬 안 줘요.”
“힘 안 나. 고기 반찬 없어.”
“쉬는 시간 없어. 여기서 먹어야 돼.”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어눌한 말투였지만 무슨 사정인지 파악하기엔 충분했다.
이것이 주지스님의 가르침이었나. 그들의 사정을 듣고 보니 이들이 가엽게 느껴졌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쉬는 시간도 없이 부림을 당하는데 얼마나 힘들었겠나.
이런 자들과 드잡이했던 자신이 다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현각스님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곤 대웅전으로 향했다.
주지스님의 좌상엔 그때 남기고 간 처사님들의 명함이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
비록 인부들에게 가엾음을 느꼈지만 이는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다.
그는 오래 고민 끝에 마을 어귀로 내려왔다.
불자로서 정말 많은 고뇌가 든다. 주지스님이 지시한 묵언수행을 지켜야 할 것인가, 아님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나.
공중전화 앞에 선 그는 또다시 한참을 고민하다 수화기를 들었다.
수화음이 몇 번 가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이준철 과장입니다.
현각은 긴 한숨을 내쉬더니 침묵 수행을 깼다.
“처사님…… 그 개새끼들 좀 잡아 주시면 안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