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수의계약
“내가 순장을 당해?”
지방 공무원들은 다른 세계에 사나? 블록버스터 비리가 발견되면 피감기관까지 책임이 미친다는 걸 모르는 걸까?
심지어 이 사건은 수해 복구 사업 같은 시급성도 없으면서 5억대 공사를 수의계약에 부친, 대단히 비상식적인 공무집행이었다.
오명석이 이런 식으로 떡 주무르듯 만진 예산이 한두 건이 아니다.
“진짜로 본인 잘못을 몰라요? 시정 명령이 떨어졌어도 진작 떨어졌어야죠. 왜 국가 발주 사업을 공개 입찰 안 받고 수의계약으로 때립니까. 이러면 권한 가진 놈이 왕 노릇하는 거
몰라요?”
“…….”
“내가 오명석이어도 업체들한테 떡값 챙겨 먹었겠습니다. 예산 잘 따와서 문화재청 내에선 해결사 소리 듣고, 업체들은 줄 대기 바쁘고, 5억짜리 수의계약 때려도 피감기관은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이제야 좀 상황 파악이 됐는지 심 과장 안색이 시퍼레졌다.
“순장도 내가 점잖게 표현한 거고요. 아마 독박 쓰실 가능성이 더 클 겁니다.”
“독박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피감기관의 문제 지적 없었다. 공정위가 공개 입찰 명령 안 내려서 문제없는 절차라 생각했다. 오명석이가 딱 이렇게 두 마디만 하면 이 화살이 누구에게로 갈까요?”
얼빠진 얼굴을 보니 뒷일은 정말 예상도 못 했던 모양이다. 궁지에 몰린 공무원이 남의 이름 팔아먹는 건 서울에서 굉장히 빤한 래퍼토리인데.
됐다, 말을 말자. 이런 순진무구한 작자와 무슨 거사를 논한단 말인가.
슬며시 궁둥이를 들자 이번엔 심 과장이 펄쩍 뛰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다 내 잘못이란 말입니까!”
“그게 피감기관의 숙명입니다. 관리 감독 하라고 자리 앉혀 놨는데, 못 했으면 공범이지.”
“나 진짜 공범 아니라니까요! 난 오명석이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안타깝지만 공정위 감찰부는 그렇게 생각 안 할 겁니다. 오명석이가 이렇게 떡 주무르듯 만진 예산이 한두 건이에요? 몰랐으면 무능, 알았으면 공범. 어느 쪽이든 본인 처벌은
불가피합니다.”
그렇게 자리를 벗어나려 할 때, 심 과장이 호다닥 달려와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아니에요. 난 진짜 아니야. 오명석이가 누군지도 몰랐단 말이오.”
“그 얘긴 저한테 하지 마시고 감찰부에…….”
“이 과장님 나 한 번만 살려 주세요! 나 솔직히 강원 토박이로 자란 공무원이라 중앙 부처 사람들이 얼마나 까다롭게 일하는지 모릅니다.”
읍소하는 그의 얼굴을 보니 딱한 심정도 들었다.
사실 준철도 그를 약간이나마 의심하고 있었다. 이렇게 다년간에 걸친 비리가 적발됐는데, 피감기관은 정말 몰랐다? 김성균의 상식으론 이해가 안 되는 말이다.
떡값이 100이면 그중 절반은 주변부 공무원들의 눈감아 주는 비용 아닌가. 이게 건설업계 로비의 정석이다.
“근데 난 진짜 아니에요! 그 자식들한테 백반 한 끼 얻어먹은 적도 없어.”
하지만 심 과장의 태도를 보아하니, 무능했다 뿐 양심을 팔아먹은 놈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준철은 긴 한숨을 내쉬더니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럼 이 사건 맡으실 거죠?”
“네. 하겠습니다. 무조건 하겠습니다. 근데…… 하아……. 아닙니다.”
“하겠다면 이제 우린 협력 부처예요. 걸리는 거 있으면 뭐든 말씀하세요.”
“정황이 의심되긴 하나 그렇다고 로비의 결정적 증거가 잡힌 상황은 아니잖아요. 만약 실패하면 제가 어떤 뒷감당을 해야 할지…….”
그의 입장에선 당연하게 할 수밖에 없는 고민이다. 이 사건을 맡는 순간 모든 조사 결과는 그가 책임져야 할 테니.
하지만 준철은 어렵지 않게 슬쩍 편법 하나를 알려 줬다.
“뭐 이런 조사에 출구 전략 하나 없겠습니까. 정 아무것도 발견 안 되면 별건 수사로 빠져나오죠.”
“별건요?”
“알아보니 유진건설이 불체자를 고용했더군요.”
“비리가 안 발견되면 불체자 고용을 문제 삼겠다……. 이런 건가요?”
“네. 위법한 절차 없이 공사 마무리 짓는 것도 시공 업체의 의무입니다. 그것만 잡아내도 뒤탈 없을 겁니다.”
일반 공사자에서도 불체자가 적발되면 벌금 300에 영업정지 7일이다.
하물며 이건 문화재 아닌가. 여론의 분노는 더욱 타오를 수밖에 없으며, 조사 실패를 정당화해 줄 좋은 변명이 되어 줄 것이다.
“근데 굳이 뒤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이건 명백한 비리 입찰이었어요. 이런 거 하나 못 잡으면 우리가 옷 벗어야죠.”
처음 심 과장은 이 젊은 놈의 매사 확신에 찬 말투가 건방지게 느껴졌지만, 몇 마디 나눈 후 생각이 달라졌다.
중앙 부처 사람이라 그런가. 아님 행시 출신이라서 그런가.
강원 토박이 공무원으로 자란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조사관이란 느낌이 들었다.
얼마간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죠. 그럼 이제 어떡할까요? 시공 업체 공사 자료 압수가 우선이죠? 예산 5억 받았는데 분명 삥땅 친 돈 많을 겁니다. 아, 문화재청에도 당연히 공문 보내야겠죠? 왜
5억짜리 정부 공사를 공개 입찰로 진행 안 했는지 소명하라 하겠습니다. 대답 어정쩡하다 싶으면 바로 기소 쳐 버리죠.”
공범으로 몰리긴 죽었다 깨어나도 싫은 모양이다.
심 과장은 누구보다 적극적인 조사관이 되어 있었다.
***
강원 공정위의 공문 한 장에 문화재청 사무실은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전 직원이 퇴근도 못 하고 자리를 지켰으며, 과장들이 수시로 위에 불려 갔다. 9월 정기 국감도 이러진 않았는데…….
하지만 상황은 정기 국감보다 훨씬 더 좋지 않았다.
공정위가 보낸 공문엔 지난 다섯 건의 공사 내역을 소명하라 적혀 있었다. 해당 내역은 이번 사천사 복원 공사를 포함, 모두 3억대가 넘는 공사였다.
공교롭게도 이 모두 예산 해결사로 통하는 오명석 과장의 작품이었다.
“대답해 봐, 오 과장. 왜 이 공사 모두 공개 입찰로 정하지 않고 수의계약으로 선정했지?”
평소 오 과장을 극찬해 대던 송 국장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본래 문제라는 것은 사건이 터진 후에야 보인다 했던가. 보통 수의계약은 1억 미만의 공사, 시급한 사업일 때만 제한적으로 쓰이는 것으로, 다섯 건의 공사 모두 해당 사항이 없었다.
“관례를 따랐습니다.”
“관례?”
“비록 예산이 좀 오버되긴 했으나 10억, 20억 넘어가는 국책 사업 수준은 아닙니다. 고작해 봐야 5억이죠.”
“그러니까 그 시공 업체를 왜 본인이 선정했냐고.”
“엄밀히 말해 제가 선정한 게 아닙니다. 각 팀장들이 후보사 명단을 제출했고, 최종 선정은 여기 과장들과 상의해 선발했습니다. 지역 건설사 활성화를 위해 로컬 업체에게 가점을 주긴
했지만 편의를 봐준 적은 결코 없습니다.”
숨죽이며 지켜보던 과장들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여기서 왜 우리들을 걸고넘어져? 사실상 자기가 정한 기업에 사인만 해 줬을 뿐인데.
하지만 서류만 놓고 보면 상의를 했던 것도 사실이라 아무도 불만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오 과장, 지금 협박하는 게야? 문제 생기면 여기 있는 과장들 다 걸고넘어지겠다고?”
“오해십니다.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면 당연히 제가 책임져야죠. 하지만 국장님께서 다른 오해를 하고 계신다면 절대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다른 오해라.”
국장님의 다른 오해.
이게 무얼 뜻하는지 모를 사람은 없다.
“그래, 그럼 우리 툭 까놓고 얘기하자. 다들 나가 봐.”
송 국장의 지시에 다른 과장들이 허겁지겁 떠났다.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송 국장이 은근한 눈치를 보냈다.
“오 과장, 내가 자네 얼마나 아끼는지 알지? 자네만큼 예산 잘 따오는 놈 없어. 자넨 우리 문보국 무형문화재야. 내가 얼마나 칭찬하고 살았는지 알지?”
“예…….”
“그러니까 불편한 질문은 딱 한 번으로 끝내지. 자네 정말 나한테 숨기는 거 없나?”
“없습니다, 전혀요.”
고민도 없이 튀어나온 대답에 되레 송 국장이 놀랐다.
사실 이 질문을 던지고 놈의 반응을 살피려 했다. 시공 업체에게 술이라도 한잔 얻어먹어 봤다면 당연히 대답하는 데 조금이라도 주저했겠지.
근데 대답에 망설임이 없다.
“진짜야? 진짜로 없어?”
“예.”
“오 과장, 만약 이 말이 사실로 밝혀지면…….”
“국장님, 불편한 질문은 딱 한 번만 하시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오 과장의 당찬 대답에 오히려 송 국장의 말문이 막혔다.
“물론 절차상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는 데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가 백번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 지금까지 예산 따내려고 별 해괴한 짓까지 다한 놈입니다.”
“…….”
“그런 제가 업체들한테 술 몇 잔 얻어먹고 제 커리어에 똥칠했겠습니까. 업무상 과실이었을지언정 양심을 팔아먹진 않았습니다.”
송 국장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이런 내가 다 부끄럽구먼. 우리 오 과장이 예산 해결사인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데.”
“…….”
“너무 맘에 담아 두지 마. 섭섭하게 생각하지도 말고.”
“섭섭하게 생각 안 합니다. 심려를 끼쳐 드려 오히려 죄송합니다.”
송 국장은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망년에 액땜 한번 치른다 생각하자. 우리 지금 뭐 지역건설사 활성화다 뭐다 해서 수의계약으로 업체 선정했지?”
“예.”
“그거 다 공개 입찰로 바꿔. 앞으론 뒷말 안 나오게 그냥 기계적으로 일만 하라고.”
“알겠습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이만 나가 봐. 우리도 퇴근 좀 하자.”
그렇게 돌아서던 맡에 송 국장이 물었다.
“근데 왜 갑자기 공정위 놈들이 이걸 걸고넘어지지? 지난 5년간 한 번도 문제 제기 없었으면서.”
“아마 사천사 복원 공사 때문에 그런 모양입니다.”
“사천사?”
“네. 최근 그쪽 시공 업체가 외노자를 너무 부려서 승려들과 마찰이 좀 있었거든요. 그거 가지고 사찰 측에서 불법 공사니 뭐니 민원 폭탄을 넣었다 합니다. 공정위 입장에선 괜히
민원 폭탄 받으니, 저희랑 거리 두려고 이러는 것 같습니다.”
송 국장은 쓰게 웃었다.
“쯧쯧- 하여간 공무원 놈들. 지들한테 똥물 한 방울 튀겠다 싶으면 극성부리지.”
“죄송합니다…….”
“됐다, 뭐 사정 들어 보니까 법석 좀 피우다 곧 잠잠해지겠네. 지은 죄 없으면 쫄지도 마. 만약 문제없이 끝나면 그 놈들 다 죽여 놔야 돼.”
“네.”
오명석은 제법 여유로운 웃음까지 지으며 국장실을 나왔다.
하지만 혼자 남게 되었을 때, 그는 완전히 사색이 되고 말았다.
꺼 놓은 핸드폰엔 부재중 전화가 60통이나 와 있었다. 공정위가 지적한 다섯 건의 업체 사장들의 조사가 이미 진행 된 모양이었다.
그중 절반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진건설 김 사장 전화는 1분에 한 통씩 와 있었다.
오 과장은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 후,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이 새꺄, 내가 당분간 절대 전화하지 말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