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56
256화
수의계약 (2)
-형님. 왜 전화가 이제 되십니까!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내가 전화하지 말랬지?”
-나라곤 전화하고 싶어 한 줄 알아요. 느닷없이 공정위가 들이닥쳐 우리 자료 싹 다 뽑아 갑디다. 대체 상황 어떻게 돌아가는 거요?
오명석은 잠시 눈앞이 노래져 말을 잇지 못했다.
문화재청에 공문을 보냄과 동시에 압수수색을 진행했다는 건가? 듣도 보도 못한 초유의 조사 속도다.
“그래서 자료 줬어?”
-곧 기소 칠 거라는데 어떻게 더 버텨요.
“뭐? 기소?”
-나뿐 아니라 다른 업체 사장들도 싹 다 털렸답니다. 이거 진짜 버티고만 있으면 잠잠해지는 거 맞아요?
김 사장의 뒷말은 아예 들리지도 않았다. 공정위가 벌써 기소로 협박을 했다고?
-기소 얘기 나오는 걸 보니 머잖아 형량 얘기도 나올 것 같은데…….
“시끄러. 아직 그놈들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런 속도로 조사를 한답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해결해. 더 이상 묻지 마. 그나저나 너 진짜로 자료 다 뺏긴 거야?”
초조한 심정으로 물으니 다행히도 안심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바봅니까. 그 자료를 그대로 주게. 공사 원장부는 다 내 집 안방에 있고, 회사에 있는 자료는 가라 장부였습니다.
“가라 장부엔 뭐라고 꾸몄어?”
-형님이야말로 그 걱정은 마슈. 공사 인부, 기자재 전부 다 뻥튀기시켜서 예산 다 쓴 것처럼 꾸몄으니까. 그놈들 그거 가져가 봐야 소용없어.
안 쓴 인부를 쓴 것처럼 꾸몄고, 안 쓴 공사 자재를 쓴 것처럼 꾸몄다. 예산 5억짜리 공사를 4억에 끝냈지만 서류만 보면 절대로 알 수가 없다.
“확실한 거지?”
-동생이 공사 밥 하루 이틀 먹수? 웬만한 전문가가 달라붙어도 그 가라 장부 파악 못 해요. 이젠 나도 좀 물어봅시다. 그쪽에서 일처리 잘돼 가고 있는 거 맞아요?
“여긴 걱정 마라. 문화재청에서 나 의심하고 있는 놈 없어.”
-그럼…….
“장부에서 이상한 점만 발견 안 되면 이대로 무혐의 처리 될 거야.”
-공개 입찰 안 통하고 수의계약으로 돌렸잖아요. 이건?
“그건 내 선에서 책임져야지. 걱정 마라, 그래 봤자 시정 명령이야. 앞으로만 안 그러면 돼.”
현 상황이 시정 명령에서 끝나면 싸게 막는 셈이다.
비록 ‘예산 해결사’란 명성엔 금이 좀 가겠지만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다.
“그러니까 여기 걱정 말고 처신이나 잘해. 특히나 조심할 건 유도심문. 그쪽에서 괜히 뭐 다아네, 마네 하는 소리에 속아 넘어가지 마라. 네가 자백만 안 하면 서로 살 수 있다.”
-이제 좀 안심이 되네. 알겠습니다.
“끊자. 통화가 길었다.”
전화를 끊은 오명석은 같은 전화를 나머지 사장들에게 돌렸고, 마찬가지로 안심할 만한 대답을 들었다.
앉은 자리에서 담배 한 갑을 다 비운 그는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참으로 다행이다. 공정위가 가져간 자료는 모두 사장들이 조작해 만든 가라 장부였다. 어지간한 공사 전문가가 봐도 잡아내지 못할 정도라
했으니, 여기서 탈이 날 일은 없다.
“옌장. 먹고살기 더럽게 힘드네.”
오명석은 마지막 담배를 지져 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얼씨구. 무슨 양재 작업하는 데 인부들을 10명씩 투입해? 이건 또 뭐야, 어떤 미친놈이 시멘트를 톤당 16만 원에 구입해? 아니, 이건 좀 너무 하잖아. 현장에 안전펜스 설치
안 한 거 빤히 다 봤는데, 장비 매입 내역이 있어?”
애석하게도 그들은 공사 전문가를 만나고 말았다.
장부를 입수한 준철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허위 내역들을 모조리 발견해 내었다. 쓰지 않은 인부를 고용한 것처럼 속이는 것, 허위 기자재 등 없는 내역이 없었다. 그중에는 과거
김성균조차도 하지 않았을 내용도 숨어 있었다.
“이야……. 이 새끼들 함바 비리도 저질렀네.”
“함바 비리요? 그게 뭡니까?”
“인부들 반찬값 빼돌렸다고. 이거 인당 식대비 2천 원도 안 썼다.”
“헉……. 그럼 인부들 밥값이 한 끼당 2천 원이라는 건가요?”
“그래.”
공기밥이 여전히 1천 원인 시대.
고기를 시키면 여기에 된장찌개도 서비스로 나오는 게 한국 식당의 미덕이다.
장부를 보면 외노자들이 왜 그렇게 사찰 옆에서 고기 향을 피울 수밖에 없었는지 나와 있었다.
이 정도 식대비론 제육볶음은커녕 미역국에 들어가는 쇠고기도 못 산다. 험한 일 하는 인부들은 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사찰 옆에서 고기를 구웠을 것이다. 대부분 불체자일 테니 바깥에
나도는 것도 철저히 감시했겠지.
“서 팀장, 이거 다시 계산해. 지금부터 내가 써 주는 내역이 진짜 원장부야.”
그 계산이 끝났을 땐 실로 어이없는 숫자가 나왔다.
“3억…… 8천인데요.”
“확실해?”
“예. 아무리 높게 잡아도 실제 현장에 투입된 공사비는 4억이 안 됩니다.”
받아 간 예산이 5억인데 실제 쓴 돈은 3억 8천이란다. 아마 그 차액 대부분은 고급 룸사롱에서 분내 맡는 데 쓰거나, 떡값으로 따로 전달됐을 것이다.
“어, 과장님. 계산 잘못했습니다. 3억 7천이에요.”
“뭐?”
“여기 보니까 백화점에서 천만 원 긁은 내역이 잡히는데요.”
법카를 백화점에서 긁었다? 그것도 천만 원이나?
이 또한 로비에 쓰인 돈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아마 오명석이뿐 아니라 그 집 사모에게도 대단한 선물을 돌린 것 같다.
해당 내역은 나머지 다른 기업들에게서도 발견되었다. 정황 파악이 다 끝났을 땐 작은 한숨이 나왔다.
“이것들 진짜 선수네. 조사당할 때를 대비해 미리 가라 장부까지 구비하고 있었어.”
“그러게요. 솔직히 과장님 아니었으면 누구도 파악 못 했을 겁니다.”
“그랬겠지.”
“근데 과장님께선 이런 내역을 대체 어떻게 한눈에 파악하신 겁니까.”
“내가 좀 업보가 있거든.”
서 팀장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굳이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당장 눈앞에 산적한 과제들 따라가기에도 버겁다.
“빼먹은 기자재가 한둘이 아니네요……. 사실 이게 다 사실이면 복원 공사 자체도 다 부실했다는 겁니다.”
“당연한 소릴 뭐 그렇게 비장하게 말하냐. 그럼 이것들이 당연히 복원 공사를 개판으로 했지, 정직하게 했겠어?”
“저는 예산만 오버해서 따낸 줄 알았죠. 그 오명석이란 놈이.”
“둘 다야. 예산도 오버해서 따내고, 수주 받아 간 놈은 놈들 나름대로 해 처먹었어.”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났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찾지 못했다.
바로 입금 흔적. 만약 시공 업체 법인 통장에서 오명석 계좌로 입금된 흔적이 나오면 빼도 박도 못할 로비인데, 애석하게도 거기까진 찾을 수 없었다.
하긴 이렇게 치밀한 놈들이 계좌 내역을 남기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겠지.
“어떡할까요, 과장님. 얼추 보니 현금으로 주고받은 것 같은데요.”
“나머지 업체들은 어떻냐?”
“수법은 다 똑같아요. 절대로 계좌로 주고받은 내역은 없었습니다.”
“그래, 머리 좋은 놈들이니까 서로 현찰로 받았겠지.”
준철은 별 고민 없이 서류를 넘겼다.
“기소 쳐라.”
“바로요?”
“응.”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일단 당사자들 몰아붙이면서 자백 나올 때까지 기다려 보는 게 어떨까요? 우리가 잡은 증거도 많아서 금방 무너질 것 같은데.”
“시간 낭비하지 마. 그것들은 현행범으로 잡혀도 무조건 잡아뗄 놈들이야.”
지금 이 증거를 목에 들이밀어도 무조건 아니라고 발뺌할 거다.
“우리 시간 없다. 빨리 치고 빠져야 돼.”
“아, 네. 알겠습니다.”
“아, 잠깐만 서 팀장 기다려 봐.”
준철은 허겁지겁 나가는 서 팀장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리곤 어디론가 전화를 돌렸다.
“네. 심 과장님. 저 이준철입니다. 자료 보내드렸는데 보셨죠? 아이고, 아닙니다. 서울 공정위 사람들은 다 장부 보면 이 정도 밝혀내요. 다름 아니라 저희 오늘 기소 칠 건데
축하 좀 받고 싶거든요.”
“…….”
“예, 예. 뭐 지역 신문사, 지역 방송국 뭐든 다 좋습니다. 되도록 떠들썩하게 소란 좀 피워 주세요.”
전화를 끊은 준철이 서 팀장에게 눈을 찡긋했다.
“한 시간만 있다 출발해라. 레드 카펫 깔리면 가자.”
***
서초구와 달리 늘 한산하고 평온했던 강원 지법이 오일장이라도 열린 듯 떠들썩해졌다. 심 과장의 언질에 유수의 언론사들이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의 비리 사건은 이 한산한 강원도를 달아오르게 해 줄 최고의 특종이었다.
게다가 슬쩍 전해 들은 바, 이러한 비리가 한두 번 있었던 일도 아니라고 한다. 의심되는 수의계약이 총 12건, 그중 다섯 건이 이미 비리 적발로 드러나 기소 절차를 밟는다.
“선배, 그 이 사건 담당자가 누구였죠?”
“오명석이. 문보국 담당과장.”
“근데 오명석이면 그때 그 사람 아닌가요. 예산 잘 따와서 강원 시장한테 상까지 받은 사람.”
“맞아, 그놈.”
“와아…….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예산 해결사가 알고 보니 청탁 해결사였어?”
“어, 저기 온다!”
기자들이 쑥덕공론을 펼칠 때, 서 팀장이 유유히 강원지법에 들어섰다.
서울 못지않은 취재 열기로 강원지법은 다시 뜨거워졌다. 하지만 서 팀장은 준철의 지시대로 최소한의 말만 전달했다. 뒷얘기를 아껴 기자들의 추측성 기사를 난무하게 만들자는 지시였다.
이러한 덕택에 오명석이 주도한 모든 문화재 사업이 다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약 200억대 가까이 되는 복원 사업들이 모두 공개 입찰을 통하지 않은, 수의계약으로 이뤄졌단 사실도.
여론의 거센 분노에 힘입어 업자들에겐 곧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과장님, 유진건설 김 사장 취조 끝났답니다. 이제 저희 차례예요.”
준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태 어떠냐?”
“긴장한 기색인데 쫀 기색은 아닙니다. 육개장을 아주 싹 다 비웠어요.”
“그래?”
“네. 검사님들 말씀이, 그놈 검찰 문턱 들락거린 전력이 한두 번 아니라더군요.”
누가 건설업계 종사자 아니랄까 봐. 역시나 더러운 게 많네.
“그럼 좋네. 어차피 우리도 숙맥은 싫은데. 자료 준비 다 했어?”
“예. 그렇습니다. 근데 저 과장님…….”
서 팀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뒷말을 이었다.
“김 사장, 이거 나쁜 놈인데 정말 그 제안 하실 겁니까?”
“왜?”
“아니……. 그 자식도 나쁜 놈인데 너무 파격적인 제안이 아닌가 싶어서요.”
“그 위엣 놈 잡으려면 별수 없어. 잔챙이는 풀어 줘야 돼.”
“오명석이 말씀이죠?”
“응.”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항상 최고의 조사 성과를 위해 가장 빠른 길을 가는 사람 아닌가.
“넵. 그럼 취조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