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58
258화
수의계약 (4)
1차 보도의 파급력이 상당했나 보다.
오명석의 구속 길은 부르지도 않은 기자들까지 참석하여 자리를 더욱 빛내 주었다. 좀체 사건 사고랄 게 없는 강원지검도 오늘만큼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새통을 이뤘다.
-한 말씀만 해 주십쇼. 공정위가 적발한 수의계약 비리가 모두 사실입니까?
“…….”
-그럼 그간 이뤄진 문화재 복원 공사는 제대로 시행됐습니까?
“
-얼마나 많은 이권을 챙겼습니까?
하나같이 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에 오명석의 고개는 땅에 처박혔다.
준철은 묵묵히 이 기자 벽을 뚫으려 했지만, 그들의 매서운 질문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오명석 과장은 문화재청 내에서 예산 해결사로 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이 과정에도 비리가 발견되었나요?
“아직 확인된 바 없습니다.”
-그럼 의심해 볼 만한 내역이라도 있었나요?
“아직 없습니다.”
-그럼 총 몇 건의 공사가 수의계약 비리였습니까?
-로비 액수는 얼마로 추정하십니까.
-공정위는 왜 지금껏 이런 문제를 방관했습니까?
-1억 이상의 국가공사는 무조건 공개입찰을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피감기관의 감독 부실 아닙니까?
기자들의 날선 질문은 곧 공정위에게 향했다.
‘뭐 하세요. 얼른 나서지 않고.’
이럴 줄 알고 심 과장을 미리 대기시켜 놨지. 준철이 눈짓을 보내자 그가 침통한 얼굴로 기자들 앞에 섰다.
심 과장은 기자들의 질책성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며 거듭 고개를 조아렸다. 사실 본인도 억울할 것이다. 내부 비리도 아니고, 타 기관 비리인데 감독을 못 했단 이유로 조리돌림당해야
하니.
하지만 조사가 다 끝났을 땐 자신의 행운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만약 그때 준철의 지시를 거부하고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오명석과 구치소 동기가 되었을 테니.
“저희의 늦장 대응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문화재청의 편의를 봐줬던 건 아닙니다. 앞으로 1억 이상의 모든 정부 공사는 반드시 공개입찰을 통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타 기관의
실태도 검토하여 적극 행정 지시를 내릴 방침…….”
“어, 문화재청 관계자다!”
그때였다.
별안간 뒤에서 문화재청 차 한 대가 도착하더니 송 국장이 얼굴을 내비쳤다. 덕분에 심 과장은 진땀을 쓸어내리며 기꺼이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할 수 있었다.
침통한 얼굴로 기자들 앞에 선 송 국장은 허리를 숙이며 준비한 원고를 꺼내 들었다.
“먼저 국민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드립니다. 민족의 얼과 유산을 지켜야 할 저희 문화재청이 불미스런 일로 국민들 앞에 서게 됐습니다.”
건물 안으로 도망치다시피 했던 오명석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해당 사건을 내부에서 확인한바, 불미스런 계약이 총 20건으로 모두 수의계약으로 진행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
“선정 업체는 모두 팀 과장들의 회의를 통해 결정되었지만, 내부 사정에 의해 한 사람의 의견이 집중적으로 반영되었다는 것 또한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한때 예산 해결사였던 오명석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한 사람에게만 돌릴 순 없을 것입니다. 저희 문화재청은 근시일내 징계위원회를 열어 이권을 받진 않았지만 책임은 있는 모든 직원들에게 합당한 징계를 내릴
것입니다.”
“…….”
“아울러 이번 사태에서 수의계약은 이점보다 부작용이 더 크단 걸 깨달았습니다. 이에 내부 입찰 시스템을 정비, 앞으로 규모를 막론하고 모든 공사는 공개입찰을 통해 정할 방침입니다.
물론 지역 건설사들의 담합 등에 대비해 보완책 또한 마련할 계획입니다.”
“…….”
“끝으로 이 사태의 모든 책임을 지며, 제가 자리에서 사퇴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들께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송 국장의 사퇴 소식에 떠들썩했던 강원지검이 잠시 조용해졌다.
보통 공무원들 징계위는 보여 주기 식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장이 직접 사퇴까지 발표했다는 건 고강도의 징계위원회가 될 것이란 암시였다.
이 소식에 가장 놀란 건 멀리 떨어진 채 서 있던 오명석이었다.
송 국장은 잠시 그와 마주치더니 고개를 훽- 돌려 버렸다.
한때 잘나갔던 예산 해결사가 이젠 국장 잡아먹은 비리 공무원이 됐다. 송 국장의 사퇴는 조직 내부에서도 오명석을 비호하지 않겠단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갑시다.”
준철이 살짝 어깨를 당겼지만 오명석은 이미 망부석처럼 자리에 굳어 있었다.
사실 취조가 의미 있나 싶다. 이미 공모자들의 자백이 나왔고, 조직에선 버림까지 받았는데. 오늘은 그냥 살살 달래서 자백이나 받아야겠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놈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한참 만에 걸음을 뗀 오명석 입에선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내가…… 내가…… 얼마나 개처럼 일했는데. 저것들이 어떻게!”
역시나 사람 고쳐 쓰는 게 아니지. 잠시나마 놈을 동정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준철은 놈을 먼저 취조실로 보낸 후 서 팀장을 찾았다.
“서 팀장, 육개장, 설렁탕, 자장면 뭐 시킬 수 있는 거 다 시켜서 저 방에 보내 놔.”
“예?”
“오늘 8시간 이상 취조할 거야. 너도 밥 든든히 먹어 놔라.”
***
“감사합니다, 처사님.”
사천사에는 오랜만에 웃음꽃이 폈다.
오명석과 업자들이 구속되며 복원 공사는 시공업체가 바로 바뀌었다. 언론사들의 살벌한 관심 속에 선정된 새 업체는 안전펜스도 설치했고, 불체자도 쓰지 않았다.
덕분에 더 이상 사천사엔 분진 가루가 휘날리지 않았다.
“많이 좋아졌나요?”
“좋다마다요. 새 업체는 예불 시간도 존중해 주고, 안전장비도 다 갖춰 공사하더군요. 덕분에 제자들도 아주 좋아합니다.”
오랜만에 주지스님 얼굴에도 꽃이 피었다.
이제 복원 공사장엔 감독관이 상시 대기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민원은 대개 하루면 해결이 되었다.
이 당연한 권리를 찾는데 왜 그리 긴 여정을 지나야 했는지.
“근데 주지스님 왜 그러셨습니까?”
“뭐가요?”
“탄원서요. 오명석이 같은 놈은 천벌을 받아도 시원찮을 놈이에요. 왜 그런 걸 써 주셨어요.”
서 팀장의 물음에 주지스님이 껄껄 웃었다.
“세상에 허물없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다 속죄하고 살아야 할 미물들이죠.”
“하지만…….”
“예수는 사랑을 가르쳤고, 부처는 자비를 가르쳤습니다. 이 생엔 악연으로 만났지만 저 생엔 귀한 인연으로 만나길 바람입니다.”
평범한 사람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숭고한 정신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세상에 이것만큼 힘든 게 있을까.
하지만 주지스님의 바람과는 별개로 오명석은 이미 부당이익금 환수 조치에, 실형까지 예약되어 있었다. 부처님은 용서하셨을지 몰라도 사법부는 용서하면 안 되지.
“시공 업체 확인 차 들렀는데, 잘 지내고 계시다니 다행이네요.”
“더할 나위가 없죠. 하하.”
“다행입니다. 그럼 저흰 이만 내려가 보겠습니다.”
용무를 마치고 돌아설 때였다.
“잠시만요, 처사님. 혹시 사주를 좀 알 수 있습니까?”
주지스님의 말에 서 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주요?”
“예. 본래 불자들이 바깥에서 시주를 받거나, 예불을 받을 때 작게나마 축원을 드립니다. 소싯적 저도 관상 좀 보고 다닌 몸인데, 아마 어중이떠중이 도사들보다 신통할 겝니다.”
“아, 그럼 제 미래를 알 수 있는 건가요?”
“미래는 모르지만 전생에 어떤 업보를 쌓았는지는 알죠. 그 덕을 이 생에서 보게 될 겁니다.”
서 팀장은 신난 얼굴로 자신의 사주를 말해 주었다.
주지스님은 한동안 서 팀장 얼굴을 뚫어져라 보더니 너털웃음을 지었다.
“우리 서 팀장님께선 과거에 아주 큰 덕을 쌓으셨군요.”
“덕이요? 제가요?”
“귓볼이 넓고, 미간이 좁은 것이 복을 부를 팔자입니다. 한데 재물을 탐하면 집안이 풍비박산 날 팔자고, 명예를 따르면 대통할 팔자시군요.”
솔직히 좀 싱거웠다.
당연히 공무원이 재물을 탐하면 풍비박산 나는 것 아닌가. 이건 사주를 빙자한 그냥 덕담 세례다.
“현생에 귀한 인연을 만나 관운이 대통하실 것 같습니다.”
“귀한 인연요? 그럼 혹시 제가 고위직 처자랑 결혼할 팔자인가요?”
“허허. 인연이 어떻게 꼭 남녀에만 한정되겠습니까. 옷깃 스쳐 가는 모든 인연에 마음을 다하십시오.”
서 팀장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그냥 웃어넘겼다. 원래 뻔한 칭찬도 막상 들으면 기분이 좋은 법이다.
“저는 태어난 시간은 모르겠고, 생년월일만 압니다.”
하지만 그 인자했던 주지스님의 얼굴이 준철 앞에선 한없이 굳어졌다.
“이상하다…….”
“예?”
“참으로 묘한 사주라서요. 이게 진짜 처사님 출생연일이 맞습니까?”
“네……. 주민등록증 보여 드릴까요?”
주지스님은 그렇게 한참 준철을 뜯어 보더니,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이마를 쳤다.
“아이구야- 아미타불.”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팔자가 꼬인 상이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 보는데.”
“……예?”
“과거에 지은 악업이 많아 이생은 속죄하며 살 팔자시군요. 가혹했습니다, 그리고 잔인했습니다. 처사님의 악업으로 터진 원성이 태산을 찌르고, 흘러간 눈물이 강물을 뒤덮었습니다.”
이러한 답변에 가장 놀란 건 서 팀장이었다.
그냥 대충 얼굴 보고 축원해 주는 거 아니었나? 도와준 은인한테 이렇게까지 말해도 되는 건가.
“하나 그 업보를 이생에 묵묵히 잘 지워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깨달음을 얻으실 테고, 그 깨달음 끝엔 굴레의 해방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주지스님은 한바탕 악담을 쏟아 놓곤 머쓱해졌다.
“죄송합니다. 좋은 말을 많이 드리고 싶었는데, 보이는 걸 모르는 척할 수 없으니.”
“괜찮습니다. 뭐 그래도 끝에는 좋네요. 하하.”
“기왕 얘기 나온 거 첨언하자면 곧 그 끝에 다다를 팔자시군요.”
“……예?”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쩔쩔매는 서 팀장을 뒤로하고 준철은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늘 마음에 새기고 바른 대로 살겠습니다.”
***
사천사에서 내려오는 길.
민망해진 서 팀장이 괜히 말을 꺼냈다.
“아이참, 주지스님도 너무 하시지. 그냥 대충 덕담 몇 마디 해 주시면 되는 거 가지고…….”
제3자인 자신이 들어도 너무나 충격적인 얘기였다. 아무 칭찬이나 막 던지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아무래도 스님이 좀 고집이 있으신 모양이에요. 옛날 분이기도 하고. 과장님, 신경 쓰지 마세요. 제 사주팔자 들어 보면 사실상 하나 마나 한 소립니다.”
“글쎄, 난 꽤 신통방통한 것 같은데.”
“예?”
“좋겠다, 서 팀장. 넌 귀한 인연을 만나서 운수가 대통한다잖아. 재벌집 아가씨한테 시집가는 거 아니냐.”
“에이- 재물 탐하지 말랬잖아요. 솔직히 결혼이고 자시고 여자 만날 시간도 없습니다.”
준철이 껄껄 웃었다.
“그나저나 과장님, 우리 이제 국장님 얼굴 어떻게 봅니까?”
“왜?”
“배 팀장한테 전해 들었는데……. 우리 사건 이미 국장님 귀에 들어갔대요. 얌전히 있으라 했는데 왜 설치고 다녔느냐고…….”
“젠장. 강원 공정위가 슬쩍 꼰질렀구먼. 됐다. 좋게 해결됐으니 별말씀 없으실 거야.”
준철은 개의치 않으며 산에서 내려왔다.
사실 국장님이 어떤지 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과거의 악업을 청산할 때가 되었다…….
주지스님의 관상이 더욱 걸린다. 대강 얘기를 들어 보니 아무 소리나 막 내뱉은 것 같진 않다. 그렇게 여기기엔 그게 더 소름 돋았다.
혹시 김성균으로 살았을 때를 얘기한 건가. 이제 곧 그 업보를 청산한단 얘기일까.
‘후우.’
모르겠다. 스님 말씀대로 차차 알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