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59
259화
위험한 데이트 어플 (1)
유 국장 앞에 선 준철은 고양이 앞의 생쥐꼴이었다.
입 다물고 있어도 모자랄 판국에 유배지에서 또 사고를 치지 않았나. 강원 공정위는 사건의 전말을 친절히 공문에 부쳤고, 덕분에 유 국장은 모든 내막을 알게 되었다.
“너 거기 가서도 기업들 상대하듯이 협박했냐?”
“예?”
“으름장 놨다면서. 수의계약 건 조사 안 하면 공범으로 간주하겠다고.”
“국장님, 그건 좀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게 얘기하자면 좀 긴데…….”
“됐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니까. 네 덕에 무슨 공문이 50장이나 왔어. 처음엔 국감 보고선 줄 알았다.”
어지간히 공범으로 몰리기 싫었나 보다. 강원 공정위 보고서엔 사건의 전말과 개선안까지 담겨 있었다.
앞으로 모든 정부 공사는 공개 입찰로 진행할 것이란 내용이었는데, 그 내용이 흡사 반성문처럼 쓰여 있었다.
원래 국감이나 청문회에서 한번 공론화되면 관련법이 갑자기 보완되고 시스템 개혁이 이뤄지는데, 지금이 딱 그 꼴이었다.
“그렇다고 네놈 칭찬해 주는 거 아니다. 감사원 조사 피신하려고 간 놈이 무슨 깡으로 참.”
“…….”
“조사가 잘 끝났기에 망정이지, 안 풀렸으면 너 쪽박에 피박이야.”
유 국장으로선 참 이해하긴 힘든 의욕이었다. 공무원은 밑져야 본전인 조사를 하는 사람들이지, 잘돼야 본전인 조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타박하듯 꾸짖었지만 마음속 본연에서 일어나는 기특함은 숨길 수 없었다.
유 국장의 말투가 살짝 누그러지자 준철이 조심히 물었다.
“감사원 조사는…….”
“이미 다 전해 받았으면서 뭘 또 물어? 네가 지금까지 맡은 조사 싹 다 압수당했고, 절차적 문제가 없었는지 모조리 다 검토당했다. 근데 네가 이겼어. 그놈들이 백기 들더라.”
“감사합니다, 국장님!”
“내가 뭘?”
“진짜 작정하고 털었으면 저도 남아나지 않았겠죠. 국장님이 적당히 위압감을 주셨으니 조사가 거기서 그쳤을 겁니다.”
공무 집행에서 절차적 하자를 찾는 건 일도 아니다.
검사가 취조하다가 책상다리를 발로 툭 쳤는데, 그걸 폭력과 위압 취조로 엮은 판례도 있다.
-감사원이면 다요? 이건 절차적 하자를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잖아. 그럼 감사원의 이 조사는 절차적 하자가 없다 단언할 수 있소?
유 국장은 절차적 하자를 찾는 놈들에게 도리어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며 조사를 조기 종결시켜 버렸다. 그가 감사원 국장과 드잡이한 사실은 이미 공정위 내에서 파다하게 퍼질 정도였다.
“알면 좀 조심하자. 네가 성진유업 편법을 처벌한 사실은 내 입으로 변호하기에도 창피하더라. 너무 머리 쓰지 마. 그냥 법으로 처벌 못 하는 건 아니꼬워도 못 하는 거야.”
“앞으론 무조건 조심하겠습니다. 심려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잔소리를 실컷 퍼부어 주려 했지만 풀 죽은 모습이 또 사람 마음이 약해지게 한다.
그래, 사건만 보면 앞뒤 안 재고 달려드는 모습이 이놈을 기특하게 여기는 이유지. 오지랖이 너무 넓다는 게 문제지만, 요즘 젊은 놈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패기다.
“진짜로 죄송하면 당분간 숨만 쉬면서 자리 지켜. 절대로 너 혼자 사건 맡지 마. 타 부처에서 협조 요청이 와도 안 돼. 팀장들이 올린 결재 서류에 사인만 갈기는, 과장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라고.”
“네. 당분간은 정말 조심하겠습니다.”
90도로 인사를 하고 나온 준철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더 이상 국장님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해선 안 된다. 당분간은 정말 숨만, 아니 숨도 쉬지 말자.
***
국장님의 지시대로 준철은 한동안 결재 로봇이 되었다.
말은 참 간단하지만 휘하엔 6명의 팀장들이 있었으니 사실은 6개의 사건을 맡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행히도 모두 시정 명령이나 개선 지시 선에서 끝낼 수 있었기에 크게 골치 아프진
않았다.
시간이 남을 땐 각 팀을 돌며 점심도 함께했고 업무 고충도 들어 주었다.
그간 업무에 매진하느라 체력이 바닥난 건지, 이 지루한 일정이 눈물겹도록 고마운 여유로 다가왔다.
“당분간 기소, 영장 같은 굵직한 절차 아니면 저한테 굳이 결재 올리실 필요 없습니다. 조치하시고 저한테 보고만 해 주세요.”
“네.”
“그나저나 요즘 배 팀장이 안 보이네? 연락도 안 되고.”
그렇게 마지막 과장 주재 회의가 끝났을 때였다.
복귀하고 나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배 팀장의 공석을 바라보며 준철이 물었다.
“아, 배 팀장은 오늘 경찰청에 좀 가야 한다고 합니다.”
“경찰청? 서울지검이 아니라?”
사실 공정위 직원이 경찰청을 들락거리는 건 흔한 광경이 아니다.
이 바닥에 무슨 현행범이 있겠나, 체포할 일이 있겠나. 설사 그런 절차가 필요하더라도 검찰에 기소하면 그들이 다 알아서 해 준다.
“아, 그게 이번에 맡은 사건이 좀 지저분하게 엮여서 반드시 참관해야 한다고…….”
“뭐가 그렇게 지저분하게 엮여?”
“공개적으로 말씀드리기 좀 그런데…….”
서 팀장은 살짝 눈치를 보더니 준철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준철은 사건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없었던지 다시 귀를 가져다 댔다.
하지만 두 번째 설명을 들어도 좀체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죠. 서 팀장은 잠깐 남자.”
“네.”
팀장들을 해산시킨 준철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게 대체 뭔 말이야? 데이트 어플 하나를 적발했는데 이게 성매매 알선 혐의까지 받는다고?”
“네. 이게 간단히 설명하면…….”
“아니, 간단히 설명하지 말고 자세히 설명해 봐.”
서 팀장은 심호흡 한 번 하고 말을 이었다.
“영앤리치라는 소개팅 어플이 있어요. 이게 남녀 가입자를 매칭시켜 주는 어플이거든요. 근데 남자가 여자에게 말을 걸 땐, 여기서 파는 회원권을 사거나 아이템을 구매해야 됩니다. 한
마디로 이 아이템이 주선비 같은 개념이죠.”
여자 만나는 법이라곤 미팅, 맞선밖에 모르는 준철에겐 신세계였다.
“그래서?
“근데 이 어플이 남자 회원에게만 가입비랑 아이템을 요구하거든요. 어플 측이 이를 위해 유령 여자 회원을 고용했다는 의혹입니다.”
그제야 대략적인 사건이 이해가 갔다.
한마디로 인터넷 나이트클럽 같은 곳이다. 남자는 비싼 술을 시켜야 룸을 주고, 여자는 공짜 맥주까지 뿌려 가며 모시는.
“거기까진 이해가 가는데 조건 만남 얘기는 뭐야?”
“근데 여기에 고용된 여자가 더 큰돈을 벌려고 남자를 만났다 합니다. 그 과정에서 둘이 쌈이 붙었는데 남자 측이 여자가 알바생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이런 의혹이 예전부터 있어서
지금 남자 회원들 사이에서 사기 어플 신고가 이어지고 있답니다.”
한숨이 나왔다.
진짜 더럽게도 엮였구먼.
“어디로 갔어?”
“오전엔 강남이었다는데, 지금은 종로에 있다 합니다.”
“뭐?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라서요. 사실 지금 허위 과장 광고부터 회원 사기까지 걸린 게 너무 많아 어떤 죄목으로 처벌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날 정도랍니다.”
준철은 미간을 문질렀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당사자는 오죽할까.
일단 알바 회원, 즉 회원 사기를 쳤으면 전자상거래법 위반이고, 이것이 조건 만남으로까지 이어졌다면 성매매 알선도 고려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직접 보고를 듣기 전까진 의견을 내지 않는 게 좋아 보였다.
“배 팀장 지금 종로에 있다고?”
“네. 3가 경찰청이랍니다.”
준철은 겉옷을 챙겼다.
“문자 하나 남겨 놔. 내가 직접 봐야겠다.”
***
종로 3가 경찰청.
사이버 범죄팀 강 형사는 황당한 얼굴로 두 남녀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두 분이서 조건 만남을 하려고 만났는데 서로 사기를 당하셨다고요?”
“네!”
“아, 네!”
황당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사이버팀의 주 고객(?)은 한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한 악플러들로, 대개 경찰서만 오면 온순해지는 사람들이었다.
“데이트 한 번 해 주면 100만 원을 주기로 했어요! 근데 데이트 다 끝나니까 자꾸 절 호텔로 끌고 가려 하잖아요.”
“야, 어떤 미친놈이 데이트 한 번에 100만 원을 줘? 너도 알 거 다 알고 나온 거 아니야?”
차라리 악플러가 낫구나.
그들은 서로를 피해자라 주장하지도 않았고, 경찰청이 떠나가라 부끄러운 얘기를 떠들지도 않았다. 최소한의 염치는 있었던 존재들이다.
“알긴 뭘 알아? 내가 미쳤다고 50대 배불뚝이랑 호텔을 가? 이 사람 먹튀예요. 사기로 쳐 넣어 주세요.”
“먹튀는 개뿔! 너야말로 내 뒤통수 쳤잖아. 너 영앤리치 알바라며.”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당신한테 돈 받았어?”
“그럼 난 어쩌라고. 내가 너랑 뭐 했냐?”
“어머, 형사님. 이거 지금 들으셨죠? 이 사람 성매수남이에요. 선처 안 할 거니까 무조건 처벌해 주세요.”
쾅!
“저기요, 두 분. 억울한 건 알겠는데 그게 뭐 자랑이라고 시끄럽게 떠들어 대십니까?”
“아니, 제가 피해자…….”
“데이트 대가로 100만 원 받기로 한 김성희 씨도 잘못 없지 않아요.”
“그렇죠, 형사님!”
“조건 만남을 제시한 김팔봉 씨도 잘한 거 전혀 없습니다.”
그제야 정신이 좀 든 건지 두 남녀가 서로를 외면했다.
강 형사는 이 지저분한 사건에서 빨리 도망치고 싶었지만 상황이 그럴 수 없었다.
“두 분, 만나신 곳이 어디라고요?”
“……어플요.”
“무슨 어플요?”
“영앤리치라는 어플입니다.”
해당 사건의 시발점이 바로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이었기 때문.
이 어플은 규모도 크며 최근 무섭도록 성장세에 있었다.
만약 이 두 남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소개팅 어플로 둔갑한 성매매 알선 사이트를 검거한 것이나 다름없다.
“제가 어지간하면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두 분은 그냥 합의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차피 서로 받은 피해도 명확하지 않아 처벌도 못 해요.”
이 말에 여자가 벌떡 일어났다.
“내가 미쳤지. 이런 배불뚝이한테 속아서. 흥!”
“뭐? 배불뚝이? 야, 너 다시 말해 봐.”
여자는 아랑곳 않고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김팔봉 씨는 진짜 계속 할 겁니까?”
“내가 억울해서 못 가겠습니다.”
“본인도 잘한 거 없다니까요. 여자 분 처벌 못 해요.”
“저 여자야 그렇다 쳐도 이 어플은 용서 못 하겠다고요. 이거 회원권을 한 달에 30만 원씩이나 받으면서 이렇게 고객 뒤통수를 쳐?”
“…….”
“형사님, 만남 어플에 알바 고용하는 건 명백한 사기 아닙니까? 이런 기업은 무조건 처벌해야 합니다.”
강 형사는 슬며시 뒤에 있던 배 팀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어떻게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