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60
260화
위험한 데이트 어플 (2)
배 팀장은 이미 지친 기색이었다.
이 사건의 첫 시작은 허위 과장 광고였다. 영앤리치는 전문직 가입률 1위 등의 검증되지 않은 사실들로 고객을 유인했는데, 알고 보니 이보다 더한 똥물이 숨어 있었다.
방금 두 남녀의 말이 사실이면 전자상거래법 위반은 물론 성매매 알선 혐의까지 적용시킬 수 있다. 남성 회원 유치를 위해 알바 회원을 썼다는 것 자체가 고객 기만행위다.
배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 형사가 말을 이었다.
“진 형사, 민원인 안내해서 조서 쓰게 도와드려.”
“알겠습니다.”
“대답부터 들어 봅시다. 형사님, 나 이 업체한테 쓴 돈이 수백이에요. 이거 피해 보상 받을 수 있는 거죠?”
“일단 조서부터 써 주세요.”
“뭐 이렇게 복잡한 게 많대요? 저 여자가 한 말 들었잖아요! 저거 다 알바라니까. 우리가 영앤리치한테 사기를 당했다고!”
염치도 없이 또다시 큰소리를 낸다.
강 형사도 더는 참아 줄 수 없었던지 되바리지게 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그 알바생한테 호텔 가자고 한 건 잘한 짓입니까?”
“그건…….”
“미수에 그쳤다고 성매매 시도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이번엔 미수였지만 일전엔 이뤄졌을지도 모르죠. 저희가 진짜 이거 다 파 볼까요?”
김팔봉은 바로 입을 다물고 진 형사를 졸졸 따라갔다.
소란이 잦아들자 강 형사가 배 팀장에게 커피를 건넸다.
“머리 아프죠?”
“……아픈 정도가 아니라 쪼개질 지경입니다. 원래 이런 사건이 많나요?”
“최근 데이트 어플이 급부상하면서 관련 사건이 많다네요……. 근데 저도 처음 맡아 봅니다.”
배 팀장은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 오전에 출근 도장을 찍은 강남에서도 방금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
“강남청도 들르셨다고요. 거긴 어땠습니까?”
“레퍼토리는 다 똑같습니다. 남성 회원이 여성 회원한테 조건 만남을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여자가 알바생이란 게 밝혀지고.”
“그럼 혐의 적용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플 측에 성매매 알선 혐의를 적용하는 건 무리인 듯싶은데.”
사실 뭘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영앤리치 어플이 성매매의 온상이 되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최근 난립하고 있는 수많은 소개팅 업체도 비슷한 실정일 것 같다는 것.
“일단 저도 위에 보고를…… 어?”
그리 대답할 때,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배 팀장을 향해 걸어왔다.
“과장님?”
“기특하다. 요즘 배 팀장 얼굴 구경하기가 힘드네.”
“여긴 어떻게 아시고…….”
“서 팀장한테 다 전해 들었다. 요상한 사건 때문에 골치 썩고 있다고?”
행색을 보니 굳이 부연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헝클어진 머리에 꾀죄죄한 얼굴은 벌써 며칠째 밤샘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는 걸 말해 주었다.
준철은 강 형사에게 간단히 인사하고 배 팀장에게 말했다.
“밥은 먹고 다니냐?”
***
직장인 1번지란 명성답게 종로엔 국밥집이 참 많았다.
배 팀장은 양념장을 큰 숟가락으로 푸더니 게걸스럽게 밥을 먹어 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뚝배기를 비우는 모습이 아침밥도 걸렀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슬쩍 공깃밥을 양보하자 배 팀장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게걸스럽게 먹었죠.”
“복스럽고 좋은데 뭐. 어지간하면 밥때는 거르지 마. 사람은 결국 다 밥심으로 일한다.”
“넵.”
그렇게 뚝배기를 두 그릇이나 비웠을 무렵 준철이 슬며시 일 얘기를 꺼냈다.
“내가 대충 설명은 들었는데 갈피를 못 잡고 있거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냐?”
“그게, 그러니까…….”
배 팀장은 해당 사건을 맡게 된 경위부터 방금 있었던 막장 취조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설명이 다 끝났을 땐, 준철도 고심에 잠겨 있었다.
배 팀장이 왜 밥때도 거르며 업무에 매진했는지 알 것 같다.
“일단 하나씩 짚고 넘어가자. 허위 광고는 잡았어?”
“예. 영앤리치 어플이 전문직 가입률 1위, 20대 여성 가입률 1위 등 다수의 근거 없는 광고를 했다는 게 확인되었습니다. 이건 그쪽에 해명을 요구했는데 대답도 못 합니다.”
“좋아. 그럼 과징금 5천은 확보했고. 알바는?”
“그건 여자 쪽에서 대놓고 시인하더군요.”
“진술 확보만으론 부족해. 증거는?”
“그건 없습니다. 그걸 알려면 영앤리치 기업 자료를 까 봐야 합니다.”
여기가 딱 조사가 막히는 지점이었다.
정말 회원 알바를 고용했다면 회계장부에 이상한 내역들이 잡힐 것이다. 만약 이 모두 사실이라면? 명백한 고객 기만으로 전자상거래법 위반이다.
형사처벌은 물론 개인 회원들에게 따로 민사까지 당할 수 있다.
“근데…… 이건 업계에서 늘 떠도는 이야기라서요.”
“늘 떠돌아?”
“네. 소개팅 어플이 알바를 고용한다는 얘기는 아주 예전부터 있어 왔던 얘깁니다. 사실 유언비어를 믿고 조사에 들어갔다가 괜히 망신만 당하는 건 아닌지……. 좀 조심스럽습니다.”
어느 업계나 음모론은 있다.
소개팅 어플에 유령 회원 의혹은 늘 있어 왔던 문제다. 한데 만약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공정위는 인터넷 유언비어에 놀아난 셈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크게 자신은 없습니다. 그 어플이 유령 회원을 고용했다면 교묘하게 숨겨 놨겠죠. 회계장부에 절대 솔직하게 적었을 리 없습니다.”
“그럼 이대로 끝? 허위 광고로 과징금 5천에 끝낼까?”
“근데 또 이대로 두기에는…….”
갈팡질팡하는 녀석에게 좀 더 직접적으로 물었다.
“배 팀장, 그냥 확실하게 말해 봐. 네가 어디까지 조사하고 싶은지 알아야 내가 거기에 맞춰 지원해 주지.”
배 팀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장부…… 까 보고 싶습니다! 같은 진술이 계속 반복되는 걸 보면 알바 회원 의혹이 마냥 거짓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최근 소개팅 어플이 난립하면서 유사 피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업계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조사라 생각합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 구린내 나니까 조사는 하고 싶지? 근데 증거 잡을 자신은 없고? 조사에 실패하면 대충 업계에 경고 한 번 날린 셈 치자, 이렇게 출구 전략 짜자는 거
아니야.”
배 팀장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예. 그렇습니다. 큰 자신은 없지만 꼭 해 보고 싶습니다.”
기특한 놈이다.
공무원들은 보통 이렇게 사건이 복잡해지면 타 기관에 넘기거나 아예 손 떼 버린다. 본조사 과정에서 탈세가 발견되면 바로 국세청에 떠넘겨 버리고, 반대로 담합이 발견되면 떠넘김을
받는다.
무사안일을 최고로 여기는 공무원의 습성인 것이다.
하지만 이놈은 꽤 근성 있는 모습으로 사건에 매진했고, 실패 시 출구 전략까지 짜 놨다. 아무래도 해당 사건에 대해 진지하게 오래 고민해 본 것 같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준철은 녀석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기로 했다.
“일단 허위 광고로 영앤리치 쳐. 회계장부를 압수해서 진짜 전문직, 20대 여성 가입률이 1위인지 알아봐. 물론 우리 진짜 목표는 회원 프로필이 아니라, 그 회사의 자금
흐름이다.”
“과장님, 저도 그 방법은 생각해 봤는데…… 그놈들이 순순히 응할까요? 저희 의도를 분명 빤히 알 텐데요.”
“알면 뭐 달라져?”
“허위 광고라고 인정하고 광고를 다 내려 버릴 겁니다. 과징금 몇억이 떨어져도 저희한테 장부 협조는 절대 안 할 겁니다.”
당연한 얘기다.
허위 광고 과징금이 고작해야 얼마나 한다고.
“그러니까 이렇게 하란 말이야.”
준철은 괜히 주변을 살피며 배 팀장에게 귓속말을 했다.
얘기가 끝났을 땐, 배 팀장의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과장님, 진심이세요? 정말 그래도 됩니까?”
***
영앤리치 이민섭 공동대표는 전전긍긍하는 얼굴로 비서를 찾았다.
최근 남성 회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는 유령 회원 의혹이 심상치 않았다. 인터넷 카페에선 벌써 피해 사례가 공유되고 있으며, 최근엔 경찰에 신고까지 되었다고 한다.
그가 전전긍긍한 이유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3년 전 서비스를 시작한 영앤리치는 남탕 어플이라는 말이 나돌 만큼 성비 불균형에 시달렸다.
어플에 남성 회원들만 넘쳐 나니 소수의 여성 회원들의 콧대는 나날이 높아졌고, 이는 기존 남성 회원들의 불만으로 이어졌다.
불만의 실체는 곧 데이터로 드러났다.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기존 유료 고객들이 대거 이탈하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유사 소개팅 어플들이 난립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동종 어플 다운로드 순위가 순식간에 10위권 바깥으로 추락했다.
-매칭 어플은 무조건 여자 중심이어야 돼! 여성 회원들은 학벌 검증, 아니 사진 검증도 하지 마. 필요하면 알바 제의라도 하라고.
막다른 길에 몰린 끝에 그는 이 업계의 가장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뭣 하러 힘들게 양봉장을 만드나. 꽃밭을 잘 가꾸어 놓으면 벌들이 꼬일 수밖에 없는데.
그는 그제야 왜 나이트클럽에서 여자들에게 맥주를 공짜로 주는지, 왜 헌팅 포차에서 여성 테이블에만 계란말이를 서비스로 주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젊은 나이의 대표는 이 깨달음을 곧 실행에 옮겼다.
남성 회원들은 여성 회원에게 아이템을 선물할 수 있고, 이 아이템은 백화점 상품권이나 문화 상품권으로 바꿀 수 있게 했다.
이와 함께 남성들의 가입 조건을 올리고, 알바 회원까지 동원해 성비 균형을 맞추는 데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영앤리치는 다시 소개팅 어플 1위를 달성할 수 있었으며, 가입자만 50만이 넘는 국내 최고의 매칭 어플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됐지?”
“막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
“남성 회원 3명이 벌써 경찰서까지 갔다는군요. 신고 절차를 밟았고, 피해 커뮤니티에서 인증까지 나돌고 있다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죗값을 치러야 할 때.
비서에게 자세한 내막을 듣자 다리의 힘이 다 풀렸다.
“아니…… 그건 우리 책임이 아니잖아. 성인 남녀가 돈거래 한 것까지 우리가 어떻게 막아?”
“그 과정에서 저희가 알바 회원을 고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이런 미친놈들! 죽으려면 혼자 죽을 것이지 우릴 팔아먹어?”
쩔쩔매는 비서 앞에서 한참이나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기분만 좀 나아질 뿐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이내 이성을 찾은 그가 물었다.
“그래서?”
“공정위에서 조사를 할 모양입니다.”
“김 변호사는 뭐래?”
“전말이 다 드러날 경우 전자상거래법 위반 혐의를 피할 수 없다고요. 고객 기만행위라 공정위 처벌 또한 무거울 거란 전망입니다.”
비서는 공정위가 오늘 아침에 보내 온 공문을 그에게 전했다.
그걸 다 읽은 그는 곧바로 눈을 돌렸다.
“진영이, 아니 홍 대표 지금 어디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