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61
261화
위험한 데이트 어플 (3)
정신 차리자.
호랑이 굴에 물려 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호랑이 가죽을 가지고 나온다 했다.
천만다행히도 공정위 공문은 허위 과장 광고에 대한 지적이었고, 이 과징금은 기꺼이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시금 생각해 보니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아닌 말로 알바회원 의혹은 이쪽 업계에서 늘 끊이지 않았던 추문 아닌가. 소개팅 어플치고 이런 의혹 안 받는 곳이 없으며
공정위가 여기에 놀아날 바보는 아니란 판단이 들었다.
그렇게 냉수로 속을 달랠 때 홍진영 공동대표가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 급하게 날 찾아?”
이민섭은 대답 대신 공문을 내밀었다.
“그때 말한 그 일 말이야. 좀 안 좋게 됐어.”
내용을 확인한 홍 대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니, 이게 뭐야? 네가 알아서 막겠다며!”
“소리 높이지 마. 그렇게 심각한 거 아니니까.”
“내가 바보야? 아무리 내가 경영을 몰라도 이게 심각한지 아닌지 모를 것 같아?”
영앤리치는 홍진영이 기술을, 이민섭이 경영을 담당하는 투톱 체제였다.
하지만 공정위 공문은 천생 이과생인 홍 대표도 심각하단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게 내가 지저분한 방법은 쓰지 말자 했잖아! 알바를 고용하고 난 이후 똥파리들만 잔뜩 늘었어. 우리 서버관리팀이 매일 하는 일이 뭔 줄 알아? 조건 만남 게시글, 스폰 요청
게시글을 삭제하는 거라고!”
홍진영이 처음 구상했던 매칭 어플은 이런 추잡한 스폰 어플이 아니었다.
그는 대한민국 남성의 표본인 남고-군대-공대남이었고 졸업할 때까지 연애 한 번 못 해 본, 소위 말하는 천연기념물이었다.
나 같은 숙맥도 연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영앤리치는 이 단순한 발상에서 출발한 회사로 그의 최종 목표는 온라인 결혼 정보 회사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민섭의 제안대로 유료 아이템을 남발하자 서버엔 똥파리들만 들끓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유료 아이템을 구걸하는 여자와 더러운 목적으로 접근하는 남자.
사기 피해 신고가 하루도 끊이질 않았고, 덕분에 서버는 아주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은혜도 모르는 새끼.”
“뭐?”
“서버 관리 적자라고 매일같이 징징댔던 거 기억 안 나? 유료 아이템 없었으면 진즉 파산했어, 이 멍청한 놈아.”
“머, 멍청한 놈?”
“그래, 이 멍청한 놈아. 제발 컴퓨터만 들여다보지 말고 현실을 봐라. 뭐? CC를 만들어 주는 온라인 소개팅? 대학생끼리 매칭되는 온라인 미팅? 꿈 깨, 이 병신아. 네가
생각하는 사업은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거야.”
그간 마음에 담아 뒀던 말을 한바탕 쏟아 내니 속이 좀 후련하다.
그걸 들어야 하는 홍진영은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지만.
“제발, 진영아……. 내가 너랑 왜 싸워야 되는 거냐? 우리 이거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5천만 원씩 빚까지 진 공동 창업자 아니냐?”
“…….”
“너는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어플을 만들어 냈어. 난 거기에 걸맞게 공격적인 마케팅을 해야 했고. 좋게 생각하자. 이건 우리 회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증거야. 기업이 커지는
성장통일 뿐이라고.”
여전히 납득할 수 없었지만 이젠 납득이 안 돼도 입을 다물어야 했다.
이민섭의 말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그는 경영에 문외한이었으며 사업을 하기엔 너무나 천진난만했다.
이민섭은 수완이 밝았고, 그의 말대로 유료 아이템 도입 이후 더 이상 돈 걱정 없이 사업할 수 있었다.
공동대표란 직함을 갖고 있지만 회사의 최종 결정권은 이민섭에게 있다는 걸 예전부터 깨닫고 있었다.
“진영아. 난 스티븐 잡스고, 넌 워즈니악이야. 이 말 기억나?”
“…….”
“절대로 너 같은 애들은 경영을 해선 안 돼. 그건 나처럼 천성이 더러운 애들한테 맡기라고. 그럼 우린 훌륭한 파트너가 될 거라니까.”
경험상 말로는 이 녀석을 당해 낼 수 없었다.
홍진영은 살짝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
“그럼 대책도 다 있는 거지?”
“그래, 우리 그냥 여기에 다 깔끔하게 승복할 거야.”
“고작 그게 대책이야? 자수하자는 거?”
“자수가 아니라 손절이라 하자. 더 큰 손해를 보기 전에 여기서 발 빼는 거야.”
이해가 느리다는 걸 알았기에 이민섭은 공정위 공문을 다시 들었다.
“봐 봐. 여기엔 지금 허위 과장 광고만 문제 삼았지?”
“그래서?”
“우린 이 싸움을 길게 끌지 않을 거야. 공정위가 억대 과징금을 때려도 무조건 승복할 거라고.”
“억대 과징금이면 우리 1분기…….”
“그걸 포기해야 돼!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절대 장부를 뺏기지 않는 거야. 그놈들은 바보가 아니야. 걔네가 우리 장부 가져가서 정말 전문직 가입률 1윈지, 여성 가입률 1윈지
회원을 조사할 거 같아?”
“…….”
“천만에. 결국 우리 회계 자료를 뜯어볼 속셈이라고. 이것만 안 들키면 우리 사업의 문제점도 못 찾는다.”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방법대로라면 공정위와의 싸움이 길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걱정하지 마. 자문받아 보니까 허위 광고는 겨우 과징금 2-3억대더라. 우린 그냥 서버 관리자 두세 놈을 잠시 해고하면 돼. 이 정도면 기술팀에서 해 줄 수 있지 않아?”
“만약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그럴 일 없어. 놈들이 얼마를 부르든 무조건 승복해 버릴 거니까.”
결국 액수의 문제였다.
홍진영은 이 사태를 조속히 끝낼 수 있다면 억만금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이내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민섭은 다시 천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래야 내 동업자지! 걱정하지 마. 내가 한 달 안으로 이거 끝낼게.”
***
“과장님, 배 팀장입니다.”
-어,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선 배 팀장은 어쩐지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왜 그렇게 또 죽상이야?”
“그게, 저…… 영앤리치에서 오늘 답변이 왔는데요.”
“벌써?”
“예. 근데 과장님 말씀대롭니다. 허위 과장 광고 건을 바로 인정해 버렸어요.”
“과징금 액수는 아직 얘기도 안 꺼내 보지 않았나?”
“네. 듣지도 않고 무조건 승복부터 하겠다 하던데요. 역시나 저희한테 장부를 보여 주기 싫다는 뜻 같습니다.”
기업이 과징금 액수도 듣지 않고 용서부터 빈다.
이건 회계장부에 똥물이 잔뜩 묻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뭐가 문제야? 충분히 예상했던 일 같은데.”
“그게, 저…… 진짜로 그 방법을 써도 되는지.”
“그럼 내가 쓰지도 못할 방법을 알려 줬겠어? 그냥 때려, 과징금 50억.”
배 팀장이 짧게 신음을 토했다.
과징금 50억. 조사관인 자신이 들어도 어이가 없는 액수다.
“왜? 공문도 내가 직접 작성해서 보내 줄까?”
“아, 아닙니다. 근데 액수를 좀 줄여서 5억으로 하는 게 어떻습니까. 솔직히 50억은 너무 터무니없는 액수잖아요.”
“그놈들을 도발하려고 쓴 액순데 당연히 터무니없어야지.”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는데……. 괜히 과잉 조사라는 빌미만 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툭.
준철이 무심한 얼굴로 결재판을 내려놨다.
“그런가? 내가 좀 심했나, 적정 과징금이 5천만 원 수준인데 그 100배를 불러 버리다니. 근데 아마 5억 정도 때리면 놈들은 좋아라 할 거야. 장부를 안 보여 주는 대가로
5억은 무척 싼 편이거든.”
“…….”
“배 팀장.”
“네…….”
“상대방을 도발할 땐 확실하게 해라. 어설픈 과징금을 때리면 그쪽에서 넙죽 받아먹어. 그 뒤엔 어쩔 거야? 우리 처벌 다 따르겠다는데 조사 명분 있어?”
배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역시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지는 모양이에요. 제가 과장님 담을 못 따라잡겠습니다.”
“그래. 허락해 줄 테니까 마음껏 갈겨. 어차피 조사 과정에서 문제 생기면 최종 결재 라인인 내가 책임져 주겠다고.”
준철은 녀석을 더 타박하지 않았다.
배 팀장이 왜 두 번 세 번 확인하려 하는지 안다. 과장의 편법 처벌로 국장이 곤욕을 치렀듯, 팀장의 과잉 처벌은 과장이 책임져야 한다. 자신 때문에 과장님이 귀찮아질까 몇 번이나
되묻는 것이다.
“됐냐?”
“……예. 과장님께서 두 번이나 말씀해 주시니 결심이 섰습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아, 잠깐만. 너, 영앤리치 회계 자료 가져오면 나한테도 사본 하나 보내 봐.”
“사본요?”
“네 말대로 그놈들이 장부 관리를 절대 어설프게 하진 않았을 거야. 알바 고용 내역은 이중 삼중 꼬아 놨을걸.”
“아…….”
“함께 찾아 줄 테니까 부담 갖지 말고 와.”
“네, 알겠습니다.”
배 팀장은 꾸벅 인사를 하며 결재 서류를 다시 가져갔다.
혼자 남게 된 준철은 턱을 괴고 책상에 누웠다. 부하 직원 앞이라 좀 허세를 부렸지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장부를 다 깠는데 알바가 단순 유언비어라면 얼마나 개망신이겠나. 단순 허위 광고에 50억을 때린 희대의 미친 과장으로 남을 터였다.
‘그 꼴을 안 보려면 무조건 찾아야 되는데.’
하지만 방금 보고를 들으니 없던 자신감까지 생겼다.
장부를 숨기려는 흔적이 너무나도 보인다. 일반적인 모습은 절대 아니었다.
***
한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판교.
과연 IT 1번지답게 인텔리 직장인들이 많이 보인다. 영앤리치는 거대 IT 공룡들의 하청사들이 모여 있는 뉴테크빌리지 빌딩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에 사무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회사가 성장세에 있음을 말해 주었다.
배 팀장은 긴장한 얼굴로 영앤리치 본사에 도착했다.
‘쫄지 말자. 칼자루는 우리한테 있다.’
그리 다짐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당신들 진짜 미친 거 아닙니까? 50억? 50억!”
처음 만난 이민섭 대표는 숨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긴 자기도 어이없는 숫잔데 당사자는 얼마나 어이가 없겠나.
“이건 대체 어느 나라 계산법입니까? 고작 허위 광고 좀 했다고 50억을 때려?”
“긴말 않겠습니다. 그럼 그냥 자료 협조해 주세요. 저희 과징금이 과했다면 자료를 직접 보고 조정해 드리죠.”
“이것들이 끝까지 사람을 농락하네!”
이민섭은 거의 눈이 돌아가 있었다.
“우리가 공정위의 그 검은 속을 모를 것 같아? 애초에 본목적은 이거였지? 우리 자료를 까 보는 거.”
“저기요. 지금 이 대표님은 조사 대상자입니다.”
“무슨 조사 대상? 혐의가 뭐요? 인터넷에 떠도는 유언비어?”
더 이상 돌려 말하는 건 의미가 없다.
“뭐,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이번 조사에서 확인할 겁니다.”
“역시나 본 목적은 따로 있었구먼. 쪽팔리지도 않아요? 정식 조사로 쳤다가 혐의를 못 발견하면 곤란해지니 이딴 꼼수를 쓰는 거잖아.”
“본인이야말로 쪽팔리지 않나요?”
“뭐?”
“장부 압수 안 당하려고 갖은 꾀를 내셨잖아요. 우리가 적당한 금액을 불렀으면 넙죽 승복하셨을 거죠? 가장 추악한 자료는 장부 안에 숨어 있을 테니.”
이민섭은 배 팀장을 노려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김 팀장, 자료 내줘. 그리고 변호사에게 연락해. 허위 과장 광고에 50억이 떨어진 사례가 있었는지 어디 한번 보자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댁은, 만약 허위 광고 말고 다른 혐의를 찾지 못한다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을 거란 것만 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