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위험한 데이트 어플 (4)
공정위가 진공청소기처럼 자료를 뽑아 가자 사무실은 적막에 잠겼다.
아직 스타트업 수준의 회사가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조사를 잘 끝마치는 건 고사하고 이젠 회사의 미래조차 장담할 수 없다.
이민섭은 뒤숭숭한 분위기를 차마 눈 뜨고 볼 자신이 없었던지 전 직원을 퇴근시켜 버렸다.
그가 한참 동안 주변을 서성일 때 비서가 조심히 곁으로 다가왔다.
“대표님, 박 변호사하고 상담했습니다.”
“뭐래?”
“허위 광고에 50억 과징금은 듣도 보도 못한 얘기랍니다. 놈들이 만약 다른 혐의를 못 찾으면 과잉 조사로 저희도 소를 제기할 수 있다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법조인에게 확인까지 받으니 더욱 열이 뻗쳤다. 변호사도 아는 걸 공정위라곤 왜 모르겠나. 알면서도 도발한 것이다.
하지만 분노는 반짝이었고 이내 불안감이 엄습했다.
다른 혐의를 찾지 못하면…… 이 전제를 뛰어넘을 자신이 없다.
“너무 걱정 마십쇼. 자료를 살펴본다 한들 못 찾아낼 겁니다.”
“진짜 모를까……?”
“당연하죠. 우리가 유령 고객 숨기려고 장부에 분칠을 얼마나 했는데요. 솔직히 이건 공정위가 우리를 만만하게 본 겁니다. 웬만한 대기업보다 우리 장부에서 먼저 찾는 게 더 힘들
겁니다.”
비리의 온상이란 편견과 달리 회계장부를 가장 깔끔하게 쓰는 건 대기업들이다.
이들에겐 공시의 의무가 있고, 칼을 벼르고 있는 금감원이 있으며, 매 분기마다 감사를 요구하는 소액주주들이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 장부는 다르다. 영앤리치는 상장회사도 아니었고, 장부를 정직하게 기록하지도 않았다. 먼지 속에서 더 큰 먼지를 찾아야 할 텐데 과연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우리 장부에서 뭐 더러운 게 한두 군데야?”
이민섭은 겨우 숨을 돌렸다.
“최 비서가 차라리 낫다. 진영이 그 새끼는 물러 터졌어. 무늬만 공동대표라고.”
“네, 염려 놓으십쇼. 홍 대표님이 개발 쪽에서는 유능할지 모르나 경영은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
“아니, 이건 개발과 경영의 문제가 아니야.”
“예?”
“수완이 있느냐 없느냐, 멍청하냐 똑똑하냐의 문제라고. 최 비서도 알지, 진영이 그놈이 틈만 나면 허튼소리 해 대는 거? 나 진짜 속이 터질 것 같다. 동업자가 아니라 무슨 애새끼
데려다 사업하는 거 같다고.”
홍진영은 전형적인 외골수 개발자로, 간혹 어이없는 얘기를 늘어놓아 사람을 당황시켰다.
최 비서도 그 기행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이민섭의 심정에 공감이 갔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공동대표라 서로 협력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놈의 공동대표, 개나 줘 버리고 싶네. 아니, 차라리 개랑 동업을 하고 말지. 내 솔직한 마음 같아선 그냥 건수 잡아서 쫓아내고 싶다.”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못 나눈다 했던가.
사업이 궤도에 오르며 두 대표의 마찰도 잦아진 터였다. 이민섭은 예전부터 공동대표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어차피 서버야 다 만들어졌고, 이제는 관리만 해 주면 된다. 기술 쪽은 대체 인력도 넘쳐 난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업 수완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그렇게 한참 욕을 늘어놓던 이민섭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근데 최 비서, 방금 한 말은 어디까지나 다른 혐의가 걸리지 않으면, 이라는 전제잖아? 만약 걸릴 경우엔…….”
최 비서가 서류를 내밀었다.
“사실 그것도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
“방법?”
“예. 저희가 알바 회원에게 돌린 돈, 어차피 특판비로 마구 세탁을 해 놨잖습니까.”
“그래. 공정위는 그 빈 돈의 출처를 캐물을 텐데.”
“그 돈만 횡령으로 둔갑시키면 됩니다.”
이민섭의 눈이 번쩍 뜨였다.
“횡령?”
“네, 알바 고용에 쓴 돈을 대표님이 횡령한 것으로 둔갑시키는 거죠. 사실 출혈을 아주 막을 순 없습니다. 어떻게든 돈의 행방에 대해선 실토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유령 회원의
존재만은 끝까지 감출 수 있습니다.”
절묘한 한 수다.
빈 돈의 출처를 모두 횡령으로 둔갑시키다니! 물론 그 책임자는 과징이나 부장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될 수는 없다.
그 정도는 대표인 자신이 뒤집어써야 한다.
“그래, 알바생을 들켜서 회원이 잃느니 차라리 내가 형사처벌 당하는 게 낫지.”
이민섭의 머릿속엔 자신이 받을 처벌에 대한 생각 따윈 이미 존재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 어플에 가입한 회원들은 대표가 횡령했는지 탈세했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자신이 집행유예만 감수하면 모든 게 다 원상태로 복구될 것이다.
“하지만 그 액수는 당연히 나눠 갖는 게 맞습니다.”
“진영이랑?”
“네, 두 분은 공동대표이시니까요. 사실 횡령액을 나눠 가져야 처벌도 반으로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건 됐다.”
“하지만 대표님…….”
“그놈 말 벌써 잊었어? 이 모든 사태가 회사를 여기까지 키운 다 내 탓이라잖아. 절대 그놈하곤 경영 얘기를 나눠선 안 돼. 내가 이 얘기를 꺼내면 지 호적에 빨간 줄이 그어진다고
펄쩍 뛸걸.”
이젠 홍진영만 생각해도 화가 나는 이민섭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책임질 일은 많아지는데 놈에게 이런 책임감을 요구하는 건 무리겠지.
“그래도 혼자 감당하기엔 좀 부담이 되는 액수일 텐데요…….”
“괜찮아. 어차피 그 새끼 몰래 빼돌린 돈이 한두 푼도 아니야. 그냥 지금까지 잘 넘어갔던 돈이 이번에 걸렸다 생각하지.”
두 사람은 그 둘만 아는 뒷얘기가 있는지 서로 웃음을 삼켰다.
“이제 보니 그놈하고 길게 사업 못 하겠다. 언제 기회 봐서 한몫 떼 주고 쫓아내야 돼.”
“저도 더 이상 투톱 체제는 의미가 없다 봅니다. 대표님께서 선두에 서셔야죠.”
간지러운 부분을 건드려 주자 그의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최 비서가 이 자리 맡아. 사장 자리 정도. 어때?”
“맡겨만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하.”
“그래, 그게 차라리 좋겠어.”
두 사람은 공정위 조사가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지 농담까지 나눴다.
절대로 들키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드는 모양이었다.
***
“문제점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까? 그렇게 깔끔해요?”
“아니요. 정반대입니다. 스타트업 회계장부는 정말이지 이상하지 않은 곳이 없어요. 너무 다 엉망이라 더 특별히 엉망인 곳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호기롭게 자료를 다 압수해 왔지만 배 팀장은 곧 난관에 봉착해야 했다.
증권시장에 상장된 대기업 회계 자료와는 정말 차원이 다르다. 제대로 된 내역이 대체 뭔지 싶을 만큼 회계 상태가 엉망이었다.
흰옷에서 먼지 찾는 게 아니라, 먼지투성이의 옷에서 가장 더럽고 큰 먼지를 찾는 작업이었다.
이토록 불투명하니 조사가 진척될 리 없다.
“일단 의심 가는 곳 몇 군데를 체크해 두긴 했습니다.”
반장의 보고서에 배 팀장이 한동안 서류에 골몰했다.
그때, 그의 전화기가 울렸다.
“예, 과장님. 예? 아, 죄송합니다. 사본을 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지금 올라가겠습니다.”
그는 허겁지겁 일어나더니 반장에게 말했다.
“반장님, 우리 이거 사본, 과장님께 제출 안 했나요?”
“아…… 까먹고 있었네요. 죄송합니다. 지금 할까요?”
“아닙니다. 지금 원본 가져오라시네요. 저 잠시 위에 다녀올게요.”
***
배 팀장은 긴장한 얼굴로 준철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기다리던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 만에 입을 열었을 땐 엉뚱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뭐야? 왜 등기가 2명으로 되어 있어?”
“아, 영앤리치는 공동대표 체제입니다. 홍진영이란 놈이 기술을 담당하고, 이민섭이 마케팅을 담당한다고요. 둘은 고등학교 동창이라 합니다.”
“그럼 다 잡았네?”
“예?”
“이놈들 돈세탁 창구 말이야. 이 라인업 중에 하나라는 거 아니야?”
준철이 가리킨 대목은 가장 불투명한 마케팅 비용이었다.
아무래도 이실직고해야 할 것 같다.
“그게 저, 과장님. 아무것도 못 찾았습니다.”
“뭐?”
“제가 스타트업 회계 자료를 너무 얕잡아 봤습니다. 사실 이것도 유난히 이상했던 목록을 추린 거지, 진짜 문제가 있어서 뽑은 건 아닙니다.”
배 팀장은 지난 사흘 동안 아무것도 찾지 못했단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런데 준철이 코웃음을 쳤다.
“얀마, 딱 보면 나오는구먼. 왜 도착 지점에서 갑자기 유턴하냐?”
“……나오다니요?”
“여기 판촉비 봐 봐. 딱 느낌 안 와?”
판촉비는 판매 촉진비의 준말로 마케팅 비용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대개 광고, 프로모션, 접대 등을 총칭하는데, 세무 회계 내역에서 가장 지저분한 영역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증빙 자료를 안 부쳐도 되는 유일한 항목이기 때문.
“그러고 보니…… 여기 판촉비가 지나치게 높네요?”
“그래, 이게 빨대다. 여기로 회사 자금을 세탁시킨 다음에 알바를 고용했을 거야.”
“그런……가요?”
너무 많은 설명을 건너뛴 걸까. 배 팀장은 그의 설명을 쉽사리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놈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줄 만큼 시간이 여의치는 않았다.
“하는 거 보고 배워. 두 번은 안 보여 줄 거야.”
“아, 예.”
“이놈들이 이 판촉비 10억 중에 증빙 부친 게 얼마야?”
“음…… 4억입니다.”
“그럼 6억은 출처 불분명?”
“예. 근데 그 6억도 접대 등에 쓰였을 가능성도 있는데…….”
떠들거나 말거나.
준철은 이미 회계 자료와 증빙 자료 대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접대하러 갈 땐 판촉비로 노는 거 아니야. 영업비로 노는 거지.”
“……예?”
“룸살롱 영수증은 경비 처리 대상이라고, 영업비로 잡히는.”
실로 그러했다. 준철이 회계 자료 몇 건을 정리하니 이미 영업비 내역에서 고급 룸살롱, 술집 등이 잡혔다.
“자, 그럼 됐지? 6억은 절대 접대비로 쓴 돈이 아니다?”
“예……. 근데 과장님, 이걸 어떻게 그리 단박에 아십니까?”
왜 모르겠냐. 건설사 임원은 하청들 순회공연을 돌면서 접대받는 게 일인데.
“감.”
“……감요?”
“시끄럽고. 이 판촉비 증빙 자료도 다 가져와 봐. 내가 봤을 때 이놈들 4억도 판촉비 아니야.”
실로 그러했다.
놈들이 증빙이라고 낸 서류들 중 상당수가 중복 영수증이었고, 허위 영수증이었다.
매출 전표를 따라 몇 군데 전화를 돌리니, 다들 없는 번호라 나왔다.
증빙 자료가 붙은 판촉비 4억은 다 광고 집행비라 나와 있었는데, 이 전화 중 받는 번호가 아무도 없었다.
“뭐야? 왜 받는 전화가 없어? 설마 이 세금계산서도 다 자료상한테 샀나?”
“자료……상이요?”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주는 사람.”
“아…….”
“배 팀장, 너 공정위에서 오래 일하려면 세법 공부 좀 해 놔. 회계 자료를 못 보면 너처럼 그냥 다 얼렁뚱땅 넘어가는 거야.”
배 팀장은 고개가 땅으로 처박히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일당백 과장님이다. 기업들이 어떤 수법으로 장부에 분칠을 하는지 너무나 잘 꿰고 있다. 마치 수십 번이나 해 본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