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63
263화
의좋은 동업자 (1)
“정리해 봐. 지금 얼마야?”
“예. 일단 1억 다 가짜로 판명 났습니다. 7억 빕니다.”
“이거랑 이거도 자료상한테 산 허위 계산서다. 지금은?”
“이러면 2억이 허위 세금계산서입니다. 8억 빕니다.”
그 과정을 10분 정도 더 걸쳤을 때, 너무나 끔찍한 결과가 눈앞에 펼쳐졌다.
“다 가짜네요……. 판촉비 10억 모두 다 빕니다.”
씁쓸하다.
스타트업들은 공권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구나. 증빙자료 모두 다 허위 계산서로 판명이 났다. 국세청 조사4국에 걸렸으면 세무조사 한 번으로 회사가 휘청였을 거다.
배 팀장은 눈앞에 펼쳐진 현실보다 준철에게 더 놀란 눈치였다.
회계 자료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과장이 흔할까? 그것도 무슨 치킨 뼈 발라내듯 쉽게?
“어떡할까요?”
하지만 그 높아 보였던 과장님이 한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회사 돈 10억이 빈다는 걸 확인한 건 좋다. 근데 이것이 알바 고용에 들어간 돈인지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과장님, 이거 좀만 더 파 보면 알바 회원한테 돈을 지급한 내역도 나올 것 같은데요.”
“아니,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다.”
“예?”
“그걸 장부에 남기면 선수겠냐. 이건 우리 조사가 닥쳤을 때 바로 폐기했을 가능성이 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기까지 미친 듯이 달려왔던 과장님이 도착 지점을 딱 한 발짝 남겨 두고 꼬리를 내리다니?
“빈 돈 10억을 찾아낸 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 돈이 정확히 어디로 입금됐는지를 찾아야 돼.”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어찌 됐건 빈 돈 10억을 찾았잖아요. 그럼 횡령이든 뭐든 다 엮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문제지. 우린 알바 회원들한테 지급한 돈으로 파악하는데, 이걸 횡령으로 둔갑시키면 어쩔 거야?”
그제야 준철의 말을 이해하는 배 팀장이었다.
너무나 가능성 있는 얘기다. 아니, 이렇게 될 것 같았다.
현 상황에서 알바 회원을 인정해 버리면 사업 자체가 도산될 수 있지 않나. 하지만 대표의 배임과 횡령이면 겨우 그에 대한 처벌로 그친다.
그리고 그의 예상에도 놈들은 갖은 더러운 방법을 다 쓸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횡령은 본인 책임이 더 큰데…….”
“하고도 남는다, 알바 회원을 썼다가 걸린 것보단 차라리 그게 싸게 먹히니. 우린 10억의 행방이 정확히 어디로 갔는지까지 찾아야 돼.”
두 번 묻지 않았다. 과장님 말씀대로 항상 조사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고 덤벼야 한다.
“그럼 저희가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요…….”
“딱 하나 있어. 내부 고발.”
“그 코딱지만 한 회사에 내부 고발자가 있을까요? 솔직히 이 정도면 회계 자료도 겨우 한두 명의 손만 거쳤을 것 같은데.”
배 팀장이 오랜만에 일리 있는 지적을 했다. 준철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아주 가능성 없다고 보진 않았다. 무엇보다 서류 첫 장이 가장 걸린다.
“뭐, 그건 아직 결정할 순 없는 문제고. 일단 피해 증언부터 모아 보자.”
준철은 서류를 돌려주며 말했다.
“이거 지금 피해 사례가 공유되고 있다고?”
“예. 지금 인터넷 카페 등지에서 비슷한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다 똑같아?”
“예. 상대 여성을 만났더니 알바란 얘기였습니다.”
“좋아. 그럼 그 사람들 좀 모아 봐.”
배 팀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모아서 뭘 할 수 있습니까?”
“피해 증언을 많이 모아야 압박 수단이 될 수 있거든.”
“아, 이걸로 이민섭을 압박하실 생각이군요.”
준철은 귀여운 눈빛으로 그를 훑었다. 아직 멀었다. 그놈은 최종 타깃이지 절대로 회유에 넘어갈 놈이 아니다. 지금은 그 주변에 있는 놈들을 쳐야 한다.
하지만 여기까진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 그러니까 돌면서 증언을 모아 봐. 그리고 혹시 여자 쪽에서 자기가 알바란 자백 받아 낼 수 있으면 필히 받아 놔. 그건 빼도 박도 못할 내부 고발이다.”
“넵, 알겠습니다.”
배 팀장이 부리나케 사라질 때, 준철은 다시 서류 첫 장으로 돌아왔다.
[공동 대표 이사 : 이민섭, 홍진영]대체 누굴까?
지금은 이민섭보다 그 뒤에 있는 홍진영이란 놈이 더 궁금하다. 어쩌면 이게 이 사건을 단숨에 해결해 줄 실마리가 될 것 같았다.
***
“어떻게 됐어?”
“대표님, 아무래도 저희가 속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속아?”
“지금 공정위가 피해 사례를 확보하고, 가담자까지 찾으러 다닌답니다. 알바 회원이 자백해 버리면 끝이에요. 이거 절대 금방 끝날 수사가 아닙니다.”
홍 대표는 시시각각 얼굴이 무너져 내렸다.
보고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허위 광고로 시작된 조사가 어느새 유령 회원 의혹으로 번지고 있었고 법조계에선 벌써 기소네, 영장이네 하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추후 조사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영업팀이 기술팀에 숨기는 사실이 있다는 것.
“대표님께서도 이 사실에 대해 몰랐다면 이건 이 대표의 책임이 큽니다.”
“맞습니다. 어떻게 동업자에게도 조사 상황을 보고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민섭에 대한 기술팀의 원성을 하늘을 찔렀다.
자신만 믿어 달라, 조사는 잘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 모두 거짓으로 들통났으니.
사실 영앤리치에서 경영팀과 기술팀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경영팀은 머슴 부리듯 기술팀을 대했고, 그들의 무모한 마케팅 때문에 피해를 봤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진 말자. 경영은 원래 지저분한 영역이야.”
불만을 달래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솔직히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
“공정위한테 회계 자료를 안 뺏기려는 건 이해한다 쳐도, 왜 우리까지 못 보게 하느냔 말입니다.”
“그거야 보는 눈이 많아서 좋을 건 없으니…….”
“핑계죠. 그럼 저희는 못 보더라도 대표님껜 보여 줬어야 합니다. 대표님이 회사에서 못 볼 자료가 어디 있습니까?”
홍 대표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지금…… 이 대표를 의심하는 거야? 나 몰래 뭔가 작당한 게 있다?”
“단정할 순 없지만 거동이 수상한 건 사실입니다. 솔직히 전 이 대표가 공정위보다 대표님을 더 경계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홍진영은 처음엔 화가 났지만 어느새 납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민섭은 경영의 특수성을 들먹이며 불투명하게 회사를 운영해 왔다. 공동대표인 홍진영도 회사 회계 자료엔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고, 약식 보고서를 받아 보는 게 전부였다.
부당하다면 부당하지만 회사가 폭발적인 성장세에 있었기에 홍진영도 딱히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원래 무너지는 회사들은 위기 때 그 추악한 면모가 다 드러나는 법이다.
“…….”
불길한 생각이 조금씩 든다.
동업자끼리 횡령하고 서로 뒤통수를 치는 건 스타트업계에서 흔하디흔한 드라마 아닌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할 때, 그의 고민을 끝내 주듯 비보가 들려왔다.
기술팀장 한 명이 노크도 잊은 채 사무실 문을 열었다.
“대, 대표님. 공정위가 지금 기소를 치겠다는데요.”
“뭐?”
“피해자들 증언을 모아서 법원에 제출하겠다 합니다. 전자상거래법 위반 혐의로……. 그리고 다음 주부턴 여성 회원들 중심으로 알바 제의를 받았는지 확인에 들어간답니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희 어플 내 성매매 유인글이 있었는데 왜 적극 제재하지 않았는지, 검토에 들어간다 합니다.”
그때 홍진영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려 댔다.
평소 모르는 번호는 칼같이 차단하는 그였지만 어쩐지 그 전화는 놓치지 않아야 할 것 같았다.
홍진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전화를 받았다.
-혹시 영앤리치 홍진영 공동대표님 전화입니까?
“맞습니다만 누구신지……?”
-현재 유령 회원 건을 조사하고 있는 공정위 이준철 과장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 따로 뵐 수 있을까요?
전화기 너머에서 강조하듯 말이 이어졌다.
-아, 단둘이요. 꼭.
***
어느 커피숍.
먼저 와서 자리를 지킨 홍진영은 찬물을 벌컥 들이켰다.
지금까지 많은 공무원을 만나 봤지만 이토록 긴장되는 건 또 처음이다.
‘뭐야, 대체.’
이민섭은 분명 해당 일을 잘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최근 불거지는 문제를 보면 조용히 넘어가긴 그른 것 같다.
냉수로 쓰린 속을 달릴 때, 문제의 사내가 등장했다.
“홍진영 대표님?”
“예. 제가 영앤리치 홍진영입니다만.”
“반갑습니다. 공정위 이준철 과장입니다.”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말을 걸어오자 괜히 한시름 돌린 기분이 들었다.
준철은 상당한 경계심을 보이는 그에게 칭찬부터 건넸다.
“젊은 나이에 성공하셨다더니 예상대로군요.”
“아닙니다. 원래 IT 기업은 데뷔가 빠른 편이죠.”
“사내 기술팀을 담당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경영은 이민섭 대표가 전담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담이란 말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이미 경영팀에서 대응 중인 걸로 압니다만.
“대표님께 따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말씀 듣기 전에 먼저. 괜히 저 같은 사람을 유도심문해서 회사를 무너트릴 생각이라면 단념하세요. 저도 오늘 이 자리에 나오기 전에 많은 변호사들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무는 개는 짓지 않는 법이다.
이렇게 잔뜩 경계하는 걸 보면 오늘 이 자리가 상당히 무섭긴 한가 보다.
“그런가요. 그럼 변호사님께선 뭐라 조언해 주시던가요?”
“허위 광고에 50억 과징금은 듣도 보도 못한 얘기라더군요.”
“이런. 변호사에게 모든 잘못을 실토하진 않았나 보네요?”
“무슨 말입니까?”
“세상에 어떤 공무원이 고작 허위 광고에 그 과징금을 때리겠어요. 알바 회원 고용 및 성매매 유인글 다수 방치, 그리고 트래픽 조작. 이 세 가지 죄목을 시인하고 다시 자문을 받아
보세요. 그땐 얘기가 좀 다를 겁니다.”
얼굴이 쩍 갈라진 그에게 준철이 다시 말을 이었다.
“홍 대표님, 알바 회원 고용 이후 사내 어플이 엉망이 됐죠? 게시판엔 성매매 유인글이 넘쳐 모니터링하기 벅찰 지경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그런 일 없습니다.”
“이미 저희 전문 기술팀이 다 확인한 내용들인데요. 끝까지 잡아떼실 겁니까?”
“…….”
“저흰 이 모든 일이 영앤리치 영업팀 주도로 이뤄졌다는 것도 압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기술팀은 처벌하지 않을 테니 영업팀을 팔아라 이 소립니까?”
메시지는 한껏 경계하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이미 무너져 내린 뒤였다.
제안을 건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분위기가 찾아왔다. 준철은 그의 기색을 살피더니 찔러보듯 던졌다.
“혹시 이민섭 대표의 최근 행보가 뭔가 좀 수상하지 않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