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64
264화
의좋은 동업자 (2)
“수상?”
“회계 자료와 관련해서요. 돈이 빈다든가, 납득 안 되는 설명을 한다든가, 갑자기 횡설수설한다든가…….”
살짝 건드려 봤을 뿐인데, 벼락같은 반응이 튀어나왔다.
“지금 사람 앞에 두고 뭐 하는 겁니까! 나랑 그 친구는 십년지기야. 당신 이간질에 내가 넘어갈 것 같아?”
한심한 놈. 뒤통수는 보통 그런 관계의 사람이 친다는 걸 모르는 걸까?
“임직원들이 뜯어말려서 참고 있었는데 안 되겠어. 고작 허위 광고에 왜 과징금이 50억이나 붙었는지 내가 그 연유를 반드시 듣고 말 거야. 감사원이 아니라 넌 직권남용
형사처벌감이야!”
한참이나 노발대발하더니 나중엔 욕지거리에 저주까지 퍼부어 댔다. 처음엔 그 반응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놈이 딱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려 준
것처럼 극렬한 반응을 해 댄다. 어쩌면 이미 의심의 불씨가 이미 마음속에서 싹텄는지도 모른다.
“그 꼴 보기 싫으면 당장 그만둬. 당신하고 더는 할 얘기 없어.”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날 때 준철이 씨익 웃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이미 동업자를 의심하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어쩌지? 이대로 일어나면 당신 평생 호구 되는 건데.”
“아니, 그래도!”
“목소리 낮춰. 여기 아가씨들 끼고 노는 노래방 아니야. 아, 당신은 구경도 못 해 봤으려나. 그거 다 버젓이 법카로 긁었던데.”
“……뭐?”
“내가 당신 둘 이간질시켜서 자백받으려는 게 아니라, 이미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검토해서 내린 최종 결론이라고. 영업팀 이민섭이가 자기 동업자 뒤통수까지 쳤다.”
“…….”
“10억인가? 판촉비로 썼다는 돈, 자료를 추적하니 다 허위 계산서야. 자료상을 싸구려로 썼나 봐. 진짜 실력 좋은 놈들은 허위 법인을 절대 이렇게 안 세우는데.”
홍진영은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했다.
하긴, 웬만한 공정위 직원들도 기업 회계 자료 내막을 이렇게 자세히 알진 못한다. 먼지투성이 건설사 회계 자료만 팠던 준철에겐 귀엽게 느껴지는 자료였지만.
준철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는 그에게 쐐기를 박았다.
“근데 회계 자료에 이런 빈틈이 한두 건 아니더라고. 영앤리치가 영업 대행사 이 두 곳에 광고를 의뢰했지? 이거 저희가 법인을 확인했는데 유령 회사였습니다. 한 마디로 2년 동안
2억씩 허위 법인에 돈을 지불했던 겁니다.”
“…….”
“그런데 이런 내역이 한두 건이 아니야. 도대체 공동대표란 사람이 이런 내역을 정정하지 않고 뭐 하고 있었던 겁니까?”
모욕적인 표현이 튀어나왔지만 그의 귀엔 이미 아무것도 들리지도 않았다.
허위 법인, 허위 계약, 허위 세금계산서……. 자신이 피땀 흘려 이룩한 회사가 온통 거짓말투성이였으니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의심을 거두지 않는 그에게 목록을 내밀었다.
“필요하면 이 자리에서 전화해 보세요. 모두 허위 법인일 겁니다.”
홍 대표는 한참 망설이더니 이내 자존심을 내팽개치고 직접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없던 회사가 갑자기 생기겠나.
첫 전화에선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로 없는 번호라는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전화는 연이어 돌아갔고, 마지막 전화가 끝났을 때 그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동업자끼리 뒤통수치는 건 스타트업들의 흔한 결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충격을 숨길 수 없는 건 자기는 아니리라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가장 어려울 때 의기투합해 역경을 견뎠으니 동업자에게 전우애까지 느꼈을 것이다. 그런 이에게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기분이 어떨까. 어쩐지 그 기분을 조금 알 것 같긴 하다…….
준철은 괜한 상념을 집어치우고 더 거칠게 말했다.
“사내 평판을 들어 보니 두 사람은 참 재밌는 관계였더군요. 이 대표는 스스로를 잡스라 칭했고, 본인은 워즈니악이라 했다고?”
“…….”
“근데 잡스와 워즈니악은 우정이 아니라…… 착취 아니었던가요. 뭐, 내가 IT 전문가는 아니지만.”
충분히 괴로워하고 있었기에 부연 설명까진 하지 않았다.
“긴말 않겠습니다. 여자 회원들에게 알바비 명목으로 돈을 돌렸죠. 이 때문에 어플 수질도 크게 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그 어플에 가입해 봤는데 스폰 구인 구직 글들이 아주
넘쳐 나더군요. 기술팀은 이거 관리 안 했습니까?”
“그건 기술팀의 잘못이 아닌…….”
“이제 와 영업팀 과실로 돌릴 생각 마세요. 이민섭 대표가 주도한 일은 곧 본인이 한 일입니다. 동업자니까.”
그의 가슴이 철렁였다.
“그리고 본인은 정말 떳떳하십니까? 여성 회원 수가 많은 것처럼 트래픽을 조작했잖아요.”
홍진영 또한 남탕 어플이란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 부지런히 트래픽을 조작하며 남녀성비를 허위로 만들어 냈다.
“이건 영업팀의 지시가 아니라 기술팀이 한 걸로 압니다. 설마 이것까지 남 탓 할 건 아니죠?”
“…….”
“그러니까 제 제안 받으세요.”
“…….”
“알바 회원을 고용한 거 인정하고, 트래픽 조작 또한 인정하세요. 해당 행위는 전자상거래 위반 및 고객 기만입니다. 자백하시면 참작해 드리겠습니다.”
이미 눈동자가 많이 흔들렸지만 아직 결심을 하기엔 이른 모양이었다.
“굳이…… 그걸 왜 요구하는 거죠?”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렇게 호언장담하실 정도면 이미 증거 다 잡았다는 거 아닙니까? 굳이 제 자백은 필요 없을 텐데…….”
곰인 줄 알았는데 여우 같은 구석도 있다. 하긴, 머리가 아주 멍청하면 이런 사업 못하지.
준철은 허세를 부리기보다 정공법을 택했다.
“네. 사실 없습니다. 판촉비에서 이상한 내역을 잡았지만 이걸 이 대표가 횡령이라 자백해 버리면 우리로선 닭 쫓던 개 지붕 보는 격이죠.”
놈이 딴생각 못 하게 바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게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공금횡령을 한 대가는 반드시 치를 겁니다. 그리고 해당 사이트는 이미 성매매 알선 게시판으로 전락한 지 오래예요. 저희가 이 데이터를
여가부에 가져다주면 어떻게 될까요?”
“여가……부?”
“경찰 여성청소년과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 여가부입니다. 거기서 이 사건에 좌표를 찍으면 전국에 있는 광수대 경찰이 다 달려올걸요.”
경찰 여청과는 대개 성범죄 사건을 전담하는 부서로, 경찰 내부에서 여가부 직속 라인이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그럼 자연히 어플 폐쇄 조치로 이어질 겁니다. 아, 사실 어플 폐쇄 조치는 필요도 없겠네요. 어차피 고객 기만행위가 터지면 다 떠날 테니까.”
가지고 있는 패를 모두 깠지만 시원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긴, 오늘 만나서 대답을 당장 듣고 가는 것도 우습다. 동업자를 배신하란 말인데, 그 결정이 쉽게 내려지지는 않겠지.
준철은 다그치기보다 엉덩이를 들었다.
“지금 당장 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틀을 드리죠.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으면 두 분은 사이좋게 처벌될 겁니다.”
준철은 유유히 자리를 떠났고, 혼자 남게 된 홍진영은 이를 달달 떨었다.
***
“바쁜데 왜 자꾸 오라 가라야?”
“얘기 좀 하자…….”
“잠깐. 서로 또 감정싸움 할 얘기면 나중에 하자. 지금 나 이거 처리한다고 정신없어.”
이민섭은 만사 짜증스러운 얼굴이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밤잠을 설치며 날아다니는 그다. 유능한 변호사들을 수소문했고, 공정위의 과잉 과징금에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자문까지 얻어 냈다. 얘기가 잘 풀려 가던
중이었으니 시시콜콜 딴지만 거는 동업자가 반가울 리 없었다.
이미 정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고.
“꼭 설명을 듣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그래.”
“그니까 나중…….”
“동업자가 아니라 친구 대 친구로서. 허심탄회하게.”
이민섭은 얼굴에 드러난 짜증을 슬쩍 거둬들였다.
오늘따라 홍진영의 태도가 심상치 않았다.
“그럼 나부터 먼저 얘기해도 되냐?”
“그래, 너도 할 얘기 있으면 해.”
“공정위 조사건 때문에 심란한 거라면 걱정하지 마. 대형 로펌 세 곳에서 자문받았는데, 하나같이 다 과잉 과징금이래. 염병할. 말이 되냐? 허위 광고에 50억이라니!”
“…….”
“우린 그중에 수임료가 가장 싼 곳만 고르면 돼. 여차하면 그 담당자 새끼한테 직권남용 제기도 가능하다더라. 이 부분은 걱정 마. 지저분한 일은 내가 전문이잖아?
가장 듣고 싶어 할 만한 소식을 전달했지만 어쩐지 친구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홍진영은 한참이나 뜸 들이더니 작심한 듯 물었다.
“민섭아,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없냐?”
“뭐?”
“회계 자료와 관련해서.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없냐고.”
이민섭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등 한 번 툭 쳐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화가 풀렸던 친구의 반응이 낯설어졌고, 녀석이 던진 질문 자체도 민감하기 그지없었다. 숨기는 게 하도 많아 무얼 떠보는 건지 모르겠으니까.
그 잠시간의 정적은 홍진영에게 이미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그는 한결 홀가분한 얼굴로 자료 하나를 내밀었다.
“이번에 회계 자료를 뜯기면서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이 있어. 회사 돈이 상당히 많이 비더군. 나도 모르는 내역이 있을 정도로.”
“진영아, 그건…….”
“오해는 하지 마. 영업 쪽이 원래 다 이렇게 일하는 거 안다. 광고 단가를 낮추고, 투자금을 유치하려면 당연히 분내를 풍기고 뒷돈도 찔러줘야지. 그냥 너한테 확인차 묻는 거야.
우린 동업자지?”
이민섭은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홍진영이 내민 자료가 모두 다 돈세탁 창구였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유령 법인을 세웠고, 거기로 광고비를 집행한 척했다. 자료상에게 허위 세금계산서를 샀고,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신의 뒷주머니를 채웠다.
그런데 그 적나라한 내역들이 바로 자신의 동업자인 홍진영의 손에서 나왔다.
“젠장, 진영아. 역시 네 말이 맞았다. 이래서 사람이 죄짓고 살지 말래나 봐. 그 화살이 결국 돌아오게 돼 있네.”
하지만 그는 능숙한 베테랑이었다.
“알바 회원들에게 수당 지급하려고 돈세탁 회사 몇 개 돌렸다. 네가 지적한 회사들……. 그래, 우리 돈세탁을 도운 전문 업체들이야.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하자. 그중에서 나를
위해 쓴 돈은 없다. 우리와 우리 회사를 위해서만 썼어.”
홍진영은 차마 이민섭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눈 하나 깜빡 않고 거짓말을 늘어놓는 친구……. 이젠 점점 무서워진다.
10년을 함께한 우정보다 어제 만난 공정위 과장의 말을 더 신뢰하는 자신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