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금산 분리 위반 (2)
최만석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들 막냇동생 못 괴롭혀 안달이야.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 내가 신고했어?”
동생이 밑바닥을 드러내자 최기석은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큰형한테 말해. 여기서 휴전하자고.”
“이미 다 공정위한테 자료 넘어갔는데, 무슨 휴전?”
“영인컴퍼니가 내 실소유 회사라는 건 아직 안 밝혀졌다. 공정위가 눈에 불을 켜고 있다더군.”
“그거 하나 못 밝힌다고 비리 사건 전체가 덮일 것 같수?”
“불법 대출과 자금 운용 불투명에 대한 책임은 진다. 그럼 공정위도 체면은 설 거야. 아니, 내 말부터 들어. 다시 말하지만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부터 잡는다. 너도 나처럼 탈탈
털리고 싶은 건 아니지?”
큰형의 비정함은 최만석도 익히 알고 있다.
왕좌를 차지하고 나면 바로 토사구팽 할 위인이다. 어쩌면 이미 솥단지에 물을 펄펄 끓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좀 더 생각해 보니 자신이 몸값을 너무 쉽게 불렀단 생각도 들었다.
균형자 노릇하며 여기 비위도 맞춰 주고, 저기 비위도 맞춰 주면 건설 지분값이 더 천정부지로 솟을 것 같았다.
젠장. 아버지가 늘 우유부단하다고 질책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그 말이 딱 맞다.
“좋아. 그건 내가 형한테 한번 말해 보지. 아직 아버지 49재도 안 지냈는데 너무 급한 거 아니냐고.”
“그래, 균형 맞추면서 너도 몸값 올려. 가장 마지막에, 가장 좋은 견적 내 주는 형 말 따르면 되는 거다.”
“근데 작은 형. 그럼 큰형이 말한 내용 자체는 다 사실이야? 영인컴퍼니 형 회사고, 금융 계열사에서 대출까지 해 줬어?”
더 이상 잡아떼서 얻어 갈 것도 없다.
최기석은 순순히 끄덕였다.
“그래. 다 맞아. 하지만 영인컴퍼니가 내 소유라는 건 절대 못 잡아낼 거야.”
“불법 대출한 정황이 있잖아. 당연히 형 소유 회사니…….”
“그걸 무력화시킬 변호사까지 준비해 뒀다. 마지막엔 다 증불로 끝날 거야.”
“그럼 정말 만약에……. 증거불충분으로 안 끝나면?”
“그럼 내가 실형을 살겠지. 큰형이 제일 바라는 결말일 거다. 근데 여기에 협조한 너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경영권이 중해도 꼭 피붙이한테 실형까지 살게 해야겠냐.”
최만석은 살짝 눈이 커졌다.
큰형에게 들었던 얘기와는 너무 다르다. 아무리 정적이라 해도 집유에서 끝내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 그건 아니지. 나도 그런 싸움에 누구 감방 가고 하는 건 싫어.”
“고맙다, 넌 내 동생 맞구나. 근데 큰형은 그걸 바라고 있을걸. 내가 감방 가 있으면 경영권은 확실하게 정리될 테니.”
작은 형의 경고는 들을수록 살벌했다.
자신이 너무 쉽게 큰형과 결탁한 게 아닌가 하는 후회마저 들었다.
당장 달려가서 큰형한테 사격 중지를 요청해야겠다.
***
완벽한 제보가 접수되었지만 이것이 조사의 끝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이에 대한 증거 자료 수집은 공무원들의 역할이니.
팀장 6명을 차출해 달란 준철의 보고에 유 국장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자료가 다 한명그룹 왕자의 난 때문에 나왔다?”
“네. 제보자도 직접 만났습니다. 신빙성은 확실합니다.”
“내가 지금 신빙성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잖아. 누가 봐도 경영권 싸움에 공권력 이용하겠다는 거야. 사람들 눈엔 우리가 앞잡이로 보일 거라고.”
“그런 거 신경 쓰면 큰일 못 합니다.”
“뭐?”
“신빙성 있는 제보가 들어왔고, 몇 가지 확인 절차 거쳐 보니 모두 다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안 해야 될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 안 하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 만약 금융위, 금감원, 금조부가 해당 사건을 맡게 돼서 유죄를 받아 내면, 직무유기를 피할 수 없다. 해당 제보를 가장 먼저 받아 본 건
공정위니 말이다.
“듣고 보니 외통수구먼.”
유 국장도 여기엔 반박할 수 없었기에 모처럼 시원한 대답이 나왔다.
“종합국에 인력 몇이나 돼?”
“세 팀 정도는 동원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럼 시장감시국에서 팀장 셋 더 받아 올 테니, 이거 해라. 어차피 제보는 확실하니 짧게 끝낼 수 있지?”
준철이 머리를 긁적였다.
“사안에 따라 좀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뭐?”
“일단 한명투자가 영인컴퍼니에게 대출 특혜를 줬단 사실은 확인했습니다. 근데 그 영인컴퍼니가 최기석의 실소유 회사라는 증거는 잡지 못했습니다.”
“설마 바지 사장 썼어?”
“네. 치밀했더군요. 일가친척이 아니라 믿을 만한 사람들을 대표 이사로 앉혀서 남의 회사인 것처럼 위장했습니다.”
유 국장이 신경질적으로 펜을 내려놨다.
“그 믿을 만한 놈들은 당연히 전직 임원들이겠지? 최기석이 최측근들?”
“네. 순번 돌리면서 그 임원들에게 퇴직금을 아주 두둑이 챙겨 줬습니다.”
“그럼 그놈들만 잡아. 한 놈만 잡아내서 자백 받으면 되잖아. 그것들 어디 있어?”
“그게 저…….”
유 국장은 모두 다 해외로 망명(?) 갔다는 소식에 벌떡 일어났다.
“한 놈도 빠짐없이 다 도피 갔다고?”
“……예.”
“치밀한 놈이네, 최기석이.”
내심 감탄마저 들었다.
충성심 검증된 임원들이 바지사장을 맡고, 자신의 금융계열사에서 자금을 댄다? 지금이라도 발견 게 천만다행이다 싶을 정도다.
한명그룹을 차지하겠다는 둘째의 야망이 마냥 헛물은 아니구나.
“그럼 어떡하게?”
“찾아야죠, 바지 사장들.”
“찾으면 증언 확보는 할 수 있냐? 두둑이 받은 퇴직금으로 입에다 공구리를 쳤을 텐데.”
“입을 안 열면 그놈의 더 큰 약점을 쥐고 흔들겠습니다.”
유 국장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취조실에 거꾸로 매달아서라도 반드시 자백을 받아 낼 놈 아닌가. 일단은 사람을 찾는 것부터 고민해 봐야 한다.
“해서 말인데, 일단 기소를 칠까 합니다.”
“기소? 야! 서초구에 하숙하는 기자들이 몇 명인데! 언론에 기사 나는 건 순식간이다.”
“그게 목적입니다. 일단 이 사건 공론화시켜서 최기석 압박할 겁니다. 그럼 아무리 지구 반대편에 있다 한들 슬슬 부담감 느낄 겁니다.”
그런다고 제 발로 한국에 들어 올 사람이 있을까마는…….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 한다.
준철의 거듭된 설득에 유 국장도 서서히 설득 당해 가는 눈치였지만, 그는 계속해서 주저했다.
한명투자는 소문에 가장 민감한 금융회사 아닌가. 언론에 보도가 나가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돈이 인출될 것이다.
사실 명백한 금산분리 위반 행위라 딱히 거리낄 게 없었지만 현 상황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최영호 회장의 사망으로 한명그룹이 경영권 분쟁에 휩싸여 있는데, 섣불리 참전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마지막으로 묻자. 너 진짜 괜찮냐?”
“어떤 부분이…….”
“이러면 너한테 최영석이 딱지 붙는 거야. 찌라시엔 네랑 최영석이가 붙어먹었단 얘기도 나올 거다. 그쪽 바닥은 소문도 독하고 빠르다는 거 알지?”
실패가 두려운 게 아니다.
청탁 조사란 오명이 붙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이러면 조사를 성공리에 끝내도 최영석이 사냥개 노릇했다는 꼬리표가 붙을 테니.
“뒷말은 제가 감수하겠습니다. 그래도 하고 싶습니다.”
“그래, 그럼 하자. 일단 네가 동원할 수 있는 세 팀장으로 조사 진행해. 만약 기소 치면 형량 얼마나 요구하게?”
“불법 대출액만 3천억 가까이 됩니다. 이걸 집유로 끝내면 오히려 저희가 욕먹을 겁니다.”
“그래서 얼마?”
“과징금 1천억대에 실형 5년 정도 생각합니다.”
놀라지 않으려고 각오했지만, 신음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실형 5년이면 사실상 은퇴 선고 아닌가. 당연히 가석방과 특사로 형기를 반도 채우지 않고 나오겠지만, 그사이 한명그룹 경영권은 이미 장남이 차지해 버릴 것이다.
유 국장은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 젊은 놈이 했던 한 마디만 기억하기로 했다.
신빙성 있는 제보가 들어왔고, 그 사건을 조사하겠다. 그거면 된다. 더 이상의 고민은 정치적인 고민이다.
“좋아. 그럼 하자. 기소 빨리 치고, 해외로 망명 간 놈들 빨리 수배해. 이건 시간 싸움이야. 공론화되면 무조건 이겨야 돼!”
***
[속보) 공정위, 검찰에 최기석 기소] [한명투자 금산 분리 위반 행위 및 불법 대출 혐의] [초저금리 대출 줬던 영인컴퍼니, 실소유주는 누구?] [한명그룹, 왕자의 난 시작되나?]유 국장의 예견대로 서초구에서 하숙 생활 하는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기소 신청을 한 당일, 해당 뉴스가 실검에 올랐고 한명투자 주가가 5%나 폭락해 버렸다. 금융회사 오너가 개인 기업을 차리고 거기에 대출까지 줬으니, 이건 공금 횡령이나
다름없었다.
소액 투/투(자)/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고, 언론은 시시각각 이 반응을 대서특필해 댔다. 단 하루 만의 기사로 최기석의 이미지는 나락에 떨어졌다.
하지만 이 소식에 가장 분통을 터트리는 건 당사자도, 주주도 아닌 바로 제보자 최영석이었다.
“실형 5년? 누가 그래?”
“믿을 만한 검찰 쪽 라인에서 알려 준 겁니다. 공정위에선 과징금 1천억에 실형 5년을 구형하겠다고…….
“이 새끼가 미쳤나! 적당히 장단이나 맞춰 줄 것이지!”
최영석은 분통이 터졌다.
이번 사건을 주도한 건 경영권을 넘보는 동생의 기를 꺾기 위함이지 정말로 실형을 살게 할 마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망신 좀 사고 동생이 사과를 한다면, 적당한 선에서 끝을 볼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공정위의 기소와 범죄 행위 공표로 이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공정위는 정말 거품 문 개처럼 달려들고 있다. 기소를 친 당일 영장 청구까지 했으며, 형량 얘기도 오갔다 한다.
아무리 동생이 미운 최영석이라 해도 이는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가 원하는 건 굴복한 동생이 경영권을 양보하는 그림이었지, 동생을 감방에 처넣는 냉혈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문제가 커지면, 경영권에 눈멀어 그룹 내부 정보를 팔아먹었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내가 미쳤지! 급하다고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겼네. 김 실장, 이건 아니야. 너무 커진다. 기석이가 감방까지 가면 내가 숨통 끊어 버린 게 된다고.”
“하지만…… 지금은 멈출 기미가 안 보입니다.”
“뭐?”
“공정위에 연락을 넣어 보니 안 받더군요. 아무래도 그 젊은 놈을 진짜 끝을 볼 생각인 것 같습니다.”
원래부터 앞뒤 안 가리고 덤비는 놈이었다.
이젠 진짜 브레이크를 밟아도 듣질 않을 것이다.
“부회장님, 근데 이게 오히려 좋을 수도 있습니다.”
“뭐?”
“저희가 아직 영인컴퍼니 세부 자료는 안 넘기지 않았습니까. 공정위는 그 자료까지 다 못 찾을 겁니다. 오히려 최 상무 기를 팍 꺾어 놓고 좋죠.”
“아무리 그래도 실형 5년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그 부분만 적당히 협의하면 되죠. 집유로 끝내면 나머지 조사도 협조하겠다, 이 정도면 완급 조절될 겁니다.”
과연 그놈이 거기서 끝낼까. 의문이 들었지만, 이제 와 별다른 도리가 없다. 지금 자신이 쥐고 있는 정보로 밀당을 하며 동생의 형량을 줄여야 한다.
“젠장.”
최영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