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금산 분리 위반 (8)
-다음 소식입니다. 연일 논란을 이어 왔던 한명투자 금산 분리 위반 혐의가, 최기석 상무의 자백으로 모두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조사 관계자는 어제저녁, 최기석 상무의 자백이 나왔다 발표했는데요. 이로써 한명투자의 불법 대출 사실이 모두 드러남에 따라 실형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법조계 관측에 따르면 검찰 구형은 5년으로, 법원도 이를 그대로 선고할 가능성이 크다 합니다. 관건은 결국 한명건설의 경영권입니다. 최 상무의 공백을 틈타 최영석 부회장이
경영권을 차지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인데요.
일각에선 이 사건의 배후가 최영석 부회장이라며, 공권력이 사기업 경영권 분쟁에 놀아났단 비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금산 분리 위반 혐의는 결국 차남 최기석의 판정패로 끝이 났다.
당사자의 자백까지 나왔으니, 유죄는 불 보듯 훤한 일. 메이저 언론사들은 이미 형량까지 예측했고, 그 공백기에 한명그룹 지배 구조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란 예측도 했다.
항우의 목을 쳤으니 유방에게 대권이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장님, 앞으론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뭘 어떻게? 검찰에 증거 자료 싹 다 넘기고 판결 기다려야지.”
“재판 말고 한명그룹 내부 문제요.”
“내부 문제? 그걸 우리가 왜 걱정하냐?”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저희가 최영석 부회장 코 풀어 줘 버렸잖습니까.”
조사는 성공리에 끝났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팀장들이었다.
최기석 지지 세력들은 꾸준히 음모론을 제기했고, 공정위가 최영석과 붙어먹었단 의혹을 제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오해를 벗으려면, 최영석 부회장의 먼지도 하나 터는 게…….”
탁-!
“쓸데없는 소리 마. 이놈 한번 혼내 줬으니, 저놈도 혼내 줘서 형평성 맞춘다, 이거야말로 편파 조사고 공권력 남용이다.”
“…….”
“이럴 때일수록 원칙 지켜. 우린 신빙성 있는 제보와 증거가 들어왔기에 움직인 거다. 최기석 의식해서 최영석 혼내줄 생각 마라.”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했습니다.”
배 팀장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준철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동의할 순 없지만, 녀석의 심정은 이해가 갔다. 원리 원칙에 따라 조사를 끝마쳤건만 돌아오는 건 편파 조사란 비아냥 아닌가.
공교롭게도 최기석 테마주 거품은 단숨에 꺼졌고, 그 하락분은 그대로 최영석 테마주의 상승분이 되었다. 여의도는 이미 후계자가 정해졌다는 평가.
이 결과에 가장 부아가 치미는 것은 준철이었다. 하지만 옳은 결정이었단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여론 의식하지 마. 돈 잃고 속 좋은 놈이 어디 있어? 지금은 분풀이 상대가 필요할 뿐이다. 견디자.”
“넵.”
그렇게 배 팀장이 떠나간 후.
준철은 집무실에 홀로 앉아 가만히 팔짱을 끼었다.
“80점……. 아니 50점.”
낙제점 수준의 조사. 이것이 준철이 내린 이번 조사의 냉정한 평가다.
세간에 오르내리는 흉흉한 소문 때문이 아니다. 최기석에게 이 정보의 출처를 모두 말해 주었고, 바람도 잡아 주지 않았나.
장남과 차남이 진흙탕에서 싸우며 똥물, 흙물이 다 튀기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다. 최기석은 끝까지 큰형의 치부를 말하지 않았고, 자신을 별로 신뢰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
왜 그랬을까.
형의 치부를 모르지 않을 테고, 그에 대한 상당한 증거도 확보하고 있었을 텐데 왜 형을 밀고하지 않았을까.
자신도 한 번 뒤통수 친 게 있으니, 한 대씩 주고받은 거라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야.”
그러기엔 이번 한 방이 너무 큰 한 방이다.
언론의 평가대로 최기석은 이제 영영 경영권과 멀어져 버렸다. 그리고 준철이 아는 최기석은 절대로 이를 당하고만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괴롭혔지만, 준철은 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아직 준비가 안 된 건지도 모를 일이지. 차남 최기석은 절대로 그냥 당하고만 있을 인물이 아니다. 때가 되면 이 수모를 수십 배로 갚아 줄 한 방을 준비해 가져올 것이다.
지금은 그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
“뒷말이 무성하긴 하지만 의식할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여론은 모두 최 상무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규모가 무려 3천억 대이다 보니…….”
“듣자 하니 공정위 전관까지 섭외해서 포섭하려 했더군요. 근데 씨알도 안 먹히는 분위깁니다.”
“검찰 구형은 5년이고, 잘 막아 봐야 실형 4년에 끝날 거란 관측입니다.”
한명건설 대회의실.
최영석의 측근들은 모처럼 상기된 얼굴로 들떠 있었다.
눈엣가시 같았던 적장을 베어 냈으니 이젠 전리품 챙기는 일만 남았다.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하면 자연스레 한 계단씩 올라갈 것이며, 그에 따른 부상(副賞)도 따라올 것이다.
“부회장님, 너무 근심 마십쇼. 여론이야 어차피 잠깐 들끓다 잠잠할 텐데요. 이제부턴 경영 실적으로 입증하면 됩니다.”
“주총 분위기는 이미 기울었습니다. 부회장님의 회장 선임안은 무탈하게 끝날 겁니다.”
모두가 자축하는 분위기였지만 정작 그 당사자는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회장 선임안이라……. 동생 팔아먹고, 기업 내부 문건 팔아먹은 나를 과연 주주들이 좋아해 줄까.”
“부, 부회장님.”
“걱정하지 마. 자네들 얼굴 봐서라도 내 어떻게든 회장 자리는 차지할 테니. 여기 있는 사람들 한 자리씩 챙겨 주려면 내가 얼른 부회장 빠져 줘야 하잖아.”
“그런 말씀은 아니었지만…….”
“이만하지. 다들 나가 봐.”
부회장의 공격적인 반응에 임원들이 허겁지겁 줄행랑을 쳤다.
최영석은 잠시 앉아 한숨을 쉬더니 김 비서에게 눈을 돌렸다.
“김 비서, 지금 내부 분위기 어때?”
“임원들 말 믿으셔도 됩니다.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긴 하나 오래 못 갈 얘기들이죠. 주총은 무탈하게 끝날 겁니다.”
“이 사람아 지금 내가 주총 결과를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잖아? 기석이 나가리됐으니, 당연히 나 말곤 선택지가 없겠지. 내가 진짜 궁금한 건 나를 진심으로 지지해 주는 세력이
얼마나 되느냐야.”
진심으로 지지를 받느냐, 어쩔 수 없이 지지를 받느냐.
이는 최영석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걱정 마십쇼, 부회장님. 아무리 어쩔 수 없이 지지를 받았다 한들, 최 상무가 출소하고 나서 다시 지지 세력을 끌어내진 못할 겁니다.”
“뭐?”
“계열사 비자금으로 정치권에 뿌려 더 많은 일감을 받은 것과, 그저 자기 사욕을 챙긴 게 어떻게 같겠습니까. 주주들도 이 차이에 대해선 잘 압니다. 지금은 단순히 욕받이가 필요할
뿐입니다.”
김 비서는 눈치 빠르게 부회장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었다.
동생이 다시 돌아와도 절대 재기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부회장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부회장님, 혹시 그것 말고 더 걸리는 게 있습니까?”
최영석은 긴 한숨을 내쉬더니 속을 털어놨다.
“나도 듣는 소문이 있다. 공정위가 기석이 측근들 사생활까지 거론해서 자백을 받아 냈다고?”
“예.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럼 대체 그 사생활 자료는 누가 제보한 거야? 난 그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어. 이거 혹시 임원들이 나한테 예쁨 한번 받아 보려고 사고 친 거야?”
일이 너무 커져 버렸다.
언론에 적당히 망신 주며 동생의 야욕을 꺾는 게 최영석의 목표였다. 하지만 공정위는 영인컴퍼니의 실소유주도 밝혀냈고, 동생에게 실형까지 지울 기세다.
제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부회장이었지만 이는 그가 원하던 그림이 아니었다. 경영권 차지하려고 동생을 옥살이까지 시켰단 오명까지 쓰고 싶지 않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 임원들이 그렇게 멍청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 자료에 대해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요.”
“그럼 대체 누구야?”
김 비서도 할 말이 없었다.
공정위가 취조실에서 다그쳤다던 그 수위는 결코 지라시나 몇 개 주워들어서 알 수 없는 내용들이다.
부회장의 측근들 중에서도 가장 믿을 만한 몇 사람만 아는 정보다.
“죄송합니다……. 저도 연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제기랄-”
“…….”
“혹시 모르니까 자네가 임원들하고 술 한잔하면서 살짝 떠봐. 이건 내부자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다. 난 나한테 과잉 충성하는 그놈이 누군지 알아야겠다. 그 새끼는 옆에 두고
오래 쓸 놈 아니야.”
젠장 내일부터 많이 바빠지겠다.
포상받을 생각에 들떠 있는 임원 중 몇 놈은 정리하고 가야 한다.
“근데 부회장님,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잖습니까. 과정이야 어쨌건 결과가 좋습니다.”
“김 비서 눈에는 이게 좋은 결과로 보여?”
“……예?”
“이건 최악이야. 가장 좋은 방법이 옆에 훤히 있었는데, 그 다리를 부러뜨리고 가시밭길을 걸어간 거라고.”
최영석의 목소리가 격앙됐다.
“기석이 그놈은 이 모든 게 다 내 소행이었다 생각할 거 아니야. 근데 나라곤 그런 약점 없을까? 내 임원들이라곤 그런 약점 없을까?”
“…….”
“그 녀석이 입을 왜 다물었는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치고받으면 한도 끝도 없어. 이건 분명 나중에 화를 부를 거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와 격앙된 얼굴.
이건 그가 진심으로 이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말해 주었다.
하긴 최기석의 성격은 김 비서도 잘 알지 않은가. 한 대 맞으면 두 대로 갚아 줄 놈이지 결코 속 좋게 넘어갈 위인이 아니다.
계산은 또 확실해서 받은 만큼은 꼭 갚는 성미다. 부회장 말대로 머잖아 이 화살이 돌아올 것이다.
“그럼 차라리 더 서두르시지요.”
“뭐?”
“부회장님께선 최 상무의 출소 이후가 걱정이신 거 아닙니까. 5년이란 시간은 깁니다. 그 안에 최 상무가 끼어들 틈 없이 지배 구조 공고히 다져 놓으면 됩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건설 지분 1/3이 그놈에게로 갔는데?”
“당연히 계열사 분리가 우선이죠. 한명그룹이 쥐고 있는 한투 지분도 상당합니다. 값을 후하게 쳐주고 지분 스왑 해 버리면 됩니다.”
계열사 분리.
현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답안이다. 어차피 이 왕좌는 그룹에서 한 사람만 차지할 수 있다. 서로 못 볼 꼴 더 보기 전에 각자 살림 차리는 게 최고다.
“그렇다고 동생 감방 가자마자 주총 소집하는 건 내 체면에 못 하겠다. 이건 누가 봐도 속 보이는 일이잖아.”
“그럼 제가 명분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명분?”
“저희 어차피 한솔테크 인수 합병하려 하지 않았습니까. 이거 합병시키고 부회장님 성과로 대대적인 홍보 들어가겠습니다.”
부회장의 굳었던 얼굴이 슬며시 풀어졌다.
“주총은 이 결과를 선전해 밀어붙이겠습니다. 이러면 세간의 눈총도 줄어들 겁니다.”
최영석은 한숨을 쉬더니 웃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얼른 실적이라도 만들어야지. 차라리 분위기 어수선할 때 민감한 문제 정리하자.”
“맞습니다.”
“공정위에 한솔테크 합병 심사 넣어. 경영권 문제는 얼른 정리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