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합병 심사 (2)
※ 이 소설은 픽션입니다. 작품에서 묘사하는 인물과 지명, 단체, 그 밖의 일체의 명칭이나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이고,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건설업계 두 거목의 합병 소식은 여의도를 다시 투기판으로 만들었다.
HM인테리어는 한명건설이 막대한 일감 몰아주기로 급격히 성장한 회사고, 이젠 그 경쟁사까지 흡수하려 한다. 두 회사의 시장점유율이 80%를 웃도니, 사실상 독과점 시장이 열린
것이다.
차남의 구속으로 신고가를 갱신한 최영석 테마주가 다시 상한가를 치며 끝없이 치솟았다.
이제 한국에서 짓는 아파트는 전부 한명건설과 직간접적으로 얽힐 수밖에 없으니, 상당히 근거가 있는 베팅이었다.
-타라 흑우들아!
출혈경쟁 하던 경쟁 기업 한 회사가 된다! 시장점유율 80%는 부르는 게 값이 된단 소리다! 오늘 가격이 제일 싸다는 거 모를 흑우 없제?
-위대한 최영석 부회장님의 위대한 결단!
아시는 분 잘 아실 겁니다ㅋㅋㅋ HM인테리어, 정부에서 분양가 상한제 검토하니 최 부회장이 바로 설립한 회사죠. 왜~? 내장재는 분양가 상한제에 적용되지 않는 품목이거든요~ 요즘
아파트? 빌트인부터 발코니 확장까지 모든 게 다 옵션입니다~ 분양가 5억 아파트, 실입주금 6억이 된 세상이에요~ 이 말이 무엇이냐~? 한명건설이 아파트 수주 못 따도 인테리어는
따낸다는 겁니다~ 안 살 이유가 있습니까!
인수 가격 7천억 논란에 주가가 잠시 주춤거렸지만 아주 잠시일 뿐이었다. 시장점유율 80%는 그만한 웃돈을 주기엔 충분한 액수였으니까.
주식시장이 과열을 넘어 광기에 다다르자 금감원은 거래 정지까지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덕분에 공정위 기업결합심사과 전 과장들이 집합당해야 했다.
“다들 기탄없이 말해 봐. 우리한테 시간 얼마 없는 거 알지?”
윤 국장은 금감원에서 온 공문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야말로 세기의 합병이다. 배달 업체 합병 심사 이후 최대의 합병 심사 아닌가. 당시 이 실무를 맡았던 윤 국장은 온갖 욕이란 욕을 다 주워들었다. 시장을 양분하던 경쟁사를
합병시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몸소 체험했다.
“왜들 대답이 없어. 의견들이 없어?”
윤 국장이 신경질적으로 묻자 한 과장이 어렵사리 입을 뗐다.
“합병 거부가 맞는 것 같습니다.”
“왜?”
“경쟁사를 합병시키면 어떤 욕을 듣는지 이젠 알지 않습니까? 배달비가 뛴 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깊게 생각하는 걸 싫어합니다. 이 사태 또한 결국 저희들의
책임으로 돌아올 겁니다.”
“맞습니다. 잘 돼야 본전, 안 되면 우리 탓인 합병 심사를 들어줄 이유가 없죠.”
“점유율 80%는 시장 독과점 우려가 나올 만한 수치입니다. 거부가 맞습니다.”
한 사내가 총대를 메자 너도나도 우려의 의견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번 합병 심사는 굉장히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지 않습니까.”
“불순한 의도?”
“차남 제친 최영석이 경영성과 선전하려고 추진하는 사업이잖아요. 아직 주총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이미 회장으로 추대되는 분위깁니다.”
공정위가 이 장단에 놀아나 줄 이유가 없다. 합병은 거부하는 게 맞다.
“한명그룹과 관련한 외부적인 이유 말고. 나는 지금 법적인 근거를 묻는 거야. 진짜로 우리가 이 합병 거부해야 할 이유 있어?”
“국장님…….”
“오해하지 마라. 나도 한명그룹에 10원 한 장 받아 본 적 없으니까. 근데 여론 의식해서 거부하는 게 무슨 공무 집행이야? 떼법이지.”
“…….”
“대기업 편들어 주기란 여론 의식하지 마. 우린 드라이하게 법적인 하자만 찾는다.”
배달 업체 합병은 점유율이 90%를 넘었다. 모두가 다 배달공화국이 될 거라며 공정위 결정을 질타했지만, 실제 시장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후발주자들 역시 비슷한 가격으로
배달비를 받았으니까.
“첫째, 합병 자체에 큰 하자가 있었나?”
“…….”
“둘째, 인테리어 업계가 IT업계처럼 시장 문턱이 높나? 다른 경쟁자가 출현할 수 없을 만큼?”
“…….”
“셋째, 지금 인테리어 업계는 부당한 이익을 보는 시장 구존가?”
연달아 나온 세 질문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적대적 합병이면 논란이 있겠다만 지금은 엄석대에게 굴복한 한병태처럼 경쟁 기업이 고개를 숙인 형국이다.
인테리어 업계는 수많은 경쟁자들이 있으며 딱히 후발 주자들을 원천 차단하지도 못한다.
“그럼 마지막으로 묻는다. 합병을 거부해야 할 이유가 뭐지?”
모두들 입을 열지 못할 때 처음 입을 열었던 사내가 다시 손을 들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시장 질서를 저해할 요인이 있습니다.”
“어째서?”
“한명건설이 시장가보다 무려 7천억이나 더 높은 가격으로 회사를 인수했잖습니까. 웃돈 주고 샀다는 건 당연히 남겨 먹을 여지가 보이기 때문이죠.”
윤 국장도 그 의견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명건설은 일감 몰아주기로 이미 많은 고발을 당한 기업입니다. 물론 지금은 그 고발해 버리는 놈들을 편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지독한 일감 몰아주기가 예상된다?”
“예. 그런 점을 고려하면 합병 거부 기조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국장님. 합병 외적인 요인을 하나만 더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최영석 체제에 힘을 실어 준 건 우리 공정위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최영석의 두 번째 시나리오까지 들어주면 여론이 결코 고운 눈으로 보지 않을 겁니다.”
이해하는 바다.
제아무리 떳떳하더라도 세상 사람들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을 감안했을 때 합병을 거부하는 게 오히려 더 명분상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과장들의 굳은 얼굴은 바로 이 의견과 뜻이 같음을 의미한다.
윤 국장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이건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겠구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자. 자네들 뜻은 알겠어.”
***
뉴스만 틀면 한명그룹 소식이었기에 돌아가는 사정을 모를 수가 없었다.
최영석이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아직 동생의 1심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 합병 추진이라니. 이것이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한 최영석의 포석이란 걸 모를 사람이 없다.
한명그룹은 이렇게 자연스레 최영석에게 넘어가는 걸까?
차남 최기석을 조사한 게 놈에게 날개를 달아 줬던 걸까?
복잡한 머릿속을 달래며 국장실로 향하니, 손님이 먼저 와 있었다.
“이 친군가?”
“응. 관상만 봐도 딱 나오지? 절대 윗사람 말 안 듣는 거.”
“하하.”
“이 과장, 인사드려라. 지금 자네 때문에 가장 골치 썩고 있는 윤형석 국장님이시다.”
준철은 넙죽 고개를 숙였다.
안 그래도 정말 미안하던 차였다. 요즘 한명그룹 때문에 기업결합심사과 사람들이 퇴근을 못 한다고 하지 않나.
“사람 고약하기는. 내가 언제 이 친구 때문에 골치 썩는다 그랬어? 아무튼 나중에 보자고. 또 봄세, 이 과장.”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그늘을 다 감출 순 없는 법.
그가 자리를 뜨자 유 국장이 그를 대신해 눈을 흘겼다.
“네 탓 할 문제는 아니지만, 나중에 저 양반한테 소주 한잔 사라. 아니다, 내가 사마. 내 탓이지.”
“혹시 한명그룹 그 건 때문에…….”
“그거 아니면 왜 찾아왔겠어?”
유 국장은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이제 와 보니 우리가 차남 구속시킨 게 잘한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 최영석이는 최기석보다 더 독한 놈이네. 아주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여? 한명그룹 차지하면 더
악랄해지겠다.”
“…….”
“얘기는 들었지? 합병 심사 들어갔다. 근데 양측 다 합의한 합병이라 거절할 명분이 없다.”
다리에 힘이 살짝 풀렸다.
금산분리위반 혐의는 옳은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최영석을 도운 조사였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됐다.
“그럼 합병은 진행되는 겁니까?”
“그걸 안 시키려고 요즘 기업결합과가 퇴근을 못 한다고 한다. 이론적으로 거부할 순 있어. 그 합병 허가하면 시장 점유율 80%를 꿀꺽하는 거 아니야. 그 밖에도 여러 요소들이
거슬리기도 하고.”
날 잡고 술 한잔 제대로 대접해야겠다.
그 여러 요소들 중에는 분명 종합국의 조사 결과도 포함 되어 있을 테니.
“저희 때문에 많이 걸리죠?”
“그래. 뭐 네 잘못은 아니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잖아? 최영석이 자기 동생 털려고 공정위 이용했는데, 그 공정위가 합병까지 승인해? 이건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지 않을 거다.”
“충분히 오해할 수 있죠. 근데 국장님…… 절대 전 아닙니다.”
“알아, 인마! 누가 너 보고 돈 받았대? 최영석이 일감 몰아주기랑 비자금 털어서 잠정 은퇴시킨 게 너잖아. 걱정하지 마라. 그 부분은 내가 저 양반한테 확실히 못 박았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지만 사람이면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차남 조사는 장남의 제보로 이뤄진 조사니, 확인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근데 이 과장, 나도 하나 물어보자.”
“네.”
“최영석은 이번 합병안 무조건 성사시킬 거다. 우리 쪽에서 거부하면 행정소송으로 갈걸.”
“예. 실적 선전하려고 추진하는 일이니, 무조건 성사시킬 겁니다.”
“실무자로서 이 합병 어떻게 생각하냐? 정말 냉정하게.”
준철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정말 냉정하게’라는 말이 대답을 막는다. 최영석과의 악연을 생각하지 않았을 때, 정말 이 합병을 찬성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솔직히 자신 없었다. 이게 무슨 상속세 안 내려고 비영리법인에 주식 몰아준 것도 아니고, 편법을 쓴 것도 아니다.
“역시 쉽게 대답 못 하는군. 너처럼 물불 안 가리는 놈도.”
“……어렵긴 하네요. 하지만 한명건설이 내장재 회사까지 합병하면 시장 독점은 불 보듯 훤한 일입니다. 최영석이 자기 경영 실적 선전하려고 추진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근데 그렇다고 그냥 당할 놈들은 아니지.”
합병 심사는 공정위가 주관하지만 기업들이 늘 이에 승복하는 게 아니다.
행정소송을 해 버려서 결정을 뒤바꾸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이번 사건의 경우 그렇게 흘러갈 공산이 무척 크다. 그냥 합병이 아니라,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추진하는 합병 아닌가.
“그래서 지금 기업결합국이 수를 쓰고 있긴 한데…….”
“수요?”
유 국장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쪽에서 한솔테크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
“아, 설마?”
“그래, 합병 심사를 그냥 그쪽에서 취소해 달라 말할 거야. 우리가 직접 거부하면 문제가 많아지니까.”
절묘한 수다. 공정위가 합병을 거부해 버리면 법적 논란이 붙지만, 합병안 자체를 취소해 버리면 논란의 여지가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