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
합병 심사 (3)
가장 좋은 수다.
합병 당사자가 이를 철회하면 논란의 여지가 없어진다. 하지만
“우리 제의를 수락할까요? 언론에 발표까지 나온 거 보면 이미 큰 얘긴 다 물밑에서 합의됐을 거 같은데……. 패널티도 있을 거고요.”
한솔테크가 이를 철회해 줄지가 미지수.
“물론 적당히 바람 잡아 줘야지. 우리가 몇 가지 안건 가지고 꼬투리 잡아 줄 거야. 두 기업의 합병을 곱게 보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인식시켜 주는 거지.”
“꼬투리 몇 개 잡는다 해서 한솔테크가 물러서진 않을 겁니다. 그쪽도 이 거래에서 얻어 가는 게 크니.”
“그럼 하기 나름 아닌가.”
확률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방법이 최선의 대책이란 사실 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해서 말인데, 자네가 한번 직접 만나 볼래?”
“네? 제가요?”
“응. 윤 국장이 특별히 부탁하더라. 지금 한솔테크가 이용당하고 있다는 걸 이해시켜야 하는데, 그 적임자가 없다고. 자네는 최영석을 은퇴도 시켜 봤고, 승진도 시켜 봤잖아. 어때?
가장 큰 적임자가 자네 같은데.”
그 부메랑이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뭐 안 하겠다면 어쩔 수 없고. 어디까지나 부탁이었을 뿐이야. 부담 안 가져도…….”
“하겠습니다.”
“응?”
“최영석의 야욕을 실현시킨 게 전데 해야죠. 결자해지하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답지 않게 고개까지 바짝 숙이며 부탁을 해 온다. 이게 그렇게 석고대죄 할 만한 일인가.
“뭐, 이 과장 뜻이 그렇다면야. 그럼 윤 국장한테는 그리 말해 놓지.”
***
금감원의 매매 금지가 무산되며 최영석 테마주는 한층 더 탄력을 받았다.
금감원의 현재 주식 폭등 사태를 ‘상당한 사유’로 인정했고, 증거금만 20%로 제한했다. 주가가 오른 이유가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회장님, 이제 다 왔습니다. 금감원이 한풀 꺾인 거 보니, 합병은 무난하게 통과될 것 같습니다.”
다시 모인 임원진들은 들뜬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금감원의 절대 단독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터. 이건 공정위와 물밑에서 합의가 된 얘기란 뜻이다.
최영석은 짐짓 근엄한 얼굴로 물었다.
“이 밖에 다른 사안은?”
“현재로선 없습니다.”
“그럼 앞으론 있을 수 있어?”
“공정위에서 기업 간담회를 열겠다는군요. 안건은 당연히 양사 합병 문제입니다.”
최영석이 끙- 앓았다.
늘 그렇지만 공무원들 얼굴은 볼 때마다 불편하다. 특히나 지금처럼 무언가를 허락받아야 하는 자리라면 더욱더.
“걱정 마십쇼, 부 회장님. 남은 절차는 어차피 요식행위 아닙니까? 합병안은 무사통과될 겁니다.”
“맞습니다. 뭐 독과점이나 일감 몰아주기 논란은 경고 선에서 그치겠죠.”
부회장 자신 또한 그리 생각했다.
합병 신청을 한 최영석은 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제 곧 왕좌가 코앞이지 않나.
동생 관련한 소식은 매일 안 좋은 뉴스뿐이다. 적의 악재는 곧 나의 호재였으며, 이제 정말 한명그룹의 안방을 차지할 것만 같았다.
“다 좋은데 너무 들뜨진 마. 아직 끝난 건 아니니.”
“네.”
“일 다 마무리되면 허리 풀고 술 한잔하자. 오늘은 이만 끝내지.”
임원들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떠나갈 때, 부회장의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김 비서, 합병하고 난 이후 문제를 논하고 싶은데……. 어떤가?”
“예. 합병하고 난 후 한 달 안으로 이사회를 소집할 겁니다. 부회장님께선 회장님으로 추대되실 겁니다.”
“그쪽 반응은 어때?”
“사실…… 반반입니다.”
김 비서의 표정이 어쩐지 좋지 않았다.
“인수 금액 때문에?”
“예. 아무리 그래도 7천억이나 더 써서 인수할 만한 회사인가 하는 논란이 있습니다.”
“멍청한 놈들. 장사 하루 이틀 해 봐? 시장 독점하고 나면 이자까치 쳐서 받아 낼 돈을 쯧쯧.”
“그 과정에서 공정위와 또 마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같습니다.”
독점하고 난 이후엔 더욱 지독히 일감을 몰아주고, 내장재 공사비용을 몇십 프로씩 올려 버릴 계획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또 공정위와 마찰을 빚겠지만,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이미 경쟁사를 합병해 버렸는데.
“그건 걱정 마, 실적으로 보여 주면 돼. 우리 영업이익 높아지면 저절로 불만은 줄어들 거다.”
“네. 그래서 합병 후 한 달 뒤로 이사회 날짜를 잡았습니다. 반대 세력들은 그 안에 설득하겠습니다.”
“그 반대 세력 중에는 나라서 싫은 놈들도 있다.”
“최 상무 쪽 세력들요?”
“그래, 그놈들은 어차피 내가 뭔 말을 해도 안 들을 놈들이니, 괜히 엄한데 힘 빼지 마. 과반만 넘기면 된다.”
구심점을 잃은 놈들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기껏해야 투정 몇 마디, 반대표 몇 표 던지는 것뿐. 지금 상황만 보면 최 상무는 최소 징역 3년 이상이다. 반대하던 놈들도 머잖아 고개를 숙일 것이다.
최영석은 자리에서 일어나다 말고 물었다.
“아, 참. 그나저나 임원들 전망 믿어도 돼? 합병 무사통과.”
“그 부분은 우려 마십쇼. 저희가 공정위에 줄기차게 사람을 보내서 저희 입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상하네. 그쪽에서 딴지를 안 걸지 않을 텐데.”
“저희도 세게 나가고 있습니다. 공정위가 미약한 근거로 합병 거부 시 법정 싸움을 불사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얘기네.”
“그 부분은 걱정 마십쇼. 금감원에서 백기 든 거 보면 이미 분위기는 나왔습니다. 정 억지를 부린다면 행정소송으로 망신 줘 버리면 됩니다.”
합병은 거부당할 수가 없다. 인테리어 시장 문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이것이 건설 기업과 아주 무관한 사업도 아니니.
만약 공정위가 시답지 않은 이유를 들어 딴지를 걸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놈들을 단단히 망신 줄 참이었다.
놈들도 질 걸 빤히 알면서 싸우는 바보들은 아니다.
“다음 주가 합병 심사 간담회입니다. 그거 끝나면 곧 정식 합병 발표 날 겁니다. 제가 마무리 잘하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고 나서야 최영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그렇게 믿고 있지.
***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임에 따라 합병 설명 자리는 즉각적으로 열렸다.
양측 사장급들이 대거 참석했으며, 한솔테크는 특별히 회장까지 자리에 참석했다. 언론의 보도대로 거절할 명분이 없는 합병이었으니, 사실상 오늘은 차담회나 다름없었다.
말단 석에 자리를 얻은 준철은 양측의 얼굴을 면밀히 살폈다.
한명건설 쪽은 인수를 했다는 자신감에 들떠 있었고, 한솔테크는 후한 값에 매물을 넘겼으니 미련도 없어 보였다.
합병 철회는 너무 크나큰 바람일까.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윤 국장의 지시에 현안에 대한 짧은 설명이 이어졌다.
발언권을 얻은 한명건설 쪽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저희 합병안을 가지고 세간에선 많은 우려가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근거 없는 억측이나 헛소문이죠. 책임 시공. 이것이 저희 한명건설의 목표입니다.
아파트를 짓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내부 인테리어까지 확실히 하는 거죠. 이에 우리 한명은 한솔테크와의 합병이 불가피하다 판단했습니다. 한솔이 가진 업력과, 저희의 마케팅이
합쳐진다면 소비자들의 이익으로 귀결될 겁니다.”
경쟁자 제거한단 소리를 참 길게도 한다.
윤 국장은 고개를 돌렸다.
“장밋빛 전망 일색인데 어째 핵심 설명은 빠진 듯합니다?”
“말씀하십쇼.”
“두 회사가 합병 시 점유율이 무려 80%에 육박합니다. 시장에 불붙은 독과점 논란은 어떻게 할 겁니까?”
“아시다시피 인테리어 시장은 시장 문턱이 낮습니다. 저희가 과한 이문을 남기면 다른 경쟁자들이 이를 차지하겠죠. 저희는 시장을 더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소비자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을 겁니다.”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친다.
“그리고 지금 시장이야말로 양사가 지나친 출혈 경쟁을 해왔습니다. 공사 건당 거의 적자 사업이었죠.”
“덕분에 가격이 싸졌으니 소비자에겐 이익인 시장 아니었나요?”
“기업은 이문을 추구하는 기업입니다. 이런 출혈 경쟁은 반드시 부실시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죠. 아, 물론 저희들의 부실시공을 변명하는 게 아닙니다. 이 구조를 혁신하기 위해선 제
가격 시공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결국 가격을 올리겠단 소리다. 지금이 비정상적인 시장이고, 그걸 정상화하겠다고 핑계를 댄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반박할 순 없었다.
과연 적자 사업인지는 몰랐지만 양 사가 치고받으며 거의 마진을 남기지 않았다는 건 업계에서 유명했으니까.
윤 국장은 다시 물었다.
“한명그룹과 관련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은요?”
“그 또한 저희가 조심하겠습니다. 앞으론 더욱 책임 시공에 임하겠습니다.”
윤 국장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합병에 대한 한명건설의 의지를 확인했으며, 거부 시 불복할 의사 또한 확인했다.
“좋습니다. 한명그룹 측 얘기는 잘 들었으니, 이젠 한솔테크 얘기를 들어 보죠. 잠시 자리를 비워 주시겠습니까.”
이에 한명그룹 측 오 사장이 쏘아붙였다.
“왜 우리가 자리를 비킵니까? 이건 양사 합병간담회입니다.”
“피인수 기업에 특별히 물어볼 말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무슨 얘기요. 인수 기업이 듣지 말아야 할 얘기면 안 꺼내는 게 좋을 텐데요.”
“그건 기밀 사안이니 빠져 주십쇼.”
말이 끝나자 한명그룹 사람들 전체가 들고일어났다.
“대체 이 상황에서 기밀이 어디 있어요?! 이 자리는 양사가 함께하는 자리 아닙니까. 굳이 저희를 따돌릴 필요가 없는 걸로 아는데요.”
“나 지금 범인 취조 하는 거 아닙니다. 각자가 하고 싶은 얘기 듣는 거지.”
“무슨 말씀을 하실 건지는 알아야겠습니다.”
“그에 대한 의무는 없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자리를 비켜야 할 의무도…….”
“그만들 하십쇼.”
양측의 싸움을 중단시킨 건 한솔테크의 한 회장이었다.
한 회장은 차를 한 모급 비우더니 한명그룹에 눈짓을 보냈다.
“암만 이빨 빠진 호랭이래도 나 호랭이야. 이 늙은이가 이런 문제 하나 마무리 못 하겠는가.”
“하지만…….”
“오 사장, 분명 합병 이후에도 당분간 우리 경영진 체제를 인정하겠다 했지? 한데 이런 자리에서도 자리 못 비키는 건 우리에 대한 신의가 전혀 없는 거 아니야?”
“그, 그건 아닙니다.”
“그럼 걱정 말고 비킴세. 내가 잘 마무리허이.”
오 사장은 입을 앙다물더니 임원진에게 눈짓을 보냈다.
임원들이 우르르 일어나자 그는 윤 국장에게 쏘아붙였다.
“공정위의 본분을 지키십쇼. 공명정대하게 일 처리 하시길 바랍니다. 남의 잔칫상에 괜히 초치지 말고.”
그가 간담회장 문을 닫고 나가자 회의실은 다시 썰렁해져 버렸다.
얼마간 긴 침묵이 흐른 뒤, 윤 국장이 준철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과장, 나보단 자네가 직접 말하는 게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