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84
284화
2차 왕자의 난
[속보 – 한명건설 추가 인수 자금 2천억] [한솔테크를 2천억에 더 인수] [승자의 저주? 총 프리미엄 9천억]한명건설의 추가 인수 자금은 즉각 보도를 탔다. 7천억의 웃돈도 이미 큰돈인데 여기에서 2천억이 추가되었다.
아무리 시장 독점 프리미엄이라 해도 9천억은 한참 심한 금액이었다. 최영석이 왕좌에 얼마나 안달복달하는지 알 수 있었다.
블록딜 날짜가 일주일 안으로 정해졌고, 공정위는 따로 성명을 내지 않으며 사실상 합병 승인을 시사했지만 주가 추이는 영 시원치 않았다.
-이쯤 되면 업무상 배임 아니냐?
시장 독점도 좋다만 그렇게 큰돈 쓰면 이 인수가 무슨 의미? 경영 실적 내세우려고 최영석이가 눈 돈 거 같은데 이건 승자의 저주다!
⌞ㅇㅇ 정말 미친 거. 7천억도 큰돈인데 이 이상은 무리.
⌞뭐가 걱정? 내장재 점유율 못 봤어? 80%가 독점이다. 지금 난 손해는 소비자들한테 전가시켜서 뽑아 먹으면 됨.
⌞공정위가 등신임? 시장점유율 독점된 순간부터 관리 들어갈 텐데? 이젠 일감 몰아주기도 못 해.
⌞관리하면 뭐 해? 그럼 한명건설은 지금까지 공정위가 없어서 일감 안 몰아줬냐?ㅋㅋㅋ 어차피 다 조사 안 할 텐데.
⌞장기적으로 보면 이득!
주가 게시판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프리미엄 9천억. 제아무리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전가시킨다 해도 본전 찾으려면 족히 10년은 걸릴 만한 액수다.
블록딜 날짜가 겨우 일주일밖에 안 걸리는 것도 문제다. 경영 실적 선전하기 위해 번갯불 콩 구워 먹듯 서두르는 모양새 아닌가.
-사기 합병!
최영석의 야욕을 위해 주주들의 쌈짓돈을 털어 먹는 합병!
최영석 테마주가 동력을 잃고 장에서 횡보를 그렸다. 한명건설을 차지하기 위해 눈이 돌아갔다는 게 주식시장의 냉정한 평가다.
이전과 확연히 다른 온도에 한명건설 임원진도 조심하는 눈치였다.
아무리 시장 독점이 가능하다 해도 1조원 대 돈을 더 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코앞에 둔 경영권 앞에서 회군할 수도 없는 법.
-어쨌거나 확실한 거 아님?
이제 확고부동한 최영석 체제.
2천억을 더 썼다는 건 확실히 인수한다는 얘기. 공정위가 암묵적인 승인을 보내 줬으니, 그룹 장악에 걸림돌은 없다.
합병 자체엔 논란이 많았지만, 한명그룹이 최영석 천하가 될 것이란 데엔 이견이 없었다.
***
“이게 진짜 자네 뜻인가?”
한명그룹과 한솔테크의 블록딜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을 때, 윤 국장은 씁쓸한 얼굴이었다.
양측을 이간질시키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한명그룹은 블록딜 성공 이후 즉시 이사회 날짜를 발표했다. 표면상 양사 합병 설명회라 했지만, 실은 최영석의 회장 취임식이었다.
“이사회 날짜 바로 잡은 거 보니, 이제 거리낄 게 없다는 눈치야.”
“네. 눈치 볼 게 없겠죠. 최기석 우호 지분은 구심점을 잃었고, 최영석에겐 경영 실적이란 것도 생겼으니.”
“좋든 싫든 우리가 일조한 거 같은데, 이거 진짜 괜찮아?”
“국장님,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쇼. 양사 합병은 우리가 말린다고 될 게 아니었습니다.”
“흠…….”
“우리가 거부하면 법정 싸움까지 간다 하지 않았습니까. 이건 말릴 수 없었습니다.”
윤 국장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말마따나 말릴 수가 없는 합병이었다. 간담회에서 만난 한 회장은 이미 체념한 모습. 오히려 돈을 더 받으라 얘기했을 땐,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당사자가 이미 포기해 버렸는데, 여기서 부채질한다고 다 꺼진 불씨가 살아나는 게 아니다.
‘시답잖은 이유로 거절해 봤자 법정에서 망신만 당하겠지…….’
젊은 과장의 말이 맞았다.
독과점, 일감 몰아주기 등의 우려되는 부분이 있지만, 이것이 합병이라는 대세를 거스를 만한 흠결은 아니다.
법원은 당연히 합병 측 손을 들어 줄 것이며, 공정위는 망신만 자초할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준철도 속이 좋진 않았다.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심정.
한솔테크의 인수 합병은 기정사실화됐으니, 이젠 최영석이 그룹을 장악하는 일만 남았다.
“그럼 이제 우리가 할 건 없겠군.”
윤 국장이 서류를 내밀었다.
“합병 심사 승인 공문이다. 그래도 앞으로 일감 몰아주기, 독과점 같은 문제는 계속 주시할 거라고 경고는 남겨 뒀다. 이제 더 할 건 없지?”
“네.”
“이사회 소집은 언젠가?”
“한 달 뒤입니다. 명목상 합병 설명회라 하지만 실은 최영석 취임식이 될 겁니다.”
“그럼 한명그룹 총수도 정해지겠구먼.”
대기업은 총수가 정해지면 공정위에 신고를 해야 한다.
그래야 대기업 집단 지정을 할 수 있기 때문. 앞으로 최영석이 가지고 있는 계열사는 상호 출자 제한, 지분 매입 금지 등의 제약이 따른다.
그래 봐야 미미하겠지만.
윤 국장은 이가 갈렸다.
매년마다 갑질, 일감 몰아주기로 소환 당하는 최영석 아닌가. 이제 그놈이 그룹 전권을 손에 쥐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앞으로 한명그룹의 포악함이 얼마나 더 심해질지 가늠도
되질 않는다.
“좋아. 어차피 말릴 수 없는 합병이었으면, 이젠 지켜 보기라도 잘해야지. 최영석 취임하면 그놈이 가진 계열사 면밀하게 살피자. 상호 출자 못 하고, 각 계열사 간에 편의 봐주는
일 절대 없도…….”
그때였다. 준철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리고 이를 확인한 준철은 사색이 됐다.
“왜? 무슨 전화야?”
그렇게 알람이 울리길 수 번.
이 젊은 과장 놈이 국장에게 보고하는데 전화를 안 꺼 놨을 리 없다. 그것도 진동이 아니라 벨소리. 이건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단 뜻이기도 하다.
윤 국장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심상치 않은 전화라는 걸.
“누구지?”
그렇게 전화가 끊겼을 때, 준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최기석 상무 전화입니다.”
***
승자의 저주란 말이 나돌았지만 이사회 날짜까지 잡히며 주가는 곧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경영권에서 멀어진 최기석 테마주는 끝을 모르고 추락했으며, 최영석 관련주는 더욱 공고해졌다.
금융 관계자들은 한명그룹의 불확실성이 없어졌다며 목표치를 앞다퉈 상향시켰다.
불구대천의 원수 최영석을 도와준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하지만 준철보다 더 마음이 쓰린 이가 있었으니.
“오랜만에 뵙네요.”
수인복을 입고 있는 최기석은 눈길도 주지 않으며 분에 차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자신의 재판 결과는 이미 안중에도 없는 눈치였다. 하긴 큰형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야욕을 드러낼 줄 누가 알았겠나.
증권 시장에선 벌써부터 자신의 우호 지분이 이탈하고 있단 소식이 들렸다. 구심점이 사라졌으니, 이제 곧 그들도 큰형 세력에 붙어먹을 것이다.
혹시 심경 변화가 생겼으려나.
“최근 한명그룹 관련 사안은…….”
“변호사가 그럽디다. 실형은 깎아 봤자 3년이라고.”
첫마디부터 공격적이다.
“근데 3년이면 형이 그룹을 삼키고도 남아. 내가 가진 금융 계열사까지 삼킬 수도 있고.”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위기감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눈치다.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자기 수인복을 가리켰다.
“이 옷을 최소 3년 이상 입어야 한단 소리겠지. 당신 바람대로 됐구먼. 소감이 어떠쇼.”
“내 바람?”
“당신이 내 임원들 약점까지 잡아 뒤흔들었잖아. 나 하나 묻어 버리려고! 비통한 척하지 마. 큰형한테 받을 선물 생각하면 궁둥이가 들썩거리지? 무슨 약속 받았어. 은퇴 후 재취업
자리? 아님 출세 코스?”
아직도 최영석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모양이다.
하긴 돌아가는 꼴만 보면 그 분노가 해결사인 준철에게 향하겠지.
최영석에게 얼마나 큰 원한을 가지고 있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설명해 줘도 모를 테고.
“그래서 분풀이하려고 불렀습니까.”
아직 놈은 분노에 가득 차 있다. 염장 한번 질러 줘야겠다.
“예상하는 대로 될 겁니다. 부회장은 한솔테크 합병안을 대대적으로 선전할 겁니다. 사실 저 내장재 회사 합병은 선전할 만하죠. 인수금이 좀 높긴 하지만 한명건설의 이익은 그것보다
더 상당할 겁니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거냐!”
“아직 내 말 안 끝났어요. 사람들은 리더십 공백을 싫어합니다. 이사회는 곧 최영석 부회장을 회장으로 추대할 겁니다. 지금은 반발 세력이 있겠지만 곧 그 세력도 꺾을걸요.”
“이, 이 자식이!”
“한마디로 당신 우호지분도 다 큰형한테 고개 숙일 거란 겁니다.”
우호 지분 뺏기면 끝이다.
한솔테크 합병으로 독과점과 일감 몰아주기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 큰형은 경영성적뿐 아니라, 앞으로 실적으로도 증명할 것이다.
한번 뺏긴 우호 지분은 절대 돌아올 리 없다.
어쩌면 그들은 최영석에게 확실한 충성심을 보이려, 차남을 금융 계열사에서까지 몰아낼 것이다.
“이 끄나풀 새끼!”
생각이 예까지 미치자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태도를 보니 이미 재판 결과를 포기한 모양이다. 아니면 조사 담당자를 이렇게 대할 리 없지.
“끄나풀 아니라 말씀 드렸습니다만.”
“이래도 아니라고? 네가 날 이렇게 만들고 나서 큰형이 바로 움직였어! 이래도 아니야.”
“그러니까 왜 말을 안 들어요. 말했죠. 최영석 부회장 찌를 수 있는 자료 넘기라고. 그거 넘기면 서로 동등해졌는데, 나 못 믿어서 못 넘긴 거 아니요.”
놈의 입이 다물어졌다.
“날 끄나풀로 생각하니, 안 넘겼겠죠. 아닙니까?”
“…….”
“이제부턴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내가 그 증거 받아서 인멸하겠습니까? 나 못 믿으면 이대로 경영권 넘어가는 거 보세요.”
그쯤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분한 심정, 못 믿는 심정 다 이해하지만 어쩌겠는가. 형의 치부를 가져오면 누구보다 앞장서 칼질해 주겠다는데 못 믿겠다면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이제 남은 수순은 자신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
“잠깐!”
그렇게 나가려 할 때, 그가 덜컥 손목을 잡았다.
“정말…… 정말 아니야?”
“뭐가요.”
“당신이 끄나풀이 아니라는 증거……. 정말로 당신이 끄나풀 아니야?”
“그만합시다. 슬슬 질리려 그래.”
준철은 거칠게 손목을 뿌리치며 나가려 했다.
“내, 내가 형님 약점 가지고 있소!”
그때, 준철의 발걸음을 붙잡는 목소리가 들렸다.
준철은 움찔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이에 그는 서류 가방을 들어 한 자료들을 내밀었다.
“이게 지금까지 내가 파악한 큰형 약점이야.”
“뭐?”
“당신 말대로, 큰형이 내 약점 잡은 것처럼 나도 그 사람 약점 잡았다고. 내가 이거 제출하면…… 이사회 막아 줄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