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악연, 끝냅시다 (2)
지검장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사실 그가 계속 수사를 뭉개는 이유는 검찰 내부 인사들도 엄청나게 연루되어 있어서다. 보도가 터진 이후 그의 핸드폰은 먹통이 되었다. 이름도 모르는 선배부터, 고위직 의원들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수사 소식을 물어왔으며, 묻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
그런 마당에 검찰이 미온적인 대처를 한다고 알려진다? 이건 법조계 선배, 국회의원들과 순장을 당하라는 뜻이다.
게다가 이 젊은 놈은 절대 빈말을 지껄이는 놈이 아니다. 이사회 찾아가서 난동 부린 것만 봐도, 방금 한 말을 반드시 지킬 놈이다.
“내가 범죄자들 편의를 봐주겠단 게 아닙니다. 근데 수사엔 정도라는 게 있잖아요.”
“정도?”
“소환 대상자만 20명이에요. 그 20명도 잔챙이가 아니라 국회에서 방귀깨나 뀌는 거물들입니다. 우리더러 어떻게 더 수사 속도를 내라는 겁니까.”
기다리던 말이 나오자 준철이 웃었다.
“그렇죠. 닭 잡는 칼로 소를 잡을 순 없죠. 더 비대한 권한이 필요하다, 이 말씀이죠.”
“……응?”
“역시 특검 말곤 답이 없겠네요. 제가 생각해도 이건 검찰 능력 밖입니다.”
“이 과장님, 특검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여야의원들 나란히 거론되고 있는데 국회에서 특검이 통과되겠습니까?”
“그건 걱정 마세요. 아무리 국회 힘이 막강해도 민신 압력은 못 이깁니다.”
지검장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다 말고 말을 삼켰다.
이 젊은 놈의 고집을 꺾는 것은 무리다. 명분도 없고, 방법도 없으니. 현재 뜨겁게 달아오른 민심을 보면 이놈의 말이 전혀 과장도 아니었다.
“젠장.”
결국 칼춤을 크게 춰야 할 터.
“그럼 동의하시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그 전에 하나 물어 봅시다. 이 제보 어디서 나왔소.”
“그건 익명의 제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방금 당신 입으로 말하지 않았어? 이제 공정위와 검찰은 동체라고. 우리도 출처가 어딘지, 그 확신을 얻어야 수위를 높이든 말든 할 게 아니요.”
어쭈? 꽤 예리한 지적을 하는데.
“차남이구먼. 맞지?”
여기까진 대답을 해야겠지. 하긴 이런 정보가 일반 최측근에게 나왔다고 둘러대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준철이 끄덕이자 그가 다시 콧방귀를 뀌었다.
“아주 콩가루 집안이야. 형놈은 동생 찌르고, 동생은 그걸로 다시 찌르고.”
“뭐 기업 경영권 가지고 다투다 보면 늘 있는 일 아닙니까.”
지검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넌지시 말했다.
“이 과장님, 그럼 그냥 저들끼리 싸우게 두죠.”
“무슨 말입니까?”
“어차피 집안싸움 같은데 우리 공권력이 얼마나 놀아날 거요. 최영석이, 최기석이 최측근들 위주로 엄벌하고 수사는 마무리 지읍시다.”
“사안을 잘 못 보십니다.”
“……예?”
“지금 이 문제의 쟁점은 한명건설이 공권력으로 사세를 불렸다는 겁니다. 그럼 당연히 공권력을 개입시켜서 이 문제를 바로 잡아야지요.”
“현실이 항상 교과서대로 흘러갈 순…….”
“혹시 두려우십니까? 이 문제로 권력자들까지 다치게 되는 게?”
입을 다문 지검장의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일견 납득이 가는 반응이기도 했다. 여야 의원 나란히 걸려 특검은 장담할 수 없겠다, 법조계 선배들까지 대거 연루되어 있겠다,
이 사람 입장에선 진퇴양난이겠지.
그래도 이렇게까지 묻는 걸보면 최소한 이자는 돈을 받지 않았다는 거다. 그 정도면 만족한다.
“특검은 염려 마세요. 이건 내가 반드시 책임질 테니. 대신 검찰에도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카메라 돌면 부지런히 앓는 소리 좀 해 주세요. 인력 부족하다, 기한이 오래 걸릴 것 같다. 뭐, 핑계 많잖습니까.”
“……여론 조성용입니까?”
“네. 보나마나 국회에서 끝까지 버틸 텐데 이렇게라도 압박해야죠. 여당과 야당 싸움 붙이는 건 제가 잘 해 보겠습니다.”
“하면 청와대는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
“국회가 통과시킨 특검안을 청와대가 어떻게 거부하겠습니까. 우리는 국회 문턱만 넘으면 됩니다.”
청와대가 이유 없이 특검을 거부하면 국민들의 화만 키운다. 그땐 바로 탄핵정국.
정무수석을 시켜 어떻게든 국회에서 특검 통과시키지 말라 압박했음 했지, 절대로 통과된 특검을 거부하진 못할 거다.
“그리고 부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뭡니까?”
“우리가 진정 이 사건을 수사할 의지가 있다면 국민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야지 않겠습니까.”
“진……정성?”
“최종 배후인 최영석을 구속시켜 주십쇼. 이건 구속 수사로 가야 합니다.”
모든 걸 다 내려놓은 지검장이었지만 이 말엔 난색을 표했다.
“과장님, 불구속수사가 원칙인 거 아시잖아요. ”
“증거인멸의 우려가 명확한데 이걸 어떻게 불구속으로 칩니까.”
“…….”
“게다가 그 동생은 구치소에 대기 중이에요.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똑같이 대해야 합니다.”
형의 잘못은 동생보다 더 크다. 반드시 최영석도 구속 수사로 진행해야 한다. 최기석이 그러했듯.
“꼭 필요합니다. 검사님.”
“확답을 드릴 수 없지만…… 일단 영장 청구는 해 보죠. 하지만 이건 내 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젭니다. 결정은 영장 판사가 내려요.”
그 정도 대답이면 충분하다. 영장을 청구했단 소식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에게 진정성을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마음을 좀 놓고 있을 때 불현듯 전화가 들렸다. 지검장의 전화였는데, 갑자기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받으셔도 됩니다만.”
“안 받는 게 더 좋을 것 같군요.”
“혹시 이 전화가…….”
“신경 쓰지 마세요. 요즘 내 전화는 늘 이러니까. 아무튼 오늘 합의된 내용은 나도 충실히 이행하겠습니다.”
핸드폰을 꺼 버린 지검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벌써부터 오만 곳에서 외압이 들어오나 보다.
***
영장 청구 심사는 단 하루 만에 싱겁게 끝났다. 공정위의 패배로.
법원은 도주의 우려가 없고, 이미 확보한 증거 또한 많다며 불구속 수사를 결정했다. 혹시나 싶어 영장 판사 신상을 샅샅이 뒤졌지만 불행히도(?) 돈 받은 명단엔 없었다. 아무래도
선후배들의 부탁을 못 이기는 마음씨 착한 아주 멍청한 놈인 것 같다.
“과장님, 최종 결정 났답니다. 재청구할까요?”
“재청, 재재청구 될 때까지 신청해 버려. 아, 그리고 우리 영장 거부된 거 언론사에 다 뿌려라.”
판사 놈은 망신 좀 당해 봐야 한다. 돈을 받지 않았더라도, 돈 받은 놈 비호하면 공범이 된다는 걸 여실히 깨우쳐 주마.
준철이 씩씩거리자 서 팀장이 조심히 말렸다.
“과장님, 지금 눈 뜨고 일어나면 매일 특종입니다. 그렇게 언플해도 별 소용없을 겁니다. 검찰이 재청구 해 줄지도 미지수고요.”
“옌장할…….”
“그냥 불구속은 확정됐다 치고, 수사 계획을 이에 맞춰 다시 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열불이 뻗쳤지만 서 팀장의 말에 수긍하기로 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구만리다. 법원 결정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면 조사팀 사기에도 좋지 않다.
“근데 영장 거부 이유가 뭐야?”
“뭐 이 핑계 저 핑계 대긴 했지만, 결국 연쇄 효과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영석의 구속은 시작이다. 연루된 정치인들 모두 불러 들여야 하는데 이건 사실상 무리다.
최영석을 구속시키면 이들에게도 연쇄 효과가 미친다. 당연히 그 구심점을 구속하긴 쉽지 않을 터.
애초에 수사는 불구속이 원칙이니 명분도 이쪽에 실린다.
“한명그룹 대단하네. 벌써부터 막고.”
“그러게 말입니다. 근데 어떻게 할까요. 최영석이 영장 거부당했으니, 다른 연루자들도 다 거부될 겁니다.”
“당분간은 소환 조사로 진행해야지……. 일단 오늘은 일찍 퇴근하자. 당분간 밤샐 일 많을 거야.”
일찍이라 말했지만 시간은 이미 10시를 넘었다. 앞으론 지금 이 시간에 퇴근도 못 할 것이다. 준철도 짐 가지를 챙겨 집으로 향했다. 마라톤 수사를 하려면 체력 관리가 우선이다.
그렇게 지하철역으로 향할 때, 굉장히 불쾌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이 과장님, 우리 얘기 좀 할까요?”
최영석이었다.
***
“실력 한번 잘 봤습니다. 거의 현행범이나 다름없는데, 그 영장을 막으셨더군요. 근데 이렇게 나 찾아오는 건 위험한 거 아닌가. 걱정되는데.”
“걱정?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는 꼴이군.”
“나 쥐 생각해 준 적 없어요. 괜히 나까지 로비 당사자로 오해 받을까 봐 불안해서 하는 말입니다.”
최영석은 비아냥대는 이 젊은 놈 얼굴에 주먹을 메다꽂고 싶었다.
“그러지 말고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얘기 좀 합시다.”
“회사 불 꺼진 거 안 보입니까. 지금 내 집무실보다 더 조용한 곳은 없어요.”
“그래요……. 어차피 여기 한번 왔어야 하는데, 이렇게 독대할 수 있으니 좋구먼.”
이놈 나와바리로 끌려가면 수사는 끝장이다. 돌아가는 차 안 트렁크에 사과 박스를 얼마나 처박아 놓을지 모른다. 그런 걸 미연에 방지하려면 미리 벽을 쳐 놔야지.
아무 말 없이 놈을 응시하자 최영석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만합시다. 보아하니 이 제보 기석이한테 얻은 모양인데, 알다시피 난 지금 동생과 관계가 최악이오. 날 음해하려고 과장하고 왜곡한 내용도 많다는 겁니다.”
“그래요?”
“뭐 그 이유도 분명하지. 내가 먼저 동생을 쳤으니까.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결하겠소.”
“내 참 어이가 없어서. 공권력이 진짜 자기들 칼인 줄 아네. 이미 터트릴 거 다 터트리고 없던 일로 하겠다? 동생하고 화해라도 할 거요?”
그리 말하자 놈의 얼굴이 대번에 싸늘해졌다.
“이건 부탁이자 경고입니다. 여기서 그만두면 피는 안 봐요.”
“피? 지금 나한테 협박하는 건가?”
“해석은 당신 자유. 하지만 나는 걸림돌엔 자비가 없다는 걸 명심해.”
이쯤 되니 기업 회장인지 용역 회사 깡패인지 모르겠다.
아, 사람 죽인 전력이 김성균 하나뿐이 아니구나.
“그 제거 대상 중에 나도 포함입니까?”
“내가 그렇게 멍청한 놈은 아니야. 당신 죽이면 타깃이 바로 난데 그러겠어? 그러니 그만하쇼.”
“못 하겠다면.”
그가 흐흐 웃었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조사 더 못 할 텐데.”
“무슨 말이지?”
“내 구속영장 청구 막혔잖아. 재청구? 해 봤자 안 돼. 거기 영장 판사가 다 내 사람들이거든.”
역시나 막힌 이유가 있구나.
“네. 닭 잡는 칼은 소 잡는 데 못 씁디다. 그래서 더 큰 칼 준비하려고.”
“크흐흣. 특검? 근게 그게 될까? 여야 의원들 나란히 걸렸어. 이게 정말 될까?”
역시나 놈은 수사팀의 가장 큰 약점을 알고 있다. 사실 내부에서도 특검 가능성엔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준철은 도리어 딱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최영석 씨……. 아니, 부회장님. 그렇게 쓸 만한 측근이 없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