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90
290화
협치 (2)
[초유의 게이트, 하지만 특검은 없다] [검찰 2차 영장 기각, 배후가 있나?] [민국당 여전히 묵묵부답]밀실 합의는 충실히 진행되었다. 특검 여론이 60%를 육박해도 야당은 침묵했고, 청와대는 유감 표시로 선을 그었다.
특검은커녕 최영석의 영장 청구가 또 기각되며 국민들의 울분만 끌어 올렸다.
-이런 비리에 불구속 수사가 가당키나 하냐?
건설 비리가 아니라 토건 비리 수준인데 이걸 불구속? 공정위가 제시한 증거에 시원한 반박이라도 해 보든가. 공사비의 10%가 다 떡값으로 쓰였는데, 아파트를 제대로 짓기나 한
거냐?
⌞ㄹㅇㅋㅋ 층간소음이 왜 영구 미제 공사인지 알겠더라.
⌞부실시공은 기본이죠~ 시멘트, 철근, 기자재 빼돌려서 여의도에 상납하기 바쁘죠~
-역대급 건설 비리는 충격
그래도 한마디 말 없는 야당은 경악
⌞ㅇㅇ 원래 여의도 양반들 카메라 꺼지면 위아더 월드
⌞이번에 거론된 인사들도 사이좋게 걸림.
⌞이야~ 특검이 국회 문턱도 못 넘는 이유 대번에 납득!
헐뜯기 바쁜 여야가 대통합을 해 버렸으니 국민들 눈에 금방 표시가 났다. 이에 시민 단체와 건설사고 유가족 단체가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으나 쇠귀에 경 읽기였다.
최영석의 2차 영장은 하루 만에 기각 당했고, 공정위는 즉각 3차 영장을 예고했다. 그러던 때 조롱에 가까운 뉴스가 들렸다.
여당 의원 5명과 야당 의원 2명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죄를 자백한 것이다.
양당 대표가 물밑에서 합의한 숫자는 10 : 3이었지만 이마저도 숫자를 줄였다. 그것도 다음 공천이 물 건너간 끝물 정치인들로 엄선했다.
쾅-!
준철은 2차 영장 기각보다 더 큰 분노를 보였다. 여야 의원들이 동시에 자백한 걸 보아 수사를 여기서 끝내란 압박이다.
쾅- 쾅-!
“과, 과장님!”
손에서 피가 날 때까지 책상을 내리치자 서 팀장과 배 팀장이 준철을 말렸다.
사실 두 팀장에게 준철의 모습은 낯설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항상 이성을 유지하는 과장님 아닌가.
“서 팀장, 이거 영장 판사 누구야?”
“김철오 판사라고…….”
“한명그룹 계좌 중에서 그 새끼 이름 있나 찾아봐. 만약 없다면 어디 자리 받아 놓은 거 있나 수소문해 봐.”
분명 뒷돈을 받은 놈이다. 아니면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받았거나.
“아, 그럴 필요 없지. 어차피 차명으로 주고받았을 텐데 당사자를 까야겠지.”
“…….”
“영장판사 재산 내역 까 봐. 고위 공직자 재산 신고 목록 볼 수 있지? 거기서 갑자기 재산 내역 는 거 봐 봐. 거기가 딱 뇌물 받은 시점이다.”
과장님 진정하십쇼, 영장도 없이 영장판사 계좌를 뒤져 볼 순 없습니다.
그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두 사람은 내뱉을 수 없었다. 안 되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지금은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
“영장 다시 준비한다.”
“……예?”
“기각됐잖아. 이거 불구속 수사 할 수 있어?”
“3차 영장도 당연히 기각될 겁니다.”
“알아, 그래도 해.”
지금부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냥 들이박는 거다. 국민들의 동정표가 모일 때까지.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동정론일 뿐.
“하아……. 미안하다. 차분하게 다시 생각해 보자. 차분하게…….”
그놈이 비례대표 제안을 할 때부터 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제발 야합만은 하지 않기를 바랐건만 역시나 막을 수 없었던 걸까? 새삼 한명그룹의 로비 실력을 실감했다.
“지금 검찰 분위기는 어때?”
“슬슬 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더군요. 아무래도 선후배 관계로 다 얽혀 있다 보니, 더는 진행하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검찰 원망할 거 없다.
이미 완벽한 증거를 잡았고 이젠 당사자 소환해서 자백을 받아 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니.
국회가 특검을 열어 주면 추진력이라도 얻을 수 있지만 되레 방탄 국회가 되어 버렸다. 의로운 검사들만 뽑아 놨어도 금방 고꾸라졌을 것이다.
‘최영석이…….’
한눈에 봐도 이건 최영석 작품이었다.
서로 다급한 사정인 걸 간파하며 양당을 저울질한 것이다. 한편으론 대단하다. 양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게 쉽진 않을 텐데.
준철은 미간을 풀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서 팀장, 그럼 지금부터 박병호 계좌 좀 추적해 봐.”
“예? 박병호면 민국당대표요?”
“그래, 아무리 봐도 이건 그놈도 구린 게 있다는 거거든.”
“당대표는 저희가 입수한 명단에 없었습니다만…….”
“흔적 지웠을 거야. 원래 비리 걸리면 진짜 잡아야 될 줄은 다 흔적을 지워 주거든. 이건 야당이 침묵하는 거 자체가 코미디야. 분명 그놈도 걸리는 게 있다.”
합리적인 의심이었지만 서 팀장은 난색을 표했다.
기업 수사와 정치인 수사는 다르다.
“과장님…… 이러면 자칫 사찰 의혹으로 갈 수도 있는데요.”
“맞습니다. 많이 위험합니다.”
이런 의심에는 참혹한 대가가 따른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합리적 의심이 되지만, 실패로 돌아가면 야당대표 사찰이 된다.
“그러니까 안 위험한 방법으로 해.”
“예?”
“아까 말했지, 고위공직자 재산 신고 내역만 보라고. 그거 추적하다 보면 비정상적인 자산 증식 내역 있을 거다. 그 부분만 가져 와. 이럼 사찰 의혹 안 받을 수 있다.”
저런 꼼수까지 말해 주는 걸 보니 막을 재간이 없어 보인다.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자리로 돌아갔다.
***
잔챙이들이 검찰로 출석하는 당일엔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정치 끝물들이라 그런지 대부분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모두 사실입니까?
-한명건설에 리베이트를 받고 특혜를 줬습니까?
-리베이트가 부실공사, 현장 사망 사고를 야기했단 지적도 있습니다.
포토존에 들어 선 이들은 로봇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현재로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직접적으로 한 말씀 해 주십쇼. 리베이트와 특혜가 있었습니까?
“떳떳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면 법적 절차에 따라 처벌 받겠습니다.
피의자들이 포토존에서 범죄 일부를 시인하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희생양으로 선발된 양당 의원들 모두 필시 당에서 약속을 받았을 것이다. 이 사건을 다 껴안고 죽으면 다음 공천을 주겠다는.
이들 입장에서도 밑질 게 없었다. 언론에선 정치 생명 끝이라 떠들어 댔지만 결국 특사나 가석방으로 나올 놈들이다. 오히려 형을 살고 나오면 유리한 지역구에서 공천까지 따낼 것이다.
조폭과 금배지는 다를 게 없다.
“저기다! 저기!”
그렇게 잔챙이들이 우르르 검찰청사로 들어갈 때, 더 큰 주목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
준철은 빽빽하게 뭉쳐 있는 기자들을 물리치며 법원으로 걸어 나갔다.
-이준철 과장님! 한 말씀만 해 주십쇼. 공정위가 계속 범죄 사실을 언론에 공표하고 있습니다. 특검 가능성도 있는 겁니까?
“…….”
-현 상황에서 특검이 이뤄지지 않으면 수사 진도를 빼기 어렵다 들었습니다.
“…….”
-각종 여론 조사에서 특검 여론이 60%를 육박하고 있습니다. 정말 가능성이 없습니까?
참담한 심정이다. 이렇듯 말이 안 되는 사안인데 국회는 침묵을 해 버리고 있으니. 양당 의원이 나란히 자백한 건 사실상 꼬리 자르기란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내뱉을 수 없었다. 자신마저 포기하면 국민 모두가 포기할 것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준철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 검찰청사 앞에서 뒤로 돌았다.
“현재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런 상황입니다만…….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돌발 행동에 플래시 세례가 펼쳐졌다.
“리베이트 의혹은 모두 사실입니다. 믿을 만한 제보자가 이 내용을 저희에게 알렸고, 추적 결과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그 당사자들을 소환해 자백을 듣는 이 과정이
참으로 오래 걸렸습니다. 왜일까요?”
국회가 방해하고 있으니까.
“거두절미하고 국회로 흘러간 리베이트 자금은 노동자들의 피로 돌아왔습니다. 지나친 공사비 삭감으로 하청들이 도산했고, 현장에선 산재사고가 빈번했습니다. 이건 잔챙이 몇 마리
잡는다고 될 일이 아니죠. 저희 공정위는 최영석 부회장에 대한 3차 영장을 신청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검찰과 공정위는 해당 비리 의혹에 대해 명명백백 밝혀내겠습니다.”
이번 수사에 중단은 없다. 특검을 계속 요구할 것이다.
국민들에게 그리 하소연한 이유는 하나다.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말고 꾸준히 관심 가져 달라는 읍소다.
그렇게 복잡한 마음을 안고 취조실에 도착했을 땐,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취조실 경험이 많은 중진들이 이미 양복과 넥타이를 훌렁 벗어 던진 채 시큰둥한 얼굴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잔챙이 몇 마리? 허허. 우리 젊은 과장님은 금배지가 우스운가 보군. 우리가 비록 카메라 앞에선 동네북이지만 명색이 지역구 의원들인데.”
“무모한 짓 그만두쇼. 국회 등져서 당신한테 좋을 게 없어.”
준철은 영양가 없는 조언을 가볍게 무시했다.
“뭐 국회에서 지령 받고 왔습니까?”
“뭐?”
“제 기를 꺾어 놓으라 하던가요? 근데 잘 안 되실 겁니다. 민심도 특검을 요구하고 있고, 명분도 충분하니까.”
“이봐요, 젊은 과장님.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기라도 할 것 같아?”
“누가 나 안 알아주면 어때요. 당신들이 한 일만 국민들이 알아주면 되지.”
당대표에게 경고를 듣고 오긴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꼴통인 놈이다.
“쯧쯧- 안쓰럽수. 우리 당대표님이 비례 제안까지 한 걸로 아는데, 왜 그 동아줄을 잡지 못해. 남들은 못 잡아 안달 난 줄인데.”
“그 줄잡으면 나도 당신들처럼 썩어야 되는 거잖아.”
“아니, 근데 이 자식이 계속 듣자 듣자 하니까 싸가지 없이…….”
쾅-!
“안부 인사는 여기까지. 이름하고 주민번호 말하세요.”
의원들은 기가 찼다. 아무리 끝물 정치인이라 해도 자신들을 이렇게 막대한 놈들은 없었는데.
“뭐 그리 나온다면 긴말 않겠습니다. 우리가 뇌물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신 말대로 끝물인 우리들이 무슨 힘이 있겠어? 돈은 받았지만 막상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지금 이게 특혜 없는 로비였다? 뭐 그런 뜻인가요.”
“일종의 정치 자금. 당장에 특혜를 줄 순 없겠지만, 우리가 어느 위치에 올라가면 특혜를 줬겠지. 하지만 그 자리에 올라가기 전에 잡혀 버렸네.”
득의양양 웃는 얼굴.
이렇게 둘러대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컨설팅 받은 모양이다.
“글쎄요. 특혜가 없진 않았을 텐데. 서울시 그린벨트 해제랑, 여기 이 아파트 명단이 다 특혜로 점철된 사업 아닙니까?”
“모르는 일이오. 하지만 돈 받은 것에 대한 죗값은 받겠습니다.
형량을 깎아 보거나 선처를 바라는 모습 따위도 없다.
“좋습니다. 인정하신다면 됐고. 근데 왜 오셔야 할 분이 안 왔습니까.”
“뭐?”
“당신들 같은 잔챙이 말고. 민국당 박병호 대표, 왜 안 왔냐고. 그 양반이 제일 많이 받아먹었던데?”
예상치 못한 말에 의원들은 사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