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91
291화
협치 (3)
“누가 받아?”
“박병호 대표요. 굵직한 공사마다 해결사를 자처했던데 모르셨나 봅니다?”
“허튼소리 하지 마. 당대표님은 받으신 거 없어. 우리가 더 잘 알아!”
“그래요?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8년 전, 6년 전, 3년 전. 고위 공직자 재산 신고 때 기형적으로 자산 증식이 이뤄졌더군요. 혹시나 싶어 부모, 장인, 장모 생사
여부까지 다 확인해 봤습니다. 근데 딱히 유산으로 보이는 흔적은 없던데요.”
국회의원들은 자산 의혹이 나올 때마다 유산 상속이라 둘러댄다. 하지만 박병호는 직계존속으로부터 받은 재산이 전혀 없었다.
“더 신기한 건 재산이 는 시점을 보면 꼭 해외에서 돈이 송금됐더군요.”
“그거야 해외부동산 투자 같은 경우도 있으니…….”
“당국에 신고도 하지 않고 해외 부동산 투자? 그럼 불법 환치긴데요. 혹시 뭐 들은 내용이 있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자산 증식에 여러 방법이 있다는 뜻 아니겠소.”
“그럼 그 증거를 가져와 보십쇼. 정당한 투자였으면 투자내역 제출 못 할 게 뭐 있습니까.”
그제야 입을 다무는 의원들이다. 어떤 내용을 제출하든 당대표의 불법 행위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준철이 내민 서류를 확인했을 땐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각각 40억씩, 총 120억대.
만약 해외 부동산 대박으로 번 돈이라면 땅 밑에서 노다지가 발견되어야 가능할 액수다.
당연히 이는 한명그룹이 숨겨 놓은 해외 계열사를 통해 로비를 받았단 뜻이며, 액수만 봐선 큰 공사 여러 건을 해치워 준 게 분명했다.
“영성구 개발위원회, 뉴타운위원장, 청남 신도시 준비 위원장……. 혹시나 싶어 당시 박 대표가 맡았던 직책을 조사해봤습니다. 근데 참 공교롭게도 맡는 자리마다 다 한명건설에게
일감이 갔더군요.”
“…….”
“이러니 제가 의원님들이 잔챙이로 보일 수밖에요. 어떻습니까, 이래도 계속 특혜는 없었다고 발뺌하실 겁니까?”
의원들의 눈치 싸움이 시작됐다.
공정위가 당대표 비리까지 캤다는 건 정말 끝장을 보겠다는 의미. 적당히 넘어갈 놈도 아니다.
계산이 빠른 몇몇 의원들은 벌써부터 당대표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세상 깨끗한 척 다 하더니, 가장 많이 해 처먹은 놈이 그놈 아닌가.
“당에서 무슨 약속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취조실에서 일어나는 순간, 이 내용은 곧 언론 보도를 탈 겁니다. 과연 박 대표가 계속 건재할까요?”
“……우리한테 바라는 게 뭡니까?”
“한명건설에게 어떤 특혜를 줬는지 모두 다 실토하세요. 여러분들이 했던 일, 아는 일 모두.”
쾅-!
의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할 때, 한 사내가 산통을 깨 버렸다.
“허튼소리 하지 마. 뇌물은 받았지만, 특혜는 없었다. 이게 우리들의 공통된 입장이오. 아닙니까, 의원님들?”
“마, 맞지.”
“그렇습니다.”
“이 선생, 듣던 대로 참 영악하시구먼. 근데 역시 관록이 부족해. 당 지휘부랑 우리 이간질시킨다고 우리가 넘어갈 것 같소.”
별반 놀랍지 않았다. 박 대표가 군기반장 하나 끼워 뒀을 거란 건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동요하던 의원들에게 눈총을 쏘더니 준철을 노려봤다.
“대화가 안 통하시는군요.”
“내가 할 소리. 무의미한 총질 그만하고, 우리 같은 잔챙이들로 만족해요. 특검? 우리 체포 동의안도 국회통과 안 될걸.”
“…….”
“어차피 우린 검찰에 출석하는 사진 찍으러 온 거니 몇 시간 좀 쉬다 가겠습니다. 조서 정리 되면 우리한테 보내쇼.”
검찰 특수통 출신이기도 한 그는 취조실을 마치 제 집 안방인 마냥 나가 버렸다.
준철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수사팀으로 돌아갔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금배지 단 양반들 아닌가. 이 이상의 유의미한 자백은 나올 수 없다.
취조를 맡은 과장이 5분 만에 돌아오자 팀장들의 얼굴도 어두웠다. 취조가 짧았다는 건 아무런 소득도 없었단 얘기다.
“서 팀장.”
“예. 과장님.”
“기자들 아직 바깥에 있지?”
“예. 이제 막 취재 차량 철수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이 내용 넘겨라.”
서류를 받은 서 팀장은 쩔쩔맸다.
“과장님 이거 그…….진짜 써먹으실 겁니까?”
“안 써먹으면? 이 자료 박 대표한테 바치고 나 여의도 입성할까.”
“그건 아니지만…….”
불안해하는 녀석의 어깨를 툭 치곤 윙크를 날렸다.
“모든 책임 다 내가 질 거니까 걱정하지 마. 시키는 대로 해.”
***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범죄자들이 혐의를 부정할 때 쓰는 단골멘트죠. 진부한 래퍼토리가 이번 소환 조사에서도 펼쳐졌습니다. 소환된 의원 모두 뇌물은 있었지만
특혜는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공정위는 박병호 대표의 수상한 재산 내역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국회의원 7명이 소환되는 초유의 사태였지만 그날 9시 뉴스는 온통 박병호 얘기로 도배되었다. 박병호가 맡았던 역대 직책과 수상한 자산 내역들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천재지변도 집권당 탓을 하는 야당이 왜 지금껏 조용했는지, 그제야 국민들도 알게 되었다. 이로써 국회 전체를 질타하던 비난 여론이 점차 민국당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해당 사태는 유감이나 당대표와 관련한 의혹은 일체 사실무근. 공정위의 망신 주기식 수사에 심히 유감.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건지 민국당은 즉각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각 의원들은 SNS를 총동원해 불편한 심기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그중엔 더러운 방법도 동원됐다.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으면 메신저를 공격하라 했다. 민국당을 추종하는 스트리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유언비어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이준철인지 삼준철인지 하는 그놈 아주 뒷소문이 더럽데요.
-현 담당조사관 말씀이십니까?
-네. 행간에선 그 조사관이 한명그룹에게 러브콜을 보냈는데, 이에 대해 불발됐다는 얘기가 많아요. 짝사랑하던 상대에게 차이면 기분 어떻습니까? 가질 수 없을 바에야 부숴 버리는 게
낫겠죠? 그래서 열을 올리고 한명그룹 치고 있단 얘기가 많습니다.
-아, 그러면 여기엔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다? 이렇게 해석해도 됩니까?
-해석은 자유지만 풍문에 의하면 이를 가지고 비례대표를 요구했단 얘기도 나옵니다. 솔직히 지금 보면 비정상적이리 만치 수사관이 이 일에 맹목적입니다. 근데 자기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이 이렇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거 봤습니까?
-듣고 보니 그 말도 설득력이 있군요. 그렇다면 그 풍문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뭐 얘기가 그렇다는 거지 나도 잘 모릅니다.
가짜 뉴스엔 딱히 근거나 증거가 필요치 않다. 아니면 말고 식이니까. 출처 없는 유언비어는 확대 재생산 되어 준철을 비리 조사관으로 만들었다.
“이 과장님, 이거…… 일이 잘되고 있는 게 맞소?”
“생각보다 넘어야 할 벽이 많더군요.”
“뭐? 아니, 이제 와 그렇게 말하는 게 어디 있어!”
“수사를 포기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지금 그 벽을 어떻게 넘을지 고심 중입니다.”
턱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에 헝클어진 머리.
다시 만난 최기석은 밤잠도 못 이루는 모양이었다. 완벽한 증거를 제보했는데도 수사에 진척이 없으니 불안에 빠진 게 당연했다.
“이 과장님, 진짜로 그 벽을 어떻게 넘을지 고심 중입니까? 아니면 그 벽의 일원이 되어 벽돌로 살 겁니까?”
“무슨 말이죠.”
“나도 듣는 귀가 있고, 보는 눈이 있소. 과장님이 민국당에 비례대표 요구했단 얘기가 아주 파다해요.”
“지금 그 말을 지금 믿습니까?”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날 리 없지! 대체 이런 얘기가 왜 이렇게 퍼지는 거요.”
부아가 치밀었지만 꾹 참았다.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소문난 어느 대통령 후보도, 대선 전에 점집을 그렇게나 들락거렸다고 한다.
사람은 본디 마음이 약해지면 미신과 점성술에 의지하기 마련이지. 가짜 뉴스에 선동된 그도 오죽했을까 싶다.
“그럼 진짜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그건 인과관계가 잘못된 겁니다.”
“뭐? 인과관계?”
“정확히 말하면 이 수사 손 떼라고 외압이 들어왔습니다. 비례대표를 제안하면서.”
역시나 아주 헛소문이 아니었구나!
최기석은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비례대표를 약속해 줄 정도의 인사는 여의도에 별로 없다.
“그 외압이란 게 혹시…….”
“네. 현 민국당 대표 박병호입니다. 근데 제가 지금 박병호 동아줄을 잡은 걸로 보이시나요?”
“…….”
“박병호 대표와 한명그룹 관계 터트린 거 우립니다. 앞으로도 손잡을 생각 없다는 뜻이죠. 제가 이 부분에 대해 더 이상 해명해야 될 게 있나요.”
최기석은 슬그머니 자세를 고쳐 안고,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지금 이 젊은 놈이 그 동아줄을 잡아 버리면 자신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다.
박병호의 비리를 적극 언론에 터트린 건, 신의를 지키겠단 굳은 의지다.
“그러니 최 상무님이 우릴 좀 도와주세요.”
“제가 뭘 어떻게…….”
“박병호 재산 증식 내역과 직책 내역 보면 한명그룹과 깊은 관계 인 게 빤한데, 한명그룹이 이에 대한 흔적을 모조리 지웠더군요. 그래서 언론에 더 터트릴 게 없습니다.”
“이 과장님……. 민국당 대표는 그만 건드릴 수 없습니까? 내 목표는 오로지 큰형이에요. 거기에 집중을…….”
“근데 그 큰형의 보디가드 역할을 하는 게 박 대표 아닙니까.”
“…….”
“이 사건 특검 통과 안 되면 더 이상 진도 못 나가요. 그리고 그 특검 여부는 국회에서 결정합니다.”
결국 박병호를 그냥 둘 수 없다는 얘기.
최기석은 머리를 쥐어 짜며 괴로워했다. 금융업계인 자신도 국회 인맥이 된다 자부했는데……. 건설업계인 큰형에 비하면 댈 것도 아니다.
로비 중에 최고봉은 건설 로비라던데 이번에 그 위엄을 실감했다.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수사를 중단하고 싶었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도 잘 안다. 현 상황에서 입 다물고 있으면 영영 재계에서 퇴출될 것이다.
장시간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박병호……. 그 인간 원래부터 말이 많았습니다.”
“아는 게 있습니까?”
“자산 증식 내역, 그거 다 한명건설이 해외 계열사로 돈세탁해 박 대표 계좌로 쏴 준 거예요. 그리고 그 해외 계열사 중 하나에 박 대표 사위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역시나 보통 관계가 아니구나.
“그런 사실을 왜 처음부터 말 안 했어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데.”
“나는 기업인입니다. 권력자들 적으로 돌려 봤자 내게 전혀 득될 게 없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더는 다그치지 못했다.
“근데 넘어야 할 산인 건 아시죠?”
“…….”
“한명투자가 확보한 증거 같은 거 있습니까?”
“아직 진위 여부가 다 확인 안 된 자료입니다만…….”
“그건 우리가 파악하면 됩니다.”
국회의원들 뇌물 목록을 다 꿰고 있던 최기석이다. 과연 지라시 수준의 이야기일까? 전혀 아니다. 이자도 분명 검증된 자료를 가지고 있을 거다. 하지만 무서울 것이다. 이번 사태를
진행하며 권력의 비정함에 대해서 실로 체감하고 있지 않았나.
그런 놈들을 상대로 더욱 증거를 내미는 게 분명 부담일 것이다.
주저하는 그에게 말했다.
“최기석 씨, 이거 중간에 좌초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
“대신 약속하죠. 야당 대표 무너트리면 내가 이거 특검 통과시킬 거예요. 절대 못 버틸 겁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불을 더 지펴야 하나?
최기석은 긴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겐 돌아갈 다리가 없다.
“의심되는 자료……. 다 넘기죠. 근데 제발 살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