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아파트가 무너졌답니다
수도권에 있는 아파트 현장.
분양 2천 세대에 강남과의 접근성이 좋은 영주는 입찰 당시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대지 면적 20%를 차지하는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GTX 노선까지 확장하며 분양 시장 최대어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세간에선 이 정도 입지면 초가집을 지어도 완판이란 소리가 나왔다.
이런 열기에 호응하듯 주요 건설사들이 대거 입찰에 응모했고, 한명건설은 이 전쟁에서 당당히 승리를 거머쥐었다.
원체 기대가 컸지만 청약 시장의 반응은 더욱 폭발적이었다. 예상보다 비싼 분양가가 공개되었지만 만점 청약이 대거 접수되며 제2의 분당 소리가 나왔다.
강남과의 접근성, 대단지, 학군 3박자를 다 갖췄으니 프리미엄도 무섭게 치솟았다.
-긴급 속보입니다. 현재 한명건설이 공사 중인 영주 아파트 단지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고는 그런 열기에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
40층 높이의 아파트 외벽이 무너지며 일대가 지옥으로 변했다.
골격이 그대로 드러난 채 철근이 위태롭게 달랑거린다. 뉴스 헬기가 찍은 영상엔 한명건설의 로고가 그대로 드러났다.
일대는 전쟁이라도 난 듯 모든 차량이 통제되었고, 앰뷸런스 수십 대가 사고에 급파됐다.
건설노동자 사십 명이 잔해에 깔려 중상을 입었지만 그나마 이건 다행인 축에 속했다. 진원지 근처에 있던 인부 10여 명은 그대로 함몰되어 생사도 확인할 수 없었다.
-소방당국은 구조에 만전을 기하겠다 발표했지만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추가 붕괴 우려로 구조대가 섣불리 손을 쓰지 못하기 때문인데요.
-그럼 2차 붕괴의 가능성도 있단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아직 공식 확인되진 않았지만 소방당국은 붕괴 원인을 부실시공으로 판단한 것 같습니다. 2차 붕괴 가능성을 높게 점치며 구조자의 안전 또한 지켜야 한다는 방침입니다.
-함몰자 가족들의 심정이 참담할 것 같습니다. 그럼 현재 몇 명의 함몰자가 생긴 겁니까.
-안타깝게도 아직 정확한 인원이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한명건설의 인명부에는 8명으로 기록되어 있었지만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인부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명단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인부……. 이건 불법체류자일 가능성도 있다는 뜻일까요?
-그렇습니다. 현장 증언에 의하면 이 공사엔 불법체류자가 대부분이었다 합니다. 따라서 정확한 인원도 파악할 수 없으며, 최악의 경우 신원미상의 희생자가 대거 나올 수도 있습니다.
공사가 얼마나 날림이었는지, 현장에 불체자 인부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차마 얘기도 꺼낼 수 없었다.
급파된 건설 전문가들이 2차 붕괴 가능성을 검토했지만, 실측에 나갔다 돌아오는 얼굴마다 굳어 있었다.
-구조 작업이 연일 지연되는 가운데, 골든타임이 계속 다가오고 있어 유가족들의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소방당국은 일단 수색대를 편성해 함몰자들의 생사 확인부터 진행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이르면 내일 오전부터…….
야속하게도 골든타임 당일엔 2차 붕괴가 진행되어 아예 반쪽짜리 아파트가 되고 말았다.
***
공사 일대가 전면 통제되며 꼬박 한 시간을 걸어야 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아직까지도 매캐한 분진이 휘날리고 있었다.
처음엔 서 팀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수십 년 된 아파트도 아니고 이제 막 공사 중인 아파트가 갑자기 무너져 내리다니. 아무리 양심을 팔고 하청을 쥐어짜던
김성균이라도 그 정도로 날림 공사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 뉴스로 현장을 확인했을 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철근 구조와 무너진 외벽들. 내가 아는 한명건설이 아니다. 한명건설은 그때보다 더 한심해진 걸까.
폴리스 라인을 뚫고 현장에 더 근접했을 땐 유가족들의 오열이 들렸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들에게 무슨 위로를 한단 말인가.
동정심은 곧 원망으로 뒤바뀌었다.
이번이 크게 터졌다 뿐이지 한명건설의 부실시공은 이미 악명이 자자했다. 뉴스에 기사도 나가지 않은 산재사고 사망자는 더 많다.
정치하는 놈들이 내 말을 들었더라면…….
그래서 특검이 통과됐더라면…….
어쩌면 이 사고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권력자들이 사무치도록 미웠다.
“저기요! 여긴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내 양복이 눈에 띄었는지 소방대원 하나가 급하게 달려왔다.
“어디 소속이세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왔습니다.”
“공정위? 여긴 재난 현장입니다. 경찰과 소방관만 출입할 수 있습니다.”
“김 주임! 아니야.”
그때 내 얼굴을 알아본 사내가 달려왔다.
그는 살짝 거수경례를 하더니 말했다.
“이준철 과장님이시죠. 한명그룹 조사 중이신.”
“예.”
“구조대책본부 허명훈 팀장입니다. 안쪽으로 오시죠.”
그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능숙하게 나를 안내했다.
“괜히 제가 민폐만 끼치는 건 아닌지…….”
“아니오. 어차피 상황 정리되면 보고를 드리려 했습니다. 본부장님께서 찾아올 거라고 미리 대비하라고 하셨거든요. 물어볼 거 있으면 뭐든 말씀하세요.”
그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나는 잔해에 묻힌 이란 현판을 보며 물었다.
“이 현장에…… 이번 사고가 처음입니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조사 과정에서 그간 덮었던 산재가 다 드러났습니다. 타워 크래인이 쓰러져서 인부들이 다친 사고도 있었고, 고체 연료가 잘못 타 화상을 입은 사고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현장에서 은폐한 산재만 해도 최소 스무 건이 넘습니다.”
“전조 증상이 있었단 뜻이군요.”
“차고 넘쳤죠.”
“그럼 사고 원인은 파악됐습니까?”
“부실공사입니다. 빼도 박도 못할 만큼.”
“강풍이나 설계상 문제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다 핑계죠. 현 사고의 외부적 요인은 10%도 되지 않습니다. 여길 보시죠.”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무너진 잔해의 현장이었다. 전생에 많은 공사 현장을 누볐지만 이렇게 무너져 내린 현장을 보기는 또 처음이다. 뉴스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공포다.
“여기 이 철근 보이십니까? 끊어진 철근 두 개를 용접만 시켜서 억지로 이어 놨어요. 이게 왜 그러냐면…….”
“공사하다 남은 철근을 폐기 안 하고 재탕했군요.”
“아, 잘 아시는군요. 이런 철근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게다가 이 시멘트는 배합이 어찌나 엉망인지.”
“혹시 이것도 잔여 시멘트 폐기 안 하고 재탕한 겁니까?”
“그렇죠. 시멘트 성분 조사해 보니 허가 안 된 중국산 시멘트까지 나왔습니다. 단가를 아끼려고 정말 별수를 다 썼습니다.”
당연히 단가를 아끼는 데 혈안이었을 거다. 10원이라도 아껴서 여의도 의원들에게 상납해야 됐으니.
“결정적으로 이것들이 공기 단축을 너무 심하게 했습니다.”
“공기라면 공사 기일 말입니까?”
“네. 하청사 사장들이 모두 공통된 진술을 했습니다. 양생이 채 굳지도 않았는데, 계속 건물 올리라는 지시만 내려왔다고.”
양생은 고체 연료로 충분히 가열해 굳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공사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놈의 기일을 지키겠다고 시간을 재촉했고, 더욱이 여기에 쓰일 고체 연료 공급도
충분치 않았다.
“솔직히 이건 내부적 요인이 100%라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저도 20년이나 일했는데 이런 공사판은 처음이네요.”
함몰자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일까. 허 팀장의 목소리에서 묘한 분노가 느껴졌다.
“현재 희생자는 어느 정도 됩니까?”
“함몰자요? 그건 더 가관입니다. 한국인 인부 8명은 확인이 됐는데, 최소 10여 명의 불법 인부가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어요.”
“불체자가 그렇게나 많았습니까?”
“작업반장이 스리랑카 사람일 정도니 말 다했죠. 이것도 아직 정확한 수치는 아닙니다. 구조 작업 진행되면 더 늘어날 겁니다.”
수소문한 이름만 열 명. 정확한 숫자는 아직 파악도 안 된다.
그렇게 현장 탐방이 끝났을 때 내가 물었다.
“허 팀장님, 혹시 전화 많이 받으십니까?”
그의 표정이 확 굳었다.
“저도 많이 받아 봐서 여쭤보는 겁니다. 왔습니까?”
“……네. 쳐다도 못 보는 고위직부터 여의도 의원들까지. 안 오는 전화가 없더군요. 전화 내용은 다 비슷합니다. 외부적 요인 가능성을 강조해 달라는.”
“뭐라 하셨습니까?”
“그러긴 싫다 했습니다. 아니, 사실 할 수도 없는 일이에요. 요즘같이 sns가 발전한 시대에 이 사건을 어떻게 덮을 수 있겠습니까.”
왜 이 생면 부지의 사내가 나를 반겨 줬는지 알겠다.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권력자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팀장님, 그럼 제가 부탁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부탁……요?”
“덮으란 부탁 아닙니다. 지금 보여 주신 양심 지키십쇼. 그간 이 현장에서 벌어진 산재 사고, 은폐 시도, 그리고 붕괴 원인 모두 솔직하게 말씀하십쇼. 여기엔 당연히 희생자 규모도
포함입니다.”
“그럼 불체자 규모까지…….?”
“당연하죠. 어쨌든 그들도 희생자입니다. 한명건설이 불체자 고용을 얼마나 묵인했는지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긴 생각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어설프게 양심 팔아먹느니 그게 낫겠네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다짐을 받을 때 멀리서부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야! 카메라 저쪽에다 대! 저기 왔어!”
“최 기자 저기다!”
기자들이 가리킨 곳엔 안전모에 작업복을 입은 최영석이 있었다. 사고 당일 급하게 얼굴도장만 찍고 간 때와 달리 오늘은 매우 긴장한 얼굴이었다.
놈이 현장에 도착하자 기자들의 날 선 질문이 빗발쳤다.
-한 말씀 해 주십쇼. 왜 아직까지 붕괴 원인이 나오지 않는 겁니까.
-일각에선 소방당국을 압박하고 있단 얘기도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그간 로비 공사 의혹이 모두 사실이었습니까?
-공사비 삭감 이유가 진짜 로비 자금 때문이었습니까?
놈은 가증스런 얼굴로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해명을 하십쇼! 의혹들이 모두 사실입니까?
“일단 지금은 구조 작업이 우선인 것 같습니다. 수습이 되는 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 및 피해 규모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 사고 원인 정도는 말씀하실 수 있잖아요. 아직도 파악이 안 됐다는 겁니까?
“강풍, 부실 설계, 하청사들의 부주의 등 여러 다각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추정…….”
퍽.
얘기가 끝나기 전에 계란이 날아들며 희생자들 가족들이 달려들었다.
-야 이 살인자 새끼야!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어?
-네가 공사비 삭감하고, 공기 단축해서 졸속으로 시공했잖아!
-왜 네 책임을 하청으로 돌려!
부랴부랴 경호원들이 막아섰지만 최영석은 양복 단추가 뜯어지고 머리가 헝클어지며 온갖 치욕을 당해야 했다.
그렇게 한바탕의 조리돌림이 끝났을 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우린 서로 말없이 한참 동안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