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96
296화
아파트가 무너졌답니다 (3)
김 특검의 주저하는 눈빛이 무얼 우려하는지 안다.
국회의원에겐 면책 특권이 있다. 이들을 구속하려면 국회에 체포 동의안을 제출해야 한다. 물론 현역 의원들이 구속된 사례가 아주 없지는 않으나 지금은 그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지
않은가.
“엄격한 잣대 들이밀면 최소가 30명이야. 물렁한 잣대 들이밀면 편파 논란 나올 거고.”
울며 겨자 먹기로 특검을 통과시켜 주긴 했지만 국회도 현역 의원들의 구속을 바라진 않는다.
“특검장님, 혹시 이 문제 가지고 외압이라도…….”
“오해하지 마. 특검으로 임명됐을 때 청와대에 미리 말해 놨다. 나한테 전화 한 통이라도 보내는 놈 있으면 그놈도 수사 대상에 올릴 거라고.”
“그렇군요.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일이지. 아무튼 돌아가서, 의원들은 불구속 수사로 진행하는 게 어때? 도주의 염려도 없고 현 상황에서 증거 인멸할 우려도 없잖아?”
모든 수사는 불구속수사가 원칙이다. 게다가 지금은 재벌 총수를 구속시켰고, 사건 내막 또한 전부 파악한 상태다.
“구속은 최영석이만 시키는 게 어때?”
현 상황에서 의원들 구속시키는 건 상징적인 일일뿐.
“특검님, 그럼 더더욱 의원들 구속시켜야 합니다.”
“뭐?”
“첫 단추 잘 뀄다고 두 번째 단추 막 낄 순 없잖아요. 사실 이 사건 따지고 보면 돈을 준 놈보다 받은 놈이 더 나쁩니다.”
기업은 누구나 다 로비에 혈안이 되어 있다. 거기에 응하고 특혜를 준 놈들이 더 나쁘다.
“무슨 얘긴지는 아는데 현실적인 한계도 생각해야지. 현직 의원 30명을 구속시키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다.”
“공사 중이던 아파트가 갑자기 무너진 것도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
“말 안 듣는다고 공정위 수뇌부 다 물갈이해 버린 것도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
“이젠 국회가 국민들 눈치를 봐야 할 때입니다.”
김 특검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지금은 비상식의 시대지. 21세기에 갑자기 아파트가 무너져 내렸고 총체적인 문제점이 드러났다. 당연히 조사 수위도 이에 걸맞아야 한다.
“젠장, 근데 우리가 그렇게 영장 다 치면 들어주려나. 국정 혼란 핑계 대면서 방탄 국회로 돌변할 것 같은데.”
“그걸 국민들 앞에 보여 주는 것 또한 의미가 있을 겁니다.”
김 특검은 서류를 건넸다.
“좋아. 그럼 먼저 최영석이 영장 치고, 바로 체포 동의안 신청하자.”
***
김 특검의 장담대로 영장은 2시간 만에 발부가 되었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 최영석의 구속이 결정됐다. 놈은 자택에서 서초구로 자진 출두했고, 방송국들은 이 역사적인 순간을 생방송으로 다뤘다.
카메라에 잡힌 최영석은 모든 걸 체념한 얼굴이었다.
자신의 구속 소식을 뉴스로 알게 되었다. 법조계 인맥들이 모두 등을 돌렸단 뜻이며, 이젠 의지할 곳 하나 없어졌다.
그런 심정에 염장 지르듯 동부구치소엔 레드카펫보다 더 화려한 무대가 마련되었다. 기자들과 유수의 시민 단체들이 그의 구속을 축하해 주러 온 것이다.
-연일 사망자 보고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불법체류자 고용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특검 3팀이 붕괴 원인을 내부적 요인이라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한 입장은요?
-하청 근로자 유가족들에게 하실 말씀 없습니까?
기자들의 날선 질문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분노를 참지 못한 시민 단체들의 욕설도 간간이 들렸다.
최영석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누구한테! 너네한테 돈 받아먹어서 곤란해진 의원들한테?!
“죗값을 받더라도…… 최고경영자로서 이 모든 사태를 다 수습하고 난 뒤 받고 싶었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이 살인자 새끼야!
“이 자리를 빌려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드립니다. 모든 죗값을 달게 받겠습니다.”
나오는 말과 달리 그는 초호화 변호인단을 대동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법적 다툼을 하겠단 의지다.
이를 생방으로 지켜보던 국회 회의실에선 긴 한숨이 튀어나왔다.
비밀리에 모인 양당 중진들은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이제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국회로 넘어올 것이다. 돈을 준 놈이 구속당했으니, 받은 놈이라고 무사할 수 있을까?
“특검에서 공문을 보내 왔습니다. 체포 동의안이에요.”
“얼마나 시킨답니까.”
“얼추 서른 명쯤 됩니다. 봐준 사람은 한 놈도 없더군요.”
국회 정원이 299명. 서른 명 구속은 국회의원 10%를 날려 버리겠단 뜻이다.
“그건 너무 무모한 요구 아니오. 문제 된 인사 탈당으로 마무리할 수 없습니까?”
“말이 안 통하더군요.”
“대표님, 그 정도 인원이면 국정 혼란이 불가피합니다. 다시 설득해 보시지요.”
“재보궐 선거를 하든 뭘 하든 알아서 하라는 게 특검 입장입니다.”
대한당 수뇌부, 민국당 비대위 모두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지금 당하는 망신도 벅찬데 국회의원 구속이라니.
체포 동의안이야 국회가 적당한 핑계를 대며 거부할 순 있지만 아무도 그 얘길 꺼낼 수 없었다.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시국이다. 조금이라도 두둔했다간 당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다.
“한 비대위원장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여당 대표의 물음에 한기수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이번 사태에 대해선 강경한 입장인데, 특검이 너무 간 것 같습니다. 불구속 수사로 진행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제가 봐도 그래요. 지금 상황에서 구속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인데.”
“정 그리 구속해야겠으면 상징적인 몇 사람으로 끝내죠.”
“상징적인 사람?”
“저흰 전임 대표 박병호 의원이랑 몇 사람 추려서 손절하겠습니다. 이러면 특검도 섭섭지 않을 겁니다.”
여당 대표는 그 뜻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그럼 저희 쪽에서도 상징적인 몇 사람이 필요하겠군요.”
“네. 특검 체면도 세워 주고 국민들도 납득할 만한, 적당한 인사 몇 명이면 될 겁니다.”
“그게 좋겠습니다. 사실 특검의 요구는 너무 무리예요.”
“맞습니다. 그래도 우리 식구들 아닙니까.”
“사실 건설 비리가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좀 심한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다 식구들이고 동료들이다. 이 자리엔 연루된 사람들에게 신세 진 사람도 적지 않았다.
모처럼 희망적인 얘기가 나오자 양당 의원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솔직히 그 인원 다 구속시키면 국회 위신은 아주 엉망이 될 겁니다.”
“체포 동의안은 적당히 거부하는 걸로 하시죠.”
한기수는 여당 대표를 보며 슬쩍 운을 뗐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가 잘 협조해야 합니다.”
“협조요?”
“네. 유권자들 마음 뻔해요. 1번 아니면 2번 아닙니까. 우리가 서로 보듬으면 결국 그 표 어디로 가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건 그렇죠. 뭐 3당을 창당할 것도 아니고.”
“그러니 이건 계산 정확히 해서 같이 맞읍시다. 국회 체포 동의안 때 나란히 반대표를 던집시다. 명분은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
한 사람이라도 빠져나가선 안 된다.
“욕은 같이 먹자는 말씀이군요.”
“네. 서로 치명상 입으면 결국 똑같은 거 아닙니까.”
“공감합니다. 매도 같이 맞으면 덜 아픈 법이죠.”
합의점에 다다르자 서로 웃음까지 나왔다.
“솔직히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결국 우리 한솥밥 먹던 식구들인데 너무 야박한 건 아닌지.”
“왜 아니겠습니까. 하필 선배들도 많이 걸려서.”
비대위원이라 해도 전부 얽히고설킨 관계. 그놈이 저놈이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아무리 초유의 사태가 펼쳐졌다 한들, 결국 이들은 자기 잇속을 챙길 수밖에 없다.
그때, 회의장 문을 열고 웬 젊은 놈이 등장했다.
“뭐, 뭐야?”
“여기 계셨군요.”
“당신 누구야?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안녕하세요. 공정위 이준철 아니, 특검 1팀장 이준철입니다.”
중진들은 사색이 됐다. 최근 언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는 문제의 그놈이다.
“알 얘긴 다 아실 겁니다. 30분 전에 최영석 부회장이 구속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젠 그 잔당도 구속해야 할 것 같은데요.”
“무슨 말씀인지…….”
“현재 연루된 국회의원들 모두 검찰이 인계하겠습니다.”
여야 의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보세요. 그건 좀 다각적으로 봐야 합니다. 의원 20여 명을 어떻게 한 번에 다 구속시킵니까. 원활한 국정을 위해서라도 그런 일은 없어야 돼.”
“명백한 비리 의원인데요.”
“정의만 앞세워서 될 게 아니야. 이건 현실적인 이유도 필요한 법이라고.”
“솔직히 불구속으로 수사해도 될 거 아닙니까. 구속은 이제 상징적인 문제라고.”
득의양양한 의원들의 얼굴.
나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제가 잘 찾아왔군요. 국회에서 체포 동의안 안 내줄까 걱정돼서 왔는데. 아파트 몇 개 더 무너져 봐야 의원님들이 정신 차리시겠어요.”
“뭐, 뭐야?”
놈들에게 자료를 던졌다.
“저희 특검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영주 아파트뿐 아니라 많은 공사 현장에 공통된 문제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뭐요?”
“불량 자재에 불량 시공. 무너진 게 영주 아파트일 뿐이지, 다른 곳도 다 똑같은 아파트예요.”
“그, 그건…….”
“저흰 지금 다른 하청사를 돌며 관련 증언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정리되는 대로 이 내용을 언론에 발표할 거고요.”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국회가 체포 동의안을 거부했다?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다.
“왜 좋은 권한을 자꾸 나쁜 데 씁니까. 국회가 방탄 국회가 되는 순간, 함께 순장 당하는 겁니다.”
“…….”
“표결 때 부디 현명한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
예고한 대로 의원들에게 영장이 발부됐다.
연루된 의원들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스피커를 동원해 특검을 음해했다. 국정 혼란을 핑계로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동료 의원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며, 꼴만 초라해져 갔다.
그렇게 체포 동의안 표결 당일.
더러 머리를 삭발하고, 붉은 띠를 맨 무리들이 의사당을 점거했다.
“특검이 헌법을 능욕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의 지위는 헌법에 보장된 내용입니다!”
“동료 의원 여러분, 오늘은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겁니다. 역사 앞에 부끄러운 표결을 하지 마십쇼.”
국회 연설은 사형수의 최후 발언처럼 처참했다. 하지만 동료 의원들은 모두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대중에게 너무 큰 파급력을 준 사건 아닌가. 행여나 친분 기사라도 날까 봐 모두 시선을 피했다.
삼엄한 분위기 속에 체포 동의안은 무기명 투표로 진행되었다.
“그럼 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들었다.
“국회 체포 동의안 찬성 250표. 반대…….”
“말도 안 돼! 이건 정치 탄압이야! 무효야!”
“……이로써 체포 동의안이 통과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땅땅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