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298
298화
참회록 (2)
구속된 야당 의원들을 한곳으로 집합시켰다.
“목표가 뭔지 모르겠지만 자네는 글렀어. 이 세상은 능력 있는 놈보다 적을 만들지 않는 놈이 더 오래가는 법이야. 이 짓거리를 하고도 나중에 무사할 것 같아?”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취조실에서 만난 박병호는 아직도 자신을 야당 대표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건 제가 할 소리 아닙니까. 이렇게 해 먹고 평생 무사할 줄 알았어요?”
“이 새끼가 듣자 듣자 하니까!”
“말씀 좀 가려 합시다. 동네 양아치도 아니고 새끼가 뭐요. 특검 팀장한테.”
“고작 3개월짜리 특검 권력이 평생 갈 줄 알아? 어디 두고 보자. 내가 정계 복귀하면 네놈부터 아작을 내 줄 테니!”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정계 복귀라……. 일상생활 복귀도 불가능하실 텐데 꿈이 참 거창하시네요.”
놈도 지지 않았다.
“공사 불량을 자꾸 우리 책임으로 돌리지 마! 아파트가 무너진 건 한명건설이 시공을 개판으로 했기 때문이지 우리 책임이 아니야.”
“……맞아요. 살인 사건 일어나면 칼장수까지 처벌합니까?”
“우리가 받은 돈은 그룹 차원에서 뿌린 통치 자금이었지, 결단코 공사 대금이 아니었습니다.”
꼴뚜기가 뛰면 망둥어도 뛴다고.
박병호가 기세등등하게 나오니 주변 의원들도 가세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는 이 자리에 끌려 온 것 자체가 억울합니다. 아파트 몇 채를 샀는데 우연히 재개발 호재를 맞았을 뿐이에요. 한명건설에 받은 돈은 한 푼도 없소.”
“나도 억울해요. 우리 막내아들이 한명그룹 임원으로 일한 게 어떻게 채용 특혜입니까. 돈은 일절 받지도 않았소.”
“장외 주식 산 것도 죕니까? 그게 한명그룹 계열사랑 합병할지 내가 알았겠어요?”
나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송 의원님, 우연히 산 아파트 다섯 채가 두 달 만에 재개발됐다? 그런 걸 바로 재개발 특혜라고 하는 겁니다. 박 의원님, 스펙 하나 없는 아드님이 한명그룹 말단 임원이 됐죠?
그게 바로 채용 비리입니다. 김 의원님은 죄질이 더 나쁘시네. 내부자 정보 빼돌려서 주식 샀다는 거 아닙니까. 합병 비율 보니까 정직하게 한 것도 아니던데, 주가 조작 혐의도
추가해 드리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세 사람이 엎드리며 뒷다리를 잡았다.
“아이고, 아닙니다! 내 말뜻은 그게 아니었어요!”
“인정합니다! 한명그룹에 특혜를 받았어요.”
본전도 못 찾을 소리를 왜 한담.
중진들이 납작 엎드림으로써 취조실 기싸움은 한순간에 정리되었다.
나는 박병호를 노려보며 서류를 내밀었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건 더 잘 아시죠? 좀 더 캐 보니 아주 가관이더군요.”
“…….”
“10년 전이었나. 갑자기 주택 가격 폭락해서 하우스 푸어 얘기 나왔던 적 있죠. 한명건설 아파트가 대규모 미분양이 났는데 이 물량을 국토부에서 다 쓸어 담으셨더군요.”
당시 건설업계에 쓰나미가 들이닥치며 줄도산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여 정부는 대량 PF 부도 사태를 우려하여 한명건설 아파트를 대거 사들였다. 분양가가 높아서 안 사는 것인데 이걸 매입하며 경기를 부양한 것이다.
당시에도 이에 대한 논란이 많았지만, 경기 침체라는 핑계 때문에 아무도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국민들한텐 임대주택 사업한다고 하시더니, 그 물량 할인해서 다른 매입자 알아보셨죠?”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렇게 고분양가에 산 아파트를 대폭 할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 버렸던 것이다. 그 차액은 당연히 세금으로 충당했다.
지적이 계속되자 박병호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아무리 국민적 분노가 엄청나다 해도 10년 전 자료까지 들고 올 줄이야.
“그, 그건 어떻게…….”
“당시 이걸 주도했던 담당자가 김성균 본부장인데, 불의의 사고를 당해 이 자리에 없네요. 혹시 무슨 사고였는지도 아십니까?”
“나, 나는 모릅니다! 그 사람이 왜 죽었는지!”
“나도 관심 없습니다. 그 사람이 왜 죽었는지.”
“……네?”
“미리 경고드리는 겁니다. 증인 사라졌다고 계속 시치미 떼면 더 큰 처벌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과거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 괜히 울컥해졌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던데 혹시 내 죽음과 관련해서 아는 얘기가 있는 걸까?
묻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다. 개인적 원한을 앞세우면 이번 특검은 산으로 간다.
“지금부터 조서를 나눠 드리겠습니다. 각방으로 가셔서 여러분들이 받았던 돈, 특혜 내역 혹은 아는 사람의 비리까지 모두 다 적어 주세요.”
“…….”
“참고로 전 전향자에게 관대합니다. 진술이 풍부할수록 여러분들의 형량이 작아질 겁니다.”
그렇게 자리 벗어날 때, 한 의원이 내게 물었다.
“최영석 부회장은…… 형량이 얼마나 되는 겁니까?”
***
“과장님, 조서 다 넘어왔습니다. 근데…….”
정확히 두 시간이 지나자 서 팀장과 배 팀장이 내 집무실로 들어왔다.
겨우 두 시간이라니……. 국회의원들에게 그 정도 협박은 어림도 없는 건가.
“우리 특검 연장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한 보름만 있으면 이번 수사 다 끝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야?”
“일단 우리가 파악한 내용은 조서에 다 등장했고요. 우리가 모르는 내용까지 자백한 의원들도 많았습니다.”
“영감님들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서를 직접 읽어 보니 두 사람이 왜 호들갑을 떠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정치판이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판이라지만 참 정도가 심하다. 동료 의원들 고발은 물론 공소시효가 이미 끝난 사건까지 줄줄이 다 실토해 버렸다.
마지막에 선처를 바란다는 멘트 역시 빼놓지 않았다.
“특히나 한명건설의 미분양 아파트 건은 자백 릴레이입니다.”
“과장님을 따로 뵙고 싶단 얘기도 나왔습니다. 고급 정보를 알고 있다고…….”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당시 미분양 아파트는 한명건설의 최대 골칫거리였으니.
세금으로 그 손해를 다 충당했지만, 너무 크게 해먹어 그 흔적들을 다 지우지 못했다.
“중요한 진술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요. 자리 좀 한번 마련해 볼까요?”
“됐어. 그 문제는 내가 더 잘 알아.”
조서를 보는데 한편으론 씁쓸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고급 정보를 주겠다는 놈 모두 노골적으로 김성균 탓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근데 과장님은 이 자료 어떻게 아신 겁니까? 10년 전 사건인데……. 우리 이 사건 본 적도 없잖아요.”
“아는 사람.”
“아는 사람요? 혹시 저희도 모르는 제보자가 있었습니까?”
궁색한 변명대신 조용히 끄덕였다.
“와…… 과장님은 대체 정보통이 몇 개십니까.”
“쓸데없는 수다할 시간 없어. 조서 넘어왔으면 빨리 정리해야지?”
“아, 예.”
“지금 내용 특검 2, 3팀에 공유하고 구속 더 쳐야 할 놈 있으면 명단 뽑아 와. 아예 뿌리를 뽑자.”
“알겠습니다.”
그렇게 돌아가려다 문득 서 팀장이 물었다.
“근데 과장님, 최영석 부회장 형량은 얼마나 생각하십니까? 슬슬 구형 얘기가 나오는데요.”
“형량엔 관심 없어. 집행유예 나와도 돼.”
“예, 예? 집행유예도 괜찮다고요?”
두 팀장들은 눈이 함지박만 해졌다. 하긴 기업인들이 형량 협상하려 들면 찍소리도 못 하게 밟아 버리는 게 나였지.
“그건 검찰 영역인데 내가 나서면 모양만 안 좋아.”
“……거짓말하지 마십쇼. 저희가 과장님 따라다니면서 월권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요.”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랬나.”
“이유가 뭡니까? 저희라도 알려 주세요.”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 처넣어도 어차피 가석방, 특사, 사면으로 나올 놈이야. 그것보다 훨씬 더 실효성 있는 처벌을 내려야지.”
“징역보다 더 실효성 있는 처벌이 있나요?”
“나는 더 이상 최영석 같은 놈이 한명그룹 주식을 쥐고 있어선 안 된다고 본다.”
“아니, 그렇다고 주식을 팔라는 명령을 내릴 수도 없는데요.”
“안 팔 수 없을 거다. 이거 손해배상 다 하려면 입던 빤쓰도 팔아야 돼.”
“헉. 설마!”
“쉿.”
나는 재빨리 손에 입을 가져다 댔다. 두 사람도 덩달아 놀라며 급히 내 동작을 따라 했다.
“아직 확정된 거 아니다. 근데 최영석은 확실히 몰아낼 거야.”
“하아……. 과장님이 그리 말씀하시니까 두렵네요. 진짜 한다면 하는 분인데.”
“고맙다. 나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큰 거지?”
“아무렴요.”
“그럼 뒷일은 믿고 맡긴다. 난 급히 가 볼 데가 있어서.”
“근데 과장님. 요즘 잠행을 많이 다니시던데 혹시 지금 어디 가십니까?”
대답 대신 빙긋 웃었다.
“역시…… 기밀 사항이군요. 그럼 문제 잘 정리되면 말씀해 주세요.”
“고맙다. 뒷일을 부탁한다.”
***
“이렇게 무턱대고 방문하시는 게 어디 있습니까?”
“우리랑 특검이 만났다고 기사 나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요!”
“돌아가십쇼. 우린 진짜로 할 말 없습니다!”
나는 세 명의 이사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몇 차례 연락을 드렸습니다만 계속 날짜를 안 잡아 주셔서요. 결례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날짜를 잡지 않았다는 건, 만나기 싫다는 뜻입니다! 어서 돌아가 주세요.”
“그만들 하게.”
상석에 앉은 사내가 입을 떼자 이사들의 입이 겨우 조용해졌다.
국민연금 이사장 유인수는 긴 한숨을 쉬더니 내게 고개를 돌렸다.
“뉴스 잘 보고 있습니다. 이 과장님의 고집은 이미 알고 있으니 돌아가라 소리 안 하겠습니다. 대신 용건만 간단히 말씀해 주십쇼.”
“스튜어드…….”
“스튜어드십 코드 같은 비상식적인 얘긴 안 할 거라 믿습니다. 우리 국민연금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70년 동안 지켜왔고, 이번에도 예외는 없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명그룹은 최 씨 일가의 소유가 아니다. 여느 기업이 그렇듯 가장 큰 지분은 국민연금에게 있다. 하지만 연기금은 투자와 경영을 철저히 분리하는 정책을 고수하며 단
한 차례도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예외로 하시죠.”
유인수 이사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 원칙은 군부정권 때도 지켜진 원칙입니다. 지금 본인이 무슨 발언을 한 줄 아십니까.”
“군부정권 때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이 지금 펼쳐졌잖습니까.”
“아니, 무슨…….”
“공사 중이던 아파트가 갑자기 무너졌어요. 만약 입주하고 나서 이런 참사가 벌어졌다면 백화점, 다리 붕괴 사고 때보다 훨씬 더 피해가 극심했을 겁니다.”
인부 30여 명이 사망했는데 세간에선 그나마 다행이란 말이 나돌고 있다.
이번 사태가 그만큼이나 막장이었단 뜻이다.
“21세기에 이런 참사가 어떻게 벌어질 수 있습니까? 심지어 지금 그 이유도 다 나왔습니다. 공사대금으로 써야 할 돈이 여의도로 흘러갔고, 원청 한명건설은 하청들 쥐어짜기
바빴어요.”
“…….”
“무너진 아파트가 저 한 채지, 깊게 들어가면 저 건물 다 철거해야 할 겁니다. 그럼 여기서 발생하는 손해는 누가 책임집니까. 기업을 믿고 투자해 준 주주들이 책임져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