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3
3화
인간실격 (3)
-다음 소식입니다. 갑질 논란에 휩싸인 한명 그룹 김성균 본부장이 어젯밤 고속도로에서 2중 추돌 사고를 냈습니다.
-경찰은 김 씨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도로를 역주행했다고 전했는데요. 위 사고로 김 씨 일가족 네 명이 숨지고, 피해 차량 운전자가 중상을 입었습니다.
-(도로교통과) 차량은 한명 그룹의 관용 차량이었고, 특별한 결함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현재 저희 경찰은 운전 미숙으로 인한 단순 사고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한편 검찰은 김성균 본부장의 집을 수색해 가족 명의의 위조 여권을 발견했습니다.
-김 씨 통화 기록엔 밀입국 브로커와 접선을 했던 정황도 나와 있었습니다.
-(검찰) 금융 기록에 따르면 이미 아내 명의로 재산을 이전한 정황이 발견되었습니다. 이에 저희 검찰은 해외로 돈세탁된 정황이 있는지 파악하고 있습니다.
-한편 사고를 당한 피해 차량은 공정거래위원회 소속 신입 사무관이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김성균의 사고 소식은 그날 새벽 뉴스 특보로 보도되었다.
일가족 네 명이 참상을 당했지만 여론은 냉담하기만 했다.
?하청들 쥐어짜더니, 결국 말로는 개죽음이네?
?야반도주하다 가족들까지 죽였어?
?그래 저승에서라도 피해자한테 사과해라. 퉷!
죽음을 애도하기는커녕 천벌이 내렸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가택에서 발견된 위조 여권과 밀항선 티켓은 뭐야?
?끝까지 제 살길만 찾네. 더러운 놈.
?피해 차량은 무슨 죄냐? 아직 서른도 안 된 공정위 사무관이라는데, 진짜 하늘도 무심하다.
***
“잠시만요. 잠시만요.”
연희대학교 응급실.
공무원증을 매단 무리가 좌우를 해치며 서둘러 간호사를 찾았다.
“이준철 팀장…… 아니, 이준철 환자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다급한 목소리에 간호사는 서둘러 차트를 뒤졌다.
중환자실이다. 그것도 아직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은.
“보호자세요?”
“공정거래위원회 김기남 반장이라고 합니다. 직장 동료고요.”
“보호자는요? 이분 왜 보호자하고 연락이 안 닿아요?”
“연고자가 없는 분입니다. 지금 만나 볼 수 없습니까?”
간호사가 한숨을 쉬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 무연고자라니.
“죄송하지만 현재 중환자실에 혼수상태로 있습니다. 보호자 외에 면회는 안 되고요.”
“연고자가 없는 분이라니까요. 어떻게 얼굴만 뵐 수 없습니까?”
간호사는 잠시 고민하다 인터폰을 들었다.
“잠시만 계세요. 일단 위에 여쭤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그녀가 떠나자 무리 중 한 사내가 걱정스레 말했다.
“반장님. 아직까지 혼수상태면 팀장님 매우 위독하단 거 아닙니까?”
“면회 허락된다 해도 겨우 얼굴만 보고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인에게 천벌이 내렸다 하지만, 피해자에겐 날벼락이 따로 없다.
피해 차량은 앞날이 창창한 젊은 사무관(5급 행시)이다.
세종시 출장길에서 돌아오다 이게 웬 비명횡사란 말인가?
다들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할 때 사내가 다시 말했다.
“이 상황에서 말하기 뭣하지만……. 지금 우리가 맡고 있는 대성중공업 건은 접어야 합니까?”
“수사 지연되면 제보자가 불안감을 느낄 텐데요.”
“그사이 대성중공업이 회유를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부턴 시간 싸움인데.”
김기남 반장은 착잡한 표정을 뒤로하고 말했다.
“답답한 마음은 나도 같은데, 일 얘긴 나중에 하자. 일단은 팀장님 상태부터.”
그리 말할 때, 간호사가 다시 달려왔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면회 허락하셨어요. 근데 혼수상태로 아직 의식이 없어요.”
“얼굴만 뵐 수 있으면 됩니다.”
그리 말하며 김기남 반장이 고개를 돌렸다.
“박 조사관. 일단 우리 사건 과장님께 넘기고, 최대한 사정 설명해.”
“아, 예.”
“팀장님은 내가 뵙고 올게. 대성중공업 얘긴 나중에 하자.”
***
“김 부장님. 이 가격에 출시하면 저흰 한 대 팔 때마다 적자가 10%입니다.”
“그러니까 더욱 몰아쳐야 할 거 아니야. 이 시장 독점하면 수십 배의 이익으로 돌아와. 위에서 시킨 일이니까 그냥 해.”
“김 상무님. 이건 사실상 산업스파이 아닙니까? 중소기업 특허 빼다 걸리면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법대로 가면 우리가 더 유리해. 다 믿을 만한 사람들한테 자문 구하고 내린 결정이라고.”
“본부장님……. 이거 아무리 하청 근로자의 사고라 해도, 산재 처리는 저희 쪽에서 해 줘야 하는데요.”
“그냥 하청사한테 가서 잘 좀 해 보라 그래. 불편한 분위기 풍기면 그쪽에서 다 알아들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 거참. 위에서 다 판단 내리고 시킨 일이니까 그냥 해!”
사람이 죽을 때 주마등이 스쳐 간다 했던가?
저승 문턱에서 스쳐 간 내 기억들은 전부 회사와 관련한 기억들뿐이었다.
이 기억엔 당사자인 나조차도 놀라웠다.
내가 ‘위에서 시켰다’는 말을 그렇게 달고 살았는지 처음 알게 됐다.
평사원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한 나는, 그룹 내 전 계열사를 돌아다니며 묵묵히 악역을 도맡아 왔다.
중소기업 경쟁사를 말려 죽일 때도.
특허를 빼낼 때도.
하청사 근로자에게 사고가 생겼을 때도.
나는 늘 한명 그룹의 해결사 노릇을 했다.
나도 양심에 부끄러웠던 적이 많았지만 오직 회사를 위한 일이었다.
이렇듯 인간성을 포기한 대가로, 나는 동기보다 훨씬 더 빠른 진급을 했다.
입사보다 더 어렵다는 임원 승진을 15년 만에 달았고.
핏줄도 되기 힘들다는 부회장 자리에 앉기 직전…… 이렇게 사고가 나고야 말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 인생 덧없는 것 같다.
불철주야 회사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사내에서 평판이 그리 좋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부회장 라인을 타고 나서부터 난 저승사자로 변했다.
손에 든 것은 뭐든 쥐어짜 낼 수 있는 나다. 같은 실적을 내도 내가 손대면 영업이익(순이익)이 늘었다.
하청사를 쥐어짜면 원청의 순익이 늘어났으니 말이다.
“부장들 잘 들어! 당신들 월급 주는 게 한명 그룹이야 하청이야? 인센티브 받아 갈 땐 당연한 듯 받아 가더니, 겨우 이깟 일도 못 해? 그게 고까우면 일 잘해서 실적이라도
늘리든가!”
“…….”
“능력이 없으면, 인간성이라도 포기해라. 이렇게라도 이익을 늘려야 네들 인센티브에 10원 한 장이라도 더 들어가는 거야. 이것도 못 하겠으면 옷 벗어!”
그 말에 사표를 냈던 부장이 몇 명인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해고시킨 직원들 수는 손으로 헤아릴 수도 없다.
인간이 할 짓은 못 되지만 늘 악역을 맡아 온 나에겐, 익숙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눈을 뜨고 일어났을 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이준철 씨? 정신이 드세요? 이준철 씨?”
눈을 깨어 보니 난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중환자실이에요.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기억나세요, 이준철 씨?”
“뭐라고요……? 가족들은요…… 애들과 애 엄마는요?”
다급하게 가족부터 찾았다.
하지만 간호사의 반응이 영 이상했다.
“상대 차량 일가족은 모두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예? 누가 죽어요?”
“일단 고정하세요. 사고 원인은 김성균 씨의 차량이 도로를 역주행한 거고, 이준철 씨는 피해 차량이었습니다.”
“예?! 누가 죽어요?!”
“어…… 어! 선생님. 환자분 다시 의식을 잃었습니다.”
김성균은 죽고 나는 이준철이 되어 있었다.
그 뒤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현실을 인식하긴 했지만, 한 달간이나 식음을 전폐했다.
이런 기연이 왜 내게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죽었다. 내가 죽인 것이다.
“최영석. 너 이 새끼……!”
그리고 나는 잠들어 있던 한 달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소상히 알게 되었다.
뉴스에서 나는 회사 관용차를 타고 도망간 도둑놈이 되어 있었고. 밀항을 준비한 밀입국자가 되어 있었다.
혹시 몰라 아내에게 옮겨 둔 돈은 해외 계좌로 송금할 돈세탁 계좌가 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는 밀입국 티켓과 위조 여권이 내 집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게 말이나 될 소린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때는 늦었다. 이미 김성균은 죽고 없었다.
“너…… 너!”
그리고 난 그제야 왜 그날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들었는지 깨달았다.
단순한 브레이크 사고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의 죽음 뒤엔 분명 부회장의 지시가 숨어 있었을 터다.
하지만 모르겠다.
도대체 왜? 10년 동안 충견처럼 굴었던 나를 왜?
설마 나한테 주기로 한 계열사 지분 몇 푼이 아까워서?
“으악!”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부회장 대신 감방살이까지 살 각오를 한 나다.
심지어 나는 심 사장을 내가 죽였단 죄의식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나를 도마뱀 꼬리 자르듯 무심하게 떨쳐 내 버린 것이다.
“죽여 버린다.”
그렇게 이를 갈던 때였다.
-다음 소식입니다. 한명 그룹 사건의 피해자 장남 심영석 씨가 벌써 보름째 단식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심 씨는 ‘갑질방지법’ 통과를 촉구하며, 더 이상 아버지와 같은
피해자가 나와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번을 기회로 국회에서 갑질방지법이 통과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뉴스에서 매우 익숙한 얼굴이 등장했다.
나 때문에 죽은 심 사장 아들이 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심 사장과 매우 똑같은 얼굴에 섬뜩할 지경이었다.
그때 난 생각했다.
내가 당한 게 그렇게 억울한가?
아니, 나는 억울할 자격이 있나?
결국 하청들을 쥐어짜고, 그들의 특허를 도용한 건 나다. 나 또한 부회장이란 동아줄을 타기 위해 같이 돌팔매질하던 망나니일 뿐이다.
그런 생각에 이르니 분노가 죄책감으로 변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워 TV 화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후우…….”
생각해 보면 나는 억울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따지고 보면 하늘의 천벌을 받은 나보다, 공연히 옆에 있다 피해를 입은 이 몸의 진짜 주인이 더 불쌍하다.
하늘은 왜 내게 덤으로 이런 인생을 살게 하셨나?
겨우 한명 그룹에 복수나 하라고?
긴 생각 끝에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참회하고 살다 보면 언젠간 답을 알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