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34
34화
전관예우? (2)
[공정위의 유권해석, 다음 단계를 위한 포석?]
[금감원, 유경생명 제재심의 발표]
[업계 전문가, 사실상 징계심사가 될 것]
공정위가 유권해석을 공식 발표하자 금감원은 곧 제재심의를 예고했다.
언론도 바보는 아니다. 톱니바퀴 맞물리듯 딱딱 떨어지는 절차가 무엇을 위함인지 정도는 안다.
유경생명이 중징계당할 것이란 후속보도가 이어졌고, 과징금이 수백억대라는 추측성 보도까지 쏟아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유경생명 주가 게시판은 피해고발 게시판으로 변했다.
[한국인 사망률 1위, 암]
사유: 암보험사에서 비급여 치료 다 거부해서.
?2. 암 환자 간병하다 가족들도 암을 얻어서.
?3. ㅇㅇ 한국에서 암은 사실상 전염병.
[암을 치료하고 싶으면, 암보험부터 해약해라.]
치료비 타려다 암이 더 악화해 버리는 구조다.
?가입할 땐 전액보장이고, 돈 타 갈 땐 부분보장이냐? ㅡ ㅡ^
?보험사들 비급여 치료 얘기만 나오면 말 돌리기 바쁘지?
?차라리 건보료 올려서 암 치료 확대 보장하는 게 낫다. 암 치료 태반이 다 비급여항목인데, 치료받을 때마다 싸운다.
?사보험 못 믿겠다! 국영화 시켜라! 암보험사들 싹 다 굶어죽게 만들어!
“박 팀장. 뭐 해?”
“어머, 과장님.”
박다영은 과장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이 과장은 슬쩍 모니터를 보더니 혀를 찼다.
“거기에 올라온 피해 사례 백날 봐 봐야 소용없어. 그거 뭐 어디 증거로 써먹을 거야?”
“……죄송합니다. 그래도 계속 눈길이 가서.”
“징계심사 준비는?”
“학계 의견 다 구했고, 가입자들 녹취록까지 다 떴습니다.”
3일 뒤 ‘기업들의 형장’이라 불리는 금감원 11층에서 재판이 열린다.
위원회 중 다섯은 관련 사건 판결을 많이 맡은 전직 법관들이다. 유경생명에 1차 판결이나 다름없음을 강조한 셈이다.
박다영이 거의 완벽에 가까울 만큼 증거를 다 보여 줬지만, 이 과장 얼굴은 복잡하기만 했다.
“이거 다 유경생명에 미리 보냈다는 거지?”
“예.”
“근데 아직까지 연락 한 통이 없다?”
“……예.”
흔히들 행정부는 공포탄만 가지고 있고, 사법부는 실탄을 가지고 있다 말한다.
금융당국의 제재가 강제성이 없다는 걸 꼬집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보험사가 이렇게까지 안하무인으로 나온 사례는 없었다.
“그럼 뭐 자명해졌네? 이 자식들 무조건 재판까지 가는 거.”
“네. 어떤 결과든 불복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자네가 여기까지 데려온 거야?”
“예?”
“금융위. 오늘 우리한테 공문 왔더라. 이번 사례 검토하고 과징금 부과하겠대.”
공문을 본 박다영은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이거. 박 팀장이 한 거 아니야? 너 옆집 가서 사람 데려오는 거 선수잖아.”
“아, 아니…… 이게 무슨.”
“몰랐으면 됐어. 부탁도 안 했는데 금융위가 도와주겠다면 더 좋지. 아무튼 제재심 준비 확실히 해. 이거 전달해 주러 왔다.”
과장님이 떠나고 나서도 박다영은 어안이 벙벙했다.
갑자기 금융위원회가 공문을 보내서 유경생명에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하지 않나.
‘내가 안 했는데 대체 누구야……?’
공정위, 금감원, 금융위 삼위일체가 완성되었으니 좋아해야 할까? 주가 게시판을 봐도 가시지 않던 불안함이 조금은 날아갔다. 금융위에 가서 넙죽 절이라도 올리고 싶다.
그러다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
“……팀장님 아무리 그래도 영 찝찝합니다. 우리가 금융위 다녀온 거 과장님께 보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금융위의 제재 발표에 반원들은 좌불안석이 되었다.
과장님께 보고도 안 하고 혼자서 다녀온 것 아닌가.
“솔직히 이 사실을 알면 아주 경을 치실 겁니다.”
“맞아요. 우린 유권해석까지만 돕고 징계엔 절대 관여 안 하기로 했잖아요.”
준철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기회 봐서 제가 따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결과는 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뭐 협조를 얻어 냈으니 책임이랄 것 까진 없지만…… 아무튼 알겠습니다.”
준철도 이런 행동을 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징계엔 절대 관여하지 않겠다고 과장님이 못 박지 않았나. 금융위까지 설득하고 온 걸 알면 당연히 경을 치실 거다.
‘근데…… 이래도 반응이 안 와?’
하지만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다.
금융위, 공정위, 금감원. 금융저승사자 세 곳이 징계를 예고했는데 놈들이 아직도 꿈쩍하지 않는다.
YK암보험을 강력 조사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사흘 만에 20만을 돌파해도.
주가 게시판에 가입자들 피해 사례가 속출해도.
유경생명에선 일절의 대꾸가 없었다.
‘지금쯤이면 처벌 수위 가지고 계속 협상해야 되는데.’
아무래도 진짜 재판까지 가고 싶은 모양이다. 금감원에서 어떤 징계가 떨어져도 불복할 것 같았다.
고심에 잠긴 준철은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이 찝찝함을 해결할 방법은 역시나…… 그것밖에 없다.
***
“처음 뵙겠습니다, 김재민 전 국장님.”
“누구?”
“공정거래위원회 이준철 팀장이라고 합니다.”
“무례하기 짝이 없군. 내 번호를 어떻게 알고 연락했지? 최 과장이 보낸 건가?”
불명의 전화를 받고 약속장소에 나온 김재민은 불쾌한 심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민감한 시국이다. 그때 이후로 유경생명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공정위에서 전화가 오니 반가울 리 없다.
“그건 아닙니다. 먼저 앉으시죠.”
“대답부터 해. 내 전화번호 어떻게 알았어? 최 과장? 아님 이 국장이 보냈어?”
“그럼 김 국장님은 누가 보내서 오셨습니까?”
“뭐?”
“저희한테 연락 먼저 주신 건 국장님 아닙니까? 그 번호로 다시 연락드린 겁니다. 이 사건 실무진이 저거든요.”
김재민은 어이가 없어 턱이 벌어졌다.
나이 50 먹은 사무관이 이렇게 따져 대면 차라리 이해라도 했을 것이다. 근데 딱 봐도 행시 출신에 경험도 없어 보이는 놈이 이딴 태도를 보인다.
분명 윗선에서 보낸 놈이리라.
“뭔 생각하는지 알 것 같은데 아니야. 네들이 잘못 짚었어.”
“무슨 말씀인지.”
“내가 유경생명 때문에 수사 무마를 청탁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묻지도 않은 말에 술술 대답해 주니, 오히려 얘기 꺼내기가 수월했다.
“그럼 저희한텐 왜 오신 겁니까?”
“그때도 말했지? 대법원 판례까지 나온 사건에 함부로 끼어들지 말라고.”
“그게 전부입니까?”
“어차피 내 뒷조사 다 했을 텐데 왜 그리 꼬치꼬치 묻지? 그래, 나 은퇴하고 나서 YK암보험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근데 난 취업제한 어긴 적 없고, 재임 당시 유경생명 편의
봐준 적도 없어.”
“…….”
“재취업한 게 문제 되면 다른 국장들도 뒷조사해 봐. 퇴임하고 기업으로 취직 안 한 사람 어디 얼마나 있나?”
떳떳한 일은 아니지만 남들도 다 이만큼은 하고 산다.
김재민은 되레 목소리를 높여 반박할 수 없는 얘기들만 나열했다.
“그렇군요. 근데 직접 찾아오기까지 한 분은 김 국장님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예?”
“그래서 내가 뭐 청탁을 했어, 수사 무마를 했어? 후배들 생각해서 조언 몇 마디 해 준 게 이렇게 찾아올 일이야?”
“언제까지 하실 거예요. 그 말장난?”
준철이 돌연 말투를 바꾸자 그가 다시 당황했다.
“뭐?”
“왜 찾아오셨냐고요. 후배들 위한다면서?”
“이, 이놈이…….”
“그것도 비슷한 급인 국장님은 안 찾고, 한참 아래인 과장님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정말 아무 목적도 없었어요?”
첫 인사로 미친놈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무대포일 줄이야.
김재민은 윗선에서 보내지 않았다는 준철의 말이 이제야 믿겨졌다. 메신저로 이런 막나가는 놈을 보낼 리 없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국장님의 모든 언사가 자꾸 저희들의 ‘합리적인 의심’을 자극해요.”
“뭐?”
“자칫하면 재임 당시 모든 수사 기록이 다 뒤집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놈이 어디 겁 대가리 없이! 너 지금 내 재임 시절 자료 다 뒤지겠다는 거야? 내가 국장으로 재임했을 때 보험사 편의 봐줬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데 대청소 하다 보면 당연히 묵은 먼지 정도는 나오겠죠?”
국장은 수사국의 대통령이다.
실무진이 합당한 증거를 가져와도 국장이 덮으라면 덮는 거고, 까라면 까는 거다. 까고 덮은 사건 중엔 자신의 직관으로 덮은 일도 있고, 사안이 경미해 적당히 넘어간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 작은 일도 ‘청탁’이란 딱지가 붙으면 범죄가 된다.
“고작 그건가. 전임자 먼지 찾기? 그럼 어디 한번 실컷 해 봐. 원리원칙 엄격하게 적용하면 세상에 남아날 사람 없어.”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국장님, 이제 그만해 주세요.”
“뭐?”
“명예롭게 은퇴하셨는데, 왜 이력에 먹칠하십니까? 후배들 돕고 싶으시면 이젠 저희를 도와주십쇼.”
비수를 들이밀 땐 언제고 갑자기 유한 목소리라니.
김 국장은 노기를 가라앉히고 되물었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내일 금감원에서 제재심의 열 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미 공정위, 금감원, 금융위까지 이 징계에 동참하고 있고요.”
“그럼 징계해. 내가 그걸 말린 적 없지 않나?”
“근데 아직까지도 유경생명 반응이 없다는 거죠. 국장님도 잘 아실 겁니다. 이게 무얼 의미하는 지.”
불복하겠다는 거다.
징계 승복은커녕 어쩌면 제재심의 자체에 참석하지 않아 버릴 수도 있다. 법대로 가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릴 수도 있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시간도 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저희가 막무가내로 징계를 때리겠다는 건 아닙니다. 이게 저희가 금감원과 합의한 징계 수위입니다.”
준철의 서류를 받아 든 김재민은 뒷장만 뚫어져라 봤다.
‘기관경고’라는 글자는 빨간색으로 쓰여 있었고, 과징금 내역은 파란 글씨로 쓰여 있었다. 승복만 한다면 빨간 글씨로 끝내겠단 의미다.
“유경생명 설득해 주십쇼. 만약 이 징계에 승복하면 저희 처벌 수위도 기관경고에서 그칠 겁니다.”
“그걸 왜 나한테…….”
“반대 측인 저희가 무슨 말을 하든 저 고집 못 꺾습니다. 이건 주위 사람들이 설득해야 통하죠.”
김재민도 이젠 자기가 유경생명 주위 사람이란 걸 부정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저흰 이 사건의 빠른 종결이 목적입니다.”
준철은 고개까지 숙이며 부탁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김재민 국장 귀엔 협박으로만 들렸다.
독기 어린 눈빛과 단단한 말투가 모든 걸 말해 준다. 이게 바로 자신이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