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39
39화
뒷광고 (2)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잠을 깬 준철은 거울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대체 이게 뭐야?!”
닭살처럼 올라온 피부, 검버섯 같은 물집, 그리고 손을 한시도 가만있을 수 없는 가려움!
벌써 이틀째나 같은 증상이었다.
만신창이가 된 얼굴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준철이 무언가를 찾았다.
“마스크팩…… 마스크팩…….”
역시나 그 사기 맛집 스테이크가 원흉인가?
이 재앙은 박다영과의 뒤풀이 이후 찾아왔다.
그날 저녁부터 배가 살살 아픈 것 같았고, 자고 일어나니 얼굴에 두드러기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식중독 증상은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지 얼굴에만 나지 않는다.
그리고 두드러기가 올라올 정도면 매스꺼움, 설사, 구토를 동반하는데, 그런 증상은 전혀 없었다.
“이…… 이건 또 왜 이렇게 아파.”
급한 대로 피부 안정에 좋다는 마스크팩을 써 봤지만 마치 화상 입은 듯 얼굴이 더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더 쓴 거 맞지?”
그 일념 하나로 10분을 버티다 결국 패대기치며 일어났다. 피부안정은커녕 얼굴에 화염방사기를 맞은 듯 뜨겁기만 하다.
오늘 출근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러다간 정말 사람이 죽겠구나 싶을 정도의 가려움이다.
혹시 지난 박다영과의 뒤풀이 때문에 하늘이 노한 걸까? 본분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
새벽에 잠에서 깬 준철은 얼굴을 벅벅 긁으며 응급실로 향했다.
***
아침 일찍 출근한 반원들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이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공정위에서 안 힘든 사건이 어디 있겠냐만, 이번처럼 성취감이 눈에 보이는 사건은 드물다.
암보험사 약관을 바꾸고, 피해자들에게 요양비도 지급해 주지 않았나?
아픈 사람을 도운 일이라 그런지 이번 사건은 꼭 생명 하나를 살리고 간 기분이다.
“마무리만 확실히 하자고. 유경생명 수사 자료는 약관심사과에 넘기고, 종이로 된 자료는 파쇄. 팀장이 오면 바로 가자.”
“네-”
“속이 다 시원하네요. 개인적으로 이렇게 글자가 지고 장난치는 건 적성에 안 맞아. 차라리 지방 출장 다니면서 뛰어다니는 게 낫지.”
“솔직히 아픈 사람들 상대하니까 마음도 찝찝하더라. 다행히 잘 해결됐으니 망정이지 만약 졌으면. 어휴-”
그렇게 자축하며 짐을 꾸릴 때였다.
“오랜만에 뵙네요…….”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웬 정체불명의 사내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반원들은 엉거주춤 인사하다 준철의 모습에 놀랐다.
얼핏 비추는 준철의 얼굴이 마치 벌집이라도 쑤신 듯 초토화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팀장님? 얼굴이 왜 그러십니까?”
“뭐 잘못 드셨어요? 그거 두드러기 같아 보이는데.”
“신경 쓰지 마세요. 응급실 다녀왔는데 별거 아니랍니다.”
“별거 아닌 게 아닌데요? 요즘 식중독 무서워요. 진짜 병원 가 보셨어요?”
더 이상 숨겨 봤자 무의미.
준철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벗고 얼굴을 커밍아웃했다.
“다행히 식중독은 아니랍니다. 급성 두드러기 같다는데, 오늘 전문 피부과 가려고요.”
“아이고…….”
“됐습니다. 저희 이사 준비나 하죠.”
“네, 알겠습니다. 파쇄할 자료는 제가 다 지시했습니다. 짐만 싸세요, 팀장님.”
진두지휘를 해 준 김 반장 덕에 이사 준비는 곧 끝났다.
‘……젠장. 이게 대체 뭐람.’
응급실에서도 큰 이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설사도 없고 복통도 없으니 음식 알러지는 아니다.
정말이지 하늘이 노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본분에 벗어나는 호사를 누리니 이런 천벌이 내렸다 생각할 수밖에.
그렇게 자책하며 짐을 옮길 때 바깥에서 한 여인이 노크를 하며 들어왔다.
“어라? 한유미 과장님?”
“반가운 얼굴들 많네. 김 반장님, 잘 지냈어요?”
묘령의 여인이 등장하자 갑자기 반원들 얼굴이 팍 굳어 버렸다.
“박 조사관도 정말 오랜만이다. 한 3년 만인가?”
“대충 그 정도 될 것 같네요. DPR홈쇼핑 털었을 때니까.”
“딴 팀은 몰라도 내가 여기 사람 얼굴은 다 기억해요. 그때 우리 종합감시팀 활약이 대단했잖아?”
“활약은 무슨요. 경찰 불러서 대문 뿌수고 들어간 건 과장님이신데.”
“하하. 김 조사관은 내 추한 모습만 기억하고 있네. 점잖은 모습도 많았어!”
옆에서 오가는 얘기만 들어도 범상치 않은 사람이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이 상당하다. 가녀린 미모에서도 단단함이 느껴졌다.
인사를 나누던 그녀의 시선이 곧 준철에게 멈췄다.
“이쪽이 이준철 팀장?”
“아, 예.”
“반가워요. 나 소비자안전정보과 한유미 과장이라고 해.”
“처음 뵙겠습니다. 종합국 이준철 팀장입니다.”
“얘기 많이 들었어. 대성중공업이랑 한경모비스 건을 맡았다고? 이번 YK암보험도 자기가 맡았고.”
준철은 싸한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칭찬이 과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말인데 그 활약 나도 좀 기대해도 되나?”
“예?”
“아, 종합팀. 이사 안 가도 돼. 당분간 우리 소비자국에서 좀 더 일해 줘야겠어.”
“예, 예?!”
반원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이게 웬 날벼락이람.
하지만 그녀는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고 이들에게 서류를 보였다.
“본청에서 오더가 내려왔어. 우리 지금 뒷광고 큰 거 하나 잡았거든? 종합감시팀이 TF에 합류해 줘.”
***
그녀가 떠나가고 난 후 오 과장이 준철을 불렀다.
미안하긴 한 모양이다.
지난 수사에 대한 칭찬을 실컷 늘어놓더니 넌지시 말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아서 정신없지?”
“아닙니다.”
“나도 갑자기 본청에서 이런 오더 떨어질지 몰랐다. 아마 계속해서 칼을 갈고 있었던 모양이야.”
원래 본청에서도 이렇게 한 번에 큰 오더를 내리지 않는다.
큰 사건이 떨어질 땐 언론에서 시끌시끌하던, 내부에서 소문이 돌던 예후가 보이기 마련인데.
“과장님 근데 뒷광고는 적발돼도 처벌 수위가 미미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연루된 기업이 많은데 정말 다 처벌할 수 있습니까?”
“어. 처벌할 것 같다.”
“스트리머들도 수백일 텐데.”
“규모 추려서 상징적인 놈들만 처벌하겠지. 근데 본새 봐서는 다 처벌할 수도 있겠다.”
예상외로 오 과장의 대답은 단호했다.
진짜로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는 모양이다.
“처벌엔 중소기업도 포함입니까.”
“본청에서 적발한 금액이 600억대야. 중소기업 봐줄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이렇게 자료 넘기지 않았겠지.”
“본조사 시작되면 천억대가 넘어갈 수 있는데요.”
“웹튜브하고도 한 판 붙어야지. 모두 고려하고 있네.”
이 말엔 준철도 놀랐다.
웹튜브가 미국계 회사로 국내 스트리밍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 놈들을 상대로 전면전도 고려하고 있다니.
“물론 전면전까지 가려면 증거가 더 풍부해야겠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뒷광고가 지금 업계에선 만연하다는 거야. 본청에서 지하경제 수준이라 파악하고 있어.”
오 과장이 서류를 건넸다.
“이 명단이 주요 기업이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제품이 더 많아. 특히나 미용 상품이 제일 많이 걸렸는데, 이 중 몇 개는 식약처 안정성 통과도 못 했다. 만약 수사 시작하면……
이 팀장? 너 내 말 듣고 있어?”
과장님이 무어라 설명했지만 서류를 읽던 준철은 이미 눈이 뒤집혀버렸다.
[마이셀 선크림. 올리버 마스크팩]
의사도 알아내지 못한 급성 두드러기가 왜 생겼는지 여기에 나와 있었다.
***
“한 과장. 잠깐 얘기 좀 할까?”
“어머 오 과장님. 연락 주시지. 제가 집무실로 찾아뵀을 텐데.”
“바쁜 사람 오라 가라 해서 뭐 해. 그냥 몇 가지 물어보고 싶어서 말이야.”
“앉으세요. 근데 저 긴장해야 되는 거 아니죠? 난 과장님 얼굴만 보면 괜히 주눅 들더라.”
주눅은 무슨. 이미 얼굴엔 전의가 불타오르고 있는데.
그녀는 환한 웃음으로 환대해 줬다. 오히려 긴장한 쪽은 오 과장이었다.
연차로 보면 한참 후배지만, 매사 자신감 넘치는 그녀 앞에선 자신도 묘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사실 허위 광고로 30억대 과징금을 때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녀가 방송업계에서 미친개로 통한다는 걸 공정위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일단 문제된 스트리머랑 영상들 모두 한국광고재단에 의뢰는 해 놨어. 모니터링은 다 그쪽에서 맡아 줄 거야. 근데…….”
“말씀하세요.”
“남아날 놈이 없다더군. 우리가 적용한 이 엄격한 잣대를 업계 전체에 적용하면.”
뒷광고는 이제 너무 만연해졌다.
안 주는 놈이 바보였을 만큼.
“혹시 수사를 축소해 달라던가요?”
“대놓고 한 말은 아니지만 들어 보면 그래. 한 과장도 알잖아. 돈 받고 맛집 리뷰 써 주는 놈들 이 바닥에 널렸다는 거.”
“네.”
“그물망이 너무 촘촘하면 영세업자까지 다 걸려들어. 멸치 몇 마리는 포기하는 게 어때?”
그녀는 흐흐 웃으며 답했다.
“그 멸치들 다 모아 보면 고래보다 더 커요.”
“……진짜 다 처벌 할 생각이야? 영세업자, 중기들까지?”
“고민 중이에요. 수사 범위를 한정해 버리면 그다음엔 형평성 문제 나와서. 영세업자, 영세웹튜버, 영세블로거 봐주면 뭐 한도 끝도 없잖아요?”
“그럼 대기업들 위주로 치는 게 어때? 이번에 걸린 놈들 가전제품 리뷰로 걸린 것도 많던데.”
“전체 사건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예요. 가전제품보단 패션, 뷰티, 화장품, 의류 같은 상품이 더 많아요. 대부분 중소기업 상품이고.”
대기업은 판로가 다양하다.
지상파 광고, 연예인 협찬, 드라마 PPL.
광고 채널이 다양하니 굳이 뒷광고에 목맬 이유가 없고 이번에 적발된 액수도 브랜드 규모에 비해선 작은 편이었다.
반대로 여기에 사활을 걸었던 중기상품들은 발에 채이다시피 걸렸다.
“솔직히 여기에 걸린 중소기업들. 나처럼 작은 업체는 안 건드린다 싶으니 이래 왔겠죠. 고래가 뭐야, 멸치들 다 모으면 항공모함일 걸요.”
본보기가 필요하다.
공정위는 뒷광고를 묵인하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곳이라도 반드시 색출한다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본보기.
한 과장의 단호한 의지를 확인한 그는 설득을 포기했다.
“한 과장 그 성격은 여전하구나.”
“어디 사람 성격 쉽게 바뀌나요. 호호.”
“아무튼 너무 빡빡하게 하진 말아 줘. 본청에서 준 조사 범위가 무책임하게 넓은 건 사실이잖아? 우리 쪽 팀장들도 너무 막연해하더군.”
“염려 마세요. 저도 팀장들하고 회의 계속하면서 접점을 찾아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