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4
4화
이준철 (1)
“그럼 대성중공업 건은 이대로 끝?”
“예. 고발인이 민원 취하했습니다.”
“공정위에서 조사 안 하면 언론에 폭로하겠다더니, 갑자기 왜?”
“아무래도 그사이에 원청이랑 합의한 모양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종합감시국.
이곳은 대기업들의 갑질, 담합, 독점 등 시장의 모든 불공정행위를 조사하는 곳.
……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상 공정위 민원 부서로 통했다.
주로 갑질당한 하청들이 보복성 투서를 날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대성중공업 건도 그랬다.
하청 근로자가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전치 50주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대성중공업은 (산재)보험 처리 안 시켰고, 제보자는 이를 모두 사비로 치료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조사가 시작되고 3개월이 지난 지금.
익명의 제보자가 일방적으로 민원을 취하해 버렸다.
뒤늦게 보험 처리해 준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자기가 잘못 알고 있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럼 우리만 꼴이 우습게 됐네? 이거 산재 은폐 혐의로 검찰에 넘기지 않았어?”
“예……. 검찰에 연락해 고발 철회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기남 반장은 과장님 앞에서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이번 수사를 강력히 뜯어말렸던 사람이 바로 오 과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익명 제보 가지고 수사 함부로 하지 말라는 거야. 이런 민원 한두 번 상대해 봐?”
원청도 독하지만 하청도 수준 이하인 곳이 많다.
원청이 다른 하청사 구하면 보복성 민원을 넣기도 하고, 엄한 데서 다치고 보험 처리해 달라고 우기는 경우도 많다.
좌우간 분명 하자가 있는 주장이니 제보자가 꼬리를 감췄으리라.
“송구스럽습니다, 과장님.”
“이거 담당자 이준철 팀장이지?”
“예, 그렇습니다.”
오 과장은 짧게 혀를 찼다.
“내 긴말 안 해. 근데 김 반장도 알잖아? 행시들 나이 어려서 의협심 넘치는 거. 앞으론 이런 일 있으면 경륜 있는 사람들이 말려.”
오 과장은 하고 싶은 말이 잔뜩 많았지만 그쯤 멈췄다.
죽다 살아 돌아온 부하 직원에게 첫날부터 잔소리를 퍼붓고 싶진 않았다.
“뭐 그래도 이렇게라도 해결됐으니 다행이고. 이 팀장 오늘부터 출근이지?”
“예, 그렇습니다.”
“상태는 어떤 거 같아?”
“머리를 크게 다친 것 같더군요. 한동안은 저희 얼굴도 못 알아봤습니다.”
“쯧쯧- 사람 얼굴도 분간 못 하면 얼마나 다친 거야. 그래서 지금은?”
“재활치료하면서 많이 나아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저희 얼굴도 알아보고 업무 내용도 기억합니다.”
과장은 서류판을 돌려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검찰에 고발 철회하는 건 김 반장이 잘 처리해. 이 팀장 컨디션 회복될 때까지 자네가 팀장이다 생각하고.”
“아, 예.”
“한동안 머리 아픈 업무 안 내려 줄 테니까 뒷수습만 제대로 해.”
***
‘이준철…… 이준철…….’
준철은 한동안 어색하게 자기 이름을 되뇌었다.
재활치료까지 총 2개월.
그간 이 몸의 진짜 주인에 대해 파악했다.
지방대를 겨우 졸업하고, 행시를 패스한 인물로 직업은 공정위 사무관(팀장)이다.
특이 사항으론 가족이 없는 천애 고아라는 것.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서울대를 졸업하고 국내 최대 기업 임원까지 지낸 전생과 완전히 다른 인생이다.
‘지하철도 오랜만이네.’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서 그런가?
전생에선 불편하게 느껴졌던 평범한 일상이 외려 더 감사하게 느껴진다. 답답한 병원을 벗어난 해방감도 한몫했으리라.
“어, 이 팀장님. 출근하셨습니까?”
여의도역에서 내려 공정위 서울 사무소로 향할 때, 누군가 알은척을 해 왔다.
“아, 네. 박 조사관님.”
김 반장 다음으로 병원에 가장 많이 찾아온 사내였다.
그는 올 때마다 늘 업무 보고를 해 주었는데, 사실 한마디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덕분에 많이 회복했습니다.”
“그래도 재활치료는 좀 더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거기 오래 누워 있으면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아서요.”
“그래도 며칠 더 쉬다 오시지. 하필 복귀해도 오늘 같은 날에.”
“오늘이 왜요?”
“대성중공업 건 때문이죠. 오늘 반장님이 과장님께 보고 하기로 했습니다. 아마 수사 철회 떨어질 거예요.”
준철은 그제야 그가 매일같이 말해 주던 업무 내용이 기억났다.
대성중공업.
현재 하청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은폐했다 의심받는 곳.
제보자가 무려 전치 50주의 부상을 입었고, 산재 처리를 안 해 총 3천만 원의 치료비가 들었다고 한다.
만약 원청에서 이런 사건이 터졌으면 노조가 들고 일어났겠지만, 제보자는 을 중의 을 하청 근로자였다.
‘이런 건 절대 잡기 힘든데.’
참으로 불쌍한 존재들이다.
갑질에 대응할 만한 노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법이 유리한 것도 아니니.
현장에서 사고가 터져도 하청 사장들은 입단속하기 바쁘다. 원청에 이런 사고를 보고하면 일감을 끊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혈기 넘치는 팀장이었군. 나였으면 건들지도 않았을 텐데.’
공정위에서 조사하면? 그때 가서 보상해 줘 버리면 된다.
덮을 수 있는 건 최대한 덮어 보고, 정 문제 커지겠다 싶으면 선심 쓰듯 당근 하나 던져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무실 분위기 우중충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네. 모쪼록 죄송하게 됐네요.”
“죄송은 무슨. 어휴, 제가 첫날부터 너무 암울한 얘기만 했네요. 들어가시죠.”
***
첫 출근한 공정위 사무실은 마치 고향집에 돌아온 듯한 착각을 주었다.
이준철이란 사람의 기억이 떠올라서가 아니다.
한명 그룹에 있을 때 교무실 불려 가듯 왔던 게 바로 이곳 공정위였기 때문이다.
‘1년에 두 번씩은 꼭 왔었나?’
갑질로 소환되는 건 매년 한 번씩 있는 연례행사였다.
협력 업체 특허를 도용해 소환된 적도 있다.
가격 담합하다 소환된 적도 있다.
경쟁사 말려 죽이려고 끼워팔기, 밀어넣기 하다 불려 온 적도 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여기서 검찰까지 넘어가 본 적은 없었다. 과징금이 떨어져도 부당 행위로 번 이익금이 수십 배는 더 많았다.
‘격세지감이네. 여길 참고인이 아닌 직원 신분으로 오다니.’
그런 반가움(?)으로 1팀에 도착하니, 금방 우중충한 분위기가 엄습했다.
김기남 반장은 짧게 목례하고 준철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건강은 좀 어떠세요.”
“걱정해 주신 덕분에 잘 회복했습니다.”
“다행이군요. 그…… 말씀드렸던 대성중공업 건. 오늘 과장님께 보고드렸습니다.”
그가 내민 서류를 펼쳐 보니 ‘민원취하’라는 빨간 글씨가 도드라지게 보였다.
“다행히 그냥 끝내라고 하시더군요.”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괜히.”
“아닙니다. 팀장님께서 사고만 안 당하셨으면 충분히 해 볼 만한 거였는데요. 아무튼 저희가 검찰에 고발했던 것도 취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곧 결재해 드리죠.”
그렇게 자리로 돌아와 직인 도장을 찾을 때였다.
‘응?’
[저는 대성중공업 하청 근로자로 업무 중…… 무릎 연골 파열…… 전치 50주…….]
제보 내용 중 몇 문장이 유독 눈을 사로잡았다.
[당시 안전사고가 터지면, 원청 담당자의 진급에 방해가 된다 들었습니다.]
[하여 3천만 원가량 되는 병원비를 사비로…….]
[뒤늦게 보상을 요구했지만 산재 상해가 아니란 답변을…….]
[오히려 제가 안전 수칙을 어겼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며 부당 해고를…….]
그러던 중 이상한 증상이 찾아왔다. 제보 내용 문장들이 흔들렸고 극심한 두통과 함께 차츰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으, 윽.”
두통은 곧 신음을 참기 힘들 만큼의 통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렇게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주변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전치 50주짜리 부상이라.”
얼굴이 보이지 않는 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공정위에 신고했다던 문제는 잘 해결했어?”
“네. 그쪽 사장한테 잘 말했습니다.”
“순순히 알아들어?”
“이 사고 산재 처리하면 다음에 다른 하청사 구한다고 겁 좀 줬습니다. 그러니까 알아듣더군요.”
보고를 듣던 남자가 탁자를 쳤다.
“말세다. 하청 사장이 원청을 고발하기나 하고.”
“사정을 들어 보니 하청 사장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럼 다친 놈이 단독으로 고발했다는 거야?”
“예. 장 사장은 우리 입장을 설명하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거듭 죄송하다더군요.”
대화를 들어 보니 이게 무슨 대화인지 알 것 같았다.
“하여간 어차피 꼬리 내릴 거 왜 이렇게 복잡하게 가는지 몰라 쯧쯧. 그래서 그놈은 어떻게 잠재웠어?”
“사비로 낸 병원비 보상해 주는 조건으로 민원 취하했습니다. 아, 저희가 다 내준 건 아닙니다. 저희랑 하청사가 각각 천만 원씩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병원비는 총 3천이라며 그럼 나머지 천은?”
“안전 수칙 어긴 거 몇 개 잡아서 과실 씌웠습니다. 당사자도 군소리 없더군요.”
“흐허허. 하여간 우리 김 부장 일머리 좋아.”
사내는 비열하게 웃으며 어깨를 토닥였다. 시야가 희뿌옇게 변해 잘 알아볼 순 없었으나 실루엣은 확실하게 보였다.
“다시 말하지만 우린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 조심해야 돼. 이거 하나 산재 처리 시켜 주면 다른 하청 놈들까지 다 달라붙는다고.”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해 막고 있습니다.”
준철은 이 대화가 무슨 대화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제보 내용의 뒷얘기인 것이다.
수사 당국도, 제보 당사자도 알 수 없는 원청사 간부들의 뒷얘기.
그런 생각을 할 즈음 희뿌옇던 세상이 점차 사라졌고, 지독한 두통도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 팀장님. 왜 그러십니까.”
준철의 신음에 반원들이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하이참. 몇 달 더 쉬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머리 부상은 후유증이 오래가요. 그러지 말고 오늘 병가 내시죠.”
반원들의 걱정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몸이 뒤바뀐 것도 적응할 수 없는데, 난데없는 이상 증상이다.
‘역시. 참회하면서 살라는 건가?’
단순히 머리를 다쳐 헛것을 본 게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옆에서 들었던 듯 생생했고, 대화 내용 또한 적나라했다.
단순히 산재 처리를 은폐한 게 아니라, 사비로 낸 병원비까지 깎지 않았나?
-제발 한 번만…… 대성중공업에서 일감 끊으면, 우린 다 죽어. 이 돈으로 만족하자.
이런 대화는 듣지 못했지만, 하청 사장은 왠지 이 제보자에게 그리 말했을 것 같다.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 줘야 할 사장님이 되레 원청 편을 들어 줬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민원이 왜 중간에서 취하된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닙니다. 전 괜찮아요.”
“그래도 일단 병원이라도 가 보시는 게…….”
“그보다 반장님. 이 사건을 왜 그냥 덮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