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40
40화
뒷광고 (3)
한유미는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종합감시국과 안전정보과 열 팀을 차출해 TF를 꾸렸다.
TF는 뒷광고 추산액을 정리해 상위순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이에 발맞춰 한국광고재단은 대대적인 영상 모니터링에 들어갔다.
뒷광고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요지경이었다.
햄버거 50개, 짜장면 기네스 같은 평범한 먹방에도 각 기업의 신상품이 협찬으로 붙었다. [내돈내산] 썸네일이 붙으면 예외 없이 처음 들어 보는 화장품이다.
신기한 점은 이 홍보가 대부분 먹혔다는 것.
이들에게 언급되면 평범한 음식점도 ‘가로수길 3대 맛집’이 되었다.
“옌장할. 이게 다 주입식 맛집이었네?”
“이것도 뒷광고였어?”
TF팀은 수사를 할수록 얼굴이 어두워졌다.
본청에서 넘어온 첫 자료엔 600억대 뒷광고였는데, 1차 수사에서 이게 800억으로 늘었고, 한국광고재단에서 넘어온 자료로 곧 900억대 수사가 됐다.
그렇게 1천억 돌파를 앞뒀을 때 한유미 과장이 전 팀장들을 비상소집했다.
“오늘은 가장 근원적인 얘기 좀 해 보자. 이거 어디까지 더 드러냈으면 싶어?”
회의실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더 드러내자니 2천억까지 갈 것 같았고, 덮자니 너무 큰 실체를 봐 버렸기 때문이다.
“의견 없어?”
“과장님. 지금 드러난 것만 해도 저희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이제 슬슬 수사 범위 줄이고 처벌할 기업 선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사실 이거 다 처벌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너무 판을 키운 것 같습니다.”
“어차피 저희 중점 대상은 대기업 아닙니까. 본보기로 몇 놈 잡고 마무리하시죠.”
팀장 세 명이 기다렸다는 듯 성토하자 바로 반대 의견이 나왔다.
“그럼 중소기업들은 봐주자는 겁니까?”
“봐주자는 게 아니라 더 큰놈을 혼내야 한다는 거지.”
“솔직히 이번 수사에서 걸린 대기업이 얼마나 됩니까? 중소기업 상품이 8할인데.”
“그 8할 중에 동네 맛집이 태반이야. 우리가 영세업자까지 치면 분명 뒷말 나와. 공정위가 소상공인 쥐어팬다고.”
대기업을 우선 치느냐 중소기업을 우선 치느냐.
준철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자리를 지켰다.
타 부처라 이 논쟁에 끼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양쪽 팀장들 말이 다 엄한 소리로만 들렸다.
‘요지는 그게 아닌데? 결국엔 그놈들 쳐야 되지 않나?’
준철은 한유미 과장의 반응만 살폈다.
저 사람은 분명 이 회의에서 듣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표정을 보아하니 아직 그 말은 나온 것 같지 않다.
“아니, 송 팀장은 왜 자꾸 사람 이상하게 만들어? 내가 안 하자는 게 아니라 대기업 먼저 하자니까?”
“액수는 중기가 더 많은데 왜 대기업만 쳐요. 중소기업을 더 규제해야 합니다.”
‘어느 쪽이야 대체…… 이쯤이면 중재해 줘야 하는 거 아냐?’
둘 다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아님 아직 결정을 못 하는 걸까?
언쟁이 더 격렬해지기 직전.
그녀가 서류를 뒤적거리며 실망스런 어투로 말했다.
“대기업을 중점 처벌하자, 걸린 액수대로 처벌하자…… 다 좋네. 근데 끝이야? 다른 팀장들은 더 의견 없어?”
“…….”
“유 팀장. 어떻게 생각해?”
“아무래도 소상공인까지 다 잡아들인 순 없으니 현실적으로…….”
“그 얘긴 이미 다 나왔잖아. 김 팀장은?”
“……저도 크게 의견이 다르진 않습니다.”
대답이 시원찮을 때마다 그녀는 실망한 티를 팍팍 부렸다.
그 살벌한 시선은 이내 준철에게 멈췄다.
“이 팀장. 자기는?”
“……예?”
“우리 TF엔 소속도 없고, 계급장도 없어. 자유롭게 말해 봐.”
이 자리의 주인공은 저들 같은데, 꼭 이 싸움에 껴야 하나.
“그…… 꼭 대기업, 중소기업 나눌 필요가 있을까요?”
“무슨 말이지?”
“따지고 보면 소비자를 명백하게 기만한 홍보영상이 문제잖아요. 내돈내산 같은. 그럼 기업을 중점적으로 처벌할 게 아니라, 스피커들을 처벌하는 게 어떨지.”
시큰둥하던 그녀 얼굴이 변했다.
“스피커라면 스트리머들?”
“네. 기업이 아니라 이들을 중점 처벌해야 합니다.”
“근데 그 스트리머들 처벌하면 거기서 끝낼 수 없는데?”
“당연히 웹튜브도 처벌해야죠. 어찌 됐건 1차적인 책임은 플랫폼에 있습니다.”
그녀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듣고 싶은 대답이 드디어 나오지 않았나.
하지만 회의실 분위기는 그녀의 얼굴과 정반대였다.
“아니 지금 적을 더 만들자고요? 우리가 지금 잡아낸 기업만 해도 수십 개입니다. 이거 다 처벌할 수 있을지도 의문인데, 웹튜브를 또?”
“도의적으로 플랫폼에 책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현행법 가지고는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격렬하게 싸우던 두 팀장이 갑자기 합심한다.
준철은 난감한 얼굴을 지으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관련법 규정이…… 없을 리가 없을 텐데요.”
“이런 말까진 안 하려 했는데 업무 경험도 없으시면서 뭘 그렇게 확신합니까? 관련법 규정 없어요!”
“정 없다면 이번 기회에 만들어야죠.”
“법을 무슨 도깨비방망이로 만들어요? 이거 만들자 하면 내일 당장 나올 것 같아요?”
팀장들이 목소리를 높이자 한 과장이 나섰다.
“구 팀장, 송 팀장. 시시하게 업무 경력 얘기하진 말고. 여기 다들 나보다 경력 많은 사람 없잖아? 이 팀장, 계속해 봐. 무슨 말이지?”
이 한마디로 과장님의 의지는 확실해졌다.
“이런 사태를 업계에서도 예측했을 텐데 관련 규제가 너무 미미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웹튜브가 뒷광고를 확실하게 규제했으면 이렇게 규모가 커지지 않았을 겁니다.”
“설마 웹튜브한테 규제안 만들라고 요구하자는 거야?”
“네. 스트리머를 제재할 수 있는 규제안이 필요합니다. 이건 그들의 밥줄을 쥐고 있는 웹튜브가 직접 만들어야죠.”
이미 회의실이 조용해졌기에 준철이 마저 말을 이었다.
“플랫폼이 이런 자발적 규제안을 만들어 준다면, 굳이 소상공인들 다 처벌 안 해도 업계에 정화 바람 불 겁니다.”
한유미는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한 시간 내내 듣고 싶어 했던 말이 저 어린 팀장에게서 나왔다.
하지만 다른 팀장들에겐 결코 아니었던 모양.
“과장님! 뒷광고를 준 기업들만 처벌해도 업계 정화 시킬 수 있습니다.”
“굳이 스트리머들 처벌해서 웹튜브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그녀는 다시금 싸늘한 시선으로 두 팀장을 훑어봤다.
“기업들만 친다고 이 문제가 근절돼? 웹튜브 안 치면 결국 수박 겉핥기야. 왜 우리 팀장들은 자꾸 딴소리만 할까?”
“그게 아니라…….”
“그럼 두 팀장들이 대책 내놔 봐. 웹튜브가 규제안 만들면 놈들도 밥그릇 무서워서 함부로 뒷광고 안 받아. 아니면 우린 이런 사건 터질 때마다 쫓아다녀야 돼. 뭐가 더
효율적이야?”
회의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
웹튜브.
한국에서 치외법권을 가지고 있는 기업.
국내 스트리밍 시장은 웹튜브의 독무대고, 이는 세계 모든 나라가 겪는 현상이다.
언뜻 보면 독과점이니 규제를 해야 할 것 같지만, 이는 교과서에나 등장할 법한 얘기.
웹튜브를 규제하면 이들과 공생하는 소상공인들에게도 피해가 미친다. 뒷광고만 핀셋처럼 골라내 처벌하면 좋겠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나?
“무슨 규제든 간에 선의의 피해자는 나와! 그럼 판을 좀 줄이는 것도 고려해 봐야지. 도대체 욕을 얼마나 얻어먹고 싶어서 웹튜브랑 전쟁하쟤?”
회의가 끝난 후, 구 팀장의 언성은 더욱 높아졌다.
너무나 굴욕적인 회의였다.
새파랗게 어린놈한테 당한 것도 그렇고, 한 과장이 노골적으로 그쪽 편만 들어 준 것도 그렇고.
“송 팀장도 얘기 좀 해 봐. 이건 기업들 중점적으로 쳐야지! 딴따라들 잡는다고 해결되겠어?”
회의 내내 각을 세웠던 송 팀장도 같은 생각이었다.
“나도 좀 의아합디다. 뒷광고는 처벌 기준도 모호한데, 무슨 이 건수 가지고 싸우자는 건지.”
“대체 그 자식은 뭐야? 딱 봐도 행시 출신 같아 보이는데.”
“2년 차래요.”
“뭐? 2년 차?”
“대성그룹 산재랑 YK암보험 그놈이 맡았다나 뭐라나. 굵직한 사건 몇 번 맡더니 그쪽에선 떠받들어 주나 봅니다.”
구 팀장은 더 어이가 없었다.
제 아무리 고시 출신이라도 2년 차면 짬소위 아닌가?
“새파랗게 어린놈이 왜 건방 떠나 했더니. 뒷걸음질로 통통한 쥐 몇 마리 잡았구만?”
“쉿, 그래도 구 팀장님 목소리 너무 크다.”
“내가 뭐 틀린 소리 했어? 갑질 사건이야 거기서 거기여도 이 바닥은 우리가 전문가야.”
자존심이 상했다.
정말로 화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종합감시국은 원래 이런 부서가 아니었다.
민원이 들어오면 이를 전문 부처에게 넘기거나, 전문 부처가 인력 요청하면 여기에 보조하는 부서다.
말하자면 공정위의 공익요원 같은 것이지, 건방지게 감 놔라 배 놔라 할 놈들이 아니다.
대립하던 두 팀장의 의견이 모이자 주변 팀장들도 우려를 표했다.
“한 과장 이번엔 좀 눈이 돌아간 거 같지 않아?”
“나도 그게 좀 불안해. 진짜 웹튜브까지 칠 것 같다고.”
“그 양반이면 진짜 한판 붙을 수도 있어. 스트리머들 때려잡자는 건 웹튜브도 처벌 대상에 올리자는 거 아니야.”
앞으로 또 이런 뒷광고 문제가 생기면 수익 창출을 금지하든, 계정을 정지하든 실효성 있는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그래야 스트리머들도 뒷광고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근데 과연 웹튜브가 이 방침에 따라 줄까?
“근데 한 과장이면 웹튜브도 꺾을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그 양반 칼춤 실력은 자자하잖아?”
구 팀장이 콧방귀를 뀌었다.
“어디 동네 홈쇼핑이랑 웹튜브를 비교해. 이놈들은 국적부터가 미국 놈인데.”
“그래도 한 과장 커리어가 있는데?”
“두고 봐. 그 커리어 이 한 방에 다 무너진다. 웹튜브는 규제로 다루지 말고 살살 달래야 돼. 저놈들 규제해 봤자 소상공인들이 더 우리한테 덤빈다니까?”
구 팀장의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광고를 준 기업들만 규제하면 된다.
그것도 큰놈들 위주로.
“그럼 누가 의견을 전달해 봐. 그 여자는 직진밖에 모르잖아.”
“다 같이 가서 이의제기라도 하자. 어차피 천억대 뒷광고 다 처벌도 못 할 거야. 우리가 나서야 돼.”
쿠데타 기미가 보이자 다시 구 팀장이 말을 이었다.
“과장이랑 팀장이 싸워 봤자 뭣해. 우리만 깨지지. 이건 그냥 그놈만 꺾어 놓으면 돼.”
“그 신입 팀장 말이야?”
“그래. 그냥 나만 따라와. 저놈도 그냥 기업 처벌로 끝내자 하면 한 과장 생각도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