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41
41화
사모임 (1)
“인사가 너무 늦었죠. 반갑습니다, 구성길 팀장이라고 합니다.”
“난 송동수 팀장입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니 소비자안전정보국 팀장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있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종합국에서 해결사로 통하신다고요?”
“젊은 팀장님이 일 시원하게 잘한다고 칭찬이 자자하더군요.”
“근데…… 광고는 갑질처럼 가해자, 피해자가 명확하지 않아 애매한 부분이 있단 말이죠.”
잡설이 긴 걸 보니 불편한 얘길 꺼낼 모양.
준철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동요하던 반원들을 자료실로 보냈다.
팀장들만 남게 되자 바로 본론이 나왔다.
“이 팀장님. 옳은 일은 나중에 하고, 가능한 일부터 합시다.”
“무슨 말씀인지.”
“기업들 위주로 처벌해도 썩은 관행 도려낼 수 있어요. 잔챙이는 풀어 주고 대어에 집중하자는 겁니다. 뒷광고는 받은 놈보다 준 놈이 더 나빠요.”
반박할 틈을 주지 않고 구 팀장이 말을 이었다.
“사실 뒷광고 규제 논의는 이전에도 있었어요. 근데 그때마다 들고 일어난 게 누군지 아쇼? 매출 10억 이하 소상공인들이야. 대기업들은 광고 판로 많은데, 왜 우리들만
규제하냐고.”
“우리라곤 웹튜브 안 치고 싶겠어?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혔으니 함부로 손 안 대는 거야. 이 팀장이 이런 부분은 이해 좀 합시다.”
준철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들어도 팀장 간의 의사소통이 아니라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 같다.
“회의할 때 괜히 우리들만 치사한 사람 됐잖아? 하하.”
“하하하.”
‘뭐가 웃기다는 거야?’
어느새 편해진 두 사람의 말투도 몹시 거슬린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고시출신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게 공직사회 불문율이다. 그런데 은근슬쩍 반말이라니.
상황 파악이 끝난 준철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준철에게도 편했다.
“요지는 결국 적당히 하자는 거네요?”
“그렇지.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사만. 이름 들어 본 기업들 위주로 처벌해도 이 수사 성공한 겁니다.”
“그게 아니라 만만한 놈들만 손봐 주자 아닙니까? 웹튜브는 너무 부담스럽고.”
팀장들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기업들만 잡는다고 이거 안 끝나요. 600억짜리 수사가 한 달 만에 천억이 됐어요. 대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플랫폼을 그냥 놔둡니까?”
더 파면 2천억도 나온다.
플랫폼이 자발적 규제 안하면 이 만연한 관행을 어찌 뜯어 고치겠는가.
“플랫폼이 직접 규제안 만들어야지 이 문제 해결이 돼요. 그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그놈들이 그걸 듣겠습니까?”
“안 들으면 듣게 해야죠.”
“무슨 재주로요? 이건 보험약관처럼 국가기관이 개입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웹튜브가 처벌 규정 안 만들면 강제할 방법이 없어요.”
“멱살 잡고 내부 규정 만들었다 칩시다. 그거 안 지키면 그때 가선 어떡할 거요. 또 싸울 겁니까?”
한마디 반박하면 열 마디씩 쏘아 댄다.
이젠 귀에서 피가 흐를 것 같다.
준철은 그들의 넋두리가 끝날 때까지 듣다가 마지막에 툭 내뱉었다.
“못 하시겠으면 자료 저희한테 넘겨주세요. 제가 해 보겠습니다.”
***
팀장들과 푸닥거리를 끝낸 후 한적한 사무실.
펜대만 굴리던 준철은 긴 한숨을 쉬며 미간을 짚었다.
딴놈들은 다 돼도 웹튜브는 안 된다던 팀장들에게서, 문득 옛 생각이 들어서였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원칙.
김성균이 한명 그룹에 있을 때 가장 사랑했던 말이다.
분양가를 바가지 씌워 팔아도.
건설사끼리 입찰 담합하다 걸려도.
‘대기업 쓰러지면 밑에 있는 하청들은?’이라는 무적의 논리는 아무도 이길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넘어간 비리가 몇 번인가.
회장님의 비자금이 걸리면 해명 대신 경제 위기를 외쳤다. 화력이 부족하면 하청까지 부추겨 원청의 방탄조끼로 썼다.
갑질당하던 하청도 막상 원청이 위험해지면 제일 극성스럽게 들고 일어나 줬다.
한데 그 대마불사의 원칙이 여기도 적용될 줄이야.
웹튜브가 가진 인질은 다름 아닌 소상공인들이다.
냉정한 머리로 계산하면 팀장들의 논리가 맞다.
갑질당하던 하청이 원청을 비호했듯, 웹튜브를 규제하면 이와 공생하던 소상공인들이 더 들고일어날 것이다.
그들에겐 유일한 광고 채널 아닌가?
‘그냥 나도 못 이기는 척…….’
그런 생각도 잠시 스쳤지만 준철은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이만한 규모를 적발해 낼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이다.
한 과장이 같은 부처도 아니고 다른 팀장들 다 반대하는데 왜 자신의 편을 들어줬는지 준철은 대강 알 것 같았다.
‘액수도 크고 연루된 놈도 많아. 뒷광고 규제하기엔 이만한 타이밍 없어.’
준철은 복잡하게 쌓여 있는 서류를 뒤적거렸다.
현재 TF팀이 파악한 뒷광고를 가장 많이 받은 탑5 명단이었다.
[구독자 120만 명, 스트리머 신혜주]
-스튜디어스 출신의 코디 전문 스트리머.
[구독자 150만 명, 스트리머 오미혜]
-아이돌 지망생 출신의 명품 전문 리뷰어.
출신도, 외모도 다른 이들의 공통점은 매 방송마다 비슷한 상품을 리뷰했다는 거다.
이들이 쓰는 내돈내산 리뷰는 같은 채널이 아닐까 싶을 만큼 상품군이 겹쳤다.
‘상품이야 겹칠 수 있어도, 홍보 날짜가 이렇게 겹칠 수 있나?’
아무리 봐도 이 다섯 명은 너무 이상하다.
꼭 무슨 계모임이라도 있는 것마냥 상품군이 겹친다.
툭-
그렇게 세수나 하려 자리에서 뜰 때 의문의 서류가 하나 떨어졌다.
‘뭐야, 이건? 김미영?’
2억 짜리 혐의를 받고 있는 웹튜버였다.
먹방 웹튜버였기에 탑5 명단에 포함 안 됐지만 그녀도 최근 행적이 너무 이상했다.
‘잔챙이까지 신경 쓸 여유 없다.’
그렇게 준철이 대수롭지 않게 서류를 5인방 위에 올렸을 때.
“윽……!”
또다시 준철의 머리로 두통이 엄습했다.
***
“다들 어떡할 거야? 이젠 우리도 결정해야 돼.”
허공을 가르고 어느 여자의 목소리가 등장했다.
“이미 대답은 정해진 문제 아니야? 진짜로 고민하는 거 아니지?”
주변엔 다섯 명의 여자들이 보였고, 이들의 눈길은 모두 한 여자를 향해 있었다.
다들 어디서 많이 본 인상인데 대체 누굴까?
“좋아, 나부터 말할게. 난 이 조건 좋아. 이 광고 받을 생각이야.”
“……근데 언니 뒷광고는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솔직히 우리가 돈이 아쉬운 처지도 아니잖아요.”
“영미야. 건당 2천이 우습니?”
“…….”
“물론 지금이야 우스울 수 있지. 한 달 열심히 일하면 그 돈은 뽑아 가니까. 근데 그 인기가 얼마나 갈 것 같아?”
꼬장꼬장한 목소리의 그녀가 손가락 세 개를 폈다.
“3년. 이것도 오래 버티는 사람들 얘기야. 특히나 너처럼 먹방으로 뜬 사람들은 2년도 안 돼.”
“영미야, 그건 혜선 언니 말이 맞아. 솔직히 너랑 비슷한 시기에 뜬 사람 중에 살아남은 사람 얼마나 돼?”
“나도 먹방 콘텐츠 몇 번 해 봤는데, 진짜 반짝이라서 바로 접었어. 그게 주력 콘텐츠인 넌 더하겠지.”
막내로 보이는 여자는 자연스레 고개가 내려갔다.
이쪽 업계에서 먹방은 가장 뜨기 쉽고, 지기 쉬운 컨텐츠로 통했다. 당장 자신만 보더라도 그랬다. 구독자 100만이란 말이 무색하게 이젠 일일 조회수 10만도 간당간당할 지경이다.
“그냥 눈 한 번 질끈 감고 한마디만 해. 평소 체중 관리는 [오르비 주스]로 한다. 제품 설명이고 효능이고 다 필요 없어. 그냥 다이어트 주스는 이것만 마신다고 하면 돼.”
그러던 차에 들어온 이 광고는 도무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이 얼마나 쉬운 비즈니스인가?
먹방 끝나고 이 주스 한 잔 따라 마시는 게 광고주가 원하는 전부다.
“나도 싫다는 게 아니에요. 근데 걸리면 우리 다 끝장나는 거잖아요.”
“아이구. 영미야. 언니가 이거 열 번은 설명했다. 이 사람들 다 베테랑들이라니까?”
“진짜 그 방법대로 하면 안 걸리는 거 맞아요?”
저 질문 나오는 거 보니 이미 마음이 움직인 모양.
인상만 잔뜩 쓰던 여자는 표정을 금세 갈아치웠다.
“맞아. 절대로 안 걸리는 거.”
“근데 공정위 광고 모니터링은 홈쇼핑도 못 피해 간다는데…….”
“그건 홈쇼핑이니까 못 피해 간 거지. 우리 식대로 돈 받으면 하나님도 못 찾아.”
그녀는 친히 서류까지 꺼내 보였다.
“봐 봐. 우리가 이 광고 오케이하면 그쪽에서 영업사원들 월급으로 이 돈 처리할 거야. 그럼 그쪽 회계 자료에 문제 있겠어, 없겠어?”
“…….”
“대답 똑바로 해. 나중에 또 물어보지 말고.”
“어, 없죠.”
“그리고 그 영업사원들이 우리 계좌로 직접 돈을 입금할 거야. 근데 나중에 정말 말도 안 되는 확률로 수사 들어가면 이것도 위험할 수 있겠지?”
영미라는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차명계좌 하나 만들라는 거야. 광고주는 직원들 월급으로 세탁하고, 우린 차명계좌로 세탁하고. 이렇게 이중 세탁이 들어가는데 이 돈을 어떻게 찾아?”
“근데 만약에 광고주들이 불어 버리면…….”
“걔네들이 왜 우리 이름을 대? 만약 뒷광고 들키면 그때부턴 액수를 얼마나 줄이느냐 싸움이야. 상식적으로 걔네들이 우리 이름 팔겠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배신자가 나오더라도 우리 중에서 나오겠지.”
“…….”
“오르비 쪽에서도 그렇게 말했어. 6명 다 동의하는 거 아니면, 그쪽도 안 한다고. 그러니까 안 할 거면 그냥 확실히 말해.”
그리 말하자 슬슬 주변 여자들이 바람을 잡았다.
“영미야. 원래 처음이 힘들어.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우리 다 이렇게 해 왔고, 한 번도 걸린 적 없어.”
“네? 아니 그럼 언니들은 이미 하고 있었어요?”
“거 봐. 너도 모를 정도면 말 다 했지? 우리 4년이나 이렇게 해 왔는데?”
“4년요? 그럼 대체 얼마나 받았어요 지금까지?”
“네가 상상할 수도 없는 돈이야. 어느 새부턴 구독자, 조회수도 별로 신경 안 쓰일 만큼.”
막내가 당황하자 주변에서 웃음소리들이 들렸다.
“조회수 수익? 솔직히 난 이제 구독자수, 콘텐츠 같은 건 신경도 안 써. 어차피 평생 쓸 돈은 다 내 통장에 있거든.”
막내의 머릿속엔 조금씩 범죄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평생 쓸 돈, 컨텐츠 고민 없는 웹튜버. 늘 바라 마지않았던 인생 아닌가?
“혜선 언니, 그런데 나 한마디만 해도 돼?”
막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곱상하게 생긴 여자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