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42
42화
사모임 (2)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우리 이거 너무 많이 우려먹지 않았어?”
곱상하게 생긴 여자가 묻자 박혜선 얼굴이 험악하게 굳었다.
“늘 잘하다가 왜 이래 얘는?”
“꼬리 길면 결국 밟힌다잖아. 나도 솔직히 요새는 무서워.”
“뭐가?”
“저번에 블로거들 단속해서 전부 다 사과문 게시하고 난리도 아니었잖아. 요즘 공정위가 계속 웹튜브, 웹튜브 노래를 부르던데, 좀 위험하지 않아?”
“눈치를 살피자는 거야 아님 아예 하지 말자는 거야?”
“…….”
“공정위가 그러는 거 하루 이틀 일이야? 그래서 업계에 피바람 불고 그런 적 있어?”
갑자기 분열 조짐이 보이자 그녀의 목소리가 더 카랑카랑해졌다.
막내 스트리머를 다그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렇게들 하기 싫으면 때려 쳐. 누가 보면 나만 돈 버는 줄 알겠네.”
“그게 아니라 요즘 들어 부쩍 걸린 사람들 많아져서 그래.”
“그거야 자기 통장으로 직접 받은 멍청이나 걸리는 거고! 그래서 내가 방법 알려 주잖아. 차.명.계.좌. 이거 쓰면 절대 발견될 일이 없다고! 내 아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해.”
그녀는 탁자를 쿵, 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됐고. 난 손 떼련다. 이건 이래서 불안, 저건 저래서 불안. 내가 진짜 베테랑들 수법까지 알려 주면서 왜 이 고생을 사서 해야 되니.”
“아니, 언니. 그렇다고 뭘 또 이렇게까지 해. 민정아 네가 말실수 했어.”
“됐어. 난 안 해.”
그녀가 정말 떠날 기세를 보이자 여자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어, 언니. 죄송해요. 내가 너무 순진하게 생각했어요. 할게요. 나 땜에 괜히 다들 불안해진 거잖아요…… 뒷광고 받을게요. 나도 끼워 줘요 여기에.”
막내의 돌발 행동에 다들 놀랐다.
“……언니. 나도 미안해. 그냥 업계 뒤숭숭한 거 같아서 푸념 한번 해 봤어.”
“아, 솔직히 우린 혜선 언니 덕 많이 봤지. 사석에서 만나면 혜선 언니 듬직하다고 만날 칭찬만 하잖아.”
“언니 우리 이거 하자. 앞으로 언니가 하자는 거에 우리도 쉰소리 안 할게. 응?”
건당 2천짜리 광고.
불안하긴 해도 거절할 수 없는 매력적인 유혹이다. 심지어 뒷광고는 들통난다 해도 처벌이 애매하다고 들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어르고 달래자 그녀도 표정을 조금 풀었다.
“방금 한 말 꼭 명심해. 자꾸 쉰소리 해 대면 나도 이 짓 안 할 거야.”
***
“어서 오세요. 홍 실장님 오랜만이네요? 호호.”
“웃음이 나오십니까, 과장님…….”
“운다고 뭐 달라질 거 있겠어요.”
한국광고재단 홍 실장은 혀를 내둘렀다.
“솔직히 이번엔 우리도 놀랐습니다. 600억짜리 수사를 두 배로 키우다니.”
“칼 한번 힘겹게 뽑았는데 무만 자르고 넣을 수 없죠. 이 1,200억도 전부는 아닐 거예요.”
“진짜 2천억까지 가 버리실 겁니까? 대체 웹튜브랑 얼마나 크게 싸우시려고.”
“그 얘긴 또 누구한테 들었어요? 우리 팀장들이 가서 투정이라도 부렸나.”
“이제는 모를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근데 진짜예요? 이거 한 번에 터트리고 웹튜브 규제시킬 겁니까?”
“최종 목적은 그건데 일단 주어진 일부터 잘 해치워야죠.”
지금은 뒷광고를 명확하게 밝혀내야 한다.
1,200억에 대한 증거를 낱낱이 찾아내고, 이들의 관계가 얼마나 오래됐는지를 밝혀야 웹튜브를 규제할 근거가 된다.
“그래도 우리 홍 실장님 표정을 보니 소득이 좀 있었나 봐요?”
“기대 마세요. 소득이 아니라 벽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벽?”
“그때 말씀하신 그 5인방 있잖아요. 도무지 꼬리가 안 잡히는 놈들.”
“네.”
“저희가 탐문을 좀 해 봤는데, 수법이 대강 나왔습니다. 보통 기업이 직원들 월급으로 처리하고, 직원이 광고비를 쏴 줬잖아요? 근데 이 5인방은 한 번 더 꼬았어요. 그 받는
통장마저 차명으로 받아 버린 거죠.”
한 과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쩐지 안 나오더라니!
“그중에서도 이 여자가 제일 요주의 인물이거든요?”
명단을 받자 한 과장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스트리머 박혜선]
논현동 출신의 유명 헤어 디자이너인 그녀는 한 과장이 처음부터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안 받은 광고가 없는데, 기똥차게도 흔적이 하나 없어요. 솔직히 저희 광고재단은 이 여자 캐다가 벽을 느꼈습니다.”
“이 여자 말고 나머지 넷은요?”
“흔적이 없는 건 똑같죠. 다들 눈치 봐 가면서 광고 받은 흔적이 보이는데, 이 여자는 아니에요. 단가만 맞으면 들어온 광고는 다 받았지 싶습니다.”
주요인물답게 규모가 압도적이었다.
그녀가 올린 영상들을 토대로 뒷광고비를 추산하면 4년 동안 최소 80억. 하지만 이 큰돈을 받으면서도 흔적이 하나 없었다.
“그리고 알아보니 이 여자가 발이 넓어요. 자기 방송에 연예인 스타일리스트 데려오고, 전직 아나운서도 데려오고. 거의 뷰티 채널 사이에선 대모라고 불린답니다.”
“그럼 이 여자가 무리를 주도했을 수도 있겠네요? 혹시 이 다섯 명은 서로 아는 사이인가요?”
“아다마다요. 서로 합방한 영상만 10개가 넘습니다. 근데 한 가지 좀 이상한 건…… 이 여자 보이세요? 이 친구는 먹방하는 친구인데 갑자기 여기 꼈단 말이죠. 똑같이 다이어트
주스를 홍보하긴 했는데, 접점이 안 보여요.”
새로운 멤버냐 아님 우연히 끼어들은 거냐.
“수법을 보면 이거 분명 한통속인데.”
“됐어요, 이건. 이 여자는 뒷광고 의심액이 그리 많지도 않네.”
“네. 그건 그렇죠.”
“저희 수사는 이 뷰티 채널 대모님 중심으로 할게요. 오히려 잘됐네. 이렇게 거물 하나 걸려 주면 수사 쉽지.”
한 과장이 특유의 낙관적 어조로 말했지만, 홍 실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저희가 벽을 느낄 정도였다고. 막말로 지들끼리 싸워서 누가 다 불어 주지 않는 한, 이 여자 절대 못 잡을 거예요.”
***
“부르셨습니까, 과장님.”
“응 이 팀장. 어서 와. 커피?”
“괜찮습니다. 마시고 왔습니다.”
“한 잔 더 마신다고 죽나 뭐. 앉아. 이런 건 원래 남이 타 줘야 더 맛있지.”
과장실로 소환된 준철은 좌불안석 눈치만 살폈다.
다른 팀장들도 올 줄 알았는데, 혼자 왔을 줄이야.
“물론 공짜로 타 주는 거 아니고. 나 이 팀장한테 일 좀 더 시켜도 되지?”
그녀가 생긋 웃으며 잔을 건네자 준철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저만 알고 있어야 되는 일입니까?”
“자긴 진짜 나이답지 않게 눈치 빠르구나. 맞아. 다른 팀장들한테 아직 얘기하기 조심스러워.”
“무슨 일인지.”
“한국광고재단에서 모니터링 결과가 나왔어. 1,200억 전부.”
그녀가 서류를 건넸다.
“우리가 추산한 금액 전부 다 뒷광고로 확인됐어. 대부분은 빼도 박도 못 해. 근데 그 문제의 5인방은 여전히 안 나오네.”
“흔적이 아예 없다는 겁니까?”
“표면적으론 아무것도 없어. 물론 뒷광고를 안 받았다는 건 아니고.”
명백히 잡힌 놈들이 홍보했던 제품을 그 다섯 놈들도 똑같이 홍보했다.
하지만 기업에서 입금된 내역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럼 당연히 차명계좌로 받았겠지, 현금으로 받았거나. 이 팀장은 어떻게 봐?”
준철은 입술이 들썩거렸다.
정체불명의 대화를 듣지 않았더라면, 차명계좌 내용을 몰랐더라면, 반사적으로 튀어 나갔을 것이다.
못 잡은 놈 포기하고 잡힌 놈만 처벌하자고.
“과장님.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든.”
“이 사건 정말 일망타진할 생각이신지요.”
“무슨 뜻이지?”
“1,200억이면 이미 쥐구멍 다 찾아낸 겁니다. 쥐새끼 몇 마리 놓쳐도 충분히 성공한 수사…… 아닌가 하는.”
그녀가 묘한 웃음을 짓다 커피를 홀짝였다.
“몇 마리 놓쳐도 성공한 수사라…… 이상하다? 내가 아는 놈이 아닌데.”
“…….”
“돌려 말하지 말고 그냥 직설적으로 해. 정말 눈에 보이는 쥐새끼 잡은 마음이 없어?”
“없다기보단 밝혀내기 정말 힘들 겁니다. 당연히 차명계좌로 세탁해서 그 돈 받았을 텐데…… 그럼 영업사원들 계좌 싹 뒤져서 누구랑 연루되어 있는지 전부 파악해야죠. 계좌 압류는
물론 필요하다면 영장도 쳐야 합니다.”
이 사건은 내부적으로 반발이 많은 사건이다. 다른 팀장들까지 불렀다면 방금 같은 대답이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한번 던져 봤다. 그들이 했을 법한 말을.
‘……하셔야죠 과장님. 이건 무조건 계좌 압류하고 영장까지 쳐야 됩니다. 어설프게 치다 끝내면 안 하느니만 못 해요.’
과연 그녀의 대답은 뭘까.
정말 쥐새끼들 다 잡을 때까지 뚝심을 지켜 줄 수 있을까?
“이 팀장. 너 혹시 나 떠보는 거 아니야?”
“……예?”
“듣고 보니 묘하게 이상하네. 수사하기 어려워서 안 된다가 아니라, 하기 어려우니까 제대로 쳐야 된다. 이 말 하고 싶은 거잖아?”
“그 말씀이 아니오라…….”
“야! 제대로 말해. 그럼 내가 계좌 압류 도와주고, 영장까지 싹 밀어붙여 주면 이거 잡아낼 수 있어?”
참 사람 다루는 데 능숙한 여자다.
떠보는 걸 간파하고 되레 역으로 떠본다.
“시간만 주시면 못 할 것도 없습니다. 분명히 영업사원들 월급으로 처리했을 텐데, 이들 계좌 까면 당연히 이상한 돈 흐름 잡히겠죠.”
“그렇게 깐 계좌랑 이 5인방이랑 어떻게 엮을 거야? 이놈들이 직계가족 이름으로 차명 썼겠어? 친구나 지인같이 연관 없는 사람 나오면 더 골 아파진다.”
“그럴 땐 그냥 한 놈만 패면 됩니다.”
“뭐?”
“수법이나 뒷광고 받은 상품 종류들을 봤을 때 이 다섯 명은 분명 긴밀한 관계에 있습니다. 이럴 땐 가장 약한 부분 잡고 흔들어야죠. 하나만 무너지면 실체 곧 파악될 겁니다.”
사실은 이렇게 단정할 순 없는 문제다.
돈 받은 수법 똑같고, 비슷한 광고 받았다고 어떻게 한 그룹으로 묶을 수 있나?
“이 팀장. 너 되게 무모하구나.”
하지만 이는 이대로 한 과장 마음에 쏙 들었다.
가설을 세우고 수사 방법을 제시하는 팀장이 내 밑에 있나? 대부분은 과잉수사가 무서워서 합리적인 의심도 포기하는 놈들이다.
차가운 어투와 달리 한 과장 얼굴은 이미 씰룩거렸다.
“만약 네 말대로 하면 많이 요란해질 거야.”
“예. 언론도 눈치채고 금방 붙을 겁니다.”
“이길 자신 있어? 난 의혹만 제기하고 결국엔 못 찾아냈다, 이런 기사 읽기 싫은데.”
“밑져야 본전입니다. 어차피 저희가 다른 뒷광고 많이 잡아내서 수사 성과 가지고 욕할 사람은 없습니다.”
5인방 못 잡아내도 밑질 게 없다.
다른 놈들을 얼마나 많이 잡았는데.
“그리고 과장님. 정확히 말하면 다섯이 아니라 여섯입니다.”
“뭐?”
“아마 액수가 작아서 명단에 포함 안 시킨 것 같은데…… 이 여자도 오르비 주스 광고했고, 비슷한 수법으로 돈 받았습니다.”
준철은 주요 명단에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간 나머지 한 명을 지목했다.
구독자 100만, 먹방 전문 웹튜버 김영미.
그녀의 얼굴은 유난히도 뇌리에 생생하다. 양심을 처음 어겼을 때 나오는 오만 감정이 그녀의 얼굴에 있었다.
이들의 실체를 밝혀낼 수 있는 가장 약한 고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