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43
43화
사모임 (3)
“회계 자료를 몽땅? 아, 사업하다 보면 정산 좀 안 맞을 수도 있지! 우리 같은 영세업체가 무슨 뒷광고를 줬다 그래요?”
“직원들 월급 명세서? 당신들 무슨 국세청에서 세무조사 나왔어?”
“못 줘요. 아니 안 줘! 가져가고 싶거들랑 영장 가져오쇼!”
연루된 기업만 수십 곳이 넘는 이 대환장파티는 예상했던 대로 순탄치 않았다.
각 기업에 출두한 전 팀장들은 문전박대당했고, 때론 멱살까지 잡히며 쫓겨나야 했다.
공정위가 요구한 자료는 거의 특별 세무조사 수준이었으니, 순탄히 진행됐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완강했던 기업들의 반발은 채 이틀을 가지 못했다.
팀장들이 1차 수사에서 문전박대 당한 다음 날.
한 과장은 기다렸다는 듯 영장을 받아 왔고, 공정위는 경찰까지 동원해 성문을 부숴 버렸다.
“이쯤 되면 그냥 협조하세요. 여기뿐 아니라 지금 의심되는 기업 다 영장 나왔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격전지는 뒷광고 추산액 1위, 오르비 주스였다.
준철이 압류 자료를 내밀자 사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회사 규모가 작다고 이렇게 함부로 다뤄도 됩니까?”
“규모랑 죄가 무슨 상관입니까. 대형 홈쇼핑도 이런 일 벌이면 영장 나옵니다.”
“작은 죄야 당연히 있겠죠! 근데 우리가 정식으로 광고 제의했는데, 계약자가 표기 누락한 광고도 많습니다.”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내돈내산 후기로 둔갑한 뒷광고가 몇 갠데.
“그러면 이번 수사에서 그 억울한 부분을 밝혀 드리겠습니다. 반장님. 월급 명세서도 챙겨 주세요.”
김 반장이 컴퓨터 본체를 뽑자 사장이 극성스럽게 달려들었다.
“아니 직원들 월급 명세서까지 터는 건 너무한 거 아니요!”
“뭡니까, 또?”
“다 좋다 이겁니다. 영업 자료 다 내줄 테니 의심가면 다 까 보세요. 근데! 직원들 월급 명세서는 대외비 자료예요.”
“도대체 누가 그걸 대외비 자료라 합니까? 전 처음 들어 봅니다.”
“회사 생활 안 해 보셨으니 당연 처음 들어 볼 수밖에. 아무튼 이건 우리도 못 내줍니다.”
사장이 막무가내로 나올수록 준철의 입꼬리만 올라갔다.
이거구나.
재벌 총수들 비자금 상대하다 이들을 보니 꼭 소꿉장난처럼 느껴졌다.
“사장님. 이거 안 가져간다고 우리한테 방법이 없겠어요? 국세청에서 연말정산 자료 넘겨받으면 월급·인센 다 나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든가요.”
“참 딱합니다. 하루 이틀 시간 끈다고 딱히 대안이 나올 문제도 아닌데. 그러지 말고 그냥 기회 줄 때 말씀하세요. 영업사원들 월급으로 세탁해서 뒷광고비 보냈죠?”
돈세탁한 방법까지 정확히 거론되자 대표는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목소리는 더 커야 하는 법.
“금시초문입니다. 유도신문해서 괜히 없는 죄 끼워 맞출 생각 마쇼!”
“정 그렇게 나오신다면 그냥 국세청에 요구하지요.”
“…….”
“단 오늘 이 대가는 톡톡히 치르셔야 할 겁니다. 참고로 우린 지금 본보기가 필요해요. 그 본보기는 반드시 형사처벌까지 시킬 거예요.”
준철은 생긋 웃으며 반원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 뒤에서 울분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김 부장! 그냥 가져가라 그래!”
***
“뭘 좀 알아냈어?”
“상황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진짜로 저희만 수사한 게 아니더군요. 현재 뒷광고로 의심받는 전 업종에 공정위가 투입됐습니다. 수사 규모가 1,200억대랍니다.”
오르비 주스 김석원 사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1,200억대 수사라니.
뒷광고로 업계가 이렇게까지 시끄러웠던 적이 있던가?
“진짜로 전 업종에 다?”
“예. 매출 10억이 넘으면 맛집까지 털었답니다.”
“하아…… 다른 곳은?”
“저희랑 비슷합니다. 직원들 월급 명세서랑 백화점상품권까지 털었다는군요. 아무래도 수법은 다 파악된 것 같습니다.”
백화점 상품권까지 털었다는 건 이미 현금 흐름을 알고 있단 뜻.
수법이 드러났으니 잡히는 건 시간문제다.
“김 전무. 우리 뿌린 돈 얼마나 되지?”
“30억 정도 됩니다.”
“그중에서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그중 20억은 스트리머 통장에 직접 입금했습니다. 아니면 그들 매니지에 입금했거나.”
“나머지는?”
“나머지는 그 사람들입니다. 차명계좌로 입금해 달라 했던 사람들.”
“그럼 그 돈은 안 걸릴 수 있단 뜻이네?”
사장님의 돌발 발언에 임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사장님. 설마 수사 협조 안 하시겠단 겁니까? 차라리 이실직고하고 선처를 바라는 게 나은…….”
“선처?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누가 선처해 준대?”
“…….”
“선처라 해 봤자 과징금 몇억 깎는 게 전부야. 근데 우리가 그 몇 푼 깎는다고 돼?”
뒷광고 30억, 이것도 작년 치만 계산한 돈이다.
오르비 주스가 2년 동안 뿌려 댄 돈은 60억을 넘고 이 돈은 업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액수였다.
회사가 주저앉는 건 자명한 일.
“시답잖은 소리 말고 내 말 잘 들어. 이제부턴 얼마나 숨기느냐 싸움이다.”
“…….”
“김 부장, 입단속은 자네가 해. 돈세탁해 준 영업사원들한테 뒷돈 챙겨 주고 살살 타일러. 어차피 걔네가 불면 지들만 손해 아니야. 배달부가 그놈들인데?”
“……알겠습니다. 잘 이해시키겠습니다.”
사장은 그래도 불안해하는 임원들에게 일갈하듯 말했다.
“이 사람들아 소나기는 그냥 피해 가면 돼. 공정위가 언제까지 저 짓 하겠어? 반짝이야, 반짝!”
***
오르비 주스.
마시기만 해도 장 트러블이 개선되고, 노화 방지 효과가 있으며, 살까지 빠지는 종합비타민음료.
안 먹는 것보다 좋은 다이어트가 어디 있겠냐만 이 비타민 음료는 출시 1년 만에 완판 행렬을 이어 나갔다.
물론 그 비결은 효능보다 소문에 있었다.
-아셀로티닐? 어? 이거 피부 노화 방지해 주는 성분 아녜요? 물론 제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나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유산균 3년 동안 먹었잖아. 근데 병원 가니까 의사 쌤도 그냥 이거 먹으래.
적절한 허위 광고까지 곁들여 셀럽들이 친절히 홍보를 해 주었기 때문이다.
뒷광고의 세계는 다시 봐도 오묘하다.
알고 보면 저렇게 속 보일 수가 없는데. 모르고 보면 정말 입소문 상품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아마 그 위력은 저 해시태그에 붙은 ‘내돈내산’이란 글자 때문이리라.
준철은 그렇게 또 날밤을 새우며 모니터링을 했지만, 한 가지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이 다섯 명이 전부가 아니야…… 액수가 너무 비어.’
오르비 주스는 스트리머 사이에서 안 마신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압수한 영업 자료와 명단을 비교해 보면 비는 액수가 너무 많았다.
다섯 명이 받았을 광고비를 넉넉히 잡아도 불가능한 액수다.
‘이럼 차명계좌로 받은 놈들이 더 있다는 건데…….’
대체 얼마나 연루되어 있다는 건가?
내가 본 정체불명의 대화도 결국 체급이 가장 큰 다섯 놈이지, 전부는 아니었나?
긴 시간 고민 끝에 준철은 한 가지를 인정해야만 했다.
아무리 공정위가 칼을 빼 들었어도 다 잡아내긴 힘들 것 같다.
‘적당히 처벌하고 웹튜브한테 규제안 만들라 해야 돼…… 플랫폼이 제재 안 하면 나중에 이런 일 또 일어나.’
그때는 더욱 잡기 힘들 것이다.
범행 수법은 늘 진화하는 법이니까.
“팀장님. 전부 파악했습니다.”
그리 결론 내리고 있을 때 김 반장이 보고서를 들고 왔다.
“확인해 보니까 진짜 말도 안 되더군요. 이게 오르비사 작년 임금 내역입니다. 대리급 인센티브가 2억 이상으로 결재되어 있네요.”
중소기업 대리사원의 인센티브가 2억이라.
“근데 좀 이상한 부분도 있습니다. 계산해 보면 총 10억이 비는데…… 광고 단가가 건당 몇억씩 하지는 않았을 거란 말이죠.”
“대충 얼마나 받았을 것 같나요?”
“많아 봐야 건당 2천? 뭐 하여튼 이것저것 다 계산해도 이 10억은 안 나옵니다.”
준철은 씁쓸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내가 한 생각을 김 반장이 못 하진 않겠지.
“이건 이 다섯 놈들이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떻게 할까요? 오르비 주스 마신 놈들, 언급한 놈들 싹 다 모니터링해서 더 파 볼까요?”
“어차피 다 못 잡아요. 처벌도 체급이 큰 놈들 위주로 이뤄질 거고.”
“그건 그렇죠.”
“타 부서는 어때요? 구 팀장님하고 송 팀장님 쪽도 수사 다 됐습니까?”
“네. 투덜거려도 할 일은 다 했더군요. 내용은 저희랑 똑같았습니다. 다만 그쪽도 비는 돈이 너무 많다고…….”
김 반장이 그리 말하자 반원들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아무리 넘어가도 비는 돈을 이렇게 둘 순 없는데…….”
“맞아요. 차명계좌까지 쓸 정도면 진짜 악질 아닙니까? 반드시 잡아야죠.”
“팀장님. 일단 영업사원들 소환시키죠.”
준철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중에 보고요. 일단은 이 여자부터 소환해 주세요.”
서류를 받아든 김 반장은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이건 누굽니까?”
“김미영이요. 그 웹튜브 채널 이름이 먹깨비였나…… 구독자가 한 100만 정도 되는데.”
“아니, 이번 사건과 연관 없는 사람 아닙니까? 5인방도 아니고 뷰티 웹튜버도 아닌데. 이 사람 오르비 주스 광고한 거 말고는 별로 연루된 흔적도 없습니다.”
정체불명의 대화에서 본 사람이라 할 순 없었기에, 준철은 가장 편한 변명을 찾았다.
“저도 이유는 모르겠는데, 과장님이 특별히 예의주시하라더군요.”
“아…… 한 과장님이 뭐 발견한 내용이 있나 보군요?”
“네. 아무래도.”
“뭘 발견한 건지 좀 공유해 주시면…….”
“저한테도 함구하는 걸 보니 분명 큰 건 같습니다. 일단 소환해 주세요.”
다행히 과장님의 지시라는 말 한마디에 상황은 정리돼 버렸다.
반원들이 뿔뿔 흩어지자 준철이 펜으로 책상을 툭툭- 쳤다.
‘이 여자가 식스맨이지. 뒷광고 받을 때 제일 확신 없었고.’
여기까진 정체불명의 대화에서 확인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제부턴 아슬아슬한 유도신문과 넘겨짚기식 수사로 파헤쳐야 한다.
‘수위 조절 잘못하면 되레 내가 위험해지는데…….’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서류를 뒤적거릴 때, 문득 과거 생각이 스쳤다.
-일본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 빨간불도 여럿이서 건너면 파란불이 된다. 이거 다 업계에서 비일비재한 일이야. 걸려도 그냥 다른 놈들한테 묻어가면 돼.
그녀는 과거의 김성균과 너무나 닮은 여자다.
-능력보다 중요한 게 수완이야! 그냥 남들도 다 받는 광고니까 걱정 말고 해.
구독자 200만 스트리머 박혜선.
이 여자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