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44
44화
해명 영상 (1)
늘 그렇듯 구린내를 가장 잘 맞는 건 서초구에서 하숙생활 하는 기자들이다.
공정위가 기업 수십 곳에 압수수색을 벌였을 때.
영장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툭툭 발부됐을 때.
전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어렵지 않은 결론에 이르렀다.
“이거 기획수사다, 그것도 최소 몇백억대! 공정위가 무슨 자료 들고 있는지 파악해야 돼!”
안테나를 모두 동원하여 알아낸 결과는 그들조차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 시장 규모가 무려 1,200억대.
알 만한 스트리머는 죄다 나왔고, 그들이 홍보한 제품엔 없는 제품이 없었다. 실명이 밝혀지는 건 곧 시간문제.
치열한 취재 열기 속에 명단을 먼저 입수한 언론사는 일제히 이를 특종으로 다뤘다.
[공정위, 뒷광고에 칼 드나?]
[이미 내부에선 TF팀까지 갖춰진 걸로 알려져]
[웹튜버 O씨, P씨, D씨 소환]
[공정위, 뒷광고 시장 최소 천억대로 추정]
이를 기점으로 한국의 보위부라 불리는 네티즌수사대가 출범을 알렸다.
사실 이 사건은 국정원, 경찰보다 이들에게 더 적격인 무대였다. 그 방송을 시청한 주력 소비층이 바로 이들이었으니.
검찰이 패션 브랜드 한 곳을 소환하자 곧 이 브랜드를 한 번이라도 언급했던 셀럽들의 명단이 나돌았다.
같은 방식으로 식품, 음료, 전자제품 등에 불이 옮겨붙었고. 규모가 커지자 이 사건엔 웹튜브 게이트란 이름까지 붙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그렇게 국민들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이 사건의 몸통으로 꼽히는 박혜선이 방송을 켰다.
“아이고…… 요즘 저희 업계에 참 말이 많죠? 분위기도 뒤숭숭하고.”
의혹 보도 이틀 만에 방송을 킨 그녀는 팬들의 반응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도네이션 채팅에선 욕만 나왔고, 채팅창은 전부 ‘해명해’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해명해. 얼마나 받았어?
?지금까지 내돈내산 리뷰 다 뻥카였음?
?!ㅎㅁㅎ! 오늘은 또 무슨 제품 팔아먹으려고.
“뭐, 여러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부터 말씀드릴게요. 나는 아니에요.”
?????
??!?!?!
“뒷광고 안 받았다는 거죠. 내돈내산 리뷰는 다 제 돈으로 사서 준 상품이에요.”
?ㄹㅇ?
?진짜?;;
?말이 되냐 ㅡㅡ 네가 리뷰한 제품 중에 이미 뒷광고 확실해진 상품이 몇 갠데?
“당연히 그중에는 저도 속아서 산 제품도 많더라고요. 말하자면 저도 사실 피해자에 가까워요.”
?아……
?대형 웹튜버도 못 피해 갔구나……
?그럼 왜 그간 입 다물고 있었냐? ㅡㅡ
“솔직히 업계 동료들 다 문제 되고 있는데, 나는 안 했다고 밝히기 미안하더라고요. 옳고 그름을 떠나 누구 염장 지르는 것도 아니고. 근데 여러분. 솔직히 제가 받았겠어요? 제
수입 전부가 다 여러분들이 주신 관심과 도네로 이뤄지고 있잖아요. 뒷광고 받고 홍보하면 내가 그런 여러분 등처먹는 꼴이잖아요.”
그녀가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채팅창 온도는 싹 바뀌었다.
?키야~ 속 시원하다.
?그래. 이게 참된 해명이지.
“난 그렇게 사람 뒤통수치고, 뺏겨 먹는 사람 아니에요. 그래도 물론 조심은 해야겠죠? 관리자분들하고 당분간 영상 내리기로 했어요. 문제 된 기업들은 솎아 내야죠. 아우- 이 말
한마디 하기 너무 힘들다.”
?아니에요! 잘못한 거 없음 이렇게 당당히 해명하면 되죠.
?언니, 내린 영상 금방 올려주세요.
“나 함부로 내리면 오해 살까 봐 일부러 해명 방송까지 한 거야. 호호.”
?뒷광고 처먹은 놈들아 이 영상 보고 배워라. 이게 해명의 정석이다!
?눈나. 힘내여. 0ㅅ0 수사 규모 크다 보면 선의의 피해자도 생기기 마련……
?얼른 돌아와여! 저 소개팅 메이크업 가르쳐 주기로 하셨잖아요. ㅠ.ㅠ
“미안해~ 언니 오빠들. 더 좋은 콘텐츠 가지고 복귀할 테니까 좀만 기다려 줘용.”
카메라가 꺼지자 박혜선은 조용히 담뱃불을 붙였다.
“어휴-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들다.”
일단 호구 새끼들 잠재워 놓긴 했는데, 앞으로가 문제.
수사가 더 확대되면 꼬리가 잡힐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오늘 사과 영상이 흑역사가 되겠지.
‘쫄지 마. 이걸 어떻게 잡아?’
그녀는 담배를 종이컵에 지져 끄며 전화를 들었다.
“어, 난데. 방금 내 방송 봤지? 일단 다들 모여 봐.”
***
박혜선은 성격대로 넘어갔지만, 이 사건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루는 사람도 있었다.
“하아…….”
김미영은 인생 처음으로 끌려 온 검찰 취조실에서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깟 주스 한 잔 때문에 이 지경까지 올 줄이야.
시작은 그 주스 한 잔이었지만, 한 번 맛본 선악과는 좀체 끊기가 힘들었다.
처음으로 양심을 어기니 그다음 들어오는 맛집 홍보, 건강식품 등은 별 죄책감이 들지도 않았다.
그렇게 식음료를 넘어 의상, 메이크업 광고까지 해치우며 뒤로 번 돈이 2억. 적다면 적겠지만 카메라 앞에서 음료수 몇 번 마시는 대가로는 과분한 돈이다.
하지만 막상 취조실에 도착하니 말로 형용하기 힘든 공포가 엄습했다.
지금까지 쌓아 왔던 인기와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질지 모른다.
-명심해! 한 사람이라도 배신하면 우리 다 죽는 거야! 절대 우리가 받은 돈은 새어 나가선 안 돼.
흔들릴 때마다 박혜선의 말만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안녕하세요, 김미영 씨. 공정거래위원회 이준철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취조실에 들어온 준철은 한눈으로 그녀를 스캔했다.
정체불명의 대화에서 어렴풋 봤던 얼굴 그대로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짓과 말투는 그녀가 긴장하고 있단 걸 말해 주었다.
“상황 다 아실 테니, 긴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어제 올린 해명 영상. 진짜 사실입니까?”
“……예?”
“어제 해명 영상 올리셨잖아요. 미영 씨는 뒷광고 안 받으셨다고.”
“……네. 뭐 문제 있나요?”
“시기가 참 묘하더군요. 박혜선 씨가 처음으로 해명 영상 올리니까 우르르 따라서. 마치 꼭 누구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것 같단 말이죠.”
“무슨 말씀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만하시라는 겁니다. 지금 당신 여섯 분들이 저희 주요 수사 대상입니다. 이미 물증 다 잡고 소환한 건데, 왜 뻔뻔한 영상을 올리셨어요?”
침착하려 애썼던 김미영의 얼굴이 완전히 무너졌다.
세상에나! 주요 명단이었다니!
“무, 무슨 말이에요! 전 뒷광고 받은 적 없어요. 그 사람들도 몰라요.”
“이럼 얘기 복잡해집니다.”
“증거 있어요? 내가 연루돼 있단 증거?”
떨리던 김미영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물론 아직은 없죠. 돈세탁을 참 깔끔하게 하셨더군요. 차명계좌로 영업사원들한테 돈 입금받지 않으셨습니까?”
“마, 말도 안 되는 얘기 하지 마세요. 난 그런 게 뭔지도 몰라요.”
“몰랐던 걸 누가 알려 줬잖아요. 그쪽 무리 중에 맏언니, 박혜선 씨라고.”
김미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얘기는 부모님도 모르는 얘기다. 그걸 이 사람이 어떻게 알고 있는가?
“저희가 바보는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 연루된 사람들이 수십 명인데, 정말 한 사람도 이 얘길 안 했다고 생각하세요?”
“누가 그런 말을…….”
“돈을 쏴 준 영업사원부터, 그 무리에 있는 동료까지. 지금 엄청나게 흔들리고 있어요. 왜 혼자만 사태 파악 못 하세요.”
이미 자백이 나왔다고 떠보자 그녀는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래서 저희가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미영 씨. 그 사람들 중엔 받은 액수 가장 적으시죠? 수사에 협조해 주면 우리 화살은 전부 그쪽으로 몰릴 겁니다.”
“…….”
“처음으로 자백한 사람에게 정상참작해 주겠단 겁니다. 과징금 액수 줄여 주고, 언론에도 관련 인물 얘기는 별로 나가지 않을 겁니다.”
김미영은 사색이 되었다.
그녀는 이미 네티즌 수사대의 위엄을 절감하고 있었다.
단서가 하나라도 잡힌 스트리머들은 정치깡패 이정재처럼 넷상에서 조리돌림을 당했다.
만약 공정위가 자신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를 계속 흘리면 어떤 꼴을 당할지 자명하다.
“처음으로 자백한 사람…… 이건 무슨 뜻이죠?”
“들으신 그대로에요. 저희가 이 제안을 미영 씨한테만 하는 게 아닙니다.”
“설마 이미 자백한 사람도 있나요?”
“기밀이죠. 근데 제가 미영 씨 무리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아실 겁니다.”
그렇게 떡밥을 투척했지만, 그녀도 바보는 아니었다.
정말 자백이 나왔다면 수사처가 이렇게 회유를 할 리 없다.
명백한 증거가 안 잡혔거나, 무언가 찝찝한 게 있으리라.
“도통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가 핸들을 꺾자 이번엔 준철의 얼굴이 바뀌었다.
“선생님. 혹시 다른 사람들이 절 음해하는 거 가지고…….”
“영미야 건당 2천이 우습니. 너는 그 인기가 언제까지 갈 것 같아?”
“……?!”
“언니 죄송해요. 내가 너무 순진하게 생각했어요. 할게요. 뒷광고 받을게요. 나도 끼워 줘요, 여기에.”
입을 벌린 채 굳어 버린 그녀에게 준철이 쐐기를 박았다.
“미영 씨. 이게 저희가 받은 식약처 소견서거든요.”
“…….”
“지금 미영 씨가 홍보했던 건강식품, 화장품 등 품목 5가지가 식약처 안정성 검사 통과 못 했어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죠?”
“그, 그럴 리가 없어요! 제품은 다 안전했다고…….”
“그렇게 안전하고 좋은 제품을 뒷광고로 팔았을까요? 이 내용 모두 언론에 나가면 이젠 피해 사례 속출할 겁니다.”
식약처 소견서를 읽던 그녀는 고개를 떨구다 결국 눈물을 흘렸다.
조금 짠하기도 했다. 아직 그런 비열한 세상을 알기엔 어린 나이인데, 왜 그런 무리들과 어울려서…….
“그럼 혹시 저에게도 책임이 있나요?”
“예?”
“만약 제품 때문에 피해자가 생기면, 저한테도 책임이 있냐고요. 저는 그냥 홍보만 해 준 게 다예요. 저까지 책임져야 되는 건 아니죠?”
하지만 뒤이어 나온 그녀의 말은 준철의 동정심을 산산조각 내었다.
“솔직히 내가 사라고 한 건 아니잖아요. 제품 홍보만 받은 거지.”
“……사람 생명에 치명적인 결함까진 아니에요. 까다로운 높이를 충족 못 한 정도지.”
“그럼 없는 거죠?!”
“대답을 들어 보고 저희가 판단하겠습니다. 만약 식품 제조에 깊게 연루되어 있으면 당연히 책임이 있겠죠.”
“식품 제조에 참여한 적 없어요. 제가 받은 건 뒷광고가 전부예요.”
“정말입니까?”
“네. 차명계좌로 받은 거 맞고요. 당시 언니들이랑 나눴던 대화 기록이 있어요. 저희끼리 모여 있었던 단톡방은 폭파했는데 혹시 몰라 대화 기록도 캡쳐해 놨어요.”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내는 그녀를 보며 준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왜 몰라 봤을까?
그 무리에 끼워 달라 애원할 때부터 가능성이 보인 여자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