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47
47화
됐지? (2)
“김성균 씨, 그…… 자세는 좀 똑바로 고쳐 앉지 그래? 여기가 동네 다방도 아니고.”
“검사양반. 그만합시다. 영장 기각된 거 보면 알잖아? 이 사건 어차피 재판까지 못 간다는 거.”
“뭐?”
“벌써 같은 얘기만 다섯 번째요. 내부 계열사에 일감 몰아준 적 없어. 당신들이 잘못 파악한 거야.”
검찰 취조실엔 수없이 들락거렸지만 아직까지 그날은 똑똑히 기억한다.
검사 앞에서 처음으로 시건방을 떨어 봤던 날이었으니까.
“이게 일감 몰아주기가 아니다? 부회장 지분이 99%인 자회사로 갑자기 일감 다 밀어줬던데?”
“믿을 만하니까 일 줬소.”
“설립 2년 차 회사가? 헛소리 말고 그냥 솔직하게 말해. 한명 그룹 지금 승계 작업 들어갔지? 아들들 회사로 일감 몰아주면서 기존 하청들 털어 냈잖아.”
정확히 맞는 얘기였다.
“아니야.”
라고 우기면 끝나는 문제기도 했고.
“이봐, 진짜 검찰이 진짜 삐꾸로 보여?”
“그럼 그냥 상속 작업이라 칩시다. 2세들 횡령 비리 사건도 아닌데 뭐 대수라고.”
“대수? 네들이 일감 몰아주면서 털어 낸 하청이 몇 갠 줄 알아?”
“그걸 꼭 알아야 됩니까.”
아직도 그 담당 검사의 얼굴은 잊을 수가 없다.
“기소할 테면 하쇼. 과징금 몇 천 나오면 내지 뭐. 근데 당신도 잘 알잖아. 이거 법대로 가도 처벌 미미하다는 거.”
“앉아! 누가 함부로 일어나래!”
“앞으로 괜히 겁준다고 영장 신청하는 짓 그만하쇼. 우리도 선순데 무슨 그거에 쫄 줄 아나? 알아들은 줄 알고 이만 일어납니다.”
그때 그 검사는 무슨 기분이었을까?
***
“유해 성분까지 검출된 마당에 솜방망이 처벌로 끝낼 순 없습니다. 이 5인방은 중죄로 다스려야죠.”
“처벌 수준이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되레 저희가 욕먹습니다.”
“일부 여론은 이미 저희를 질타합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공정위는 뭐 했느냐고…… 보여 주기식 수사라 해도 이 5인방은 기소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박혜선의 자백으로 모든 정황이 완성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관련자 처벌.
실체가 명확해지자, 이번 사건에 소극적이던 팀장들도 강력 처벌을 주장했다.
하지만 준철은 회의에 좀체 집중할 수 없었다. 아직도 그 여자에게 느꼈던 굴욕감이 지워지지 않았다.
-고작 이거 가지고 기소는 무슨! 어차피 난 두 달 있다 돌아와.
뒷광고로 기소당한 사례는 아직 대한민국에 없었다.
안타깝다. 방송국처럼 거대 ‘법인’이었다면 처벌 수위가 셌을 텐데.
지금은 10억짜리 도둑 하나를 잡은 게 아니라, 천만 원짜리 도둑 100명을 잡은 격이다.
아마 이런 모든 상황을 알고 있으니 취조실에서 그리 당당했겠지.
“이 팀장!”
“예, 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아…… 그게 저.”
“얼씨구. 이제 수사 막바지라고 회의에서 졸아? 고작 야근 몇 번 했다고 젊은 팀장이 그러면 어떡해,”
한 과장의 핀잔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회의라곤 하나 사실 오늘 이 자리는 TF해산식이나 다름없다.
시급하고 어려운 문제가 다 끝났으니, 다들 얼굴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차명계좌 쓴 놈들 어떻게 할 거야? 박혜선이랑 이놈들 싹 다 기소해?”
“과장님. 이 팀장 대답이야 빤하지 않습니까? 우리 TF에서 가장 강경파가 누군데.”
“맞습니다. 회의 내용 구태여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준철의 답변은 모두의 예상을 깼다.
“……기소한다 해도 검찰 쪽에서 유예할 것 같습니다.”
“기소유예?”
“예. 전체로 봤을 땐 크지만, 개인 단위로 보면 크지 않으니까요. 피해 정도, 반성, 수사 협조 등을 고려해 봤을 때 기소 단계에서 정리될 겁니다.”
한 과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고 이렇게 싱겁게 끝내? 망신 한 번 톡톡히 줄 수 있는 이슈인데, 써먹는 게 좋지.”
“냉정하게 말해 박혜선 자백으로 이 차명계좌 명단 다 파악했습니다. 자백을 했는데도 저희 처벌이 과하면, 나중엔 이런 자백도 안 나올 겁니다.”
굴욕감은 차치하자. 그녀가 도움이 됐던 건 사실이다.
어차피 기소해 봤자 유예로 끝날 거 모양 뺄 필요 있겠나.
“그리고 이 5인방들 기소하면 형평성 문제, 안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럼 그때부턴 누굴 얼마나 처벌할지 가지고 또 골머리 앓아야 합니다.”
준철이 의외의 말만 계속하자 팀장들도 웅성거렸다.
국민 눈높이에 맞춘 처벌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형평성과 공정함이다.
“다른 팀장들은 어때?”
“듣고 보니 이 팀장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 여자가 이거 안 가져왔으면 저희 아직도 수사했어야 하니까요.”
“그래도 상징적인 놈들은 좀 강하게 처벌해야죠. 하다못해 차명계좌 쓴 놈들이라도.”
“아서. 차명계좌가 대포통장도 아니고. 처벌 수위 미미한 건 마찬가지야.”
“어차피 안 될 싸움이면, 적당히 봐주는 척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그 뒤 사소한 논쟁이 오가긴 했지만 결론은 쉽게 모였다.
“봐줄 건 봐줍시다. 대신에 불법 수익은 전부 다 추징해야죠.”
“벌·과징금은 최대치로 부과하겠습니다.”
한 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나눴다.
“그럼 각 팀장들이 기업들 범위 나눠서 벌과징금 매겨. 연루된 놈들 많아서 형평성 문제 끊임없이 나올 거야. 논란 나오면 안 되는 거 알지?”
“네. 근데 과장님. 식약처 경고받은 상품들 회수는…….”
“우리 공정위 내에 대기하고 있던 다른 팀장들도 거들 거야. 싹 다 회수하는 건 물론 반품 처리도 문제없게 해.”
“알겠습니다.”
그렇게 회의는 막힘없이 끝났지만 준철은 한 과장의 부름에 남아야 했다.
“담당 검사한테 직접 들었어. 그 여자가 까탈 심하게 부렸다면서?”
“……죄송합니다.”
“그것 때문에 그런 거면 그냥 허심탄회하게 말해 봐. 박혜선이 진짜 기소 안 해도 돼?”
“그 여자가 까탈 부려서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이 여자가 자백해 줘서 수사 빨라진 건 사실입니다. 덕분에 못 잡은 명단도 잡았고요.”
한 과장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직 찝찝함을 지우진 못했다.
“그럼 오늘 왜 그렇게 뚱한 표정으로 있었는지 설명해 봐.”
“아무래도 그 여자도 아는 모양이더군요.”
“뭘?”
“저희 처벌이 미미할 것을요. 자기가 내고 싶은 벌과징금 액수도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1억. 아마 이 돈도 변호사랑 다 상의하고 내린 결론일 겁니다.”
뒷돈으로 챙긴 돈은 10억이 넘는데 얼마를 과징금으로 매길 것이냐.
법에는 5억 이하의 과징금으로 명시돼 있지만, 진짜로 5억을 받아내긴 힘들다.
“이 팀장이 생각하는 적정가는 얼마야?”
“많아 봤자…… 2억? 3억? 솔직히 이 금액도 재판까지 가면 장담 못 합니다.”
선례라도 있으면 좀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이번 사례가 처음이다. 지금 내리는 처벌이 앞으로의 기준점이 되겠지.
“실효성이 없다 이거지? 어차피 남겨 먹은 돈이 더 많으니까?”
“네. 솔직히 과징금도 이 여자에겐 그리 아픈 처벌이 아닐 겁니다.”
진짜로 단죄할 수 있는 방법.
애석하게도 그건 공정위에 없다. 검찰에도 없고.
“결국 웹튜브 쳐야 된단 얘기군.”
한 과장은 어렵지 않게 말했다.
어차피 여기까지 생각하고 이 사건 키워 온 것 아닌가.
이번 사태에 가장 큰 분노를 표출하는 건 시청자들이었고, 그들도 플랫폼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미 여론은 많이 기울었다.
이 역대급 사건을 두고 세간에선 웹튜브 게이트라 불렀다.
“어떻게 했음 좋겠어? 이 팀장이 생각하는 구체적 규제안 있나?”
“뒷광고 적발시 0개월간 수익 창출 정지, 혹은 계정 정지. 이게 그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가장 큰 대책입니다.”
“0개월이 구체적으로 몇 개월인데?”
“그건 좀 여지를 남겨 두면 어떨까 하는…… 먼저 그쪽에서 어떤 반성문 가져오는지 지켜보시죠.”
한 과장이 웃었다.
“차라리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지. 걔네들한테 규제안 가져오라하면 분명 또 헛소리 늘어놓을 텐데.”
“웹튜브도 안팎으로 눈치를 보고 있으니 막무가내로 나오진 않을 겁니다.”
한동안 생각하던 한 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쏟아진 뉴스가 상당하고, 앞으로 쏟아질 뉴스는 더욱 상당하다.
웹튜브 놈들도 분명 이를 의식하고 있겠지.
“좋아. 그럼 자료 정리해서 웹튜브 가자. 아, 그놈들은 내가 직접 상대할 거야. 자기가 따로 준비할 필요 없어.”
“네. 근데 그…… 바로 가실 겁니까?”
“왜? 호랑이 잡으러 가는데 방망이 하나만 달랑 들고 갈까 봐?”
“그건 아닙니다만.”
“걱정하지 마. 엽총에 덫 깔고 산에다 불까지 피울 거야. 호랑이들 안 내려올 수 없을걸.”
그녀는 생긋 웃으며 서류를 건넸다.
늘 느끼는 거지만 어쩔 때 보면 참 소름 끼치는 상사다.
해맑게 웃는 얼굴로 어쩜 저리 오싹한 얘길 잘할까.
***
한 과장은 전략가였고. 주어진 기회를 함부로 쓰지 않았다.
웹튜브를 단순히 힘으로 누르는 게 아니라, 그 사전 작업을 치열하게 해냈다.
공정위는 박혜선 명단을 언론에 슬쩍 흘리며 예열 작업을 시작했다.
[공정위, 차명계좌 상당수 발견]
[파도 파도 끝이 없는 수사, 어디까지……]
범죄 사실이 모두 공표되며 어떤 웹튜버인지 특정할 수 있는 단서가 언론에 떠돌았다. 이미 불붙은 여론에 부채질 하는 격이었다.
하지만 이는 겨우 사전 작업의 시작.
[식약처, 관련 상품 중 다수 유해 성분 검출]
[공정위, 고의성이 다분한 뒷광고]
[근본적 대책 없이는 영원히 근절할 수 없는 문제]
한 과장은 부채질로도 모자라 아예 기름통을 들이부었고,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험악해져 갔다.
?아니, 이 딴 상품을 팔아 왔다는 게 말이 돼?!
?대체 관련 당국은 뭐 했냐? 이게 무슨 애들 불량식품도 아니고!
?엄정 조사해라! 시중에 유통된 상품 다 회수하고, 환불 조치도 시켜 ㅡㅡ
이 보도는 열혈들이라 불리는 콘크리트 팬층까지 단숨에 무너뜨렸다.
생명에 위험할 수도 있단 상품이란 생각에 국민들도 완전히 돌아서 버렸기 때문이다.
심각성을 느낀 웹튜버들은 엉덩이에 불 붙은 듯 사과 방송을 올렸지만 팬들은 이미 싫어요 테러단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심지어 그 해명 영상에도 끊임없이 신고가 이어졌다.
그렇게 수사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한둘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이쯤 했으면 웹튜브도 공범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