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48
48화
웹튜브 (1)
“어떻게 됐어?”
“……못 덮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걸린 스트리머들 모두 다 사과방송하고 자숙했습니다.”
“진짜로 저 돈이 다 사실이야?”
“예. 저것도 사실 저희 내부 조사에 비하면 적게 잡힌 겁니다.”
웹튜브 한국 지사 김기택 사장은 참담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스트리머 비난 여론이 어느새 플랫폼 책임론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드러난 액수가 웬만한 재벌 비리에 버금가는지라 발을 뺄 수도 없는 지경이다.
“식약처 안전성 조사는 뭐야? 그것도 확실해진 거야?”
“…….예. 다섯 개 상품에서 유해 성분이 검출됐다 합니다. 해당 상품은 이미 공정위에서 회수 조치가 들어갔습니다.”
“사장님. 이젠 저희도 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론이 이렇게 달아올랐는데, 공정위가 그냥 넘어갈 리 만무합니다.”
공정위의 다음 타깃이 누구인지는 너무도 명확해졌다.
그러지 않아도 늘 ‘규제, 규제’ 노래를 부르던 놈들이다. 칼춤 추기 딱 좋은 분위기를 그냥 넘어가진 않겠지.
하지만 의문점이 남는 부분도 있었다.
음으로 양으로 연락 한 통은 했을 법한 놈들인데, 왜 아직까지 잠잠할까?
“구체적인 의견들 꺼내 봐. 다들 생각해 놓은 것 있을 테니.”
긴 정적을 깨고 한 사내가 말했다.
“외람되지만 사장님. 저는 지금 공정위가 흥정하는 것 같습니다.”
“흥정?”
“언론에 계속 우리 망신 줄 자료 흘리면서도 정작 연락 한 통 없지 않습니까? 이건 저희더러 알아서 반성문 가져오란 뜻이겠지요.”
“그래서 지금 그 반성문에 뭘 쓸까 말해 보라는 거 아니야.”
“아니죠. 이럴 땐 상대 패를 먼저 까 봐야죠.”
“상대 패? 공정위 대답 기다리자는 거야?”
“예. 분명 저쪽에서 원하는 수위가 있을 겁니다. 추후 이런 문제에 대해 엄정 대응하겠다. 저희가 이렇게 원론적 대응을 하다 보면 곧 그들이 원하는 바를 말해 줄 겁니다.”
일단 반성하는 시늉만 해 보자 라는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말장난하다가 안 통하면 그때 규제 수위를 논해도 늦지 않다.
“사장님. 저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 깊게 들어가면 결국 수익 창출 금지나 계정정지 얘기까지 나올 텐데, 온갖 민감한 문제들 아닙니까?”
“앞세울 수 있는 변명 많습니다. 섣불리 광고 규제하면 소상공인들에게도 피해가 미칠 거다, 이러면 당국도 저희 함부로 못 건듭니다.”
선의의 피해자 들먹이는 건 진부하지만 늘 먹히는 방법.
김기택 사장은 팔짱을 꼬더니 고심에 잠겼다.
어차피 규제 수위 가지고 공정위랑 긴 줄다리기를 해야 할 건데, 우리 패를 먼저 깔 필요가 있을까?
상대 반응 봐 가면서 대응하면 더 유리하지 않을까?
“김 이사.”
“예.”
“그 의견 좋네. 그럼 자네 말대로 한번 해 봐. 원론적인 발표.”
“알겠습니다. 근데 대강 수위는 어느 정도로…….”
“말해 뭐 해. 앞으로 이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다, 엄정대응 하겠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에게도 미칠 피해를 고려해 다각적으로 검토하겠다. 딱 이 수준이어야 돼.”
본디 범행이 명확해지면 변명 대신 경제 위기를 외치는 법이다.
현 상황에서 웹튜브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소상공인들이었다.
***
“처음 뵙겠습니다. 웹튜브 한국 지사 김기택입니다.”
“공정위거래위원회 한유미 과장이에요.”
“일단 앉으시지요. 인사가 많이 늦었습니다.”
일주일 뒤.
웹튜브는 원론적인 발표를 떠들었고, 한 과장은 소수정예 팀장들을 데리고 웹튜브에 방문했다.
푸근한 인상으로 손님을 맞는 김기택과 달리 한 과장의 얼굴은 차갑기만 했다.
기껏 반성할 시간을 줬는데, 그따위 하나마나한 발표를 들었으니 그럴 수밖에.
“먼저 죄송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벌어진 일렬의 사태에 대해 저희 임원진들도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래요?”
“네. 광고 표기 규정이 애매해서 저희가 제재 못 한 부분도 있고, 어떤 이들은 아예 고의적으로 누락시킨 사례도 있더군요.”
“김 사장님, 우리 오늘 아는 얘기 또 들으려 온 거 아니에요. 문제점이 다 드러났으니까, 플랫폼에서도 어떤 대책이 나와야 할 텐데. 도통 반응이 없어요?”
한 과장이 굳은 얼굴로 말하자 그가 딴청을 피웠다.
“저희가 이틀 전에 밝혔듯, 이 문제를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추후 같은 문제 발견 시 엄정 대응하겠습니다.”
“그러니까요. 그 엄정 대응이 뭔데요.”
“…….”
“뭐 좀 실효성 있는 제재안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말만 심각하게 고려하겠다 하면 그 사람들이 뒷광고 안 받나요?”
예상했던 반응이었지만 그녀의 거침없는 태도 때문인지 숨이 꼴깍 넘어갔다.
“안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들어 봅시다.”
“저희도 다각적으로 검토했는데 이 문제를 가지고 무슨 계정을 정지하거나 수익 창출을 금지하거나 하는 안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죠?”
“소수의 탈선 행위를 막자고 전체를 규정하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웹튜브 광고는 소상공인들이 주류 아닙니까?”
한유미는 코웃음이 나왔지만 반박 않고 들었다.
“공중파가 PPL 규정 어겼다고 드라마 방영 말라는 격이죠. 함부로 규제하면 자칫 업계 전체가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선의의 피해자라…… 그럼 앞으론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알다시피 이번엔 위법인 줄도 모르고 위법을 저지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수익 창출을 신청하는 신인 크리에이터들에게 관련 법 교육을 시켜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또요?”
“에…… 그리고. 저희도 모니터링 보안관을 신설하겠습니다. 이들로 하여금 광고 표기 누락된 영상을 찾고, 저희 쪽에서 계도를 하겠습니다.”
“또요?”
그로부터 하나 마나 한 규제안이 세 개나 더 나왔다.
엄밀히 말하면 규제안도 아니었다.
크리에이터들에게 교육을 실시하겠다. 업계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 광고 표기법을 준수하겠다 등의 영양가 없는 얘기들이었으니.
“그래서. 또요?”
그렇게 한유미 과장이 다섯 번을 물은 끝에 김기택 사장은 얼굴이 굳어졌다.
“……이게 저희가 생각하는 최종 방안입니다. 혹시 구체적으로 원하시는 게 있는지요.”
“제일 중요한 ‘처벌’안이 없잖아요. 그랬는데도 뒷광고가 적발되면 어떡하실 겁니까.”
“그건 저희 내부 규정에 따라 계도 조치를…….”
탁-!
“그러니까 그 내부 규정이 뭐냔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이 얘기 했어요. 수익 창출 금지, 계정 정지, 아이디 영구 정지. 이런 실질적 처벌안이 뭡니까?”
“…….”
“그런 것도 없이 계도 조치한다고 해결되겠어요. 설마 우리 반응 봐 가면서 수위 조절할 생각은 아니죠?”
정확히 맞혔기에 말문을 잃었다.
하지만 재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읽어 보세요.”
뒤이어 한 과장이 내민 서류를 봤을 때 그의 표정은 완전히 돌변했다.
“아니, 이게 뭡니까? 저희한테 왜 과징금을…….”
“우린 이번 사태를 웹튜브에도 책임 물을 겁니다.”
“채, 책임을 묻다니요. 엄밀히 말해 이건 저희가 관여된 일이 아니잖습니까.”
“홈쇼핑에서 허위 과장 광고하다 걸리면 방송국에도 처벌이 가해집니다. 여기로 따지면 그게 바로 플랫폼이겠네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사장님. 이쯤 되면 아시잖아요. 강력한 처벌 규제안 나와야 되는 거. 아니면 저희가 진짜 국정감사 열어 드려요?”
“예? 국감요?”
“플랫폼이 자발적 규제안 안 가져오면 당연히 정치권 힘 빌려야죠. 이런 사안엔 여야가 따로 없다는 거 아시죠? 우리가 국감 청구하면 아마 서로들 하겠다 할 겁니다.”
“…….”
“명심하세요. 우린 독점 기업이라 봐주는 거 없고, 미국계 기업이라 쩔쩔매는 거 없습니다. 반드시 실효성 있는 대책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청구인’ 칸만 비어 있는 국감 청구서를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이를 보는 김기택 사장의 얼굴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
준철은 그녀가 왜 방송국에서 미친개로 통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세상에 국감이라니!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추진하겠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압박이다.
“어디서 엉큼한 짓 하고 있어. 반성문 가져오랄 때 가져왔어야지.”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쯤 대답이 나오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표정 보니 저희 대답 먼저 듣고 수위 조절하려던 모양입니다.”
웹튜브 본사를 나오자 그녀가 다시 팀장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구 팀장. 식약처 경고 상품 회수하는 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시중에 풀린 물건은 다 회수했습니다. 진짜 문제는 반품인데…… 이건 시일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고생해야겠네. 그럼 먼저 들어가. 이거 소비자 피해 최소화해야 하니까, 그 방법도 좀 고민해 보고.”
“예.”
“송 팀장. 적발된 놈들 처벌은?”
“액수가 크지 않은 위반자는 벌금이나 계도(훈방) 조치로 끝낼까 합니다. 물론 사과 방송과 게시물 내리는 조건으로요. 다만 차명계좌 썼던 놈들에 한해 과징금까지 내릴 생각입니다.”
“좋아. 그럼 차명계좌 이용자 명단만 정리해서 내일 올려.”
그녀는 팀장 하나하나에게 지시를 내린 후 먼저 보냈다.
그렇게 마지막인 준철의 차례가 되었을 때, 짙은 한숨을 내보였다.
“웃기는 놈들이지? 이 사건 공중파나 케이블에서 터졌으면 싹싹 비느라 바빴을 텐데 말이야.”
“……예. 솔직히 좀 많이 의외였습니다.”
“어때 보여? 난 저 꼬락서니 보니 진정성 있는 대책 절대 안 나올 것 같은데.”
준철은 머뭇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같은 생각인가 봐?”
“진정성 있는 대책 가져올 타이밍은 이미 지난 것 같습니다. 이젠 저희가 강제할 수밖에…….”
그리 말하자 그녀가 서류를 건넸다.
한눈에 훑어 본 준철은 놀란 얼굴이 되었다.
“과장님. 이거 진심이십니까?”
“뭐 그리 놀라? 이 정도 규제안은 있어야 앞으로 뒷광고 안 받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웹튜브가 이 정도까지 해 줄까요.”
“안 하면 국감 끌고 가야지. 이 팀장 말대로 이번 수사는 박혜선이 덕분에 빨리 끝난 거야. 다음 타자들은? 이거보다 더 교묘해지겠지.”
그걸 방지하려면 밥줄을 쥐고 있는 웹튜브가 강한 처벌안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솔직히 난 이 정도도 별로 과한 규제라고 생각 안 해. 이 팀장은?”
“저도 과한 규제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과장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한 과장은 싱긋 웃더니 나머지 서류도 건넸다.
“그럼 이거 웹튜브에 전달해.”
“알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두 번 기회는 없다. 이 규제안을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국감장에 끌려 나와 얻어터지든가. 둘 중 하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