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49
49화
웹튜브 (2)
“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저희가 드릴 말은 없지만 이러면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한 과장의 규제안을 전달하자 지극히 예상했던 반응이 돌아왔다.
솔직히 그럴 만도 했다.
뒷광고 1차 적발 시 60일 정지, 2차 180일 계정 정지.
준철도 예상 못 한 고강도 규제다.
“이번 사태를 빌미로 아예 방송 규제 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한테 과징금 매기는 것도 다 여론에 보여 주려는 거잖아요!”
“그러지 말고 현실적으로 조율해 봅시다. 이럼 정말 선의의 피해자까지 나와요.”
또다시 한심한 변명이 시작되자 준철도 참지 않았다.
“뒷광고 청탁받은 사람들 중에 선의의 피해자가 어디 있었습니까?”
“짜잘하게 들어가면 실수로 광고 표기를 누락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실수를 빙자해 고의적으로 누락시킨 거겠죠.”
“그렇다고 어떻게 이리 무지막지하게 처벌합니까. 물건 훔치면 손목을 자른다, 이런 법안 있다고 절도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이건 너무 과잉 처벌입니다.”
그러게 반성문 가져오라 할 때 가져왔었어야지.
며칠 전만 해도 꼿꼿했던 놈들이 이젠 죽상이 됐다.
“그래서 이렇게 조건을 다는 겁니다.”
준철은 나머지 자료를 건넸다.
“뒷광고 수익금이 1천만 원 이하일 시 웹튜브 내부 규정대로 처벌하세요. 물론 지나치게 가벼우면 저희가 또 내부 규정에 간섭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저희 쪽 안도 검토해 보시지요. 1차 적발 시 30일 정지, 2차 적발 때 60일 정지를 시키겠습니다.”
“그게 어떻게 징계입니까? 어차피 뒷광고 걸리면 한두 달 자숙하잖아요. 휴가 실컷 다녀오는 게 계정 정지입니까.”
한 달 정지는 실효성이 전혀 없는 처벌이다.
딱 한 달 쉬고 다시 방송 복귀하겠지. 2차로 걸린다 해도 두 달 휴가가 되는 것뿐이다.
심지어 쉬는 동안에도 조회수 수익금은 계속 나온다.
준철이 단호하게 잘라 내자 한 사내가 눈치를 살피며 손을 들었다.
“그럼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만약 뒷광고 3차 적발 때는…….”
“당연히 영구정지죠. 뒷광고를 세 번이나 걸렸는데, 개선의 여지가 있겠습니까?”
앞으로도 고칠 의지가 없는 놈이겠지. 이런 놈들은 영구 퇴출 말고는 방법이 없다.
준철은 떼떼거리는 임원들을 뒤로하고 김기택 사장을 힐끗거렸다.
‘여우짓 하네?’
지금 임원들이 지껄이는 말은 다 김 사장의 마음의 소리들이다.
이쯤 했으면 중재하고 고개를 숙일 법한데 왜 한마디 말이 없을까? 진짜로 더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리 생각할 때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김기택 사장이 한 임원에게 고갯짓을 보내자 갑자기 다른 얘기가 나왔다.
“당국의 의중을 존중합니다만 과한 것도 사실입니다. 서로 생각 차가 크니 적당히 절충했으면 하는데요.”
“말씀하세요.”
“징계 기한을 더 늘리겠습니다. 1차 적발 시 45일, 2차 적발 시 120일. 그리고 계정 정지 기한에는 수익 창출도 금지시키겠습니다.”
처음 안건보단 진정성이 보였지만 기분은 더 나빴다.
이놈들이 수위 가지고 협상하려 드는 게 명백해졌다.
“여전히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공정위야말로 저희들 난처한 처지 이용하지 마십쇼. 말씀했듯 도둑놈 손목 자른다고 절도가 사라지는 거 아닙니다.”
“이게 손목을 자르는 수준의 처벌입니까? 도둑질하지 말라고 두 번 경고해도 안 들으면 사회랑 격리시켜야죠.”
고마운 줄도 모르는 놈들이다.
같은 문제가 홈쇼핑, 지상파, 케이블 티비에서 벌어졌다면 뼈도 못 추렸을 텐데.
“하나 마나 한 규제안 들고서 할 거 다 했다 할 거면 이 대화 그만하십쇼. 진짜 국감까지 한번 가 봅시다.”
“아니, 꼭 그렇게 끝을 봐야겠습니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우리 공정위가 의원실에 팩스 한 통만 붙이면 이거 무조건 국감 열릴 수 있는 문제예요. 충분히 경고했는데 이렇게 나오는 건 우리가 못 할 거
같아서죠?”
그리 말하며 준철이 일어날 때였다.
“그만. 다들 그만들 해.”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던 김기택 지사장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 국감이 열릴 수도 있단 위기감 때문이었을까? 그는 준철을 한 번 보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정위 규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새 운영 지침은 곧 언론에 공식 발표하겠습니다.”
***
셀럽들의 배신.
무한 불신의 사회.
언론사들은 이번 사태를 그렇게 명명했다.
연예인보다 더 친근하고 소박하게 보였는데. 채팅창으로 소통까지 했었는데. 그래서 정말 수수하고 가까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건 기만과 배신이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가족에게 뒤통수 맞은 기분이라 했다.
식약처는 곧 경고 상품 회수 조치를 내렸고, 경찰까지 동원해 폐업조치에 들어갔다. 소비자들의 민원 전화로 한동안 소비자보호센터 전화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방송국 카메라들은 일제히 역삼동에 위치한 웹튜브 코리아로 향했다.
김기택 지사장이 대국민 발표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약속한 시간이 되니, 침침한 얼굴의 한 사내가 등장했다.
“시작하기에 앞서……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 깊은 책임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그는 단상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다시 원고를 들었다.
“급격히 성장하는 방송 시장에서 플랫폼의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는 시점입니다. (중략) 최근 벌어진 사건들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우려를 보내 주셨습니다. 처벌 수위가 미미하여 같은
문제가 재발해도 막을 수가 없단 우려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저희 임원진 또한 깊이 고민하고 있는 바입니다. 하여 저희들의 새 운영 지침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김기택 사장의 발표에 기자석이 웅성거렸다.
미국계 기업이라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놈들 아닌가? 정치권도 못 다루는 놈들이라, 세간에선 웹튜브가 치외법권을 가지고 있단 말도 나왔다.
-찰칵, 찰칵
그런 웹튜브가 새 운영 지침을 발표하겠다고 하다니.
곧 주변에선 플래시 세례가 터졌고, 김기택 사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추후 뒷광고 문제엔 쓰리아웃제를 시행할 계획입니다. 1차 적발 시엔 계정 60일 정지, 2차엔 180일 정지. 계정 정지 기한에는 수익 창출 또한 금지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3차
적발 시엔 계정 영구 정지. 퇴출토록 하겠습니다.”
공정위가 요구하는 처벌에서 하루도 빼지 않았다.
“소액 광고나 단순 표기 누락에 대해선 따로 계도 조치를 마련할 계획입니다만. 고의성이 발견되면 이들에게도 엄격히 적용할 계획입니다. 더 이상 실수라는 이름에 숨어 시청자를
기만하는 행위는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올리며, 깊은 사죄를 드립니다. 저희 운영진들은 이제부터라도 시청자들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가 발표가 끝내자 카메라석에선 난리가 터졌다.
“업계에선 소상공인들이 위축될 수 있단 우려도 있는데요!”
“소액 뒷광고의 기준이 뭡니까?”
“단순 표기 누락에 대해선 어떤 ‘계도’ 조치가 따르는지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김 지사장은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가 피할 수 없는 질문도 있었다.
“현행 지침은 언제부터 적용되는 겁니까? 최근 벌어진 사건에 대해선 해당 안 되는 겁니까?”
지사장이 우뚝 멈춰 서더니 말했다.
“새 지침은 오늘부터 적용 될 방침입니다. 현재 문제가 된 크리에이터들은 아직 조사 중인 걸로 압니다. 만약 명백해지면 제재를 피하기 힘들 겁니다.”
애둘러 말했지만 그의 말을 요약하면 하나였다.
소급적용하겠다.
***
웹튜브의 새 운영 지침이 발표된 당일.
한 여자가 웹튜브를 켰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박혜선입니다. 먼저 제가 말주변이 없어 영상을 녹화본으로 찍는다는 거 양해해 주십쇼. 최근 불거지는 논란에 해명하기 위해 이 영상을 올립니다.”
크로마키 배경에 검은색 정장.
그녀도 이 전형적인 사과 영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게 있다면 그녀의 얼굴이 몰라보게 수척해졌다는 것. 취조실에서 처음 봤던 그 고고하고 당당한 얼굴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깊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혐의에 대해 더는 부정하지 않아야겠단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덤덤히 말하던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말했다.
“현재 뒷광고 의혹이 일고 있는 여러 상품들에 대해 저는…… 뒷광고를 받았습니다. 단순히 표기를 누락한 것이 아닌…… 광고비를 받고 내돈내산 리뷰 등을 작성했습니다.”
참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에둘러 변명하던 김미영과 달리 처음으로 뒷광고를 공식 인정한 영상이었으니.
“하지만 현재 제가 광고했던 상품 중 몇 개가 식약처 안정성 검사에 불합격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팬 여러분…… 혹은 소비자분들의 부작용 후기 등도
올라오는 것으로 압니다.”
그게 결정타였을까?
“긴 변명은 필요 없을 것입니다. 제가…… 저를 믿어 주신 많은 팬 여러분의 신뢰를 저버렸습니다. 명백한 잘못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문제입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았던 그녀가 눈물을 보였다.
“하여 상의 끝에 모든 영상을 내리고, 계정 활동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자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저를 믿고 응원해 주신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3분짜리 사과 영상은 사람들에게도 회자되었다.
?악어의 눈물 아니야? 안 받았다고 해명 영상 올린 게 언젠데?–
?시기가 참 절묘하네요. 웹튜브가 새 운영 지침 발표하니까 갑자기 호다닥?
?지금까지 버티다가 더 이상 안 될 거 같아서 우는 거지? 네 말 믿고 마스크팩 20세트 샀다가 피부암 걸릴 뻔했다. 반품도 네가 해 ㅡㅡ
참 묘한 기분이었다.
모든 일이 순리대로 돌아갔는데, 마음 한편은 이렇게 찝찝하다니.
막상 그녀의 사과 영상을 보니 동정심이 들어서일까?
‘……그건 아닌 것 같고.’
지금은 욕해도 결국 바람 핀 애인 용서하듯 봐줄 이 댓글들 때문이겠지.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체 불가한 사람이란 거겠지. 잘못한 일을 만회할 만큼 출중한 방송 실력을 보여 줬단 뜻이겠고.
“반장님. 저희 반품 처리는 어떻게 한답니까?”
“일단은 기업더러 회수 다 하고 폐업 신고하라 했습니다. 저희도 이거까지 처리해 줄 인력은 없으니까.”
“그럼 해당 기업에 반품 신청하면 되는 겁니까?”
“네. 반품 처리 안 하면 소비자보호센터가 출두할 거예요. 왜요, 문제 있습니까?”
“아니요. 감사합니다.”
준철은 서랍에 있던 선크림과 마스크팩을 들었다.
이젠 공정위의 손을 떠난 문제다.
부디 저 눈물이 진심이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