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50
50화
올해의 공정인상 (1)
“솔직히 말해 기대 이상의 수사 성과였습니다. 본청에서 준 기획 수사라 해도 숨은 돈 찾아낸 건 그들 아닙니까?”
“저도 밥숟가락만 얹은 수사는 아니었다 봅니다. 이 사건을 천억대까지 파헤치고 웹튜브까지도 굴복시킨 건 TF팀의 혁혁한 공입니다.”
낙엽이 떨어지고 첫눈의 계절이 찾아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안 바쁜 공무원이 어디 있겠냐만, 공정위에게 12월은 더욱 특별했다.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올해의 공정인상은 뒷광고 TF팀이 수상하는 게 어떨지.”
바로 올해의 공정인을 뽑아야 하기 때문.
소비자정책국 이지성이 포문을 열자 각 부처 국장들이 헛기침을 내기 시작했다.
“험험. 규모만 따지고 보면 저희 카르텔조사국이죠. 건설사 12곳의 입찰 담합, 이 규모가 3천억대였습니다.”
“흠흠. 규모보다 더 중요한 건 파급력 아닙니까? 통신사들의 가격 담합 잡아낸 건 저희 시장감시국입니다. 공정위 홈페이지에 고맙다는 글이 얼마나 올라왔었는지 원.”
“저희 경쟁정책국은 유수의 시민단체로부터 감사패를 받았습니다. 삼광 그룹 일감 몰아주기 잡은 건 저희입니다. 아마 저희가 못 잡아냈으면 세금 한 푼 안 내고 경영권 물려받았을
겁니다.”
각 국장들이 열렬히 자기 PR을 하는 와중에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는 이도 있었다.
‘……저 사건들 다 우리 종합국이 도와준 거고만.’
이럴 때마다 서러운 게 종합감시국이다.
본래 종합국은 약식 조사만 해 전문 부처에 넘기거나, 큰 사건 터진 데 있으면 차출되는 곳이니.
“아무리 그래도 이번 뒷광고 수사만 못하지. 천하의 웹튜브가 광고 규제안을 발표했는데, 이게 쉬운 일인가?”
“그러니까 인정한다고. ‘이달의’ 공정인 상은 당연히 뒷광고 TF팀이 받아야지. 근데 ‘올해의’ 공정인상은 역시…….”
공정인상.
실무진들의 사기 진작과 실적 재고를 위해, 매달 선정하는 상. 여기엔 매달 선정하는 이달의 상이 있고, 그중 베스트를 선발하는 ‘올해의’ 공정인 상이 있다.
‘이달의 상’이야 적당히 돌아가며 받는다지만 올해의 공정인은 절대 나눠 가질 수 없는 상이었다.
연초 시무식 때 공정위원장님이 직접 수여하는 상 아닌가?
이는 각 부처 수장인 국장들의 자존심 문제기도 하며, 내년 회식비 예산은 여기서 결정 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휴- 이게 뭔 노벨상도 아니고. 매년마다 싸우는구먼.”
“이번 년도도 처장님께서 한번 판단해 주십쇼. 솔직히 누가 받아야 하겠습니까?”
진전 없이 대화가 이어지자 국장들이 사무처장에게 물었다.
최 처장은 이들의 얼굴을 살피며 빙긋 웃었다.
“더 하지들 그래. 한참 더 재밌어지겠구먼.”
“이러다 저희끼리 쌈 붙겠습니다. 처장님이 결정해 주십쇼.”
“어려운 결정은 꼭 늙은이더러 하래.”
즐거운 고민이다.
징계 심사가 아니라, 누가 더 일 잘했나를 선발하는 과정이니.
최 처장은 국장들이 올린 추천 인물들을 들었다.
“이 국장.”
“예.”
“이 친구는 한 번 받지 않았어? 낯이 많이 익은데.”
“아, 한유미 과장이요. 맞습니다. 홈쇼핑 허위 광고로 과징금 30억 때린 게 이 친구입니다.”
“준 놈을 또 줘? 명색이 그래도 올해의 공정인상은 우리한테 노벨상인데.”
“뭐 퀴리부인도 두 번 받지 않았습니까? 하하. 물론 한 과장 성격상 또 받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 수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팀장급에게 공을 돌리겠지요.”
처장님의 물음에 다른 국장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무리 일 잘한다고 상을 또 주는 건 말이 안 되지.
가장 압도적인 경쟁자가 없어지자 희망이 생겼다. 혹시 그렇다면 이번엔……?
“김태석 국장.”
“예.”
“왜 종합감시국은 추천 인사 안 올렸나?”
갑자기 말을 건네자 김태석 국장이 당황했다.
왜 안 올렸는지 제일 잘 아시는 분이 왜……?
“저희야 항상 약식 조사해서 전문 부처에 넘기는 곳 아닙니까. 가끔 큰불 터지면 구조 요청 가고.”
“그래도 이번에 활약상이 좀 많았다고 들었는데?”
“오늘 얘기 나눠 보니 명함 내밀 자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는 이달의 공정인상으로도 충분합니다.”
종합감시국도 이달의 공정인상은 여러 번 탔다.
하지만 ‘올해의 공정인상’은 한 번도 타지 못했다. 공정인 상이 제정된 이후 단 한 차례도 수상 이력이 없는 것이다.
본디 종합감시국 자체가 전면에서 나서서 업무 성과를 자랑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 그렇다면 또 어쩔 수 없고.”
“더 분발하겠습니다. 내년엔 꼭 노려 보지요.”
최 처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서류를 덮더니 길게 뜸을 들였다.
“나날이 공정위 성과가 올라가니 좋네. 거시적으로 보면 그만큼 기업 독과점, 갑질이 심해진단 뜻이겠지? 내년도 지금처럼 혹은 그 이상 분발하라고.”
“예.”
“그런 내가 봤을 때, 올해의 공정인상은, 아무래도 역시…….”
***
“이번엔 진짜 고향으로 돌아가자. 얼른얼른 짐 챙겨.”
끝을 모르고 이어졌던 타향살이가 이젠 정말 끝이다.
공식적으로 모든 사건이 종결되었을 때, 종합팀은 비로소 짐을 쌀 수 있었다.
“반장님 우리 진짜 가도 되는 겁니까? 아직 시중에 유통된 상품이랑 반품 처리 안 됐다는데.”
“저도 불안합니다. 갔다가 또 막 복귀되고 그러는 거 아녜요?”
김 반장은 들은 체도 안 하고 짐을 챙겼다.
“재수 없는 소리들 말어. 이 정도 해 줬으면 우리 역할은 다 한 거지.”
“윗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느냐가 문제죠.”
“안 하면 어쩔 건데. 이 이상 얼마나 더 잘해 줄 수 있냐?”
때마침 과장실에서 준철이 복귀했다.
“벌써들 짐 싸세요?”
“네. 혹시 뭐 또 개별 전달 사항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오 과장님도 빨리 복귀하라 하시네요. 고생 많았다고.”
“어휴- 다행이네. 팀장님도 얼른 싸세요. 괜히 붙어 있다가 또 일 떨어집니다.”
“네. 오늘은 원대 복귀만 하고 퇴근이니, 쉬엄쉬엄하세요.”
준철도 곧 이사 복귀 대열에 합류했다.
이렇게 긴 파견은 이번이 처음인가?
재수가 참 나빴다. 약관심사과에서 일하다 바로 뒷광고 수사에 합류했으니.
그래도 이젠 이 지긋지긋한 소비자정책국과 안녕이다.
“팀장님. 그때 그 만나시는 분과는 뭐 별 진전 없습니까? 흐흐.”
“무슨 말씀이세요.”
“그 박다영 팀장님 있잖아요. 금감원에서 YK암보험 같이 조사했던.”
“그분이 왜…….”
“아이참- 우리도 알 건 다 압니다. 그분이 행시 동기라면서요? 우리 안 볼 땐 서로 말씀도 편하게 하시더만.”
“그 사건 우리가 맡은 것도 팀장님이 부탁받은 거 아닙니까.”
“흐흐. 뭐 좀 기대해도 되는 겁니까? 조만간 국수 먹는 건가요?”
유일한 총각 팀장이었기에 반원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준철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시들해졌습니다.”
“시들? 아니, 왜요?”
“시간 때문이죠 뭐. 연애는커녕 집에 퇴근하기나 하면 다행이었는데.”
“아…….”
뒷광고 사태로 두 달 동안 합숙 생활하지 않았나?
집에 있는 마누라도 일 중독자냐고 욕하는 마당에, 썸 타는 애인 정도야 진즉 떠나갔겠지.
“그분 진짜 예쁘셨는데…… 성격도 호탕하시고.”
“뭐 더 좋은 인연 나타나겠죠.”
준철은 대충 그렇게 둘러댔다.
연락할 기회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사실 그녀가 종종 안부도 물어 왔었지만 준철은 답장을 자제했다.
본분에서 벗어나지 않아야겠다고 모질게 마음먹었다.
“자, 그럼 갑시…….”
“어머, 어디 뭐 도망가? 벌써들 짐 꾸렸어?”
그렇게 미련 없이 떠나려던 찰나에 또 불청객이 등장해 버렸다.
한 과장이 생긋 웃으며 문을 두드린 것이다.
이런 광경을 이미 한 번 경험했던 터라 반원들은 PTSD가 올라올 것 같았다.
“왜? 내가 뭐 못 올 데 왔나?”
“아닙니다. 혹시 무슨 문제 있습니까?”
“고마운 사람들 마지막 배웅하러 왔지. 아, 긴장들 풀어. 이번엔 자백 빨리 나와서 수사 그리 길지도 않았잖아.”
“아…… 하하.”
마지막, 배웅. 이라는 말에 반원들도 겨우 웃음을 되찾았다.
한 과장은 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노고를 치하했다. 수사 고과에 점수를 왕창 몰아줬다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 팀장은 잠깐 나 좀 보자.”
“아,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반원들을 뒤로하고 준철은 그녀를 따라나섰다.
“좀 섭섭하다. 난 이 팀장이 나랑 같은 부류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싫었어?”
“아닙니다. 과장님 덕분에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 그럼 나랑 좀 더 일할까? 내가 봤을 때 이 팀장은 불법 광고 적발에 자질 있어. 나랑 방송국들 잡으러 다니자.”
“……종종 도우러 오겠습니다.”
자질은 무슨. 그냥 뒷일 생각 안 하고 덤비는 팀장이 필요한 거겠지.
끈질긴 그녀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준철은 같은 대답만 되풀이했다.
한두 번 당해 본 유혹이 아니라 이젠 익숙했다.
“진짜 매정하구나. 좋아, 오늘은 뭐 그 얘기 하려고 온 건 아니고, 이 팀장.”
“예.”
“상 하나 받자. 공정인상 알지?”
그게 뭡니까? 라고 물을 겨를도 없이.
“올해의 공정인상으로 우리 뒷광고 TF팀이 받게 됐어. 그거 이 팀장이 받아.”
“죄송한데 그게 뭔지 잘…… 그냥 제가 대표로 받는 겁니까?”
“아, 이 팀장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잘 모르는구나.”
그녀가 상에 대해 짧게 설명하자 준철의 눈은 더욱 커졌다.
“그 귀한 상을 왜 저한테…….”
“일 잘했으니까.”
“이번 수사 주도한 건 과장님 아닙니까. 과장님이 받으셔야죠.”
“난 이미 하나 있어. 3년 전에 홈쇼핑 수사하고 선정됐거든.”
“그럼 저희 TF팀 전체가 받는 게…….”
“이게 무슨 개근상인 줄 알아? 호호. 윗선에서 올해의 공정인 상을 나더러 추천하라더라. 젊은 사무관들 발굴하자는 상이라 그게 더 취지에 맞기도 하고.”
“이거 소비자안전과 다른 팀장들도 있는데…….”
“나 원래 이런 평가 내릴 때 피도 눈물도 없어. 냉정하게 내린 업무 평가로 이 팀장 추천한 거야.”
준철은 무어라 대꾸할 수 없었다.
지극히 그녀다운 선택이었지만 그렇다고 넙죽 받기엔 민망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 과장 눈에선 꿀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혹시…… 저 이거 받으면 여기서 계속 일해야 되는 겁니까?”
바보 같은 질문이었겠지만, 분명 그녀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