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51
51화
올해의 공정인상 (2)
“으하하. 역시 한 과장 성격 화통하다니까. 수많은 팀장 중에 자네를 추천할 줄이야.”
“제가 덥석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TF팀 모두 고생했는데.”
“아서. 올해의 공정인이 수사 하나 잘했다고 주는 걸까 봐? 이 팀장 종합 성과 고려해서 주는 상이야. 이럴 땐 그냥 넙죽 받으면 돼.”
종합감시국으로 복귀하니 오 과장이 만연한 웃음으로 환대해 주었다.
그럴 만도 했다.
공정인상 제정 이래 처음 받아 보는 ‘올해의 공정인’ 아닌가?
타 부처를 돕는 부서라 종합팀의 성과는 늘 과소평가되었다. 올해의 상은 지난 10년의 치적을 보상받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듣자 하니 한 과장 칭찬이 대단하던데?”
“예?”
“다들 입 다물고 있을 때, 혼자서 웹튜브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막판에 광고 규제안 끌어낸 것도 이 팀장 아니야?”
“그건 한 태종님에게 당했습니다.”
“흐하하. 한 태종? 이 팀장도 그 별명을 알아?”
“완전 아바타로 활동했는데요 뭘.”
웹튜브를 상대할 때도 사실상 한 과장의 아바타였다.
그녀가 준 구체적인 제재안으로 놈들에게 전달했으니.
“웹튜브한테 국감에 소환해 버릴 거라 했던 것도 한 과장님이었습니다. 저야 뒤에 있는 호랑이 믿고 으름장 몇 번 놓은 거죠.”
준철과 오 과장은 딱딱한 종합 보고 대신, 수사 뒷얘기를 나눴다.
본청에서 준 수사 자료가 몇 달 만에 따블이 되고, 핵심 연루자가 동료들을 고발하며 자백을 했다. 이 덕분에 웹튜브를 규제할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어찌 성공했나 싶을 만큼 대단한 수사.
“어째 들으면 들을수록 자기 고생한 거 어필하는 거 같다?”
“……그런 감도 없잖아 있습니다. 저희 이번에 파견도 길었잖습니까.”
“엄살 부리지 마. 어차피 연말까지 큰 사건 없어.”
“정말입니까?”
“뺑뺑이 많이 돌렸으니까 이젠 좀 놀려야지.”
그리 말하며 그가 서류를 건넸다.
“들어오는 자료나 고발 있으면 내년으로 돌려. 어차피 연말엔 기존 수사 재검토하는 게 전부야.”
공식적으로 이번 년에 더 큰 사건은 없다는 얘기.
준철은 넙죽 고개를 숙이며 서류를 받았다.
그렇게 나가려 할 때 오 과장이 말했다.
“아, 이 팀장. 공정인상 절차는 아나?”
“잘은 모릅니다만, 특별히 준비할 게 있나요?”
“잘 알 필요까진 없는데, 올해의 공정인 상은 공정위원장님이 특별히 수상하는 거야. 그것도 시무식 때.”
“아…….”
“군대로 따지면 국방장관 표창인 거 알지? 양복이나 새 걸로 하나 장만해. 참고로 너무 신난다고 여기저기 소문내고 다니지 마. 시상 당일까진 공식적으로 기밀이니까. 흐흐.”
소문은 과장님이 내고 다니실 것 같은데…….
***
근사한 회 접시에, 흐물거리는 산낙지 탕탕이.
기름장에 푹 담가 입에 넣으니 고소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얼큰한 매운탕까지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모두 한 해 고생했습니다. 내년엔 더 고생해 봅시다!”
여의도 종무식 풍경은 회사원이든, 공무원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의사당부터 지하철역까지 포장마차가 즐비했고, 떠들썩한 분위기가 망년 기분을 물씬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도 넥타이 풀고 한잔할까요? 거국적으로다가.”
“좋지- 종합감시팀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만성피로에 찌들어 있는 종합감시팀도 오늘만큼은 이팔청춘이었다.
성공적인 수사를 넘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지 않았나.
웹튜브의 새 운영 지침 발표는 내부에서도 예상 못 한 결과였다.
“근데 뭐 우리한텐 떨어지는 거 없나요.”
“왜? 2차는 참치 먹고 싶어?”
“회식이야 광어든 참치든 상관없는데. 다른 부상이 없나 하는 거죠, 흐흐. 웹튜브 저렇게 만든 게 누군데.”
“나도 막 벌써부터 설 상여금 기대되고 그럽니다.”
김 반장은 반원들의 행복회로를 무참히 꺼 버렸다.
“아서라. 이번 사건에서 우린 어디까지 협력 부서야. 주무부서는 소비자안전정보과고.”
“치- 그건 좀 심한 것 같습니다.”
“연말을 이렇게 꽁으로 나는 것만도 땡큐지. 행정소송으로 갔으면 이러고도 못 있는다.”
김 반장의 말은 지극히 사실이었다.
만약 기업들이 공정위 행정처벌에 불복하기라도 했다면, 지금쯤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내년에 있을 재판도 준비해야 했다.
어쩌면 가장 뜨거운 겨울을 보낼 수도 있었던 셈.
“맡은 사건마다 행정소송 안 가고 다 이겼으면, 이걸로 족해야지.”
그리 말하자 모두의 이목이 준철에게 쏠렸다.
이제 보니 참 희한한 팀장이다. 보통은 공정위에서 징계 내리면 기업은 소송으로 가고 오만 진흙탕 싸움을 다 하는데.
매번 맡는 사건마다 어쩜 이리 깔끔하게 마무리했을까?
“덕분입니다, 팀장님.”
“별말씀을요.”
“그러지 말고 팀장님. 한 말씀 하셔야죠.”
“아 그래도 명색이 종무식인데 한 말씀 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님 노래라도 하시든가.”
김 반장이 소주병에 숟가락을 꽂자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래하실 겁니까? 아님 멋있는 내년 출사표 하시렵니까.”
“……출사표 하겠습니다.”
엉거주춤 일어난 준철은 이들을 쓱 보았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참 나 자신을 많이 돌아봤던 한 해였습니다. 여기 계신 반원분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쉽게 여유로운 연말도 어려웠을 거고요. 늘 저를 잘 따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도 이번처럼 잘 성공적인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좋아, 다들 건배!”
“다들 3차까지 가는 겁니다! 오늘 같은 날 내빼면 내년에 재수 없어요.”
그렇게 시끌벅적한 쫑파티가 이어질 때였다.
“어머, 우리 종합팀은 뭐 만날 이렇게 혼자서들 놀아?”
불현듯 한 과장 목소리가 들렸고, 뒤에는 소비자안전정보과 전 조사관들이 우르르 몰려와 있다.
아무래도 저쪽도 쫑파티를 하는 모양.
올해 가장 주목받았던 사건을 마무리해서인지 그들의 위세는 기세등등했다. 횟집 출입문이 개선문 같았다.
“쫑파티는 TF수사팀이 함께해야지. 이렇게 혼자 재밌게들 놀아도 돼?”
눈웃음 짓던 그녀가 말했다.
“마침 잘됐다. 종합팀도 우리랑 합류해. 뭐 챙겨 줄 새도 없이 훌쩍 떠나 버려서 섭섭했는데.”
“괜히 그러실 필요 없는데…….”
“왜? 나 없이 내 욕하려고?”
“아, 아닙니다. 과장님 밑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럼 합석하자. 다른 조사관들도 다 편하게 앉아. 나 촌스럽게 회식 오래 안 하는 거 알지? 마시다가 갈 사람은 그냥 가.”
한 과장과 팀장들이 착석하자 금세 술판이 커졌다.
“첫 잔은 이 팀장이 따라 줘 봐. 나도 올해의 공정인한테 술 한번 얻어먹어 봐야지.”
“……?”
“예? 올해의 공정인?”
반원들이 갸우뚱하자 그녀가 웃음을 흘렸다.
“다들 몰랐어? 이 팀장이 올해의 공정인이잖아.”
“아니 그건…….”
반원들의 시선이 준철에게 향했다.
아니…… 오 과장님이 미리 떠벌리지 말라고 했는데 그걸 저렇게 말하면.
“진짭니까? 이 팀장님이 올해의 공정인상 받아요?”
“죄송합니다. 오 과장님이 기밀이라고 신신당부하셔서.”
“호호. 어차피 시무식 때 발표날 건데, 기밀은 무슨. 축하해, 이 팀장. 이번 수사에서 고생 많았다.”
그리 말하자 옆에 있던 팀장들도 슬쩍 가세했다.
“축하해요, 이 팀장님. 고생 많았습니다.”
“이번 수사에서 제일 고생 많았죠. 덕분에 성공적으로 수사 마무리했습니다.”
구 팀장과 송 팀장은 넉넉한 웃음으로 준철을 축하해 주었다. 수사할 때 가장 충돌했던 두 사람에게 축하를 받으니, 기분이 참 묘하다. 완전히 인정받은 것 같다고 할까.
준철도 엉거주춤 일어나 술을 따랐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술잔을 채웠을 때 한 과장이 말했다.
“잠깐만. 곧 제야의 종 울리겠네. 우리 저거 듣고 잔 들까?”
“좋죠.”
“이 팀장이 여기 조사관들 전부 다 한 잔씩 따라 줘. 우리도 좋은 기운 받아 가자.”
준철은 술잔을 들고 전 조사관들을 다 따라다녔다.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진짜 후련하네.’
갑질 사건이 아니라 대기업 규제 사건이라서 그런 걸까?
수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도 찝찝함이 남았던 이전과 달리 오늘은 후련하기만 했다. 어쩌면 죄책감을 조금 지운 걸지도 모르지.
“제야의 종 울립니다! 다들 건배!”
내년도 늘 오늘처럼 같기를 바라며 준철도 잔을 들었다.
“위하여!”
***
“행시 신입이라고?”
“예. 부임한 지 아직 2년이 안 됐습니다.”
부임 2년 차면 아직 짬소위?
“어떤 놈이야. 원래부터 좀 튀었어?”
“아니요. 연수원 기록부에 ‘소심하다’는 평가가 대놓고 적혀 있을 정도입니다. 전형적인 책상머리랄까? 부임 초기엔 업무 적응도 잘 못했다 합니다.”
“그런 놈이 어떻게 이런 사건들을 맡아?”
“주변 얘기론 어느 날 갑자기 딴사람이 되었다고…….”
박기철 공정위원장은 가벼운 한숨이 나왔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년차 사무관이 하청 근로자 산재 은폐, 암보험 불공정 약관을 다 드러내다니.
“이번 뒷광고 수사도 이 친구의 역할이 가장 컸다 합니다. 웹튜브 광고 규제에 선봉장을 맡았다더군요.”
더 놀라운 건 이게 단 1년 만에 만들어진 커리어란 것이다.
“허허…….”
박 위원장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 또한 행시 출신으로, 신입 사무관이 얼마나 제한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안다. 일거수일투족을 과장에게 보고하고, 과장이 시키는 일만 하는 게 2년 차의 일상이다.
하지만 이 이력은 내년에 당장 과장으로 진급시켜도 모자람이 없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얼굴 한번 보고 싶네.”
“자리를 한번 마련해 볼까요?”
“새삼스레 뭘. 시무식 때 볼 텐데.”
공정위의 시무식은 올해의 공정인상 시상과 함께 시작된다.
이는 곧 수상자를 확정하겠다는 뜻.
“그래도 한번 만나 격려해 주시죠. 위원장님껜 마지막 시무식인데.”
“마지막이 뭐 대순가? 나한텐 격려가 젊은 놈한텐 잔소리야.”
“그럴 리가요. 아무리 요즘 젊은 애들 어쩐다 저쩐다 해도, 윗사람 눈에 드는 건 좋아합니다.”
“왜 자꾸 늙은이 꼬셔?”
“퇴임 앞두고 많이 헛헛해하십니다. 젊은 친구 만나서 격려해 주시면 옛 생각도 나고 좋지 않습니까?”
박 위원장은 맥없이 웃었다.
퇴임을 앞두고 마음이 싱숭생숭하던 차였다. 역시나 자신을 알아주는 건 사무처장밖에 없다.
“그건 그때 기분 봐서 하지.”
하지만 위원장님의 센치한 감성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나저나 종합 보고 좀 해 봐. 행정소송 60건 증가, 패소율 8% 증가. 이번 년에 공정위 왜 이렇게 일 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