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55
55화
특허 도둑 (3)
“그러니까 저 양반이 시위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 팀장은 이걸 파 보고 싶은 거고?”
“예.”
“너무 감정이 앞서는 거 아니야? 막무가내로 나오는 거 들어주면 한도 끝도 없는데.”
오 과장에게 보고하니 딱 예상했던 반응이 돌아왔다.
하긴 위에서 시켜도 안 한다고 해야 할 사건이지.
“개인적으로 좀 걱정이 되네. 이 팀장이 공정인상까지 탄 건 알아. 근데 신년이라고 좀 들떠 있지 싶어.”
“연민 때문에 그런 거 아닙니다. 들떠 있는 건 더더욱 아니고요.”
“하면?”
“시기적으로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별 이유가 없는데 하청의 특허를 열람하고, 비슷한 시기에 경쟁사가 생겼습니다.”
탁-.
“그럼 대웅조선이 특허 유출시켰다는 거야? 경쟁사에?”
“예. 경쟁사 붙자마자 바로 단가 깎았습니다. 이건 중기부에서도 수상하다고 파악한 내용이었습니다.”
“난 솔직히 그게 더 마음에 안 들어. 그래서 중기부가 중재안 줬다며? 걷어찬 건 하청이고.”
“고작 4천만 원에 합의하라 했습니다. 하청 입장에서 이걸 어떻게 합의합니까.”
오 과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제3자인 그가 들어도 온통 말이 안 되는 것들투성이다.
원청이 특허를 열람했단 것부터 이미 선을 넘은 일이고. 갑자기 경쟁사가 붙어 버린 것도 이상한 일이다.
“이 말이 안 되는 정황에 퍼즐 딱 하나만 맞추면 설명이 끝납니다. 대웅조선이 특허 뺏어 오려고 밑 작업을 해 놨다.”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기에 한숨만 나왔다.
이 사건 때문에 중기부랑 크게 싸울 수도 있는데. 이 젊은 놈은 애초에 그런 거 재고 따질 만한 타입이 아니지.
“중기부 중재안 때문에 그러십니까?”
“고작 그것 때문이겠어. 다른 수사기관이랑 싸우러 다니는 게 내 일인데. 특허 분쟁은 나도 많이 맡아 봤어. 근데 이 사건? 솔직히 이 정황만으로 밝혀내기 쉬지 않아.”
이번엔 준철도 반박 못 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이거 다 민사로 돌리는 거야. 수사기관이 끼어 버리는 순간, 편파 수사 얘기 나오니까.”
“그냥 민사소송으로 가게 하면 원청 편 들어주는 겁니다. 알다시피 변호사 누가 더 센 놈 쓰느냐인데.”
“너 진짜 그렇게 자신 있냐? 중기부 중재안 거부했으면 판결에서도 엄청 불리할 텐데.”
“특허 도용했단 명백한 증거만 잡으면, 합의금이 아니라 배상금을 물어야 합니다. 해 볼 만합니다.”
이미 눈이 돌아가 버렸구나.
오 과장은 체념하며 서류를 들었다.
“옌장…… 이거 건들면 중기부랑 싸우는 것도 피할 수 없는데.”
넌지시 압박해 봤지만 요지부동.
결국 그는 서류를 건넸다.
“일단 중기부 가. 중재안을 낸 배경에 대해서 들어 보고, 그때 수사 결정한다.”
***
“자료를 또 달라는 겁니까?”
“네. 중기부에서 중재안 4천을 제시하셨는데 어떤 근거로 그 금액이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여러 가지 종합적으로 고려했겠죠. 우리가 공정위에 소명까지 해야 합니까?”
“소명이 아니라 확인입니다. 사실 좀 의아한 점이 있거든요.”
중기부에 가서 자료를 요구하니 찬바람이 풀풀 풍겨 나왔다.
“특허 도용이면 도용인 거고, 아니면 아닌 거잖아요. 근데 중재안으로 4천이 나왔단 말이죠. 이건 도용했다는 겁니까, 아니라는 겁니까.”
치부를 건드니 바로 발끈했다.
“특허 중재가 무슨 그렇게 무 자르듯 딱 잘라지는 줄 알아요?! 미심쩍은 부분도 있지만 경쟁사가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해 대웅조선 입장도 이해가 갔습니다.”
“그 판단 근거를 저희도 보고 싶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하아 참.”
사내는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언성을 높였다.
“김 서기. 대웅조선이랑 한양테크 자료 싹 가져와. 아주 보시게 편하게 액셀로 정리한 파일 드리고.”
“…….”
“민수 씨는 그 피스톤인가 파스톤인가 하는 특허 자료 가져와. 뭐 보면 아실지 모르겠는데 그냥 다 드려.”
그는 실컷 빈정대며 준철에게 말했다.
“또요. 또 뭐 필요한 거 있습니까?”
“기업들 소명자료도 보고 싶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분명 입장을 밝혔을 것 같은데.”
“소명자료? 여기 무슨 법원입니까? 우리가 증거 제출에 기업들 소명자료까지 내야 해요?”
준철은 그를 빤히 보다 물었다.
“저기 그…… 기분 나쁘십니까. 저희가 온 게?”
“그럼 좋겠습니까?”
“그렇게 싫으시면 조사를 잘하시든가요.”
“뭐, 뭐요?”
“대충 훑어봐도 하청이 특허 뺏겼구먼. 왜 이걸 캐치 못 합니까. 합의금 액수라도 많으면 몰라. 고작 4천 받고 화해하라는데 누가 이걸 이의 제기 안 해요?”
“그 정도면 우리도 할 만큼 한 거야! 특허 분쟁은 민사로 싸워야지 왜 수사기관 끌어들이려 그래.”
“그러면 중소기업부가 왜 존재하죠? 억울한 거 있으면 기업들끼리 다 민사로 끝내면 되는데.”
벌겋게 달아오른 남자를 두고 준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사를 돕든 말든 상관 안 합니다. 근데 받은 자료는 꼭 다 넘겨주세요.”
“말끝마다 자꾸 명령조인데, 누가 보면 중기부가 공정위 머슴인 줄 알겠습니다?”
하는 일마다 미덥지 않아서 그래요.
라는 말을 삼키고 준철은 자리를 떠났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지들이 수사하기 싫다고 공정위에 넘겼으면서.
막상 문제 생길 것 같으니 오만 추태를 다 부리고 있다.
뭐 별수 있나.
공정위에서 중재시킨 걸 중기부에서 문제 제기했다면 비슷하게 기분 나빴을 거다.
그렇게 이해해야지.
***
“팀장님도 참. 적당히 비위 좀 맞춰 주시지.”
“가만 보면 이 팀장님도 자존심 무척 세요. 어디 가서 지는 법이 없어.”
반원들은 중기부의 냉대를 견디며 자료를 모두 이관했다.
“꼼꼼하게 챙겨. 중기부 두 번 왔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다.”
그 와중에도 누락된 자료가 없나 검토를 두 번씩 더 했다.
그렇게 공정위로 복귀했을 때 준철의 수사 지시가 바로 이뤄졌다.
“반장님. 소명자료 좀 먼저 올려 주세요. 기업들 입장 좀 들어 봐야겠네요.”
“네. 따로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냥 내일 대웅조선에 소환장 보내죠.”
“바로요?”
“글로 읽는 것보단 들어 보는 게 낫죠. 대웅조선 담당자 소환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준철은 서류를 들었다.
이제부턴 객관화가 중요하다.
하청 사장이 과장되게 진술한 내용도 있을 것이고, 원청에서 억울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선입견 없이 보자. 한쪽 말만 들어선 안 되지.’
준철은 최대한 냉정하게 서류를 팠다.
하지만 하청 사장의 진술은 크게 과장된 부분이 없었다.
한양테크의 디젤엔진(피스톤)은 과연 독일 3사와 비견해도 뒤지지 않는 기술력이었다. 성능은 동급에 단가는 20% 낮아졌으니까.
하지만
대웅조선은 갖은 트집을 잡아 가며 다시 독일 제품을 쓰겠다 겁박했고, 한 5년쯤 시달리니 한양테크도 결국 특허를 공개해 주었다.
-펄럭.
그렇게 특허 독점권을 뺏겼으니 미래는 예견된 거나 다름없다.
대웅조선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그렇게 3년 동안 약 21%의 단가가 인하됐지만 말미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경쟁사로의 하청 바꾸기였다.
‘전형적인 방법이네. 특허 열람하고 경쟁사한테 생산시켜 버리기.’
이 자체만으로도 공정거래법 위반이다.
특허 유출 경로를 파악하면, 관련자를 형사처벌할 수 있다.
‘이렇게 보니 더 기가 차네.’
사안이 이 지경인데 중기부는 적당히 합의하라는 중재안만 냈다. 그들이 심사숙고했다는 종합적 판단은 더 읽어 볼 내용이 없었다.
‘딱 봐도 손 털고 싶어 하는 게 보이네. 원·하청이 민사로 해결했으면 했겠고.’
그렇게 서류 검토하는 재미에 쏙 빠져 있을 때.
“으……으!”
또다시 머릿속으로 두통이 엄습하며, 고통이 시작되었다.
***
“회, 회장님. 그럼 결국 특허 열람하라는 말씀입니까?”
“그걸 이제야 알아들었어?”
“한양테크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아무리 저희 하청이라도 특허 열람은 예민한 문제니까요.”
누구일까?
정체불명의 대화에선 임원들의 회의가 보였다.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노인은 계속해서 뚱한 표정이었다. 대화가 어째 마음에 안 드는 모양.
“예민하다…… 예민해?”
회장이 눈썹을 꿈틀거리자 회의실이 얼어붙었다.
“고작 피스톤 하나 특허 냈다고, 이걸 예민하다. 김 사장.”
“……예.”
“그럼 대책을 마련해 봐. 해양 플랜트는 적자에, 원자재값은 상승했네? 그나마 하나 믿는 게 배 건조인데 이것도 중국이 물량 공세로 따라와.”
“…….”
“원가 절감할 수 있는 대책이 뭐야? 생각들 있어?!”
회장이 호통을 치자 고개를 숙였다.
“왜 자꾸 사람 이상한 놈 만들어? 내가 하청 특허 뺏자는 게 아니야! 생산방식의 이원화. 특허 공유 좀 해서 하청 업체 늘리자니까. 품질 능력 향상시켜야 할 거 아니야.”
그 말을 믿는 임원은 아무도 없었다.
생산방식의 이원화. 이건 기존 하청 업체 일감에 경쟁사를 붙여 치열한 싸움을 붙이자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품질 능력이 향상되는 게 아니라, 가격이 떨어질 것이다.
그게 회장이 원하는 바겠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필수 아닌가?”
“……예.”
“한양테크가 하는 짓, 그거 부동산으로 따지면 알박기야. 핵심 부품 하나 쥐고 우리한테 폭리를 취한다고. 장장 그게 10년일세, 10년. 이 정도면 원하청이 기술 협약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김 사장으로 불린 사내가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회장님의 의지가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한데 저희가 특허 보여 달라고 해도 보여 주지 않을 겁니다.”
“핑계야 많잖아? 나중에 생산에 문제 생기면 우리도 타격을 입게 되니 기술 공유 좀 하자 그래. 이거 거부하면 그냥 비싼 값 주고 독일에서 수입해 쓰겠다 하고.”
“그렇게 얻은 특허는 어디에……?”
“적당한 데 알아봐. 특허 설계안 주면 제일 잘 따라 만들 수 있는 곳으로. 둘이 쌈 붙여서 경쟁 시작되면 피스톤 납품 단가도 인하해 봐.”
거래 끊겠다고 협박하면 당해 낼 재간이 없다.
“회장님. 그럼 기존 하청 정리하고 경쟁사에 일감 주면 거기랑은 평생 하실 겁니까?”
“굳이 그럴 필요 있나. 나중에 우리 자회사로 특허 이전해.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해 보자고.”
경쟁사에 특허를 인도하고, 원 업체를 털어 낸다. 그러다 기회 봐서 경쟁사를 털어 내고 자회사로 회수한다.
최종적으로 그 피스톤 특허는 대웅조선이 갖게 된다.
슬며시 웃는 회장을 보며 준철은 소름이 돋았다.
수법이야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만, 회장이 직접 관여되었을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