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56
56화
특허 까 봐 (1)
공정위는 곧 대웅조선에 러브레터를 보냈다.
[먼발치서 늘 당신을 훔쳐봤어요. 내일 여의도에서 만나요.]-쾅!
“대답들 해 봐. 공정위에서 왜 갑자기 소환장이 날아오지?”
노현석 회장은 임원들을 긴급 소집했다.
하지만 소환장을 면전에서 찢어 버리는 모습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김 사장, 그 문제 아직도 해결 안 됐어?!”
“그게 저…… 합의를 시도하고 있긴 합니다만 진전이 없습니다.”
“중기부에서 중재안까지 받아 왔잖아. 그럼 다 끝난 거 아니야?”
“아무래도 성에 안 차나 봅니다. 최 사장이 거부해 버렸습니다.”
노현석 회장은 책상을 다시 내리쳤다.
“대관절 그거 하나 해결 못 해서 뭐 하자는 게야! 액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적당히 값을 올려 주든가. 내가 이런 일까지 신경 써야 해?”
“송구합니다. 저희도 여러 차례 뜻을 전했습니다만…… 연락조차 받지 않고 있습니다.”
“꼴도 보기 싫어. 다들 물러가.”
밥값도 못하는 임원들이 물러갈 때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노 회장은 긴 한숨을 내쉬며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이 실장. 이거 어떻게 안 되겠나?”
“완강하다는군요.”
“중기부에서 중재안 내놨잖아. 이거 법대로 가 봤자 그놈이 우리 못 이겨.”
“최 사장도 그걸 모르고 덤비지는 않을 겁니다.”
“아는데 왜 미련한 싸움을 하겠다는 거야?”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 모든 걸 잃을 각오로 덤비는 것 같습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죽겠다 싶으면 호랑이라고 못 물겠나.
현재 한양테크가 그러했다. 법대로 가면 필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인데, 여전히 사납게 달려들고 있다.
“멍청한 놈. 중기부 중재안은 거부한 쪽이 불리한 법인데.”
그렇게 되뇌어 봤지만 노 회장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다 된 밥상을 갑자기 누가 엎어 버리려 하지 않나.
갈가리 찢긴 공정위 소환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관절 이놈들은 뭐냔 말이야. 갑자기 왜 끼어들어.”
“저희도 그 점이 납득되지 않습니다.”
“이유가 뭔 것 같아?”
“공정위에서 그냥 진행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중기부랑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이 미친놈들!
수사기관이 끼어들지 않으면 그냥 민사로 해결될 문제인데!
“아마 민사로 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희도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액수를 좀 올려 보지 그래. 4천이 성에 안 차면 뒤에 0 하나 더 붙여 줘.”
“4억이요?”
“그게 내가 내릴 수 있는 최고의 특단이야. 왜, 그 돈도 성에 안 찰 놈인가?”
“그건 둘째 치고, 액수를 올리는 게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찝찝하다는 걸 시인하는 꼴이니까요. 물론 서로 묵은 감정이 많아 그 액수에 합의도 안 될 겁니다.”
회장은 미간을 짚었다.
민사로 가면 질 수가 없고, 지더라도 돈 몇억에 끝난다. 하지만 형사소송은 돈으로 막을 수 없는 문제.
만약 자신이 직접 개입된 게 드러나면, 검찰 포토 라인에서 망신까지 당해야 한다.
그것이 공정위 소환장이 거슬리는 이유였다.
“회장님. 그러지 말고 이렇게 하는 게 어떻습니까.”
비서실장은 그 우려를 읽고 바로 대책을 내놨다.
“오랑캐는 오랑캐로 잡으시지요.”
“이이제이? 설마 일신모터?”
“네. 이 문제를 하청들의 특허 분쟁으로 끝내는 겁니다. 우린 그냥 경쟁사가 더 좋은 제품 가져와서 거래처 바꾼 거라 하고.”
“공정위가 바보도 아니고 그걸 퍽이나 믿겠어? 이놈들은 분명 특허 유출 경로 파악하려 들 거야.”
“그게 안 되면 대타 선수 쓰면 됩니다. 우리 쪽 과장 하나가 기술 유출시켰다, 이 정도 선이면 금방 진화될 겁니다.”
완벽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회장님의 얼굴은 한결 밝아졌다.
플랜 A든, B든 결국 자신에게 화살이 닿지 않는다.
“역시 일머리 있는 건 우리 이 실장밖에 없어. 사장이란 놈들은 요령이 없는 건지, 어쩐지 뒤통수만 얻어맞고.”
“실무진 아닙니까.”
“일도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야. 내 원 참 믿을 놈이 없어.”
“걱정 마십쇼. 공정위에 출두하는 건 과장 하나 보내겠습니다. 나중에 탈이 나도 그놈이 뒤집어써 줄 겁니다.”
***
“경쟁사끼리 특허 분쟁을 겪는 모양인데, 왜 자꾸 우리가 거론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업이야 단가랑 성능만 맞으면 어디든 거래할 수 있는 거죠. 따지고 보면 저희 대웅조선도
피해자예요. 이 사건이 조속히 해결됐으면 바랍니다.”
벌써 한 시간이나 이어진 소환 조사.
준철은 심드렁한 얼굴로 앞에 앉은 사내를 바라봤다.
“솔직히 저흰 왜 이 문제에 공정위가 개입하는지 의문입니다. 이미 중기부가 나서서 중재한 사안인데…… 괜히 판이 커졌죠. 당국이 개입하지 않으면 기업끼리 민사로 해결하겠습니다.
부디 저희 경영 정상화를 도와주십쇼.”
준철은 펜을 놓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얘기는 좀 높으신 분이 와서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책임자를 오라 했는데, 왜 생산부 과장님이 오셨습니까?”
“제가 책임자입니다.”
이 능구렁이 같은 놈이 사람 목소리 높아지게 만든다.
“일개 과장이 책임자라고요? 본인 권한이 뭔데요?”
“이 사건에 대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장난 그만하세요. 이 모두 과장 선에서 내려질 수 없는 지시였는데, 책임자 왜 안 왔습니까.”
준철은 수사 첫날부터 기가 막혔다.
최소 사장급이 와서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을 줄 알았는데. 일개 과장이라니.
그런 심정을 비웃듯 그는 웃으며 성질을 긁었다.
“젊은 팀장님께선 의전에 상당한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일의 총책임자면 과장이든, 대리든 누가 올 수 있는 거 아니요.”
“의전이라.”
“모두 제 선에서 결정된 일이니, 괜히 일 키우지 말아 주십쇼.”
준철은 삐딱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놈들의 의중이 뭔지 대략 알 것 같았다.
“아, 그럼 우리 유지석 과장님께서 특허를 유출시키셨구나.”
“네?”
“뭘 그리 놀라세요. 한양테크의 피스톤 기술 열람하고, 경쟁사한테 그대로 넘겨주지 않았습니까.”
그제야 슬슬 약 올리던 놈의 얼굴이 굳어져 갔다.
“시작부터 살벌한 말씀을 막 하시는군요.”
“아닙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하청사 두 곳이 피스톤 특허 가지고 분쟁을 겪고 있는 문제예요.”
“그 분쟁의 씨앗을 대웅조선에서 심었잖아요.”
“하청 업체 바꾼 거? 그건 그냥 단가랑 성능 고려해서 일신모터 선택한 것뿐이요. 최 사장은 거래 끊기니까 억하심정 생겨서 우리한테 덤비는 거고!”
그는 흥분한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숨을 골랐다.
“뭐 세상사가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축구 지면 심판이 매수된 것 같고, 친구가 시험 잘 치면 괜히 커닝한 것 같고.”
“그렇죠. 근데 간혹 보면 진짜로 커닝을 했고, 심판을 매수한 경우도 있더라고요.”
준철이 씩 웃었다.
“왜 남의 답안지 베껴 봤습니까?”
“마, 말도 안 되는 억측을.”
“억측이 아니라 드러난 사실이 그렇습니다. 한양테크가 가지고 있는 이 피스톤 기술. 대웅조선에서도 국산화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는데, 번번이 실패했죠. 그랬던 걸 갑자기 하청사가
국산화에 성공했고, 대웅은 여기랑 거래를 텄어요.”
민감한 과거 얘기를 꺼내자 과장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뉴스 뒤져 보니, 이 기술력이 상당하데요. 독일 3대 제조사와 비견해도 뒤처지지 않는 수준이라던데.”
“고작 인터넷 뉴스로 나온 게 뭐 얼마나 정확하겠습니까. 말만 요란해서 그렇지 뜯어보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면, 왜 대웅조선은 독립 생산 못 했습니까.”
“그, 그야 필요를 못 느꼈으니까.”
“왜 못 느껴요. 한양테크가 기술 개발하기 전까지 독일 모터 업체들한테 바가지 쓰셨던데.”
“…….”
“중소기업이 국산화 성공해서 단가가 반으로 내려갔는데, 그걸로도 만족이 안 됐습니까.”
먹어도 배부른 줄 모르는 놈.
국산화에 성공하고 가격은 반값이 됐는데 거기서도 만족을 못 했다.
아, 회장이 어떤 놈인지 적나라하게 들여다봤지.
경쟁사로 만족 못 하고 그걸 최종적으로 자기가 먹으려 하는 놈 아닌가.
“따라갈 수 없는 경쟁력이란 건 대웅조선이 스스로 증명한 겁니다. 한양테크랑 거래를 10년 넘게 이어 왔잖아요.”
이쯤 했으면 바로 무너질 줄 알았는데.
과장이란 놈은 확실히 단련된 선수였다.
그는 오히려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양테크의 피스톤은 독보적인 기술이었죠. 그때 당시에는.”
“당시에는?”
“근데 무슨 특허가 천년만년 가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그 뒷내용도 보십쇼. 일신모터가 성능은 좀 떨어지는데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왔어요. 가격이 거의 반값 수준인데 기업 입장에서
어딜 선택하겠습니까.”
“그래서 더 웃겨요. 이 경쟁사가 어떻게 갑자기 이런 피스톤을 만들어 냈을까.”
“그건 저희도 모르죠.”
“아니요, 잘 아실 겁니다. 이 경쟁사가 끼어든 시점이 바로 여기 아닙니까.”
준철이 서류를 가리켰다.
“대웅조선이 한양테크 특허 열람했잖아요. 작업표준서, 공정 순서, 부품 내역. 모든 기술 자료를 다 열람하고 나서 경쟁사가 등장했어요.”
“……저희가 특허 열람했다는 증거 있습니까?”
“철두철미하더군요. 증거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열람했으니. 아, 처음부터 뺏어 먹을 생각이었으면 이랬을 수도 있겠네요. 나중에 잡혔을 때, 증거가 남아야지 않으니까.”
꿈틀거리는 그의 얼굴로 준철이 서류를 내밀었다.
“근데 하청도 바보는 아니에요. 당시 특허 열람 요청했던 문자, 통화 내역. 하청 사장이 전부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이것만 가지고 단정 내리지 마세요.”
“여기까지 했으면 인정할 줄도 아세요. 대체 남의 특허 왜 열람했어? 우연이라고 하기엔 설명이 많이 필요한 것 같지 않아?”
유 과장의 머리털이 쭈뼛 섰다.
비서실장님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 언질을 주긴 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몰아붙일 줄 몰랐다. 젊은 놈이 반말까지 지껄일 줄이야.
‘뭐지…… 우리가 특허 유출시킨 것까지 파악한 건가?’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틀어지자 그가 말을 더듬었다.
“그런 적 없습니다. 그건 하청끼리의 문제예요.”
“좋아. 그럼 특허 한번 까 봅시다.”
“……예?”
“경쟁사가 가져왔다던 피스톤 까 보라고요. 성능만 비슷한지, 아니면 정말로 똑같은 피스톤인지. 우리가 제품 직접 보고 판단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