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57
57화
특허 까 봐 (2)
오 과장은 후회 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특허를 까라니? 엄밀히 말해 우리가 경쟁사 특허까지 볼 권한은 없어.”
“됩니다, 과장님. 영장만 있으면 다 돼요.”
“야이! 검찰이 무슨 영장 자판기냐? 신청한다고 다 나와?”
“본청 기술유용팀한테 부탁하죠. 여기서 특허 침해됐다 판단하면 영장 무조건 나옵니다.”
잠시 잊었다. 이놈은 대통령 빤쓰도 훔쳐 올 수 있는 놈이라는 걸.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직접 소환 조사하는 건데.
오 과장이 미간을 좁히자 준철이 더 열을 올렸다.
“과장님 솔직히 생각을 해 보십쇼. 공정위 소환 조사에 일개 과장을 보낸 놈들입니다. 전 최소한 사장급은 나올 줄 알았습니다.”
“…….”
“이건 벌써부터 꼬리 자르기 들어가는 거죠. 하청들의 특허 분쟁으로 끝내려다가 정 안될 것 같으면 과장이 다 뒤집어써 버릴 겁니다.”
“그럼 이 팀장은 이거 어디까지 관여됐다 보는데.”
“이런 지시는 최소 사장급 이상, 아니 회장의 묵인 없이는 절대로 이뤄질 수 없는 결정입니다.”
준철은 단정적으로 말했다. 정체불명의 대화로 이미 확인한 바 있었으니.
오 과장도 긴 고민에 잠겼다. 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최소 8계단은 내려가야 과장이 나오는데, 배짱 좋게 과장을 보내 버리다니.
놈들의 불손한 의도는 이미 다 드러난 것이다.
“그 과장이란 놈은 뭐야?”
“아무래도 히트맨 같습니다. 특허 유출을 시킨 놈.”
“저지른 건 그놈이어도 뒤에 지시는 따로 있었고?”
“예. 그 뒷선까지 밝혀내려면 저희도 여러 수사팀 필요합니다.”
“이 팀장…….”
“꼬리 자르기 안 돼요. 몸통은 따로 있는데 수족들만 쳐서 뭐 하겠습니까.”
역시나 그 배후세력까지 칠 생각이군.
“이건 진짜 만약에 말이야…… 본청 기술유용팀 붙으면 이거 드러낼 수 있어?”
“네. 하청사 두 곳의 피스톤 모두 입수했습니다. 기술유용팀이 동일 상품이라 판단해 주면 기소-영장 동시에 칠 수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술유용팀.
변리사와 기술직들로 이뤄진 이곳은 공정위의 감별사로 통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특허가 침해됐다, 아니다를 감정하는 곳인데, 각계 전문가들로 이뤄진 만큼 소견서가 엄청난 법적 효력을 가졌다.
한양테크와 일신모터의 피스톤을 가져다주면 이게 껍데기만 다른 상품인지, 정말 다른 상품인지 금방 판가름이 날 것이다.
“후우-.”
하지만 권한이 상당한 만큼 엉덩이가 무거운 곳.
특허 분쟁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기에 도움을 요청한다고 무조건 도와주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원청의 입장도 냉정히 들어 봐야 하지 않나? 대웅조선이 거래처를 바꾸자 한양테크가 앙심을 품고 덤비는 거일 수도 있다.
오 과장은 솔직히 후자라고 생각했다.
연초부터 보여 준 최 사장의 퍼포먼스를 생각하면, 아무리 봐도 그놈이 미친놈이다.
“과장님. 원청에서 특허 열람한 게 결정적인 거 아닙니까? 비슷한 시기에 갑자기 경쟁사가 등장한 건 말이 안 돼요.”
“그럼 공정위 앞에서 단식투쟁하는 건 말이 되고?”
“그건…….”
“엄밀히 말해 이건 민사로 해결하는 게 제일 깔끔하다. 아니면 특허청 특허심판원을 가든가.”
맡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
하지만 한 가지가 거슬렸다. 언뜻 보기에도 대웅조선이 특허 갈취했는데, 이걸 하청들의 분쟁으로 끌고 가려 한다. 그리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벌써 대타 선수까지 쓰고 있다.
구린내가 심하단 뜻이다.
“…….”
준철의 말대로 이건 배후세력이 확실했다.
만약 공정위가 손 떼면 하청이 승소한다 하더라도 배후세력은 영영 밝혀내지 못할 것이다. 그걸 아니까 이 무모한 놈이 달려드는 것이겠고.
긴 생각에 잠겼던 그는 이내 입을 열었다.
“일단 본청에 보고는 올려 보지. 근데 장담은 못 해.”
“감사합니다! 과장님.”
“뒷말 못 들었어? 장담은 못 한다니까. 나도 설득은 최대한 해 본다. 근데 본청에서 안 도와주면 너도 이거 손 떼. 배후세력까진 못 찾는 거다.”
납득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승복해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저도 포기하겠습니다.”
“후우- 입수한 피스톤 상품 제출하고 일단 대기해.”
“저기 그…… 언제까지.”
오 과장은 준철을 빤히 바라봤다.
“아니, 언제까지든 대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반장님. 저희 피스톤 입수한 거 기록보관실로 옮겨 주세요.”
과장실에서 돌아온 준철은 바로 오더를 내렸다.
“설마 바로 수사하라 합니까?”
“일단 본청에 보고를 해 주시겠다 합니다. 기술유용팀 붙을 거예요.”
“언제까지……?”
“잘은 모르겠어요. 본청에서 도와줄지도 미지수고.”
오 과장이 본청에 잘 설득해 줘야 한다.
제발 본청에서 수사가 빨리 떨어지기를.
“그리고 중기부에서 가져온 자료. 저희가 소환 조사했던 자료 모두 보고서로 만들어 주세요. 과장님 내일 당장 출발하신다니까 그때까지요.”
그렇게 반원들이 흩어질 때쯤 김 반장이 조심히 말을 붙였다.
“팀장님. 우리 쪼오금 드라이하게 접근하는 건 어떨까요.”
“뭐 걸리는 부분 있으세요?”
“외연상 대웅조선이 특허 뺏은 건 확실해 보이는데…… 그래도 눈에 보이는 게 있지 않습니까. 하청이 다른 하청 특허 훔쳐 갔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경쟁사 한번 소환해 보는
게…….”
충분히 해 볼 만한 우려다.
어찌 됐건 경쟁사끼리 붙은 싸움이니.
“그럼 말려드는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수사가 꼬인다.
“경쟁사 데려와서 뭘 묻겠습니까. 이 피스톤 어떻게 만들었나 묻는 것밖에 없잖아요.”
“추궁하다 보면 몸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대웅조선이 넘겨줬단 진술만 나오면 완전히 끝나는데.”
“뒤집어쓰면 썼지, 그런 대답이 쉽게 나올 리 없죠.”
“뒤집어써요……? 하청이?”
“첫 소환 조사에서 과장급 보내는 거 보면 답 나오잖아요. 하청이 뒤집어써 준다면 쌍수 벌려 환영일걸요.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하청이 자백할 리도 없습니다. 우리 수사에 협조하면
처벌은 처벌대로 받고, 거래는 거래대로 끊기니까.”
이런 상황에서 경쟁사 데려와 봤자 뭘 하겠는가. 시답잖은 얘기나 듣고 얼굴 붉히는 게 끝이겠지.
도리어 그건 해가 될 수도 있다.
대웅조선은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하청들의 분쟁으로 돌리고 싶어 한다. 경쟁사를 소환하는 순간, 그들이 원하는 시나리오로 흘러간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단호한 준철을 보며 김 반장은 확신했다.
젊은 팀장의 최종 목표는 배후세력 색출이다.
“그럼 팀장님은 이 문제 어디까지 관여됐다 보십니까?”
“회장이요.”
기다렸다는 듯 답이 나오자 당황스러웠다.
“사장이 아니라…… 노현석 회장이요?”
“이런 간덩어리 큰 짓은 절대로 사장 선에서 나올 수 없는 결정입니다. 직접 지시는 몰라도 보고는 무조건 들어갔어요.”
적당한 말로 둘러대니 김 반장이 한숨을 쉬었다.
“아이고, 그럼 진짜로 사건 커지겠네.”
“네. 기술유용팀 붙고 기소 영장 나와야 돼요.”
“과장님이 빨리 재가받아 오셔야 할 텐데.”
“기다려 보죠. 저희 과장님도 느긋한 스타일은 아니니.”
준철은 웃어 보였지만 속은 그 누구보다 복잡했다.
노현석 회장은 지금 호위무사가 엄호하고 방탄조끼까지 입고 있는 상황.
이걸 다 밝혀내려면 아마 큰 싸움이 될 것이다.
***
본청에 도착한 오 과장은 심란한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기술유용팀에 협조 공문을 보냈는데, 사흘째 묵묵부답.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약속도 잡지 않고 무작정 방문한 터였다. 올 때마다 불편한 세종시가 오늘은 더 불편하게 느껴진다.
긴장한 기색으로 본청에 도착하니 예상대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오전에 도착해 하루가 끝날 때쯤 되어서야 겨우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다.
“자초지종을 읽어 봤는데, 이거 꼭 공정위가 맡아야 하는 겁니까?”
담당자로 보이는 이가 공격적인 말투로 물었다.
“딱 봐도 민사로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맡아 봤자 골머리만 썩겠습니다. 특허청으로 보내시지요.”
“심 과장님. 그게 그들이 원하는 겁니다. 민사소송으로 가면 지들이 이길 거 아니까 지금까지 버티는 거죠.”
오 과장은 예의 차릴 것 없이 목소리에 힘줬다.
“대웅조선이 특허를 열람했던 시기를 보십쇼. 이유도 없이 특허를 열람했고, 갑자기 경쟁사가 붙어 버렸습니다.”
“원청이 특허 정보를 흘렸다는 겁니까?”
“네. 그게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소환해 봤는데 과장급이 왔습니다. 이건 수사에 응할 마음이 없다는 거죠.”
대웅조선은 법정으로 가고 싶어 한다.
그렇게 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약한 쪽이 나가떨어질 테니까.
담당자는 긴 한숨을 내쉬다 말했다.
“솔직히 저흰 잘 모르겠습니다. 정황을 놓고 보면 의심이 가긴 하지만, 하청이 악의적으로 고발했을 가능성도 커 보여요. 지금 이 하청 사장이 공정위에서 단식투쟁까지 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가 따끔하게 현실을 직시하자 오 과장도 할 말이 없었다.
“그건 그렇습니다.”
“냉정하게 봤을 때 그런 사람 중에 정상이 있었나…… 잘 모르겠네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근데 서류를 들여다보니 왜 그 사람이 그랬는지 이해가 조금 되더군요.”
“그냥 민사소송하면 우리까지 나설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변호사 몸값만 비교해 봐도 누가 이길지 빤히 알지 않습니까. 이건 수사기관에서 나서 줘야 합니다. 반드시 배후세력 밝혀야 해요.”
오 과장은 강조하며 말을 이었다.
“피스톤 두 개 입수했습니다. 이거 동일 상품인지 아닌지 판단해 주십쇼. 나머진 저희가 검찰에 기소-영장치고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긴 침묵이 흘렀다.
고려해야 할 게 많다.
특허를 침해했는지 안 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일단 중기부가 중재안 낸 사건 아닌가? 비슷한 수사기관에서 끼어드는 것 자체가 불편한 일이다.
“그럼 저희한테 브리핑 한번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솔직히 중기부가 중재안 내준 사건이라 우리도 불편합니다. 해야만 하는 이유가 뭔지, 실무진에게 직접 듣고 싶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브리핑 날짜 바로 잡아 주십쇼. 상세히 보고드리겠습니다.”
희망이 보이자 오 과장은 세상 인자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옌장할- 중기부랑 또 피 터지도록 싸워야겠네.’
물론 속으론 울고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