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중기부 VS 공정위 (1)
-탕! 탕! 탕!
포항 앞바다, 대웅조선 건설 현장.
자동차 매연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무거운 기름 냄새가 흐르는 곳이다.
포항 앞바다는 여느 날처럼 중장비 모터 돌아가는 소리로 하루를 시작했지만, 오늘은 사뭇 그 분위기가 달랐다.
“뭐시여 저건?”
봉고차 세 대가 도착해 갑자기 양복쟁이들이 내리지 않나.
작업복 차림의 인부들은 하나같이 불안한 얼굴이 됐다. 양복쟁이들은 보통 본사에서 온 높으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오늘 현장 시찰이 있었어? 왜 본사 사람이 왔대.”
“본사가 아니라, 공무원들 같은데.”
“공무원? 아니 우리 현장에서 사고 터진 것두 없잖혀. 불안하게스리 왜 저리 떼거지로 와.”
-탕…… 탕…… 탕.
시끄럽게 울리던 모터 소리가 이내 조용해졌다.
산업재해 원탑 업종이었기에 이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공무원들이 저리 등장할 땐 피바람이 닥친다는 걸.
“저 중장비 기계가 한 시간 정도 안 돌아가면 한 20억씩 손해일 겁니다. 이제 좀 성이 풀리십니까?”
조용해진 광경을 보며 기술유용 박 팀장이 빈정거렸다.
브리핑 때의 앙금이 아직 남은 모양이다.
“이제부터 시작인걸요 뭐.”
“하- 참.”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경거망동한 언사였습니다. 배 한 척을 다 뜯어보자니.”
“결정은 위원장님께서 내려 주신 겁니다.”
“그 양반이야 곧 퇴임할 사람이고, 우린 남아야 할 사람 아니요. 살다 살다 배 한 척을 다 분해해 보는 건 처음입니다.”
준철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직무유기가 무슨 자랑스러운 얘기라고. 배 한 척 뜯어보면 지금까지 뺏어 갔던 특허가 다 나올 것이다.
그 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는 거겠지.
“진짜로 배 다 분해하는 거 아니잖아요. 샘플만 확보하는 건데.”
“그거나 저거나.”
“위원장님이 일임하셨으니 샘플 선박은 제가 골라도 되죠?”
“마음대로 하세요. 난 더 신경 안 쓰고 싶습니다.”
준철은 두리번거리다 가장 크고 웅장한 선박 하나를 가리켰다.
“아주 크고 좋네요. 기왕이면 부품 많이 들어가 있는 게 좋죠?”
“아니, 10만 톤짜리 화물선을 뜯자니요?! 저 배는 공정위 예산보다 더 비싼 겁니다.”
“농담입니다. 그 옆에 있는 200톤짜리로 하죠.”
“지금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와요?”
그러게 어차피 본전도 못 찾을 거 왜 퉁을 부려?
준철이 씩 웃자 그가 팩 하니 돌아섰다.
뒷모습을 보니 좀 미안하긴 하다. 울화통이 터질 만큼 스케일이 커지긴 했지.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준철은 곧 자리로 돌아와 김 반장에게 말했다.
“반장님. 지금까지 특허 시비 걸렸던 거 싹 다 정리해서 기술유용팀 주세요.”
“네.”
“피스톤 도용 확인되면 바로 중기부로 가겠습니다.”
***
200톤짜리 배를 분해하는 데는 채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본래 부수는 게 만드는 것보다 쉬운 법이다.
조립품을 다 분해한 공정위는 바로 대조 작업에 들어갔고, 그 결과는 그대로 중기부에 전송되었다.
“뭐, 뭐야?! 배 한 척을 다 뜯어 봤다고.”
“예. 200톤짜리 선박 하나 잡아서 진짜로 다 해부했습니다. 이번 피스톤뿐 아니라 그간 시비 걸렸던 특허를 다 조사했다고…….”
“하아…… 그래서 결과는?”
“상당 부분 다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아직 조사 중에 있지만 주요 부품 세 개는 거의 명백한 특허 도용이라 합니다.”
전례가 없는 수사에 가장 충격을 받은 건 대웅조선이 아니라 중소기업부였다.
현재 문제 된 부품 모두 과거에 다 신고된 사건들 아닌가? 예나 지금이나 중기부의 대처는 다름이 없었다. 손 떼고 그냥 민사소송으로 가게끔 내버려 두었는데, 자칫하면 단두대에 함께
올라갈 판이다.
“과장님, 저희도 무슨 대책을 세워야겠습니다. 만약 공정위가 이 자료를 국회에 넘겨 버리면 연초부터 국정감사가 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장의 머릿속엔 지옥도가 그려졌다.
중소벤처기업부, 말 그대로 중소기업의 울타리가 되어 줘야 할 곳 아닌가? 나 몰라라 했던 사실이 드러나면 금배지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다. 국감은 곧 단두대나 다름없었다.
“피스톤은 뭐래. 이것도 도용된 거래?”
“예. 부품 대조를 해 봤는데 완벽하게 일치하는 상품이랍니다. 대웅조선에서 특허를 열람하고 그 도면을 경쟁사로 넘긴 것 같습니다.”
“그럼 특허 유출 경로는?”
“파악 중입니다만 노 회장 연루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소 처리되면 아마 공정위가 더 공격적으로 수사할 겁니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득해질 때,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과장님. 공정위 담당자가 찾아왔는데요.”
“누구야, 그때 그 젊은 놈이야?”
“네.”
젠장 두 번 볼 줄 알았다면 좀 더 친절하게 대해 주는 건데.
담당 과장은 허겁지겁 서류를 정리하고 말했다.
“일단 들어오라 그래. 그리고 다들 나가 있어 봐.”
***
“어서 오세요. 자주 뵙네요 우리 팀장님하곤.”
다시 만난 중기부 과장은 퍽 친한 척을 해 왔다.
준철은 그 모습이 첫 만남보다 더 기분 나빴다. 사태 파악 다 됐으면 이런 웃음이 나올 수 없는데.
“들을 얘긴 들었습니다. 배 한 척을 다 분해해 보셨다고.”
“예. 그 결과를 어제 보내 드렸습니다만.”
“흥미롭더군요. 근데 너무 중구난방이랄까. 선택과 집중을 해서 수사를 진행하면 좋겠는데…… 너무 이것저것 많더라고요.”
기가 차는 얘기였지만 준철은 죽을 맞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 해서 몇 가지 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말씀해 보세요.”
“중기부에서 왜 중재안을 4천만 원만 줬는지. 여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아, 오해는 없으셨음 합니다. 저희가 놓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니…….”
탕!
그럼 그렇지. 민감한 얘기를 꺼내자 바로 본색이 나온다.
“거 좀 이상하게 들립니다.”
“뭐가요?”
“왜 중재안이 4천만 원이냐…… 이게 꼭 누굴 탓하는 것으로 들린단 말이죠? 대웅조선이 무슨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 특허를 열람했던 것도 아니고. 우린 두 기업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기술을 공유한 줄 알았습니다.”
기술 공유라.
“솔직히 하청도 잘한 건 없잖아요? 그렇게 중요한 특허였으면 원청에 왜 보여 줍니까? 아닌 말로 우린 아직도 의심스러워요. 처음엔 의기투합해서 뭐 해 보려다가 일 틀어지니까 이렇게
되지 않았나. 중재안은 그래서 그 액수 나온 거요.”
“들을수록 기가 차는군요.”
“뭐?”
“힘센 놈이 답안지 보여 달라는데 안 보여 줄 재간 있어요? 학교 선생한테 일러 봤자 이렇게 화해시키는데 버틸 재간 있어요?”
“이, 이 사람이 어디라고 망발을!”
“그냥 손 떼기 바빴잖아요. 그게 누적돼서 지금 이 꼴이 난 거 아닙니까.”
당국의 무관심을 틈타 대웅조선이 뺏어 간 특허만 8건이다.
“이걸 민사로 돌리는 건, 괴롭힘당한 놈한테 네 힘으로 싸워서 이겨 보란 뜻입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요.”
“중재안 철회하세요. 이 졸속 중재안 때문에 하청이 더 피해입고 있습니다.”
그리 말하며 준철이 서류를 건넸다.
“그리고 근시일 안에 대웅조선 생산제재 내리세요.”
“뭐, 뭐요? 생산제재?”
“네. 현재 대웅조선의 책임으로 특허 시비에 걸리지 않았습니까. 행정명령 발동 요건은 다 충족됐습니다.”
“아니, 그게 요건만 충족되면 다 되는 건 줄 알아요? 이건 기업들한테 사형선고야. 우리도 함부로 못 내린다고.”
“원청이 하청 하나 죽여 놨는데, 사형선고는 안 된다는 겁니까? 아니지, 파악된 것만 8건이 넘는 연쇄살인범인데 이건 언제 쓰는 겁니까?”
담당 과장은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필요할 때 권한 쓰는 것도 당국의 의무예요. 가지고만 있으면 뭐 합니까? 이것저것 따져 대느라 정작 필요할 때 권한 못 쓰고 있는데.”
“시간을 좀만 더 주세요. 우리도 신중히 검토하고 결정 내리겠습니다.”
“언제까지요? 저흰 내일 대웅조선 기소하고 영장까지 칠 겁니다.”
“아니 공정위도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얘기가 또 길어질 조짐을 보이자 준철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팩스 번호 잘못 찍었네. 그냥 야당 의원실로 바로 보내 버렸어야 하는 건데.”
“이, 이보세요 팀장님.”
“됐어요. 이렇게 엉덩이가 무거워서 어떻게 합을 맞춥니까. 국민들 관심이 목마르면 계속 느긋하게 일하세요. 연초부터 국감 열어서 중기부 인지도 올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자료를 팽개치며 나갈 때 과장이 달려 나와 옷자락을 꾹 부여잡았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국장님께 보고드리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제발 진정하세요.”
진작 이렇게 나왔어야지. 쯧쯧.
***
“……아무래도 진짜 송사까지 갈 모양입니다.”
“송사?”
“예. 공정위의 기술유용팀까지 붙은 모양이더군요.”
준철이 깽판을 치고 간 소식은 그날 바로 중기부 국장에게 올라갔다.
“알아보니 이 모든 지시가 다 위원장 지시로 이뤄졌다 합니다.”
“공정위원장이?”
“예. 200톤짜리 화물선을 다 뜯어서 증거 확보해 놨다 합니다.”
국장은 미간을 짚으며 담당 과장을 쏘아봤다.
“일 처리를 어떻게 했기에 이딴 망신을 당하고 있어?!”
“죄, 죄송합니다.”
“그쪽에서 구체적으로 원하는 게 뭐야?”
“생산제재입니다. 현재 특허 유출로 의심받는 피스톤을 중단시키라는 건데…… 사실상 업무정지입니다.”
국장의 한숨이 짙어졌다.
아무리 특허 시비가 걸렸다 해도 생산제재는 함부로 이뤄지지 않는다. 사형선고에 해당하는 행정명령 아닌가?
그럼에도 이런 극약처방을 원하는 건, 최종 배후로 노 회장이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공정위 의견은 얼마나 일리 있는 것 같아? 그 노 회장이 연루되어 있다는 거.”
“지금은 심증뿐이긴 합니다만……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정황들을 회장이 모두 모르고 있었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지금 공정위는 이 몸통 잡으려고 하는 거지?”
“예. 적당한 사장급이 뒤집어쓴다 해도 안 멈출 겁니다.”
당연히 그럴 놈들이겠지.
이런 제재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미친놈들이란 방증인데.
국장은 긴 보고를 듣다 결국 대답을 내렸다.
“생산제재는 일단 보류. 대신에 그 피스톤 경쟁사라는 놈 소환해서 공정위에 보내.”
“하지만 국장님…….”
“특허 유출 경로는 확실히 파악해야 될 거 아니야. 원청이 다른 하청한테 특허 줬으면 그놈한테라도 자백 나와야 돼. 그럼 우리도 수사 돕는다. 공정위에 이 말 잘 전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