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6
6화
제보자 (1)
“사장님,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공정위가 노동부랑 공단에까지 고발을 넣었다고 합니다. 자칫하면 대형 스캔들로 번질 수 있겠는데요.”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는 금세 하청사들 사이로 퍼졌다.
“후우…… 지금 어디까지 돌았어?”
“대성중공업에서 일감 많이 받아 가는 순으로 치고 있답니다. 저희도 곧 들이닥칠 겁니다.”
“아니, 우리 업장에서 벌어진 일도 아닌데 왜 엄한 곳 다 들쑤시고 다닌다는 거야?”
“유사 사례 찾는답니다. 다른 하청사에서도 산재 사고 은폐한 게 있는지 찾고 있다는군요.”
명운도장 최 사장은 사색이 되었다.
중공업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사소한 사고는 다반사로 일어난다. 하지만 산재 처리시킨 사고는 ‘0’.
원청 눈 밖에 날까 봐 어지간한 사고는 전부 회사 사비로 처리했다.
직원들도 지금까진 이런 회사 처지를 이해해 주었지만, 이들이 수사처 앞에서 어떤 말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직원들 분위기 어때?”
“저희 쪽 기사 중에 큰 불만 가진 사람 없었습니다. 물론 이 사건과 관련해 입단속은 시켜 뒀고요.”
“대성중공업은?”
“아직까지 아무런 지시가 없습니다.”
또다시 한숨이 나왔다.
보통 이런 사건이 터지면 원청에서 매뉴얼이 나온다. 수사 당국에 해도 될 얘기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얘기가 정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성에서 아무런 지시가 없었다. 이건 수사 상황을 몰라서가 아니라 아직도 대책이 서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냥 확 불어 버려? 우리도 당한 거 많은데.’
그런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최 사장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대성중공업이 어떤 놈들인가? 국정원급의 정보력으로 하청들을 손바닥 안에 둔 놈들이다.
만약 억울했던 걸 하나라도 말하면 모든 하청들이 집합당할 것이다. 누가 배신자인지 색출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옌장할-.”
대책 없이 한숨만 반복하고 있을 때 사내 직원이 다급히 들어왔다.
“사장님. 저…… 손님이 오셨습니다.”
“뭐? 누구?”
“잘은 모르겠지만 공정위에서 나오셨다고…….”
오늘이 바로 디데이란 말인가.
“호랭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박 부장.”
“예.”
“엄한 거 꼬투리 잡을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안전 수칙 철저히 지키면서 작업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린 풍산 쪽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자네한테 물어봐도 절대 입 밖에 꺼내선 안 돼.”
“걱정 마십쇼.”
최 사장은 심호흡을 하곤 불청객을 맞으러 갔다.
호랑이 굴에 잡혀 가도 정신만 차리면 호랑이 가죽을 들고 온다 했다.
어쩌면 이번을 기회로 원청에 충성심을 어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무조건 모른다고 하면 되는 거잖아. 어차피 우리 회사에서 터진 것도 아닌데.’
공정위가 아무리 기업들 저승사자라 해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
모른다, 기억 안 난다, 우리랑 관계없다.
이 기적의 답변만 계속하면 알아서 나가떨어질 것이다.
***
“안녕하십니까. 제가 명운도장 최 사장입니다만.”
긴장한 얼굴로 도착한 최 사장은 준철을 보자 조금 맥이 풀렸다.
노련한 얼굴의 중년 사무관을 예상했는데 상대는 풋내기였기 때문이다.
조사관이 행시 출신이면 오히려 다루기 쉽다. 중공업 현장은커녕 자기 업무 경험도 부족할 테니 말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공정위 종합감시국 이준철 팀장이라고 합니다.”
“예. 한데 어인 일로?”
“드릴 말씀이 많은데, 사무실에서 드려도 될까요?”
“이 컨테이너는 말만 사무실이지 사실상 기사들 비품실입니다. 뭐 복잡한 얘깁니까?”
오호라. 물 한 잔도 마셔 줄 생각이 없다?
그의 고압적인 태도에 준철은 속으로 웃음이 났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본론만 말씀드리죠.”
준철이 눈짓을 하자 김 반장이 그에게 서류를 건넸다.
“명운은 대성중공업의 핵심 하청사더군요. 외주 거래 맡은 지 8년이 넘었고, 규모도 늘 100억대 수준이고.”
“뭐 감사하게도 오래됐지요. 우리만큼 작업 기일 잘 지키는 하청 없고, 대성만큼 결재 확실히 해 주는 데도 없고. 서로 좋은 거 아닙니까?”
“그래요?”
“예. 사장인 나뿐 아니라 직원들 만족도도 높습니다. 대성 덕분에 최소한 생계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탐색차 질문 몇 개를 던져 봤는데, 갑자기 대성 용비어천가를 부른다.
그런 작위적인 칭찬은 원청과의 관계를 일부러 과시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상하네요. 저희가 알고 있는 얘기완 많이 다른데.”
“무슨 말씀입니까?”
“여기 오기 전에 다른 하청사도 많이 돌다 왔어요. 근데 대성에서 외주 비용을 너무 후려쳤다더군요. 최소한의 안전 수칙도 못 지킬 만큼.”
준철이 질문 수위를 높이자 그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셨다.
“허허…… 그래요?”
“예. 사장님은 모르세요?”
“저희는 모르는 얘깁니다.”
“진짜 모르세요? 그것 때문에 현장에 사고도 많이 일어난다 들었습니다. 근데 산재 처리는 입 밖에도 못 꺼낸다는데.”
“글쎄요. 저희는 정말.”
“사장님 그러다가 공범 되십니다. 원청에서 시켰든, 눈치껏 무마했든 근로자 사고 신고 안 하면 하청 사장도 공범이에요.”
공범이란 말에 그의 얼굴이 쩍 갈라졌다.
당장 머릿속에 스쳐 간 사고만 해도 수십 건을 넘는다. 공정위가 8년 치 기록을 이 잡듯 뒤지면 실형을 피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왜, 왜 이러십니까. 선생님.”
“저희가 이번에 제보를 하나 받았습니다. 하청 근로자가 전치 50주의 부상을 입었는데, 대성에서 이걸 산재 처리 안 시키고 사비로 내게 했대요.”
“우, 우리 쪽 직원 아닙니다. 직원들 다 불러서 물어보세요.”
“물론 여긴 아닐 겁니다. 근데 이 비슷한 일 많이 당해 보셨죠?”
준철은 들고 있던 서류를 그에게 마저 넘겼다.
“이건 저희가 근로공단에서 뽑은 내역서입니다. 명운은 너무 깨끗하더군요. 공사 규모가 작은 것도 아니고, 거래 기간이 8년을 넘었는데, 산재 신청을 단 한 번도 안 하셨어요?”
“아, 아니. 무사고 기록은 저희가 칭찬받아야 할 일 아닙니까? 이렇게 꼬투리 잡으시면 어떡합니까.”
“사장님. 완전군장 메고 행군만 해도 부상자가 속출합니다. 근데 그것보다 더 무거운 짐 옮기고, 용접, 땜질까지 다 하는데 정말 부상자가 없었다고요?”
“…….”
“이거 없어서 안 한 겁니까, 아님 누가 하지 말라고 외압을 넣었습니까?”
잿빛으로 변한 그의 얼굴은 정답이 무엇인지 이미 말해 주었다.
하지만 그는 잠시 뜸 들이다 다른 말을 꺼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를 원하시는 겁니까?”
“이 제보가 어떤 하청사에서 나온 겁니까?”
“……그거면 됐습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대성에서 산재 사고 은폐했던 모든 내역 다 말해 주세요.”
“선생님 아직 현장에 대해 모르시겠지만 저희 같은 하청사들은…….”
“빈말 아닙니다. 저희가 검찰에 고발하는 내용에 따라 사장님은 갑질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공범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 말하자 최 사장은 준철의 옷소매를 잡으며 급하게 주위를 살폈다.
“이, 일단 사무실로 들어오시지요. 그리고 선생님. 잠시 둘이 얘기할 수 없습니까?”
***
비품실로 쓰인다는 컨테이너 박스는 외관과 달리 무척 깔끔한 곳이었다. 컴퓨터 두 대와 작업 자료가 모두 기록된 장부까지 있었다.
그런 사무실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대성중공업이 보낸 무사고 현판이었다.
-(축) 무사고 1천 일 달성-
-(축) 무사고 2천 일 달성-
준철은 저 현판이 뭘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진짜 무사고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입 다물고 살라는 협박 편지를 보낸 것이다.
‘건설이나 조선(造船)이나 크게 다를 건 없군.’
그런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최 사장이 잠긴 목소리로 말해 왔다.
“……내가 알기론 그거 풍산 쪽에서 터진 일로 알고 있습니다.”
“어디 작업반이죠?”
“용접 쪽 일을 맡고 있습니다.”
“용접이면 주로 고소(高所, 높은 쪽에서 하는 일)작업 아닙니까?”
힘주어 되묻자 그가 흠칫 놀랐다.
아무리 봐도 자기 회사 대리쯤 보이는데, 어떻게 중공업 현장을 손바닥 꿰듯 알고 있을까?
“예…… 잘 아시는군요.”
“현장에서 안전 수칙은 다 지켜집니까?”
“원체 높은 곳에서 일하는 거라 매뉴얼 다 지켜도 사고는 납니다. 물론…… 단가 때문에 거의 못 지키는 게 많지만.”
아파트 10층 높이에서 배 용접 작업을 한다 치자.
원칙대로 하면 족장(임시 구조물)을 설치해 근로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하면 된다. 구조물이 있으면 사고 확률이 적고, 사고가 나도 부상 수위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귀찮고 돈 많이 드는 작업을 한 방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용접 기사가 외줄을 타고 내려가면 공사 기일이 짧아지고 단가도 낮아진다.
대신 사고가 터지면 최소가 중상이다.
“배 용접 작업하는데 족장(임시 구조물) 설치도 안 했다는 겁니까?”
“다 안 하지는 않았지요. 하긴 했는데 당연히 사각지대라는 건 어쩔 수 없이 생깁니다.”
“그럼 이 사고는 그 사각지대에서 발생했겠네요?”
“…….”
“사장님. 제보자가 누군지도 아시죠?”
“…….”
“말씀해 주세요. 누굽니까?”
“내 알기론…… 풍산용접의 배명수 기사라고 알고 있습니다.”
“아시는 분입니까?”
“……안다면 잘 알지요. 나랑도 멱살잡이하다 경찰서까지 갔으니.”
제보자랑 드잡이질까지 했다?
새로운 정보에 준철의 눈이 커졌다.
“사실 그 양반 사고 나서 한 일주일 뒤엔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사정 들어 보니까 외줄 타다 떨어져서 무릎 연골이 나갔다고 하더군요.”
“멱살잡이는 왜 하셨는데요?”
“나뿐 아니라 다른 사장들도 다 불편해했어요. 다친 건 정말 안타깝지만…… 자꾸 다른 하청사 들쑤시고 다니지 않았습니까.”
“그건 무슨 말씀이죠?”
“……그 얘긴 모르십니까?”
“그냥 다 말씀해 주세요. 익명은 제가 반드시 보장하겠습니다.”
“……그 양반이 이런 안전사고는 하청사가 함께 대응해야 한다고 자꾸 선동하고 다녔습니다. 자꾸 무슨 전단지 같은 거 돌리러 오는데…… 그거 한 번 하고 나면 직원들 분위기가
어수선했어요.”
최 사장은 말을 하는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죄책감과 원망이 공존할 것이다. 사고는 안타깝지만 자기 직원들까지 끌어들이려 할 땐 핏대가 섰을 것이다.
‘내가 본 그 장면이 맞군. 다른 피해자들까지 찾아 나설 정도면 절대 좋게 끝났을 리가 없어.’
적당한 돈 쥐여 주고 마무리하라던 대화.
절대로 산재 처리는 안 된다 말하던 대화.
지금까지 밝혀진 정황으로 봤을 때 이건 대성중공업 관계자의 대화였을 가능성이 크다.
“사장님. 그럼 여기서도 대성한테 압력받으신 적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