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60
60화
중기부 vs 공정위 (2)
“대체 날 여기로 왜 부른 겁니까? 중소기업이 공정위 만날 일이 있어요?”
경쟁사인 박민철 사장은 예상했던 대로 숙련된 사람이 아니었다.
미세한 목소리 떨림과 초조한 눈빛이 모든 걸 말해 준다. 이 자리를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바쁜 사람 오라 가라 하는 것도 강압수사입니다. 나도 알 만한 변호사 다 알아요. 짧게 끝냅시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딱 그 짝이군요.”
“뭐?”
“그래도 취조실 왔으면 반성하는 척이라도 보여야 하는 거 아녜요? 우리도 지금 알 얘기 다 알고 있는데.”
박민철은 표정이 잠시 굳었지만 안정을 찾았다.
대웅조선에게 이미 모든 얘기를 듣지 않았나. 공정위도 아직은 특허 유출 경로를 모른다 했다. 나만 잘하면 모든 것이 다 잘 끝날 것이라 했다.
“그리고 저희는 강압수사가 아니라,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드린 겁니다.”
“구원의 손길?”
“자칫하다간 사장님께서 독박 쓰시겠어요. 한번 읽어 보시죠.”
서류를 든 경쟁사 사장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
현재 대웅조선이 모든 특허 책임을 다 자신에게 돌려 버렸는데, 저렇게나 덤덤하다니.
역시나 뒤에서 얘기는 다 끝났다는 건가?
“쯧쯧- 이놈들 또 지랄이네.”
그는 무심하게 서류를 내려놓고 목소리를 키웠다.
“이게 무슨 에디슨이 전구 발명한 것도 아니고 고작 피스톤 하나 가지고.”
“별로 놀랍지 않으시나 봅니다?”
“놀랄 게 뭐 있겠습니까. 최 사장이랑 우리랑 싸운 세월이 얼만데. 한양테크. 별것도 없는 특허 가지고 원청 등쳐 먹고 있었습니다.”
“등쳐 먹어요?”
“네. 뭐 지 말로는 독보적인 기술력이라 하는데, 세상에 무슨 그런 게 있겠습니까. 우리 일신모터가 성능은 떨어지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피스톤 생산했습니다. 대신 가격을 절반으로
낮췄죠.”
그는 여유를 찾았는지 물을 홀짝였다.
“코딱지만큼 좋은 기술력 가지고 대웅한테 바가지 씌운 셈입니다. 근데 자본주의 시장에 그게 뭐 얼마나 가겠습니까? 가격 대폭 낮추고 기술력 따라잡으니, 결국 우리한테 일감
왔습니다.”
“결국 사장님께서 경쟁력에서 이겼다는 말이네요.”
“네. 그때부터 오만 기관 다 찾아다니면서 하소연합디다.”
그는 피식 웃었다.
“근데 참 웃기네요. 엄밀히 말하면 이거 민사사건 아닙니까? 공정위가 맡을 일도 아니고, 적임 부처는 특허청인데. 왜 사람 오라 가라 하시는 겁니까.”
당연히 민사를 안 걸었겠지.
원청이 특허 기술을 알려 줘서 경쟁사가 생산을 해 버린 건데.
“헛수고 말고 그냥 손 떼세요. 우리가 특허 뺏어 갔으면 민사로 해결할 일입니다.”
그 모습을 보며 준철은 확신할 수 있었다.
“대웅조선이 아주 좋은 제안을 해 줬나 보네요. 이렇게까지 폭탄을 떠안는 걸 보면.”
“뭐요?”
“우리가 아는 얘기랑 많이 달라서요. 한양테크 피스톤은 독일 3사와 비교해도 지지 않을 수준입니다. 근데 박 사장님께선 어떻게 이런 생산을 떡하니 하실 수 있는 건지.”
“말씀드렸잖아요. 기술력은 뒤처졌지만 가격경쟁으로 이겼다고.”
“전문가들 의견은 안 그렇던데요. 메이커만 다르고 성능은 완전히 똑같다 합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그리 말하며 준철이 서류를 내밀었다.
“저희 기술유용팀이 양사 제품 대조해 봤거든요? 근데 똑같대요. 제조 기술부터 용접 위치까지 안 똑같은 게 없대요.”
“이, 이건…….”
“어떻게 한양테크 피스톤과 이렇게 똑같습니까. 혹시 누가 이거 공정 방법을 가르쳐 준 거 아닙니까?”
괄괄하던 놈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수사당국은 아무것도 모른다던 대웅조선의 설명과 너무나 딴판이었다.
“대웅조선이 특허 넘겨줬잖아요. 사장님께선 그 특허 도면 전수받고 그대로 생산한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 피스톤을 어떻게 생산했는지 말씀하세요.”
“우, 우리도 대외비라는 게 있잖습니까. 우리 특허는 절대 못 깝니다. 자세히 보면 성능은 저희가 뒤처져요. 모르시는 거라니까.”
또 답답한 소리가 나오자 준철의 얼굴이 굳었다.
“똑같답니다.”
“글쎄 그게 아니라…….”
“완전히 똑같답니다.”
“아니…….”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으면, 다른 제품이라곤 상상도 못 할 만큼 완.전.히 똑같답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대웅조선이 알려 준 기술에서 가격만 낮춰 납품을 했으니.
그의 얼굴은 이미 자백을 다 하고 있었지만, 아직 결심에 이르지 못했다.
자백하는 순간 대웅조선이 약속한 특혜는 물 건너가는 것은 물론, 하청이 원청의 죄를 자백하는 것 또한 상상 못 할 일이다.
‘이런 표정이었겠군.’
준철에겐 그 모습이 어째 낯설지 않았다.
항상 죄를 대신 뒤집어쓰라 지시하는 입장이었는데, 취조실에서 이런 모습을 보니 어째 낯설지가 않았다.
남 일 같지 않아 측은지심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 때.
“……착오가 있는 모양인데. 저희가 책임질 일 있으면 그쪽에 배상하겠습니다.”
“배상?”
“……솔직히 이 피스톤이 무슨 혁신 같은 거창한 발명품도 아녜요. 이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기술 겹치는 거 많습니다. 아무튼 내가 법에 따르겠습니다.”
잠시나마 느꼈던 연민은 온데간데없어졌고, 준철은 그를 하염없이 노려보기만 했다.
답답한 인간 같으니라고.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 했거늘. 왜 자신이 받는 특혜가 영원하다고 믿는 것일까.
준철은 한숨을 내쉬다 뜬금없는 얘기를 꺼냈다.
“사장님. 혹시 왕자의 난이라고 아십니까?”
“……?”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킬 때 그랬죠. 형을 왕위에 등극시키고, 자기는 왕세제가 된다. 근데 그게 형을 위해서였겠습니까?”
“갑자기 웬 뜬구름 잡는 얘기를…….”
“다음인 자신을 위해서였죠. 결국 2년 뒤에는 이방원이 왕에 앉았습니다.”
그리 운을 떼자 놈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태생이 기회주의자라 그런지 이해력은 빠른 모양이다.
“이 피스톤 특허는 결국 자기 주인에게 돌아갈 겁니다. 상식적으로 이 알짜배기 특허를 계속 하청에게 맡기겠어요?”
“…….”
“전당포처럼 잠시 맡아 뒀다가 다시 돌려줘야 해요. 그럼 단물 빠진 사장님은 누가 거들어 주겠습니까.”
생산방식의 이원화.
이게 곧 삼(?)원화, 사원화가 될 것이고, 최종적으론 대웅조선에서 특허를 가져갈 것이다.
이 모두 정체불명의 대화로 확인한 내용이었고,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얘기다.
“솔직히 사장님도 찝찝하시잖아요. 조강지처 버린 놈들이 첩이라곤 못 버릴까.”
모욕적인 말은 이미 귀엔 들리지도 않았다.
다음 상대가 자신이란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니 기회 드리는 겁니다. 대웅조선에서 특허 도면 다 넘기고 생산방식 가르쳐 줬다. 이거 인정하세요. 그렇게 해 주시면 특허 도용에 관한 책임은 묻지 않겠습니다.”
“…….”
“근데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별수 있나요? 원청이랑 공범 되는 거지. 아마 그때쯤 되면 대웅조선도 사장님을 헌신짝처럼 버릴 겁니다.”
일신모터 박 사장은 후들후들 다리가 떨렸다.
지금도 대웅조선은 자기가 희생해 주길 바라고 있다. 헌신짝이란 말이 이토록 와닿을 수 없었다.
***
기술유용팀 박 팀장은 표정 관리가 안 됐다.
“특허 유출 경로를 다 파악했다고?”
“네. 일신모터에서 자백 나왔습니다. 대웅조선에서 넘겨줬다는 거 모두 담겨 있어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최소 1년 이상은 싸울 만한 스케일인데, 하청의 배신으로 모든 정황이 다 나오지 않았나.
“특허 유출시킨 놈은 누구야?”
“유지석 과장이라고 무슨 생산부 담당자랍니다. 이놈이 피스톤 특허 열람하고, 그대로 일신모터에 넘겼습니다.”
“꼭두각시들 말고. 진짜 배후세력은?”
“일단 그쪽 사장급 이름들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노 회장은 아직요. 근데 분위기 봐선 이것도 시간문제지 싶습니다.”
대웅조선은 지금부터 꼬리 자르기에 들어갈 거다. 구색 갖춰서 적당한 사장급 하나 내세우겠지.
하지만 그러기엔 꼬리가 너무 길게 잡혔다.
“이제 겨우 피스톤 하나 밝혀낸 겁니다. 종합팀은 이미 거론된 특허들 전부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관련자들 무더기로 소환할 겁니다.”
이 모든 정황을 회장이 몰랐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서류를 꼼꼼히 확인한 박 팀장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 지금까지 문제 됐단 거 있잖아. 우리도 다시 한번 검토하자고.”
박 팀장이 빠른 태세 전환을 보일 때,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도 있었다.
“진술까지 나와 버렸다?”
“예. 피스톤은 빼도 박도 못 합니다.”
중기부 국장은 복잡한 한숨을 쉬며 턱을 쓰다듬었다.
이런 사건에 중재안 4천만 원을 냈다니. 뒷감당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문제는 공정위의 수사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거란 거다. 배 한 척을 다 분해해 봤고, 현재까지 문제 된 모든 특허를 다 조사하고 있는 중이다.
“일단은 중재안부터 철회해야겠네.”
그는 서류를 덮고 말했다.
“의견들 말해 봐. 생산제재까지 내려야 할 사안 같아?”
“국장님 저…… 그래도 좀 신중한 게 어떨까 싶은데.”
“신중?”
“사안이 이쯤 됐으니 대웅조선도 분명히 반응을 보일 겁니다. 그쪽 대답을 먼저 들어 보는 게 어떨까요. 수사에 협조한다면 굳이 생산제재까진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특허 분쟁으로 인한 생산제재.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권한이다. 나쁜 놈들이 없어서 안 썼던 게 아니다. 거대기업 하나를 식물인간으로 만들면 그 파장이 업계 전체에 미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대웅조선은 하청만 수십 곳입니다. 저희 생산제재가 이들에겐 간접 처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손 과장. 그건 전형적인 대마불사 논리 아니야?”
“……예?”
“대기업 치면 그 피해는 전 하청사에게 간다. 그러니까 항상 적당히 때려야 한다, 이게 그 논리 아니냐고.”
“국장님 그게 아니라…….”
“나도 다른 하청사들 신경 쓰여. 근데 이건 아니지. 하청 특허 뺏어 간 사건인데, 다른 하청사 걱정해 준다는 게 우습잖아?”
“그, 그건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린 원죄가 너무 크다. 세상에 이런 일을 중재안 4천으로 끝내려 했다니.”
부끄러운 지적이 나오자 과장들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국장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서류를 덮었다.
더 이상 길게 시간 끌 거 없다. 지금이라도 공정위 수사 돕지 않으면 불똥이 어떻게 튈지 모른다.
“중재안 당장 철회하고, 생산제재 검토한다고 통보해. 우린 대기하고 있다 공정위가 내려 달라 하면 당장에 제재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