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61
61화
합의 시도 (1)
공정위의 기소로 대웅조선 사건이 언론을 탔다.
사장급부터 실무 과장까지 12명.
준철은 거론되는 이름뿐 아니라 스쳐 지나간 이름도 모조리 입건시켰다.
특허 분쟁으로 원청 임원들이 기소된 건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반장님. 하는 김에 영장도 신청해 주세요.”
“예? 신원 확실하고 도주의 우려도 없어서 영장까진 안 나올 텐데요.”
“압니다. 망신 주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는 팀장도 얼마 없을 거다.
“아주 이를 가셨군요.”
“한번 할 때 제대로 해야죠.”
“알겠습니다. 그럼 기소된 임원들 취조는 언제?”
“꼭두각시들 만나서 뭐 하겠어요. ‘그놈’ 나타나기 전까진 아무도 안 만날 겁니다.”
그놈은 노현석 회장을 뜻하는 말이다. 이 명단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놈이 아직 안 나타나지 않나.
다소 무리하게 영장 치는 것도 자진 출두하란 압박 카드다.
“그럼 좀 요란 떨면서 하는 게 좋겠군요.”
“네. 영장 명단 언론 쓱 흘려주면 알아서 타오를 겁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준철은 떠나가는 김 반장을 보며 펜을 꽉 쥐었다.
저녁 9시 첫 뉴스. 그 정도면 호랑이가 굴에서 나올까?
***
영장 명단이 구체화되자 언론사들 분위기도 달라졌다.
단순히 주가 몇 프로가 오르고 내리는 문제가 아니다. 공정위가 200톤짜리 선박을 다 분해한 초유의 수사 아닌가?
거듭되는 후속 보도로 여론 반응이 타올랐다.
관련 사건이 점점 신문 앞면으로 배치되더니, 기어코 헤드라인까지 장식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주가 게시판은 완전히 지옥도로 변했다.
?이 미친놈들이!
?주가가 20%나 대폭락했는데, 생산제재?!
?이거 사실상 업장 폐쇄 아니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시작은 피스톤이었지만 뉴스가 계속될수록 별의별 특허들이 다 등장했다. 용접공들의 시공 방법부터 갑판에 다는 조명등까지 안 뺏어 간 특허가 없었다.
-배 한 척은 대체 언제 분해한 거야?
?수사 진도가 이런데 우리한텐 이제야 공시가 나와?
?딱 봐도 일 커질까 봐 쉬쉬한 거.
-중기부 생산제재 언제부터인가요?
?아직 검토 중이면 중도에 취소될 수도 있다는 건가요……?
?피응신 ㅋㅋ 검토 중이란 기사 나오면 이미 다 결정 났다는 거. 난 24층에서 던졌다^^
-중기부 생산제재 막을 수 없나요?
?대체 뭣 땜에 생산제재까지 내리는 겁니까? 수사도 좋지만 주주들 권익도…….
쾅!
그 해답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가 책상을 내리찍었다.
“내가 출두할 때까지 이 지랄을 한다?”
임원들은 한마디도 뗄 수 없었다. 주가가 최고점에서 20%나 떨어지지 않았나.
관련자들이 무더기로 기소 처리됐지만, 공정위는 수사를 여기서 그칠 마음이 없어 보인다.
“대답들 해 봐. 맞아?”
“……예, 중기부에서 생산제재 언급하는 건 사실상 이미 결정 났다는 겁니다. 아마 회장님이 출두하지 않으면 정말 제재가 떨어질 겁니다.”
20% 폭락도 바닥이 아니다. 생산제재가 떨어지면 주가가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게 된다.
임원들의 은근한 목소리로 말하자 노 회장이 바로 호통을 쳤다.
“그럼 대책을 내놔 봐! 내가 진짜로 휠체어 타고 검찰까지 가야겠어?”
“그러기엔…… 너무 꼬리가 많이 밟혔습니다. 일신모터가 저희 지시로 피스톤 생산을 했다는 걸 다 진술했습니다.”
“거기에 내 이름 안 나왔잖아. 우리 대타 선수들은?”
“김 사장이 최대한 덮어쓰려 합니다만…… 녹록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뺏어 온 특허가 전부 다 드러났어요. 이 사안을 지금까지 회장이 모르지 않았을 거란 게, 공정위 입장입니다.”
오늘 임원 회의실은 절반이나 비어 있었다.
공정위가 무더기로 기소를 날려 모두 검찰로 가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영장까지 신청해 버렸다.
자칫하면 12인방이 구치소 신세가 될 판.
회의가 계속될수록 임원들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쯤 하면 회장님의 결단이 나와야 하는데 회의가 답 없이 길어지기만 했다.
“하아…….”
임원들 모두 ‘그 대답’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노 회장은 그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김 전무. 그럼 합의해.”
“……예?”
“특허 뺏어 온 거 합의해 버리란 말이야. 이 상황에서 최 사장하고 우리랑 합의해 버리면 생산제재 명분 없어지잖아.”
“그야 그렇습니다만.”
“돈 걱정은 말고 그냥 원하는 대로 다 줘. 나머지 문제는 나중에 생각한다.”
노 회장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임원들이 싹 다 구속되어도 된다. 사람이야 다시 뽑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자신이 검찰에 출석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오랜만이야 최 사장. 별일 없었지?”
한양테크 최 사장은 태연히 웃는 저 얼굴에 주먹을 꽂아 버리고 싶었다.
저걸 안부랍시고 묻는가? 전 언론사가 대웅조선의 특허 도용을 대서특필하고 있는데.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대웅조선엔 별일 없습니까?”
“우리야 별일 있으면 안 되지. 이것저것 할 얘기가 많아서 따로 자리 마련했네.”
“참 상황 우습게 돌아갑니다. 내가 만나 달라 할 땐 당신들 그림자도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최 사장, 감정이 좋을 리 없겠지만 우리 앞일만 생각하세. 솔직히 계속 싸워 봤자 서로 득 볼 거 없잖아.”
김 전무는 진땀을 흘리며 그의 비위를 맞췄다.
최 사장에겐 참으로 격세지감이었다. 대웅조선의 임원들은 그림자도 함부로 못 밟았었는데.
“긴말 않겠네. 우리 대웅조선이 그간 특허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어. 한양테크가 가진 기술력도 좋고, 가격도 글로벌 시장에 비하면 저렴하고…….”
“나 그렇게 길게 말하면 잘 못 알아듣습니다.”
“……합의해 주게.”
“합의?”
“특허 열람해서 일신모터에 넘긴 건 김 사장이야. 염치도 없는 짓이었지. 사직서는 이미 받았고, 우리도 검찰에 가서 모든 걸 다 밝히겠네. 미안하단 말은 꼭 자네 얼굴 보며 하고
싶었어.”
김 전무는 비장한 얼굴로 서류를 내밀었다.
“물론 입으로만 사과할 생각 없네. 이거 백지수표야. 원하는 보상액 적어 주면 회사에서 적극 검토할게.”
최 사장은 심드렁한 얼굴로 서류를 봤다.
그러나 그 서류는 읽어 보나 마나였다.
“왜 말이랑 서류랑 달라요.”
“……응?”
“나한텐 백지수표라 말했는데, 왜 여기 떡하니 ‘합의서’라고 나와 있냐고요.”
“최 사장 우리 어차피 서로 사정 다 알지 않나. 이건…….”
“사정 다 아는 놈한테 감히 합의서를 가져와? 이 염치도 없는 새끼들아!”
무릎 꿇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이딴 태도라니!
심지어 저 거만한 태도는 사과도 아니다. 백지수표 운운한 것 자체가 돈 먹고 떨어지란 뜻이다.
“생산제재 떨어질 것 같으니까 나한테 합의해 달라는 거 아니야?! 그것만 막으면 일단 시간은 벌 수 있으니까.”
“오해하지 말게. 우린 진심으로 이 문제에 대해 사죄하러 왔어.”
“그럼 그놈 새끼가 내 앞에서 사과를 해야지, 왜 꼭두각시가 왔어?”
“……뭐?”
“이것들이 아직도 날 핫바지로 보고 있네. 노현석 회장! 왜 그 능구렁이 영감탱이가 이 자리에 안 왔냐고.”
“회, 회장님은 이 문제와 직접 관련이 없네. 총책임자인 내가 직접 와서 사과하지 않나.”
기가 차서 웃음도 안 나온다.
“노현석 회장은 이 사안과 관련이 없다?”
“…….”
“공정위는 이 모든 결정이 회장 지시 없이 이뤄질 수 없다 했어. 그리고 나 같은 피해자가 벌써 8명이나 되던데? 네들 상습범이잖아. 하청들 특허 밥 먹듯 뺏어 갔잖아. 정말 이
모든 짓을 회장 지시 없이 했다는 거야?”
김 전무는 사색이 됐다.
예상 못 한 대화는 아니었지만 회장님 이름까지 들먹일 줄이야.
하지만 그는 곧 이성을 찾고 담담히 말했다.
“그래서 백지수표 가져온 게 아니겠나. 원하는 금액 써.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우린 최대한 성의 표시 할 거야.”
“사과는 타이밍이 중요한 법이지. 늦었어. 그거 걷어찬 건 네들이고.”
“냉정히 말해 이건 자네를 위한 일이기도 해. 아니면 우리랑 정말 재판까지 갈 거야? 간다 해도 자네가 원하는 액수는 못 받아. 지금 이 백지수표가 최대치라고.”
그건 그의 말이 맞았다.
지금 이 합의서에 사인만 해 주면 얼마든 값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형사처벌과 생산제재만 피할 수 있다면 100억도 기꺼이 지불할 수 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야지. 우리 형사처벌받는 거 자네 분풀이밖에 더 되겠어?”
아무리 원통한 하청이라도 이걸 거절하긴 힘들다.
애초에 이 싸움을 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돈 때문 아닌가?
“현명하게 선택함세. 자네가 여기 100억 적으면 그 돈도 지불할 생각 있어.”
최 사장은 그 서류를 유심히 보더니 긴 생각에 잠겼다.
‘넘어왔구먼.’
그 모습을 바라보는 김 전무의 생각이었다.
역시나 하청은 자본 논리를 이길 수가 없지. 처음만 해도 죽일 듯 달려들었던 놈이 잠잠해졌다. 일단 생산제재만 막으면 다른 일은 나중에 계책을 만들어 내 보리라.
“100억이라…… 그 돈 1년 안으로 마련할 수 있수?”
“물론이지! 회장님이 사비를 출현해서라도 마련할 거야. 제발 공정위에 수사만 취하해 주게.”
“그건 난 모르겠고. 준비할 수 있다면 꼭 이번 년 안에 준비해 놓으쇼.”
“……아니 합의를 해 줘야 우리가 돈을 주지.”
“그게 왜 합의금이야? 난 그 돈 민사로 받아 낼 건데.”
“뭐, 뭐?”
-북북!
최 사장은 합의서를 찢어 버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중도 취하하면 당신들 형사 책임까지 없어지는데, 내가 왜?”
“이, 이 사람아!”
“설사 100억의 반만 가져가더라도 난 절대 취하 안 해. 콩밥 먹을 놈은 먹고, 이걸 직접 지시한 당사자도 개망신 한번 당해 봐야지.”
“최 사장!”
“악다구니 쓰지 말고 네들 회장한테 잘 전달해. 공정위는 이미 최종 지시선 파악했다고. 나만 중도 취하 안 하면 끝까지 해 준다 했어. 법정에서 보자고.”
백지수표를 찢으며 나왔지만 최 사장 마음은 더없이 홀가분하기만 했다.
대웅조선 놈들에게 이렇게나 통쾌하게 호통쳐 본 적이 있던가?
흥분이 가라앉자 손발이 떨려 올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