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63
63화
다자대면 (1)
-다음 소식입니다. 하청 업체의 특허를 도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대웅조선. 공정위는 영장까지 신청하며 고강도 조사를 이어 갔는데요. 생산제재 사흘째인 오늘, 노현석 회장이
검찰에 자진 출두했습니다.
검찰청 출입구는 오스카 시상식처럼 플래시가 번쩍였다.
노 회장은 그 기막힌 광경을 보며 오만 인상을 찌푸렸다.
소환장이 날아온 게 아니라 자진 출두다.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장사진을 쳤다는 건 누가 정보를 흘렸단 것이겠지.
하지만 다 필요 없는 일이다.
생산제재까지 떨어진 마당에 망신살은 이미 피할 수 없었다.
-한 말씀만 해 주십쇼! 대웅조선이 하청의 특허를 탈취한 게 사실입니까?
-현재 관련 혐의가 8건을 넘는데 입장이 어떠십니까?
-이 모든 일이 회장의 결정 없이 이뤄질 수 있는 겁니까.
기자들은 참으로 의외라 생각했다. 휠체어 타고 등장할 줄 알았던 노인네가 덤덤한 얼굴로 차에서 내리지 않나?
노 회장은 의연한 얼굴로 포토 라인에 섰다.
“검찰 수사에서 모든 걸 소명 드리겠습니다. 물의를 일으켜 대단히 죄송합니다.”
-현재 생산제재로 인해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극심합니다.
“실례합니다.”
노 회장이 자기 할 말만 하고 떠나자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뭐야 이건? 저 노인네 오늘 자백하러 온 거 아니야?”
“모가지가 뻣뻣한 게 뭐 대응책이라도 있나 본데?”
동정심 자극하는 그림을 원했는데, 이건 예상과 너무 딴판이다.
중기부가 생산제재까지 내렸으면 사실상 파국이나 다름없는데, 노인네 얼굴은 너무 여유롭다.
“혹시 공정위가 번지수 잘못 찾을 거 아니야?”
“노 회장이 연루되어 있다면 저렇게까지 당당하진 못할 텐데.”
“일단 기다려 보자고. 당당하게 들어갔다가 머리 조아리면서 나오는 놈도 많으니까.”
기자들은 성화를 부리면서도 카메라를 치우지 않았다.
수사의 성패는 소환자의 퇴장할 때 얼굴을 보면 안다.
당당하게 들어간 놈이 침통한 얼굴로 나오면 그때 모든 진실을 말해 줄 것이다.
***
10년 만에 출석한 검찰 취조실.
깔끔하게 재단장을 한 것 같은데 특유의 곰팡이 냄새는 여전하다. 이런 비좁고 음습한 분위기야 익숙하다만, 노 회장이 진짜 참을 수 없는 건 바로 이 기다림이었다.
“괜히 우리 길들이려고 저리 오래 끄나 보네요. 조금만 기다려 보시죠.”
옆에 앉은 변호사 두 명이 노 회장에게 그리 말했다.
하지만 그 조금은 한 시간이 되었고, 곧 세 시간이 되었다.
참다못한 변호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때, 기다리던 취조실의 문이 열렸다.
“출석한 지가 언젠데 지금이 몇 시요?!”
“실례했습니다. 밀린 업무가 많아서.”
“자진 출두하라 해 놓고 이러는 경우는 처음입니다. 우리도 회장님이 직접 왔는데, 스케줄 생각해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최대한 해 주려고 했는데, 걷어찬 건 당신들이잖아요.”
“뭐?”
“오늘 노현석 씨 자백하러 온 거 아니냐고요. 난 최소한 사과 성명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근데 또 뒤에서 무슨 꿍꿍이를 꾸몄기에 그렇게 당당하게 출석했습니까?”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노 회장이 직접 출석해도 뭔가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 거란 걸.
그래서 직접 가서 담판까지 벌인 거였는데, 출석 당일 이런 뻔뻔한 태도를 보일 줄이야.
“뭐 설마 부분적 인정입니까? 모든 혐의에 대해 인정할 순 없지만, 몇 가지 작은 건 인정하겠다?”
“이 사람이 진짜.”
“정 변호사, 그만해.”
노 회장이 입을 열자 준철은 그에게 서류를 넘겼다.
“영감님. 어차피 우리 딱 한마디 듣자고 이 짓 하는 거 아닙니까. 그 한마디 하세요. 지금까지 있었던 특허 도용, 모두 다 내 지시였다고.”
“모두……라는 것은 인정 못 하겠군요. 내가 몰랐던 사건도 많았소.”
그럼 그렇지.
그 와중에 살아 보겠다고 범죄를 축소하겠단다.
“이 방대한 증거들을 보고도 본인이 모두 지시 안 했다는 거예요?”
“네.”
“그렇게 뻐팅기면 생산제재만 더 길어지는 거 아실 텐데.”
“당국이 그걸 가지고 기업들 협박하는 게 문제인 거죠. 아무리 그래도 내가 안 한 건 안 한 겁니다.”
“좋습니다. 그리 나오실 줄 알고 오늘 초대 손님을 좀 모셨습니다.”
초대 손님?
세 사람의 얼굴이 구겨질 틈 없이 준철이 바깥에 소리쳤다.
“들어와 주세요!”
그렇게 여덟 명의 사내들이 들어왔을 때, 노 회장 얼굴은 완전히 굳어 버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노 회장님. 한양테크 최 사장이요.”
“영신의 김 사장입니다.”
“우영전선의 박 사장이에요.”
“PS조명의 김대석이요.”
아무 접점이 없는 이 사람들이 어떤 인물인지, 노 회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바로 대웅조선에서 뺏어 간 특허들의 주인들 아닌가.
“다들 아시는 것 같으니 따로 소개는 필요 없겠군요. 피스톤 특허부터 얘기해 봅시다. 이거 누가 지시했습니까?”
“이, 이게 무슨 짓이요.”
“대답 안 하시면 여기 계신 분들에게 먼저 물어보죠. 사장님. 이 특허들이 정말 회장 지시 없이 뺏길 수 있는 겁니까?”
운을 떼자 바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헛소리하지 말라 그래요! 하청들 특허를 누가 함부로 열람해요? 저기 있는 노 회장이 가져간 겁니다!”
“우리 선박 조명 뺏어 간 부장은 다음 해에 임원 진급했습니다. 임원 진급을 회장이 결정하는데 그걸 몰랐다는 건 어불성설이지요.”
준철은 서류를 들고 한 사내에게 물었다.
“그중에 우영전선의 박 사장님. 여기선 특허 소송 제기할 때 대웅이 합의를 시도했었다고요.”
“네. 그쪽 강 전무가 와서 합의금 2억 줄 테니, 그만두라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그 돈을 왜 줬겠습니까. 지들도 켕기는 게 있다는 거지.”
“그럼 소송을 왜 중도에 그만하셨습니까?”
“우리 같은 놈들이야 아는 게 없으니까. 대기업 상대로 송사 길게 하면 누가 자신 있겠습니까.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그 돈 받고 합의했던 겁니다.”
기술 특허 침해 사실 자체를 입증하는 게 까다로운 데다, 특허청이나 법원 등은 절차를 잘 따르고 근거를 튼튼하게 갖추는 대기업 쪽 논리에 기우는 경우가 많다.
“그럼 그 2억은 어떻게 받았습니까.”
“대웅조선 사내 유보금으로 받았습니다.”
준철은 고개를 돌렸다.
“회삿돈이 2억씩이나 나갔는데…… 노 회장님은 이걸 모르셨다?”
노현석은 어느덧 고개도 들지 못했다.
구체적인 합의금 액수까지 정해 준 게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피스톤 특허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대웅조선에서 최 사장님에게 합의를 시도하려 했더군요. 이거 진짜 다 몰랐어요?”
노 회장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하청 사장들의 눈빛이 자신을 따갑게 쏘아보고 있었다.
변호사들과 상의를 끝내고 출구 전략을 다 짜 놨지만 그건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젠 정말 가망이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드릴게요. 지금이라도 인정하면 생산제재는 조기 해제될 겁니다. 열심히 벌어서 이 피해 보상 다 하셔야죠.”
그는 긴 시간 생각하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지시한 일이었소…… 미안합니다. 이 모든 특허 도용 다 내가 지시한 일이었소.”
망할 놈의 영감탱이.
저 대답이 처음부터 나왔으면 얼마나 좋아.
***
“나온다! 저기!”
한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기자들이 다시 바빠졌다. 드디어 노 회장이 나왔기 때문.
출석 때보단 기자들이 많이 줄어 있었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시끌벅적했다. 조사를 마치고 나온 노 회장 얼굴이 금세 핼쑥해졌기 때문이다.
노 회장은 기자들이 묻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먼저 물의를 일으켜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대답부터 해 주십쇼. 이 사안의 최종 몸통은 회장인 본인입니까?
-공정위는 이 모든 사안이 회장의 지시나 묵인 없이는 이뤄질 수 없을 거라 파악했는데요.
노 회장은 긴 원고를 들더니 말했다.
“일련의 하청 특허 탈취가 저의 지시였음을…… 모두 인정합니다.”
그의 발표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회장이 직접 관여했음을 인정하는 발표다. 카메라 철수 안 시키고 버틴 보람이 있다.
하지만 놀랄 만한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저는 이 모든 일을 인정하고 당국에 밝혔으며 경영 일선에서 은퇴하겠단 각오를…… 이 앞에서 밝히겠습니다.”
“……!”
은퇴?
“관련 문제는 각 하청사와 논의하기로 하였고, 피해 보상에 최대한 협조토록 하겠습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단 말씀입니까?
-구체적으로 언제부터입니까?
“대단히 죄송합니다. 거취는 나중에 발표토록 하겠습니다.”
노 회장은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완벽한 패배 선언이었다.
***
[속보 – 노현석 회장 경영 은퇴 시사] [하청 특허 도용 사례로는 처음]이튿날엔 이에 관한 기사가 쏟아졌다.
하청들의 특허를 임원도 아닌 회장님이 직접 탈취한 사례 아닌가? 이 모든 지휘를 회장이 했다는 건 충격이었다. 이 문제를 가지고 회장을 은퇴시킨 것도 처음이었다.
언론에선 후속 보도를 내며 이 문제를 다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중기부가 생산제재를 내렸다는 것.
“감사합니다, 팀장님.”
“별말씀을요. 사장님께서 계속 싸워 주신 덕분인데.”
두 사람은 이 승전보 같은 뉴스를 누구보다 기뻐했다.
“저희는 계속 형사처벌 진행할 겁니다. 회장 퇴임시켰으니, 그 수족들도 처벌해야죠. 과징금은 9억 5천 정도 때릴 겁니다.”
특허 도용이 발견될 시 내릴 수 있는 최대 과징금이 10억.
이 정도면 거의 최대치 부과다.
“저희가 이렇게 형사처벌 내리면, 민사 판결에도 영향이 갈 겁니다.”
“이거 원 꿈인지 생시인지. 일개 하청사 특허로 그 높으신 양반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게 얼떨떨합니다.”
그리 말하며 그가 준철의 손을 덥석 잡았다.
“팀장님 아니었으면 나 진짜 부랑자가 되었을 거예요.”
“사장님 싸움은 지금부터니 더 굳건하게 버텨 내세요.”
“아무렴요. 공정위가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 민사도 당당히 이겨야죠. 100억보다 더 받아 내 버릴 겁니다. 하하.”
그의 웃음을 보니 묘한 기분이 든다. 피켓시위를 했을 때만 해도 이런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는데. 그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풀릴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두 손을 맞잡은 둘은 한참이나 서로 덕담을 나눴다.
그렇게 최 사장을 보냈을 때 준철은 묘한 감정이 들었다.
‘뿌듯……하네?’
수사를 직접 기획하고 마무리 지어서일까?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항상 이런 문제 해결하고 나면 과거의 기억들이 자신을 괴롭히기 바빴는데 오늘은 과거에 대한 죄책감을 넘어서 뿌듯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