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64
64화
다자대면 (2)
“팀장님. 자료 이관 준비 다 끝마쳤습니다.”
“아, 네. 고생 많으셨어요.”
대웅조선의 파장이 크긴 큰가 보다.
노 회장의 사퇴는 그 뒤로도 연일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하청들 특허에 손대다 회장의 목이 날아갔으니. 게다가 잘못을 시인했는데도 공정위가 기소를 계속 강행하지 않았나.
재계는 아직도 충격과 공포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근데 진짜 이렇게 이관해도 되는 걸까요?”
“왜요.”
“섭섭해서 말이죠. 우린 항상 사건 다 매듭지어서 보고 올렸는데.”
김 반장과 박 조사관은 어쩐지 서운한 눈치다.
하긴 고위직들의 이목이 집중된 이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이 크겠지. 신문에 실리며 주목도 크게 받지 않았나.
“솔직히 뭐 기술유용팀이 한 거 있습니까? 우리가 배 한 척 까 봐야 한다고 할 때 와서 툴툴거리기나 했지.”
“그건 저도 반장님 의견에 동감요. 이번 수사 기획부터 입증까지 저희가 다 한 겁니다.”
“그렇다고 저희가 재판까지 다 맡을 순 없잖아요.”
말은 그리했지만 준철도 심정은 엇비슷했다.
아깝다.
혐의 다 입증해서 이젠 유죄 판결만 받아 내면 되는데. 법원에서 그 세리머니를 보진 못할 것 같다. 앞으로 재판을 맡아야 하는 건 기술유용팀이니 말이다.
“이럴 때 보면 종합팀인 게 진짜 한스러워. 재판에서 승소하면 지들이 한 것처럼 으스댈 거 아냐? 밥상은 우리가 다 차렸는데.”
“그러게요. 수사할 때 적극 돕기라도 했으면 밉지나 않지.”
두 사람이 툴툴대자 준철이 슬쩍 상패를 문질렀다.
“그래도 올해의 공정인상은 저희 팀이 받지 않았습니까. 위엣 분들도 우리가 고생한 건 충분히 알걸요.”
“칫- 알긴 뭘 알아요. 지휘부야 자기 가까운 데서 일하는 놈들이 제일 고생하는 줄 알지.”
“모르면 제가 팍팍 어필할게요. 우리가 제일 고생했다고.”
“뭐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아무튼 과장님께 마무리 보고 잘해 주십쇼.”
“넵. 종합 보고하고 오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준철이 일어날 때, 박 조사관이 말했다.
“아, 근데 팀장님. 이거와는 별개로 저희 당연히 포상 휴가는 있겠죠?”
“아무렴요. 2달 동안 야근 안 한 날이 없는데, 최소 사흘은 받아 내야죠. 그건 진짜 염려 마세요.”
“그럼 팀장님. 우리 세 명이서 낚시 안 가시렵니까?”
낚시?
“저랑 반장님이랑 이번에 황릉 가기로 했거든요. 2박 3일 낚시 여행.”
“아…….”
“딱 보아하니 팀장님도 한가하신 것 같은데 같이 가시죠.”
“……무슨 낚시인데요. 전 사실 거의 해 본 적이 없어서.”
“돛단배 낚시라고 우리끼리 배 하나 빌려서 바다 한가운데로 가는 거 있습니다.”
“……근데 제가 그런 건 잘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럼 저희가 알려 드릴게요. 낚시용품이야 저희한테 다 있고, 팀장님은 몸만 오세요.”
싫다는 티를 이렇게 내도 못 알아듣는다.
‘이럴 거면 그냥 휴가를 안 달라고 하는 게 낫겠는데.’
낚시 자체도 싫지만 시커먼 남자 세 명이 2박 3일 동안 부대끼는 건 더 싫다. 박다영과의 데이트는 일말의 기대감이라도 들지 않았나.
“아, 사람이 간혹가다 바람도 쐬고 해야 머리 잘 돌아가요. 그리고 팀장님. 낚시랑 골프. 이건 공무원이 아니라 어느 회사를 가든 필수입니다. 이참에 배워 두세요.”
더 이상 빼는 것도 무리.
“……기대가 되네요.”
준철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똑똑.
“국장님, 오경석 과장입니다.”
-응 들어오게.
오 과장은 긴장한 기색으로 문을 열었다.
국장님에게 하는 보고가 긴장돼서가 아니다. 바로 이 자리에 위원장님이 계시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입니다, 위원장님.”
“응. 오경석 과장?”
“네. 처음 인사드립니다, 종합감시국 오경석 과장입니다.”
오 과장은 허리를 폴더폰처럼 숙였다.
사건이 끝날 때 국장에게 보고하는 건 으레 있는 일이다. 하지만 위원장님이 직접 찾아와 보고를 듣는 건 처음.
이번 사건에 관심이 큰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국장한테 얘기 많이 들었네. 원래 종합국이 존재감이 큰 부서가 아닌데, 자네 덕에 올해의 공정인상까지 탔다고.”
“과찬이십니다. 제가 아니라 이준철 팀장이 탄 상인데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물이야. 점잔 빼기는.”
위원장님의 웃음에 오 과장도 긴장을 조금 놓을 수 있었다.
“그래. 이번 대웅조선 사건도 잘 마무리했고?”
“예. 위원장님 덕분에 잘 마무리했습니다. 어제 최종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그 자료 좀 직접 볼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그렇게 준철이 올린 종합보고서가 국장을 넘어 위원장에게 직접 보고되었다.
위원장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서류를 넘겼다.
“이 친구는 어떤가?”
“이준철 팀장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 국장 말로는 약간 무대포 스타일이라더만.”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직진하는 스타일이긴 하죠.”
“혹시 통제 불능이야?”
“그렇게 말씀드리기가…… 참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만류했는데 그 친구가 고집 부려서 관철시킨 수사가 대부분입니다만 항상 결과가 좋아 버려서.”
오 과장이 난처한 얼굴로 말하자 위원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굳이 내 앞에서 말 가려 할 필요 없어. 한마디로 말해 꼴통이라는 거 아니야. 근데 항상 결과가 좋은 꼴통.”
“아, 예. 듣고 보니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만 봐도 그랬다.
중기부랑 싸울 각오까지 하고 덤벼들지 않았나.
본래 특허 분쟁은 애매하고 까다로워서 어느 부처든 기피하는 수사다.
하지만 그 꼴통 팀장은 중기부를 설득해 생산제재를 이끌어 냈고, 최종 배후인 노현석을 경영 일선에서 은퇴까지 시켜 버렸다.
재계는 아직도 충격과 공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다.
“이 국장. 자네는 이 친구 어떻게 보나.”
위원장의 물음이 옮겨 가자 국장이 웃었다.
“꼴통이란 별명은 너무 박하지 않나 하는…… 보고서엔 이렇게 나와 있어도 이 친구 상당히 신중한 편이거든요.”
“신중?”
“웹튜브 칠 때 핵심 연루자들을 기소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답니다. 근데 자백을 해서 수사가 쉽게 풀렸으니 정상참작해 주자고 주장했다는군요. 그래야 또 나중에 같은 사건이 재발해도
수사가 쉽다고.”
“그래?”
“네. 진짜 앞뒤 안 재고 쑤시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강약조절에 능숙한 편이죠.”
그 한마디가 위원장의 구미를 더욱 당겼다.
강약조절, 그게 바로 노련함 아닌가. 단순히 의욕 넘치고 패기 넘치는 놈인 줄 알았는데, 최소한의 계산은 하고 움직인다.
“한데 위원장님. 자꾸 그 친구 얘기는 왜…….”
“다름 아니라 이 친구 한번 본청으로 부를까 해서 말이야.”
“본청……이요?”
“응. 그렇게 쓸 만한 친구면 본청 기획부에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오 과장과 이 국장 얼굴엔 금방 배신감이 들었다.
왜 갑자기 위원장님이 출두해 직접 보고를 듣는가 했더니. 결국 본청으로 스카우트해 가겠단 얘기 아닌가!
하긴 커리어만 보면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고시 출신에 수사 경력 화려하고, 성품도 딱 지휘부에 걸맞은 놈이다.
“혹시…… 요직으로 돌리시겠단 뜻인지.”
“넘겨짚진 마. 그냥 좀 재능 있어 보여서 물어보는 거야.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해?”
이 국장은 대답 없이 오 과장을 바라봤다.
가장 가까이에서 일해 본 직속상관이 대답해 보란 뜻이다.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은…….”
“이 사람아. 계속 그렇게 어중이떠중이 떠들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인사 발령 내려고 온 게 아니라 허심탄회한 얘기 좀 듣고 싶어서 온 거야.”
오 과장은 국장의 눈치를 슬쩍 살피다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그냥 좀 더 두고 보는 게 어떨까요.”
“반대라는 건가?”
“네. 가까이서 본 그 친구는 별로 자리 연연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기 좋고 한적한 지방으로 발령 보내도 알아서 큰 사건을 만들어 올 놈이죠.”
오 과장은 위원장의 반응을 살피며 마저 말했다.
“그리고 이 친구가 가진 장점 중 하나가 다재다능하다는 겁니다.”
“다재다능?”
“갑질, 특허, 보험약관, 뒷광고. 거의 결이 다른 사건인데 항상 수사에 성공했죠. 그래서 좀 더 실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큽니다. 과연 이놈이 대기업 담합이나 일감 몰아주기,
리베이트 같은 수사는 어떻게 다룰까.”
“경험을 좀 시켜 보고 싶다는 건가.”
“네. 아직 적성을 찾았다고 하기엔 이릅니다. 그렇게 경험을 두루두루 시킨 다음 요직으로 돌려도 늦지 않을 겁니다.”
그리 말하는 오 과장은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공정위에서 종합감시국은 가장 존재감이 없는 부서. 여기에 잡아 두는 건 족쇄를 채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 과장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다. 낭중지추,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은 언젠간 눈에 띄기 마련. 그 과정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이 팀장은 반드시 위로 갈 놈이다.
“허허. 그렇구먼.”
위원장은 너털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허심탄회하게 말해 줘서.”
“아닙니다. 저 같은 말단들 의견 들어 주셔서 오히려 감사합니다.”
“듣고 보니 또 자네 말이 맞아. 나도 신입 때는 서울, 대전, 부산 다 찍고 승진했지.”
박 위원장의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놈일수록 현장에서 강하게 키워야 한다. 요직으로 돌려서 키우는 것도 좋다만, 더 와일드하게 크는 게 좋지.
“대신에 영어 공부 좀 하라 그래.”
“예?”
“현장 경험도 좋지만 이론도 중요한 법이야. 우리 FTC(美 공정위) 정기 교육이 6월이었지?”
“아, 예.”
“내가 요직으론 못 끌어 줘도 그놈 연수 교육은 추천하고 감세.”
정기 교육.
공정위는 매년마다 미국 공정위로 파견 연수를 보내는데, 이 과정은 국비유학생 선발과 다름없었다. 20만 공정위 직원 중 단 8명만이 해외연수 티켓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국장급 진급자 중 이 해외 연수를 가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글로벌 공조가 중요해지고, 다국적 기업들의 독과점이 심해지는 요즘엔 해외 연수 이력이 진급의 필수 코스 중 하나였다.
달리 말하면 이건 이 팀장을 엄청 밀어주고 은퇴하겠다는 얘기.
“왜, 그 친구 영어 못하나?”
“아닙니다. 모르면 지금부터라도 배워야죠.”
“좋아. 그럼 잘 알아듣게 설명해 봐. 아, 내가 이런 말 했다는 건 비밀이야. 난 또 젊은 놈이 괜히 자만하게 되는 건 싫거든.”
“예. 티 안 내고 잘 설명하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으며 위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하는 바를 이루진 못했지만, 말년에 참 재밌는 놈을 만났다.